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24-(7) ----가
 
  circle03_darkgreen.gif 내가 모든 중생을 보니,(我見諸衆生=아견제중생)
고해(苦海)에 빠져 있음이라. (沒在於苦惱=몰재어고뇌)
 circle03_darkgreen.gif이런고로 몸을 나타내지 않고(故不爲現身=고불위현신)
 그들로 하여금 갈앙하는 마음이 나게 하여,(令其生渴仰=영기생갈앙)
 circle03_darkgreen.gif그 마음이 인(因)이 되어 연모케하고 (因其心戀慕=인기심연모)
 circle03_darkgreen.gif나와서 법을 설하느니라. (乃出爲說法=내출위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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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하는 법화경 여래수량품은, *구원실성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불지견(佛知見)으로 중생계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불지견은 중생을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구제초점을 맞추십니다.
 
인간의 육신(肉身)이라는 것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 없어지는 한 낱 물질의 변화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라는 존재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대생명체대에너지  당체이십니다. 구원실성  본불  석가세존의 수명론(壽命論)과, 200만년이라는 인간의 역사와는 전연 대비가 되지 않습니다. *구원실성(久遠實成)이신 부처님께서는 지구가 생기기 이전, <무시무종> *천지기운의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실성을 선언하신 본불 석가세존법화경(法華經) 교학에 의지하여 성불신앙(成佛信仰)을 하지 않고, 대웅전 불상(佛像) 부처님을 찾아가 무엇을 달라는 구걸신앙(求乞信仰)으로 그치면, 어느 하간에 *인생팔고(人生八苦)에서 벗어나 성불(成佛)이라고 하는 본성품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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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내가 모든 중생을 보니 고해(苦海)에 빠져 있음이라.
 
*법화경 비유품(譬喩品) 제 3,--*사리에게 이르노니, 너희들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아들이나는아버지라. 너희들이 여러 겁을 두고 가지가지 괴로움에 불타거늘, 내가제도하여 삼계에서 나오게 함이라. 내가 비록 너희들에게 멸도하였다고 먼저 설하였으나, 다만 생사(生死)를 다함이요, 그 실은 멸도가 아니니라. 이제 마땅히 할 바는 오직 *부처님의 지혜니라. 보살은 이 대중 가운데서 일심으로 모든 부처님의 진실한 법을 들으라.
모든 부처님 세존이 *방편(方便)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나니 이는 다 보살이니라. 만일 사람이 지혜가 적어서 깊이 애욕에 착하면 이들을 위해  circle03_darkgreen.gif고제(苦諦)를 설하느니라. 중생이 마음에 기뻐하며  circle03_darkgreen.gif미증유(未曾有)를 얻나니, 부처님이 설하시는 고제 진실이고 틀림이 없느니라. 만일 중생고(苦)근본을 알지 못하고, 깊이 고(苦)근본에 착(著)해서 잠깐이라도 능히 버리지 못하면, 이들을 위해 방편으로 *도(道)를 설함이니라.
 
모든 (因)탐욕이 근본이 됨이니, 만일 탐욕을 멸하면 의지할 바가 없느니라. 모든 를 다 멸함을 이름하여 제삼제(第三諦)라 하며, circle03_darkgreen.gif 멸제(滅諦)하기 위해 닦고 행함이니라. 모든 의 얽힘에서 떠남을 이름하여   circle03_darkgreen.gif 해탈(解脫)을 얻었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어디서 해탈을 얻었으랴. 다만 허망에서 떠남을 이름하여 해탈이라 함이니, 그 실은 아직 일체의 해탈얻지 못하였음이라. 부처님이 이 사람은 아직 진실한 멸도(滅度)가 아니라고 설하느니라. 이 사람이 아직도 무상도(無上道)를 얻지 못하였는고로, 나의 멸도에 이르렀다고 생각지 않노라. 나는 법왕(法王)이라, 법에 자재하중생편안하게 하고자 세상에 나옴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오직 *탐욕(貪欲)이라고 하셨습니다. 탐욕에 오염되면 자기와 남을 다 함께 해치는 재앙에 빠지게 됨으로 탐욕고통의 원인입니다. 중생의 속성좋지 않은 일을 만나면 남을 원망합니다. 언짢은 일이 생기면, 자신이 부덕(不德)하고 박복(薄福)하다고 생각지 않고,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며 괴로워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괴로움과ㆍ괴로움의 원인과ㆍ괴로움을 없애는 길은 무엇이며ㆍ어떻게 수행하라는 처방전으로 영원한 진리,   circle03_darkgreen.gif 사성제(四聖諦)를 말씀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사성제(四聖諦)
 
사성제(四聖諦)라는 것은, 네 개의 가장 훌륭한 진리(眞理)라는 뜻입니다. 불교의 실천적 원리를 나타내는 부처님 교설(敎說)의 대강으로, <(苦)(集)ㆍ(滅)(道)>를 말합니다. 부처님 법이 너무도 정확하고 거룩하다 하여 <(苦)(集)ㆍ(滅)(道)>에 <성인성(聖)살필제(諦)>자를 올려서, 고성제(苦聖諦)집성제(集聖諦)멸성제(滅聖諦)도성제(道聖諦)라 하고, 줄여서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ㆍ도제(道諦)라 합니다.
 
  고제(苦諦)·→범부의 생존은 라는 진리(眞理)입니다. 인간의 생존(生存)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육신정신으로 나누어 *인간팔고(人間八苦)라 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낳고늙고병들어죽는 것일체가 고통이라 하셨습니다.
정신적으로는  ① 애별이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④ 오음성고(五陰盛苦) 입니다.
 
애별이고(愛別離苦)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지는 고통입니다.  사이별(死離別)과 생이별(生離別)의 고통입니다.
원증회고(怨憎會苦)란,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만나지는 것이 고통입니다.
구부득고(求不得苦), 간절히 구(求)하는데 속히 얻어지지 않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예컨대 돈이다ㆍ명예다ㆍ자식이다 하는 것이 꼭 갖고 싶은데 따라주지 않으니 괴로운 것입니다.
오음성고(五陰盛苦), 육신이 성(盛)하여 이성(異性)을 원하는데,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갈애(渴愛)하는데, 서로 어긋나서 마음대로 안되니까 괴롭다는 것입니다.
 
  집제(集諦)·→·범부의 갖가지의 고뇌(苦惱)는 결국 *번뇌(煩惱), 특히 갈애(渴愛)에 기인한다는 진리입니다. 인간의 번뇌(煩惱)갈애(渴愛)에서 비롯 된다 하여 집제라 합니다.
 
  멸제(滅諦)·→ circle03_darkgreen.gif 갈애(渴愛)를 멸하고 고(苦)를 멸한 열반(涅槃), 즉 *해탈(解脫)의 이상경을 말합니다. 갈애(渴愛)와 고(苦)를 끊어 버린 열반 즉 해탈(解脫)을 말합니다.
 
도제(道諦)·→이 (苦)멸(滅)로 인도하는 수행법은 *팔정도(八正道) 밖에 없음을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사성제는 팔정도 *십이인연(十二因緣) 등과 더불어 원시불교의 중요한 교의(敎義)입니다. 즉 하는 올바른 수행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말합니다. 사성제고해(苦海)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가르치심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이런고로 몸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갈앙(渴仰)하는 마음이 나게 하여,
 
갈앙이란 동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간절하게 생각하듯이, 불법을 한 법구라도 배워서 *오종법사 실행하여, 나도 부처님이 되어 괴로움에서 벗어나 <큰 하나>에 들겠다고 간절하게 원력을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설에서 *이승(二乘) *영불성불(永不成佛)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문연각 *이승(二乘)은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리불존자를 비롯한 성문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이승(二乘)영불성불이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항상 무엇인가 미흡하였습니다.  이승이 불교의 전부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부처님 경계는 쳐다보지 못하고 그대로 이승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법화경 비유품에 들어오셔서 사리불존자에게 *화광여래(華光如來)라는 수기(授記)주시고, 이어서 *수기품 제 6에서,  <사대성문(四大聲聞)>곧 가섭존자수보리존자가전연존자목건련존자에게도 수기를 주셨습니다. 이를 지켜 본  아라한들은, - 사리불을 비롯하여 사대성문 모두가 우리와 같은 아라한이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도 성불수기를 받을 수 있지 않느냐 --  갈앙(渴仰)하는 마음이 솟구치며 기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문ㆍ연각 이승 제자들 모두에게 성불수기를 주시므로써 *일불승(一佛乘) 본불 석가세존 구심점(求心點)으로 불교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시며, 불교 신앙의 정체성(正體性)이 세워졌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그 마음이 인(因)이 되어 연모케하고 (因其心戀慕=인기심연모)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치심 가운데서도 일체중생구제론이 내재된 法華經근본핵심입니다. 일불승 법화경은 지구촌 전인류 구제를 목적으로 한 초종교(超宗敎)초과학(超科學)인류구제 경전입니다.
 
불교를 믿더라도 정법 개념, 곧 신앙의 대상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중생은 누가 죽었다고 하면 지장전을 찾아가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나한전을 찾거나, 아니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에 드셔서 영험이 없으니 미래불 미륵불을 찾아야 한다고 아무 소리나 합니다. 그것은  불교의 정체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의하면, 미륵보살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入滅)하신 날로부터 56억 7천만년 뒤에, 도솔천에서 하강하시어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하신 후,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못들은 사람들을 위해서 법을 설한다는 미래불(未來佛) 수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도솔천에서 천상 인간을 교화(敎化)한다고 하셨습니다.
 
불교(佛敎), *일불승(一佛乘) 법화경 우주관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나서는 불교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험이 없다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불교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 파설(破說)입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불상(佛像) 뒤에 후불탱화(後佛幀畵)가 있습니다. 혹자는 후불탱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스승이라고 헛된 소리합니다.   무량수불 아미타불42년 방편설에서 석존의 입으로부터 탄생방편불 분신불(分身佛)입니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여래비밀신통지력 이라는 전우주적 권능으로 모든 분신불 곧 방편불이 배출되었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나와서 법을 설하느니라. (乃出爲說法=내출위설법)
 
대생명체이신 석가세존위대한 힘 *여래비밀신통지력 호흡(呼吸)이라고 하는 *<숨>을 통해 막힘없이 우리 몸에서 물질대사(物質代謝)를 합니다. 우리는 으로 섭취한 음식물을 몸안에서 분해하고 합성하여 우리의 육신이라는 생명 활동에 필요한 피와 뼈 등의 물질이나 에너지를 생성(生成)하고, 한편으로는 필요하지 않은 물질은 몸 밖으로 내보내는 물질대사를 하는 매개체가 호흡기를 통해 들어 간 산소입니다.
우리는 들숨 날숨을 통해 산소가 혈관 속의 혈액따라 지속적으로 공급되니까 살아있다고 좋아합니다. 우리 몸에 산소가 혈관속의 혈액을 따라 돌아가는 흐름을 생명이라 합니다. <에너지>라 합니다. 그 에너지라는 것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불교에서는 그 에너지를 대생명체 대생명력, 곧 부처님의 위대한 힘을 *여래비밀신통지력이라고 합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닥터 윌리암 교수,--법화경에서 말씀하시는 대생명 근원체의 위대한 힘은 단순한 철학적 요소라 할 수 없다. 초종교 초과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3천 여년 전에 금생에 육신으로 오셨다가 입멸(入滅)하신 그런 유한성(有限性)의 육신(肉身)의 개념으로만 알아서는 아니 됩니다.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대우주와 더불어 영원히 존재하는 대생명체(大生命體) 대생명력(大生命力)이라는 큰 힘 덩어리, 곧 에너지 당체이십니다. 그러한 위대한 큰 힘 *천태대사께서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유일존자(唯一尊者)>라고 아주 거룩하게 장엄하였습니다.
 
여기서 <유일존자(唯一尊者)>는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사리불존자아난존자---등에게 붙이는 그런 존자(尊者)의 개념과 다릅니다. 천태대사께서는 <높을존(尊)>을 <거룩할존(尊)>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석가세존의 존재를 모르고, 앉은뱅이 구걸  신앙에 집착하면, <큰 하나>가 있는 줄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명 중생의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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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갈애(渴愛)
 
세간에서 갈애는 매우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갈애 목마른 사람이 애타게 물을 찾듯이,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고, 번뇌에 얽혀서 *오욕(五欲)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갈애라고 하는 애욕 번뇌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애욕 번뇌는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십지(菩薩十地)의 다섯 번째 극난승지(極難勝地)를 거쳐서, 열 번째 법운지(法雲地)를 지나, 등각(等覺) 묘각(妙覺)에서 부처님이 되어야 끊어집니다.
갈애 탐욕과 사촌간입니다. 갈애는 금생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겁생래를 두고 익혀 온 버릇 곧 업장(業障)입니다.
다겁생래의 정보입니다. 다겁생래로 익힌 정보가 *습기(習氣)가 쉽사리 끊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갈애는 금방 고쳐지는 버릇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같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 참회하고 또 잘못하고 참회하다 보면, 무엇이 나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구제의 길 곧 올바른 수행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해탈(解脫)
 
불교의 8만 4천 법문은,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신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는 일상일미(一相一味), 한 모양ㆍ한 맛입니다. 다만 중생의 근기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인지라, 똑같은 부처님 법을 듣더라도 중생은 각기 자기 잣대로 듣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것 처럼 보일 뿐, 한 모양한 맛입니다.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 제 5,---여래의 설법같은 상(相)이며 같은 맛이니, 이른 바 해탈상(解脫相)이며ㆍ이상(離相)이며ㆍ멸상(滅相)이니ㆍ마침내 *일체종지(一切種智)에 도달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설교에는 방편의 가르치심진실의 가르치심이 있습니다. 아무리 방편교가 여러 갈래로 갈리어 있다 하더라도,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성불을 목적으로 한 교학(敎學)이기 때문에, 방편교 일불승(一佛乘) *부처님의 처소로 집결되기 때문에 한 모양한 맛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미망을 여의고 생사(生死)를 멸(滅)해서 일체종지(一切種智)라고 하는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게 하려고 *사제팔정도를 설하셨습니다.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그것을 멸제, 실천하여 일체의 번뇌를 수행으로 끊으면, 해탈 경지에 들어가 초지성인(初地聖人), *성문연각이라는 이승(二乘)이 됩니다. 그러나 성문연각 이승(二乘)이 불교의 전부가 아니라, 법화경 *오종법사(五種法師) 보살행이 전제 되었을 때 만이 진정한 *해탈이라 하셨습니다.
 
*법화경 약초유품 제5,--가섭아, 비유컨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산천계곡땅 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며수풀이며초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며 각각 색과 이름이 다르니라.
 
가득 찬 구름이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를 두루 덮어서 일시에 큰 비가 고루 내리어 널리 흡족하면 모든 초목과 수풀이며, 약초의 작은 뿌리ㆍ작은 줄기ㆍ작은 가지ㆍ작은 잎새와, 중간 뿌리ㆍ중간 줄기ㆍ중간 가지ㆍ중간 잎새와, 큰 뿌리ㆍ큰 줄기ㆍ큰 가지ㆍ큰 잎새와, 크고 작은 모든 나무의 상(上)ㆍ중(中)ㆍ하(下)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느니라.
 
작은 구름의 비에 그 종류와 성질에 맞추어 생장하며 꽃과 열매를 맺느니라. 비록 한 땅에서 나고 같은 비에 젖으나 모든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느니라. ---고  circle03_darkgreen.gif 일수사견을 말씀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일수사견(一水四見)
 
일수사견은, 같은 물이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매미가 먹으면 소리가 나오고,·독사가 먹으면 독이 나오고,·벌이 먹으면 달콤한 꿀이 나옵니다. 같은 물이라도 받는 대상에 따라 나타나는 *인연과보(因緣果報)가 다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빛깔도 같고 맛도 같지마는 소나무는 푸르게 자라고 · 단풍나무는 붉게 자라고 · 채송화는 작게 자랍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한 모양한 맛이지만 중생의 *근기가 천태만별(千態萬別)이기 때문에, 부처님 법을 듣고 가지가지로 판단하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에 따른 깨달음도 가지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중생의 근기와 욕망이 각각이지만, 法華經 교학을 실천하여 일체중생이 모두 구제 받아 번뇌 망상을 끊고 성불하는 것이 진정한 해탈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미증유(未曾有)

미증유(未曾有)란, 경(經)가운데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을 말한 부분을 말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대(無限大)의 작용,  부처님권능(權能)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