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09-(1)

 (1)모든 선남자야,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처소(處所)에 오면 나는 부처님의 눈으로써
(2) 그의 신심(信心)모든 근기(根機) 날카롭고 둔(鈍)함을 관해서 응하여 제도될 바를 따라 곳곳에서 스스로 설하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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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때와장소와듣는 상대>에 따라, 중생을 구원하는 방법, 무명중생의 미혹(迷惑)을 제거해 주는 방법이 각각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감안(勘案)하시고 법을 펴셨습니다.
 
부처님의  처소라는 것은 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고 하니까, 사찰에 가면 30평 남짓한 기와집, 대웅전에 모신 불상(佛像) 부처님을 찾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법화경(法華經) 경전의 한 법구라도 지극정성으로 읽고, 부처님을 본받아 부처님의  circle03_darkgreen.gif 불지견(佛知見)을 얻고자 노력하면, 바로 그 자리부처님께서 계신 자리입니다.
 
불교 신앙은 <너와 나>의 마음을 열어 소통하는 것입니다. 法華經이 좋아서 항상 읽고외우고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 처소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천리(千里) 지척(咫尺)도 천리요,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라 했듯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심취하면,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면 그 자리가 부처님의 처소입니다.
념념심부절 념불불리심(念念心不絶 念佛不離心)이라, 생각과 생각마다 부처님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부처님 생각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고 무슨 일을 하거나 부처님의 가르치심에서 떠나지 않고 생활하려고 노력하면 그 자리가 부처님  처소입니다.
 
내가 부처님을 사모하고 항상 부처님 생각이 떠나지 않고 부처님과 함께라는 생활태도가 마음에서 찰나찰나 떠나지 않으면, 부처님 처소에서 부처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문중에서 사는 것입니다. 세간의 혈통(血統)은 죽음이라는 무상(無常)의 습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혈통은 수행을 통해 받는 것이기에, 영원한 생명 법신(法身)혈통입니다. 일체의 번뇌(煩惱)를 끊고 영원한 자유인으로 남을 구제하며 사는 영생(永生)혈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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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불지견(佛知見)
 
 본문에 <부처님의 >이라는 것을 한문으로 말할 때 불안(佛眼)이라 합니다. 또는 불지견(佛知見)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보시면, 모든 것의 진실한 성질을 알아보는 힘이 갖추어져 계십니다.
 
인간계를 비롯한 천상계ㆍ지옥계를 보시면, 과거ㆍ현재ㆍ미래라고 하는 삼세(三世)분상에서 그에 따른 *인연과보를 한 눈에  바라보시고, 어떻게 저들 중생을 제도하여 *일불승(一佛乘) 법화경으로 인도하겠다는 방법론까지 모두 아시는 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불지견(佛知見), 불안(佛眼)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물을 보는 눈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circle03_darkgreen.gif오안(五眼)이라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오안(五眼)
 
 ① 육안(肉眼)  ② 천안(天眼)  ③ 혜안(慧眼)  ④ 법안(法眼)  ⑤ 불안(佛眼)오안이라 합니다.
 
육안(肉眼)이란, 중생(衆生)의 눈, 육신(肉身)의 눈을 말합니다.
보편적으로 가까이 있는 물건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가ㆍ빛깔이 어떤가를 알아 볼 수 있지마는, 멀리 있는 것은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중생의 눈을 육안이라 합니다.
 
천안(天眼)이란, 천인(天人)의 눈을 말합니다.  중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곳까지 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또 보통 사람이 보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을 분간하여 아는 눈을 말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지혜가 발달하고 마음의 힘이 충만해지면,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보는 것을 천안(天眼)이라 합니다. 천안은 불교를 믿지 않거나, 또는 타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도 가능한 것입니다.
 
혜안(慧眼)이란, 지혜(智慧)의 눈입니다.
천안보다 나은 눈이며 형상이 없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수행에 의해 세상의 온갖 복잡한 사물에도 마음이 헝클어지지 않고, 그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 가운데서, 천년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있다고 확고하게 포착(捕捉)하는 능력이 열리는 눈을 혜안이라 합니다.
 
법안(法眼)이란, 남을 위해 이타행(利他行)을 하는 보살(菩薩)의 눈을 말합니다.
혜안을 더 한층 향상 시킨 것이 법안입니다. 즉 혜안을 업그레이드 한 것이 법안입니다.
 
(法)이란  실재(實在)라는 뜻으로서 법안은 다만 사물의 진실한 모습이 보일 뿐 아니라, 이 우주 만물은, 하나의 커다란 힘의 의해 나타나는 것,  대우주 본체라는 에너지조화작용이라는 것을, 즉 <큰 하나>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눈을 법안이라 합니다.
 
<큰 하나>를 철학에서 말하기를 우주의 본체라고도 하고 (實在)라고도 합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와 중국은 전통적으로 그 본체를 하늘(天)이라 하고, 서양에서는 (神=God)이라고 합니다. 한민족 고유의 천부경에서는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전제한 우주의 존재   을,   불교에서는 法華經  여래수량품에서 밝히신대로 본체 본불이신 석가세존의 커다란 , *<여래비밀신통지력>을 <큰 하나>라고 합니다.
 
우주 만물, 겉에 나타난 모든 것을 모조리 뭉뚱그려 가지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힘이 바로 본체의 존재요, 본불 석가모니불의 힘이라는 것을 보는 눈을 법안(法眼)이라 합니다.
 42년 방편의 교(敎)만 배우면, 혜안(慧眼)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인 *실대승(實大乘) 法華經의 가르치심을 깊이 배우지 않고는 법안은 얻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유가 모두 부처님의 힘에 의해 존재하고 보호된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법안을 얻으면, 우리 눈 앞에 나타나 있는 일체의 차별 따위에는 마음을 뺏기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악(惡)한 사람이 있어서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구별될 사람 같아 보이지마는, 그 한 사람도 부처님의 큰 힘 가운데서 살고 있는 것이므로, 지금은 하지만, 언젠가 좋은 인연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눈을 법안이라 합니다.
 
또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과는 전연 딴 종류의 사람같아 보이지마는, 그 어리석은 사람도 역시 부처님의 힘에 의해 보호 받고 있는 것이므로, 지금은 어리석지마는 어떤 기회에 불연(佛緣)을 만나면 지혜의 눈이 열려 지혜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는 눈을 법안이라 합니다.
 
분명코 선(善)악(惡)의 차이는, 예컨대 더운물과 찬물과의 차이와 같은 것입니다.
물은 섭씨 백(百)도가 되면 펄펄 끓고, 반대로 영(零)도가 되면 단단한 얼음이 됩니다.
 
끓는 물과 얼음은 다른 것 같지마는 바탕은 똑같은 물입니다. *범성일원론(凡聖一元論)입니다.
완전무결한 부처님과 거의 같은 사람을 끓는 물이라 한다면, 가장 악(惡)하고 못 되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사람은 얼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물의 본질은 같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거의 부처님에 가까운 사람이나ㆍ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사람이나ㆍ다같이 부처님이 될 성질,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또한 어리석은 사람도 업신여기지 말고, 오직 불쌍하게 생각하고 구제의 을 뜨면 그 눈이 법안입니다.
 
불안(佛眼)이란, 부처님의 눈입니다. 불지견(佛知見)입니다.
법안이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진정한 자비심이 일어납니다. 겉으로는 자비를 베푼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남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고서 그럴 듯한 일을 한다면, 잠시는 환영을 받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비가 아닙니다. 부처님 처소에서 사는 것 같은 법안이 갖추어져 끊임 없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  이타행(利他行), 자비심을 내어야만 부처님의 눈구제의 눈불안이 열립니다.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제 20 에,
---그 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위음왕(威音王)이시라. 신통 지혜가 한량 없으시어 일체를 거느려 인도하심이니라. 하늘과 사람과 용과 신(神)이 함께 공양하니라.
 
부처님이 멸도하신 후, 이 다하고자 할 때, 한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상불경(常不輕)이었느니라. 이때 모든 사중(四衆)은 에서 꾀를 부리고 착(著)을 하거늘, 상불경보살 그 곳에 가서 일러 말을 하되, 나는 당신네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노라. 당신들은 (道)를 행하여 다 마땅히 성불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듣기를 마치고는 업신여기며 헐뜯고 욕하고 꾸짖었으나, 상불경보살은 능히 참고 이를 받았느니라. 그가 속세의 죄를 마치고 목숨이 마치려할 때에, 이 을 얻어 듣고 *육근(六根)이 청정함이라.  
 
신통력인 까닭에 수명을 더해서 다시 모든 사람을 위해 널리 이 을 설함이니,
에 착(著)한 모든 대중은 다 보살이 교화하여 불도에 머무르게 함을 입으니라.  
 
상불경보살이 명을 마치고 수없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고, 이 을 설한 까닭으로 한량 없는  복(福)을 얻고 점차로 공덕을 갖추어서 속히 불도(佛道)를 성취하였느니라.
 
그 때의 상불경은 곧 나의 몸이고, 그 때 사부중(四部衆)의 에 착(著)한 자는, 상불경보살로부터, 당신네들은 마땅히 성불하리라는 말을 들은 그러한 인연으로, 수없는 부처님을 친견하였으니, 이 회중 가운데 오백보살대중과사부(四部)의 청신사녀(淸信士女)로서, 지금 나의 앞에서 을 듣고 있는 이들이니라.
 
내가 전세에서 이 모든 사람을 권하여 이 경의 제일의 법을 들어 받게 하였으며, 열어 보여 사람에게 가르쳐 *열반에 머무르게 하니, 세세에 이같이 경전을 받아 가지게 함이라.
 
억억만겁으로부터 불가사의(不可思議)에 이르도록 때로 이 法華經을 얻어 듣게 하며,
억억만겁으로부터 불가사의에 이르도록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때로 이 을 설하시니라.
 
이런고로 *법화행자(法華行者)는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후,
이같이 을 듣고 의혹을 내지 말며, 응당 일심으로 널리 이 을 설하면,
세세에서 부처님을 친견하여 속히 불도를 성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 앞에 나타난 상대,  남녀노소 또는 부귀빈천을 가리지 말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구원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지금은  악(惡)한 사람이라도ㆍ 비록 지금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ㆍ마음을 고쳐먹으면 부처님도 될 수 있는 불성(佛性)  곧  본성(本性)을 공경한다는 것입니다.
 
현재함이나 어리석음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을 한 인과(因果)로 부처님이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오안(五眼) 가운데서 부처님의 눈,  불안(佛眼)인류추구해야 할 입니다. 중생의 눈,  육안은 손가락 하나만 가려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눈상대를 보면, 저 사람이 전세(前世)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다는 것과 상대의 근기(根機)가 날카롭고 둔한지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아시고 구제하십니다.
 
인간의 육안이라는 것은, 하다 못해 자기 몸 속의 구석구석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물영장(靈長)이라고 우쭐하고 지구상에서 잘난 척 하며 문명이다 문화다 하고 큰 소리치며 일구어 낸 과학이라는 도구로 육안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X레이 사진으로 굴절ㆍ반사ㆍ편광ㆍ간섭ㆍ회절 따위의 현상을 나타내면서, 강한 형광작용ㆍ전리작용ㆍ사진작용ㆍ투파작용 따위로 뼈를 비롯하여 오장육부의 어느 구석이든지 보고 싶은 곳을 환히 보고 어디가 병들었나를 알아낸다든가, 그래도 부족하면 신체의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는 각부위의 내시경(內視鏡)으로 환부를 직접 보고 처방하여 백년미만으로 끝나는 육신의 병을 고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눈, 불안(佛眼)중생이 짓고 온 과거 다겁생래의 *업보(業報)까지 환하게 보시고 그에 알맞는 가르치심을 주십니다. 그리고 영겁을 사는, *지혜 처방전을 주십니다. 중생은 *대시주(大施主)이신 부처님의 가르치심으로 마음의 병을 고칩니다. 일체중생구제라는 것은 *견사의 미혹을 끊고 *구원실성 <큰 하나>*용입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 수농나 마음이 해이(解弛)해져 있음을 불안으로 보시고 직접 찾아가 제도하신 사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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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수농나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시면서 불안으로 제자들의 수행이 어떤가 하고 살피셨습니다. 때마침 부자집 자식의 몸으로 입산(入山)하여 수행정진(修行精進)을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아직도 *아라한과(阿羅漢果)증득(證得)하지 못한 수농나가 마음이 산란(散亂)하여 망상(妄想)을 일으키는 것을 보셨습니다.
 
--입산한 지 3년이 되어도 증득을 못했다. 나보다 늦게 입산한 사람도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나는 무엇이냐. 나는 부처님과 인연이 없다. 그 뿐인가. 여기 음식도 변변치 않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기계같이 사는 수행을 죽도록 해도 증득도 못했다. 환속(還俗)하여 집에 돌아가서 인생을 즐기자. 나는 재산이 많다. 친구와 더불어 향락을 누리자. 내가 환속하여 돌아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이다.--라며 보따리를 싸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수농나를 찾아가셨습니다. 수농나는 당황하여 삼배를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거기 앉거라. 마음이 편치 않느냐--고 하시니까,
 
수농나는,--부처님 ! 저는 부처님께 귀의한지가 벌써 3년이나 됩니다. 항상 부지런하게 정사(精舍)를 깨끗하게 치우고 열심히 수행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소식도 없습니다. 남들은 다 아라한과를 증득했는데 저는 안됩니다. 저는 제자 될 자격이 없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수농나야, 내가 한가지 묻겠다. 네가 출가하기 전에 가야금을 잘 탔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이냐.--고 하시니까, 수농나가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그 가야금을 소리가 잘 나게 하려면 줄을 팽팽하게 죄어야 하느냐. 아니면 느슨하게 매어야 하느냐--고 하시니까, 수농나가,--되게 죄우면 소리가 끊어져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줄이 느슨하면 아예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너무 죄우지도 말고 너무 느슨해서도 안됩니다.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에 맞추어 알맞아야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불교의 수행도 그와 같다. 네가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한 것을 안다. 다른 사람들은 1년이면 아라한과를 증득하는데, 너는 얼마나 마음이 초조했겠느냐 ? 내 법도, 너의 가야금에서 소리나는 이치와 같으니 *중도 수행해야 되느니라. 너는 불(火)과 같이 훨훨 타는 신앙을 하다가 허탈감에 빠졌느니라. 너는 그동안 망상을 하였느니라. 너의 집 창고에 쌓아 놓은 재물에 항상 마음이 가 있었느니라. 재산을 탐하지 말라. 네가 올바른 신앙을 하기를 바란다. 너는 훨훨 타는 불(火)과 같은 신앙을 했다. 앞으로는 끊임 없이 흐르는 물(水)과 같은 신앙을 하라. 알겠느냐.--고 하시니까, 수농나 깊이 * 참회(懺悔)하면서,- 부처님 ! 잘 알았습니다- 하고 보따리를 풀었습니다.그로부터 6개월 후에 수농나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처소에 오면 나는 부처님의 눈으로써>하시는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실 때는 중생눈높이에 맞추신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앞에 나타난 중생을 보시면,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이 작용하여 상대의 근기에 맞추어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알맞게 제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