a  본문-024-(6)-1-나
 
다른 나라 중생이 공경하고 믿고 즐거워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다시 그들 가운데서 위없는 법을 설하건만, 너희들은 이를 듣지 못하므로  다만 내가 멸도했다 생각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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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成佛)하신 *구원실성 본불 석가세존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항상 *사바세계에 계시면서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불교 신앙을 하면서,--항상 여기에 있어 멸(滅)하지 아니하건만, 방편력을 쓰는고로 (滅)과 불멸(不滅)이 있음을 나타내노라.-고 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맞바로 받아 가지면, 그 순간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바로 불국토(佛國土)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성품욕망이 각각인 모든 사람의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끊어주시고 법화경 성불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때로는 인간세계를 떠나는 *열반을 보여주신다던가ㆍ또 어떤 때는 부처님은 영원한 대생명, *상재차불멸(常在此不滅)의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중생근기따라 부처님의 존재이원론(二元論), 두 방면으로 분별하여 뒤를 이어 끝없이 나오는 모든 사람의 迷惑  煩惱를 끊어주고 부처님의 수명론으로 *용입시키기 위해 <멸도(滅度)불멸(不滅)>을 대립시켜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이라는 존재는 지구(地球)라고 하는 이 행성(行星)의 사바세계 뿐만 아니라, 다른 항성(恒星)이라든가 다른 물질세계의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공경하고 가르치심으로 구원 받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시면, 찰나에 *일불승 법화경세계로 인도하여 구제하시는 절대(絶對)권능(權能)을 갖추고 계신 본체대생명체대생명력 그 자체이십니다.
 
범부는 일체중생구제를 전제(前提)한 절대의 부처님의 존재를 생각지 않고, 오로지 물질세계의 속성에 따라 부처님이 안계시다고 하는 것으로 그치는데 그것은 반쪽의 생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영성세계를 열어주고자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오셨다는 것을 굳게 믿음과 동시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몸으로 행하면, 항상 그의 마음속에 거하여 작용하십니다. 물론 인생사 괴로움의 근본 되는 *인간팔고에서 *해탈(解脫)케 해주십니다. 인간은 유한성(有限性)을 전제한 물질세계만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추구하기 때문에 부처님 세계, 무한한 영성(靈性)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중생속성을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생은 부처님을 뵙고 싶다ㆍ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얻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중생의 타성(惰性)은 언제든지 부처님을 만나 뵈올 수 있고, 가르치심을 들을 수 있으면, 좀처럼 가르치심을 구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방편으로 열반에 드십니다. 중생은 부처님의 열반을 보고서야 가르치심으로 구원받겠다는 생각을 일으킵니다. 바로 그 때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설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공부한 사람이 법화경 한 법구는 물론, 법화경을 전하는 *오종법사는 어떤 공덕이 있는가에 대해서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법사공덕품 제 19에서 자세히 설해주셨습니다. 수희공덕품에서도 오종법사의 공덕을 말씀하셨지만, 법사공덕품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여 불교 신앙 특유의 *일체중생실유불성론(一切衆生悉有佛性論)을 토대로 한 실사구시(實事求是),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신앙의 육근공덕 신앙적 작용을 설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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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法華經)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제 19
 
 
*법화경 수희공덕품 끝머리에서,--만일 법을 강(講)하는 처소에서 사람을 권하여 앉아 경을 듣게 하면, 이 *복의 인연으로 해서 범천 전륜왕의 자리를 얻으리니, 어찌 하물며 일심으로 듣고 그 뜻을 해설하며 설함과 같이 수행하면 그 복이 가히 한정이 있겠느냐.--하는 게송으로 수희공덕품이 끝납니다.
대승교를 설하는 곳에서 남을 권하여 자기와 같이 앉아서 함께 가르치심을 듣게 한다면, 그 *과보(果報)로써 내세에는 *제석천ㆍ범천왕 또는 *전륜성왕의 지위에 태어난다 하셨습니다. 일심으로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불법을 듣고 남을 위해 설할 뿐만 아니라, 몸으로써 실행하면 그 사람의 복이 한량 없이 크다는 것으로써 수희공덕품의 막이 내립니다. 이어서 법화경을 역동적으로 펴는 오종법사의 공덕이 금생에 육근공덕이라는 *현보(現報)로 나타나는 법화경 법사공덕품이 열립니다.
 
*법화경 법사공덕품 제 19 첫머리에,---그 때 부처님께서 상정진보살마하살에 이르시되,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이 법화경받아 가져 혹은 읽고ㆍ혹은 외우며ㆍ혹은 해설하고ㆍ혹은 옮겨 쓰면, 이 사람은 마땅히 팔백의 눈(眼)공덕천이백의 귀(耳)의 공덕과팔백의 코(鼻)의 공덕과천이백의 혀(舌)의 공덕과팔백의 몸(身)의 공덕과천이백의 마음(意)의 공덕을 얻으리라. 이 공덕으로써 육근(六根)장엄하며 다 청정(淸淨)하리라. 이 선남자 선여인은 부모 소생의 청정한 육안(肉眼)으로 삼천대천세계 내외에 있는 산림ㆍ하천ㆍ바다를 보되, 아래로는 아비지옥에 이르고, 위로는 유정천(有頂天)까지 이르리라. 또한 그 중의 일체중생을 보며, 아울러 업(業)인연과보로 나는 곳을 다 보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옮겨 쓴다>는 것은 法華經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만이 아니라, 法華經에 관한 저술(著述) 등 일체를 포함합니다. 팔백(八百)이니ㆍ천이백(千二百)이니 하는 숫자는 다만 사(四)배수(倍數)로써 가지가지 공덕다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四) 전후좌우(前後左右), 곧 앞(前) 뒤(後) 그리고 왼쪽(左) 오른쪽(右)을 가리킵니다. (八) 동서남북 사방(四方)과, 동북동남서남서북사유(四維), 네 귀퉁이를 합친 것으로서 모든 공덕이 구족함을 말합니다.
부언하면  circle03_darkgreen.gif 보살의 사무외(四無畏) 사상으로 法華經을 설한 *과보로 모든 사람들이 감동한다는 말씀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신앙의 육근공덕(六根功德)
 
팔백 안공덕(八百眼功德) 천이백 이공덕(千二百耳功德)팔백 비공덕(八百鼻功德)천이백 설공덕(千二百舌功德)과ㆍ ⑤ 팔백 신공덕(八百身功德)천이백 의공덕(千二百意功德)을 법화경 육근 공덕이라 합니다.
 
팔백 안공덕(八百眼功德) 法華經받아 가지고  ② 읽고  ③ 외우고  ④ 해설하고  ⑤ 옮겨쓰는 오종법사는 가지가지의 공덕을 갖춘 훌륭한 눈을 얻습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안(肉眼)으로도 삼천대천세계의 안팎의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다 볼 수 있으며, 아래로는 아비지옥으로부터 위로는 유정천(有頂天)에 이르는 그 사이의 모든 중생의 환경과 상태를 다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천상계에 태어나 *천안(天眼)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육안만으로 모든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러한 훌륭한 공덕을 얻는 것을 <팔백 안공덕>이라 합니다.
 
천이백 이공덕(千二百耳功德)法華經을 받아가지는 오종법사수행 공덕으로 청정한 를 얻고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소리를 다 듣습니다. 아래로는 아비지옥에서부터 위로는 유정천, 곧 천상계 사이에 있는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의 소리를 사실 그대로 듣는 공덕입니다. <모든 소리를 다 듣는다>는 것은, 대우주(大宇宙) 본체(本體)라고 하는 부처님의 무한한 힘의 영향권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미혹 번뇌를 끊고 사심이 없는 청청한 마음이 되면, 인간 이외의 것의 소리를 듣고도 그 소리가 기뻐하는 소리인지ㆍ슬퍼하는 소리인지ㆍ또한 어떤 상태에서 내는 소리인가를 낱낱이 알 수 있으므로 <천이백 이공덕>이라 합니다.
 
팔백 비공덕(八百鼻功德)法華經  오종법사수행을 하면, 온갖 냄새를 다 분별해 알 수 있는 공덕을 얻습니다.부모 소생의 코로 삼천대천세계의 상하내외(上下內外)의 가지가지 모든 향기, 그러니까 모든 꽃의 향기와 모든 동물의 냄새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이곳 지상에 머무를지라도 부처님을 비롯한 *사오계(四悟界)와 천상계의 모든 향기를 조금도 착오가 없이 훌륭하게 분별하여 알 수 있는 공덕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에는 다 고유한 냄새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 가진 것의 고유한 냄새를 맡아서 낱낱이 다 분별해 알 수 있고, 또는 그 냄새의 대상이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는 것을 알아 조금도 착오가 없이 알 수 있는 지혜를 <팔백 비공덕>이라 합니다. 천상계에 있는 향기를 이 세상에서 맡아서 안다는 것은 인간이 참으로 마음에 迷惑이 없게 되면, 어떠한 처지에 있고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다 환히 알아본다는 뜻입니다.
 
천이백 설공덕(千二百舌功德)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는 法華經을  받아 가지고읽고외우고해설하고옮겨 써서 진심으로 믿고 몸으로 실행하고 교학을 널리 전하는 과보로 <천이백 설공덕>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舌)의 공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되는 것이고, 하나는 법구 하나를 설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치심과 같이 *삼주설법으로 잘 설하여 모든 사람이 다 환희심을 내고 만족을 얻게 한다 하여 천이백 설공덕이라 합니다. 음식의 가치는 음식을 먹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 따라 크게 차이가 생기는 것과 같이, 法華經을 펴는 오종법사도 먼저 마음가짐이 청정한가가 관건입니다. 法華經을 받아 가진 사람이 여러 대중 앞에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설하게 되면 소리가 깊고  묘(妙)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소리를 직접 듣는 것처럼 기쁘고 즐겁게 해줍니다.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성질을 잘 나타냅니다. 물론 목소리는 각자 타고난 것이지마는 실은 그 사람의 마음 가짐이 목소리를 통해 드러납니다. 참으로 신심이 굳어서 부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타고난 목소리는 좋지 않더라도, 그 목소리는 저절로 미묘하게 울려서 깊이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큰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하여 <천이백 설공덕>이라 합니다.
 
팔백 신공덕(八百身功德)法華經을 받아 가지면, 몸이 *야광주(夜光珠)처럼 밝아져서 모든 중생이 보기를 즐겨한다고 하셨습니다. 몸이 야광주처럼 밝게 빛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相)을 우러러 보았을 때, 조금도 더러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공덕을 얻는다 하여 <팔백 신공덕>이라 하셨습니다. 法華經을 듣고 깊이 믿는 마음이 솟구치고 환희심을 일으키면,생김새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를 대하는 사람이 그의 못난 것을 잊고 부처님이나 보살을 친근하는 것과 같은 편안한 마음을 얻는다 하여 <팔백 신공덕>이라 합니다.
 
천이백 의공덕(千二百意功德)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法華經 받아 가지고 ·  읽고 ·  외우고 ·  해설하고 · 옮겨쓰는 *오종법사수행으로 法華經을 세상에 널리 전하면,온갖 마음의 공덕을 얻는다고 하여 <천이백 의공덕>이라 하셨습니다. 法華經을 세상에 펼 때, 재산이 많고 신분이 높은 그런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업신여긴다든가 하지 말고, 모든 대중을 상대해서 두렵거나 거리낌이 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마음으로 설하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法華經에 등장하는 법구마다 일체중생구제론이 내재되지 않은 경문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량 없는 깊은 뜻이 들어있는 法華經을 한 게송이라도 남에게 해설하는데, 한 달ㆍ 두 달ㆍ또는 일년이 걸리더라도 지극정성으로 설하면 그 사람은 온갖 마음의 공덕을 얻는다고 하여 <천이백 의공덕>이라 하셨습니다.
 
본불 석가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무리 간단한 말씀이라도 다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하나인 그 가운데 일체가 있고,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그것이 곧 하나이며,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한 티끌 그 가운데 우주를 먹음었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우주의 티끌마다 낱낱이 또한 이와 같네---라는
<큰 하나>의 실상을 *의상대사(義湘大師)께서는 법성게(法性偈)에서 드러내셨습 니다. 반드시 많이 읽고 많이 배워야만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단 한 법구를 들어도 문자 뒤에 숨어있는 깊은 뜻, *현의(玄義)를 완전히 알면 큰 힘얻는다 하셨습니다.
 
*법화경 법사공덕품 제 19 끝머리 게송에,---법화경을 가지는 자는 의근(意根)맑음이 이와 같아서 비록 *무루(無漏)를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우선 이같은 상(相)이 있느니라. 이 사람이 이 경을 가지고 희유한 경지에 편안히 머물러 일체 중생이 환희하고 사랑하며 공경하여 능히 천만 가지의 착하고 교묘한 말로 분별해서 설하리니 법화경을 가진 때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체중생실유불성(切衆生悉有佛性) 관점에서 法華經 오종법사를 실행하면,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과ㆍ마음(意)이라고 하는 *육근은 구제를 전제한 <큰 하나>로 작용합니다. 으로 보고ㆍ로 듣고ㆍ로 냄새를 맡고ㆍ로 맛을 알고ㆍ으로 행하고ㆍ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다 부처님의 마음과 일치하게 되는 것은, *일체중생구제론탑재(搭載)法華經을 항상 믿고  행하는 공덕의 작용이라는 것을 필히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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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보살의 사무외(四無畏)=* 사무소외(四無所畏)
 
부처님께서는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 곧 대승수행을 하는 사람이 자기가 믿는 바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할 때에는 항상 사무외(四無畏)에 유의하라고 하셨습니다.
 
총지불망 설법무외(總持不忘 說法無畏)입니다.
총지(總持)하여 잊지 않아서 법을 설함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부처님의 참마음, 곧 진실의(眞實義)를 전하는 성어(聖語)게송(偈頌)을 잊지 않고 남에게 가르칠 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 처음 귀의했을 때의 초발심(初發心) 신심을 계속하여 중도에서 그 결심이 느즈러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설할 때는 언제나 두려워 하거나 거리끼는 일이 없이 누구에게나 자기가 믿는 바를 두려움 없이 그대로 설하는 힘찬 용기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할 때, 부처님의 *일체중생구제론이 내재(內在)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생각을 섞으면 부처님의 진실의(眞實義)를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진설(眞說)을 하지 못 할 망정 파설(破說)일랑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대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는 순간은 감격해서 꼭 실행하려고 결심하지마는 시간이 지나면 소홀해집니다. 즉 훨훨 타오르다가 사그라지는 불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뼈를 에는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계곡의 얼음장 밑에 흐르는 맑은 물과 같은 힘찬 신앙을 하라는 것입니다.
 
진지법약 급지중생 근욕성심 설법무외(盡知法藥 及知衆生 根欲性心 說法無畏)입니다.
법약(法藥)을 모두 알고 중생근기욕망성품마음을 알아서 법을 설함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우주 대생명체이신, 구원실성 석가세존이라는 본체 사상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실대승(實大乘) 法華經에 의지하여 중생의 근기와ㆍ욕망과ㆍ성품과ㆍ마음을 알고, 그에 알맞는 방편으로 부처님의 참뜻을 중생에게 전하는데 두려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법약(法藥) 모두 안다>란, 부처님께서는 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각각 알맞는 가르치심을 주셨는데, 그것을 잘 분별해서 아는 것이 곧 <법약을 모두 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근기를 정확히 알아야만 상대에게 합당한 방편을 써서 구제합니다. 세상에는 사물을 빨리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ㆍ얼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ㆍ어느 한 가지 일에는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다른 것은 전연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ㆍ또 장사는 잘 해도 사무 보는 일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ㆍ무슨 물건을 잘 만들어도 회사 운영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ㆍ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고ㆍ좋은 음식을 먹는 것을 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ㆍ돈 이외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고ㆍ물질적인 욕망은 별로 없는데 명예만은 남달리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ㆍ성질이 급하여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견디고 참는 사람도 있고ㆍ생각이 비천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생각이 고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 따라 근기와ㆍ욕망의 종류와ㆍ성질과ㆍ정도가 각각 다른 모든 사람에게 알맞는 가르치심을 설해주기 위해서 <법약을 다 알고 >설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능문답 설법무외(善能問答 說法無畏)입니다.
잘 문답하여 법을 설함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 >이란 (善)(能)을 함께 말한 것입니다. 완전하다는 뜻이고,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성질의 면(面)을 가리키고, 작용의 면입니다. *보살과 이 다 갖추어져야 하지마는 사람에 따라 어느 한쪽이 수승하고 다른 한쪽은 모자랍니다. 보살과 , 그리고 지(智)덕(德)을 다 갖추었을 때, 어느 누구의 질문도 대답하여 부처님의 *진실의(眞實義)를 전하는데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문답은 남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중요합니다. 남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기 혼자 설하여, 상대편이 알았듣든지 말든지 자기 할 말만 하고 끝내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르침을 듣고 있으면 의문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자유로이 의문을 말하게 해서 그 의문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만한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法華經을 설해도 그것은 큰 효과가 없습니다. 참으로 남에게 法華經을 설하려면, 언제 어떤 물음에 대해서도 올바를 대답을 하겠다는 깊은 각오와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능단물의 설법무외(能斷物疑 說法無畏)입니다.
능히 물의(物疑)를 끊어서 법을 설함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의(物疑) 가지가지 사물에 대한 의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환경에 따라 살아온 정서(情緖)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의문이 많습니다. 각자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의문이 다르고, 따라서 남의 의문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노사관계(勞使關係),근로자(勤勞者)사용자(使用者)의 관계입니다.
어느 사업체나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입니다.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하는 근로자와,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사용자는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임금 인상문제를 비롯하여 온갖 갈등이 있고 분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로자나 사용자나 다같이 등 따시고 배불러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여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여는 대국민 경제를 대전제(大前提)했을 때 만이, 각각 다른 모든 생각들이 모아집니다.
사용자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듣고, 또한 근로자는 사용자 입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들으면, 쌍방간에 무엇이 대립되고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때부터 얽힌 실타래는 풀려지고 서로가 만족하는 승승(勝勝)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면 그것이 남의 의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法華經을 설할 때는 상대편의 의문포착하여 풀어주면서 법을 설하는데 자유자재하여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상 <보살의 사무외>는 실제로 남을 가르치고 인도해주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며, 이와 같이 가르치심을 설하면 그 공덕은 한량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