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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중생이 가지가지의 성품가지가지의 욕망가지가지의 행가지가지의 기억하고 생각함이 분별이 있는고로, 모든 선근(善根)을 나게 하고, 여러 가지의 인연과 비유와 말로써  가지가지의 법을 설하여, 부처님의 일을 하되 일찍이 잠시도 쉬지 아니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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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 법화삼부경 무량의경 설법품에서,--모든 중생의 성품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알았음이라. 성품 욕망이 같지 아니하므로 가지가지로 을 설함이니라. 가지가지의 을 설하되 방편력으로써 하였으니,---라고 지적하신 바와 같이, 합당한 가르침으로 모든 중생을 다 불도(佛道)에 들게 하기 위해, *삼주설법으로 교화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 인간에게, 좋은 일을 생각하게 하고, 좋은 행동을 하게 하여, 모두가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자 3천 여년 전,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출현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에게, 대생명관(大生命觀), 진리의 눈을 뜨고 한량 없는 과거세부터 미래영겁토록 항상 선근을 심는 인연으로 행복하게 사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인연(因緣)이란 *과보(果報)를 전제한 행위입니다. 비유(譬喩)다른 일을 예를 들어 말하는 것입니다. (說)법(法)을 듣는 상대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알맞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설법회상(說法會上)에서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예를 들어 말씀하기도 하시고, 혹은 좋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도 하시고, 또는 가장 적당한 말씀으로 하시면서 인간의 근본문제  곧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해결하는 방법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법회상에서  하실 때는 항상 주위 환경과ㆍ장소와ㆍ 을 듣는 상대욕망과 성품과 근기에 맞추어 깨닫도록 상대의 이해를 돕는데 착오(錯誤)가 없으셨습니다.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사관(生死觀)을 말씀하실 때, 때에 따라 철학적으로, 또는 평범한 말씀으로 대생명체 대우주관에 눈을 뜨게 하는 교학 불사 과정에 착오가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이야기 해 주는 것이나경전을 읽는 것이나가르치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다 부처님의 일,  불사(佛事)의 일환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일을 하되 일찍이 잠시도 쉬지 아니 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부처님의 >이란, 모든 인간을 모두 가르쳐 대생명 본체론으로 인도하는 구원입니다. 지금 당장은 악(惡)한 사람도 많고 어리석은 사람도 많은 것 같지마는, 거미줄 같은 인연 줄로 모두 구원 받아서 마침내 사바세계에 극락정토가 실현될 것을 전제한 것이 <부처님의 일>입니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참고 견디며 수행을 쌓으면 영원한 생명체득하는 보람을 느끼도록 유도한 것이 法華經 구제론(救濟論)입니다.
 
지구상에서 최초로 정각(正覺)을 여신 석가모니불(佛)께서는 法華經 사구게(四句偈) 하나를 가지고도 일겁(一劫)  곧 4억3천2백만년한다고 하시면서,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한 法華經 펴는 공덕을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법사품 제10에서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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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法華經) 법사품(法師品) 제 10
 
이란 세월 따라 뜻이 변합니다. *법사(法師)라는 말도 본래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펴는데 힘쓰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출가한 스님만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법사(法師)는 속인이건 출가한 사람이건, 오직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세상에 펴기 위에 성심껏 노력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법화경 법사품에 법사가 소중하다는 것과, 法을 펴고자 하는 法師를 도와주면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에 대해 세세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을 펴고자 할 때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하여  circle03_darkgreen.gif 홍교삼궤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늘날과 같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澎湃)한 말법세상에서 法華經을 깊이 믿고 세상에 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法華經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法師의 임무는 막중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시고, 필히 자신이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동시에, 뜻을 같이 한 법화인연을 만나게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法師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法華經을 펴는 일에 힘을 다하는 실천력과, 각기 주어진 환경에서 法華經을 펴는 일에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야만 法華經이 세상에 펴집니다. 만약에 내가 너보다 法華經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몸집을 불린다거나, 또는 상대의 신심이 저속하다고 얕보고 인정할 줄 모르면 그것은 법사의 덕목이 아니며 法華經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노력하는 한편 사심(私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노력을 도와 주는 것도 법사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말법세상에서 法華經의 단 한 게송이라도 받아 가지고  읽고외우고해설하고옮겨 쓰는 것법사의 수행이며 가장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오종법사라고 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오종법사 법화신앙의 가장 근본되는 키워드입니다.
 
*법화경 법사품 제 10에---*내가 멸도한 후, 악한 세상에서 이 경을 능히 가지는 이는 마땅히 합장하고 예배 공경하되 세존을 공양함과 같이 하라. 좋은 음식과 여러 가지 달고 아름다운 것과 가지가지 의복을 이 불자(佛子)에게 공양하고 잠깐이라도 얻어 듣기를 바랄지니라.  만일 후(後)세상에서 능히 이 경을 받아 가지는 자는, 내가 보내서 사람 가운데 있어 *여래(如來)의 일을 행하게 함이니라. 만일 일겁(一劫) 동안을 항상 착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성낸 빛으로 부처님을 꾸짖는다면 한량 없는 무거운 죄를 얻으리라. 이 법화경을 읽고외우고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잠깐이라도 악한 말을 하면 그 죄는 그 보다 더하니라. 어떤 사람이 불도(佛道)를 구하여 일겁 동안을 합장하고 내 앞에 있어 수없는 게송으로 찬탄하면, 이는 부처님을 찬탄하는고로 한량 없는 공덕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오종법사(五種法師)  ① 받아가짐(受持)  ② 읽음(讀)  ③ 외움(誦)  ④ 해설(解說)  ⑤ 옮겨 씀(書寫)을 말합니다. 이 다섯 가지 덕목 중에서 근본되는 받아가짐(受持)을   circle03_darkgreen.gif 정행(正行)이라 합니다. 나머지 네 가지, 읽음   ③ 외움   ④ 해설   ⑤ 옮겨 씀은   circle03_darkgreen.gif 조행(助行)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法華經을 받아 가지고 읽고외우고해설하고옮겨 쓰는 오종법사 수행을 하면 틀림 없이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법사품에서 비유로써 말씀하셨습니다.
 
--*약왕, 비유하건대 만일 사람이 이 말라 을 구하고자 저 높은 언덕에다 우물을 파서 이를 구하되, 아직 마른 흙을 보면 물은 아직도 먼 것을 아느니라. 공을 들여 쉬지 아니하여 차차 젖은 흙을 보고 드디어 점차로 진흙에 이르면 그 마음에 결정코 물이 가까움을 알리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일 이 법화경을 아직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아직 능히 닦아 익히지 못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서 거리가 아직도 멀음이라.
만일 듣고 해석하며 생각하고 닦고 익히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가까이 이르리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일체 *보살(菩薩)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다 이 경에 속함이니라.  circle03_darkgreen.gif 이 경은 방편(方便)의 문을 열어 진실(眞實)의 상(相)을 보이느니라.
법화경의 장(藏)은 깊고도 견고하고 아득히 멀어서 능히 이르는 사람이 없거늘, 지금 부처님이 보살을 교화(敎化)하여 성취시키고자 열어 보이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로마하루 아침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  즉 부처님이 되는 불도(佛道)를 닦아 성불하는 것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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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정행(正行)      circle03_darkgreen.gif 조행(助行)
 
읽고 외우고 해설하고 옮겨 쓰는 조행은, 받아가짐(受持)이라는 정행(正行)을 돕는 수행 덕목입니다.
 
받는다(受)는 것은 선택입니다. 법화경을 마음에 깊이 믿는 것입니다. 가진다(持)는 것은 그 마음에 깊이 믿는 바를 계속 유지해서 마침내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수지(受持), <받아 가진다>는 것은 法華經 신앙의 생명입니다.  法華經 신앙은 <받아   가진다>가 근본이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정행이라 합니다. 아무리 경전을 읽어도 읽기만 하는 것으로 그치면 피와 살이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 합장이나 하는 것으로 그치면 그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이, 法華經을 깊이 연구만 해서는 학문적인 지식으로 그치고 맙니다. 물론 학문이나 형식이 전연 쓸데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法華經받아가지순수한 선택입니다. 깊이 믿고 그 믿는 마음을 몸으로써 행하는 정행이야말로 법화신앙인에게는 절대로 필요한  성불 덕목입니다.
 
法華經<받아  가진다>정행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 신앙의 관건(關鍵)입니다. 신심이 중요하다고 해서, 밤낮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신앙적 발전이 없습니다. 인간의 환경이란 항상 변합니다. 마음을 항상 거룩한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서 -② 읽음(讀)  외움(誦)  ④ 해설(解說)   ⑤ 옮겨 씀(書寫)-이라는 네 가지 조행액션이 필요합니다.
 
읽는다(讀)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글자 그대로 읽는 것, 또는 귀로 듣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읽는다>는 것을 <듣는다(聞)>고도 표현합니다. 눈으로 읽든지 귀로 듣든지, 아무튼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치심을 마음에 올바르게 받아드리는 것이 <읽는다>는 뜻입니다.
외운다(誦), 글자를 보지 않고 읽는 것입니다. <외운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외운다>는 것은 다만 입으로 소리를 내서 읽을 뿐 아니라, 마음 속으로 되풀이 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중에 그 이야기를 마음 속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바로 <외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휑하게 외우더라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입으로 외우기만 해서는 피와 살이 되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마음 속으로 되풀이 하여 생각해 보아야만 法華經은 나의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法華經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온갖 어려움을 무릎쓰고 굳게 믿고 지켜서 자기의 신앙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야만, 비로소 法華經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입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 심독(心讀), 마음에 깊이 믿어야 할 것이며, 또한 *색독(色讀), 가슴으로 깊이 믿고, 몸으로 직접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외운다>는 뜻입니다.
해설한다(解說)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해설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남에게 설명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 혼자서 읽고 있을 때는 잘 아는 것 같다가도 막상 남에게 말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서 말해야 좋을지 모릅니다. 즉 남 앞에서 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참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올바르게 부처님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되 잘 안되는 것은, 자기의 믿음과 아는 정도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해설한다>는 것은, 몹시 까다로운 일이지마는 힘써 노력하면,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신앙적으로 法華經을 받아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실행하고 있는가를 가슴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설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옮겨 쓴다(書寫)경전을 베끼는 것으로서, 옛날부터 많이 행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옮 겨 쓴다는 것은 경전을 베끼는 것만이 아닙니다. 불교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것도, 경전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므로 <옮겨 쓴다>의 일환입니다.<옮겨 쓴다>는 것은 <해설한다>와 같은 뜻이므로 스스로 신앙적으로 반성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됩니다. 읽고외우고해설하고 옮겨 쓰고하는 네 가지 조행은, <받아 가진다>고 하는 정행을 견고하게 하는 방법론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홍교(弘敎)의 삼궤(三軌)
 
석가모니불께서는 말법세상이 되면, 세상이 몹시 험악해져서 여간해서는 가르침이 행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시대의 모든 사람을 위해 法華經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 가짐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法華經을 착실히 공부하여 받아가진 사람은, 마땅히 여래의 방에 들어간 마음여래의 옷을 입은 마음여래의 자리에 앉아 있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法華經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근본 마음을 <홍교 삼궤>라 합니다.
 
*법화경 법사품 제 10에,   --약왕아,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여래가 멸도(滅度)한 후에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설하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응하여 설할 것이고,   이 선남자 선여인은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入如來室)여래의 옷을 입고(著如來衣)여래의 자리에 앉아서(坐如來座) 이에 응하여 사부대중을 위해 널리 이 경을 설할지니라.
여래의 이라 함은 일체 중생 중 대자비심(大慈悲心)이 이것이니라.
여래의 이라 함은 부드럽고 화평한 인욕심(忍辱心)이 이것이니라.
여래의 자리라 함은 일체의 *법공(法空)이 이것이니라.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무른 연후에 게으름을 내지 않는 마음으로 모든 보살과 사부대중을 위하여 널리 이 法華經을 설하느니라.--오종법사의 수행덕목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入如來室=입여래실)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거처하시는 방에 들어간 것 같은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자비심으로 평등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여래의 옷을 입고(著如來衣=착여래의)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입으신 옷을 입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화평한 마음 가짐입니다. 여래의 옷이라 함은 욕됨을 참고 견디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너그럽고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坐如來座=좌여래좌)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을 주지 않는 마음입니다. 여래가 앉아계신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마음으로 法華經해야만, 비로소 모든 사람을 위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法華經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상 세 가지 마음이 확고하게 갖추어진 상태에서 法을 說하라고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이 경은 방편(方便)의 문을 열어 진실(眞實)의 상(相)을 보이느니라.
 
<방편의 문을 열어 진실의 상(相)을 보인다>는 이 경문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절대(絶對)의 진리(眞理)를 모든 사람들이 다 깨닫고 실행할 수 있도록 *삼주설법으로 가르쳐주신다는 말씀입니다. 法華經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일불승(一佛乘) 가르치심은 그 뜻이 매우 깊고도 아득하게 멀어서 아무나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것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하고 모든 보살을 가르쳐 성취시키고자 法華經 여래수량품열어 보이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久遠)의 본불(本佛), *구원실성(久遠實成) 석가모니불(佛)의 수명론을 말씀하시면서 아울러 모든 중생수명부처님의 수명처럼 영원함을 말씀하시는 경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法華經 현의(玄義), 문자 뒤에 숨겨진 그윽한 뜻은 깊고 견고하여 보통 사람이 갖추고 있는 지혜, 이해력만으로는 알려고 해도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서 *역겁수행으로 열어 놓으신 길을 실제로 걸어가 보아야만 비로소 알 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믿지도 않고 시행해 보지도 않고서, 다만 이치만 따져 알려고 하는 인간의 지혜로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불지(佛智)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방편품을 비롯하여 法華經 전품을 통해 누누히 말씀하시기를, 믿고 실행해 보아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어떤 사물에 대해서나 어지빠르고 완전하지 못합니다. 언필칭 우리에게 부처님이 될 종자(種子), *불종(佛種)이 있지마는 그 종자를 계발(啓發)하는 데는 부처님의 힘, *타력(他力)이 합쳐져야만 *묘력(妙力)  곧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