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013-(3)

 (2)  모든 말로 설하는 바는 다 참되고 헛 됨이 없느니라.  (諸所言說=제소언설 皆實不虛=개실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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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불 석가세존께서는 착한 사람ㆍ악(惡)한 사람 관계없이 모두 부처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신 이래, 현세는 물론 미래 영겁토록 중생을 다 *불도에 들게 하기 위해 *육혹시현의 몸으로  중생을 구제하신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법화경 비유품 제 3에서,--이  circle03_darkgreen.gif 삼계(三界) circle03_darkgreen.gif 다 내가 둔 바이니, 그 가운데 중생(衆生)이 다 나의 자식라. 지금 이 곳에 모든 circle03_darkgreen.gif 환난(患難)이 많음이나, circle03_darkgreen.gif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能)히 구호(救護)함이라.-- *일체중생구제론대선언(大宣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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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삼계(三界)
 
삼계, ① 욕계(欲界)ㆍ② 색계(色界)ㆍ③ 무색계(無色界)를 말합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를 통틀어서 삼계라 합니다.   극락이다ㆍ천당이다 하는 천상(天上), *삼십삼천(三十三天)은 물론, 지장경 지장명호에 등장하는 지옥계(地獄界)까지도 다 포함하여 삼계라 합니다. 어리석고 미혹(迷惑)한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욕계란, 욕망이 가득찬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명예(名譽)나ㆍ물질이라는 것들에 대해 *(貪)(瞋)(癡) 삼독(三毒)이 훨훨 불타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색계, 욕계보다는 정화(淨化)된 경계입니다. 그러나 색계도 迷惑과 욕망의 뿌리가 남아 있는 경계입니다. 탐욕이 훨훨 불타는 비속(卑俗)한 상태에서 맑고 깨끗한 상태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정화는 되었지만, 완전히 욕망이 끊어진 상태는 아닙니다.
 
범부 정거천(淨居天)을 비롯한 색계를 별천지라 생각하겠지만, 색계라는 것도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 경계입니다. 대우주를 떠난 자리가 아닙니다. 부처님구제의 대상입니다.
 
무색계, 욕망은 끊어졌지만 면면히 미련이 남아 있는 정신세계를 말합니다. *천태대사께서는, 일명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도 하는 유정천(有頂天)을 비롯한 사공처(四空處), 무색계삼계의 하나로 부처님의 제도받아야 할 대상이라 하셨습니다.
 
고대 인도에서 주축을 이루고 번성했던 바라문교의 궁극의 목적지로 알려진 범천(梵天)이라고 하는 천상(天上)도, 무색계의 최상천이라고 하는 유정천(有頂天)에 불과합니다. 극락이라는 천상과, 우리가 사는 지상과의 차이는, 지상의 365일이 천상에서 하루라 합니다.
 
불교, 기독교 등 종교를 갖지 않았다 해도, 착한 일 많이 하면 누구나 극락은 갑니다. 그러나 천상은 영원한 자리가 아닙니다.  circle03_darkgreen.gif 과보 좋아서 천상에 갔다 해도, 지은 복(福)이 끝나면 복진타락(福盡墮落), *육도윤회로 떨어집니다. 천상일회용(一回用)일 뿐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과보(果報)
 
과보, *인연과보(因緣果報)의 줄인말입니다. 삼세 관점에서 전생에 지은 선악(善惡)에 따라 현재의 행(幸)불행(不幸)이 있고, 현세의 선악의 결과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과보에는 현보(現報)순보(順報)순후보(順後報)가 있습니다.
 
현보(現報), 현재에서 지은 선악(善惡)과보금생(今生)에 당장 받는 것입니다.
순보란, 금생에 지은 善惡의 과보를 금생에 받지 않고 다음 생에 받는 것입니다.
순후보, 금생의 행한 善惡의 과보를 다음ㆍ다음 생(生)에  받는 것입니다.
 
못된 짓만 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생에 닦은 선보(善報)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현세에서 의 과보(果報) 를 받지 않더라도 내생(來生)이나 그 다음 에는 꼭 받습니다. 반대로  착한 사람이 어렵게 사는 데, 그것은 전생의 악보(惡報)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금생선보(善報), 착한 갚음과 맞물려져 상계(相計)상쇄(相殺)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물질세계는 찰나찰나 변하는 무상(無常)입니다. 무상의 영향권을 벗어난 영원한 자리는 *진여(眞如) 뿐입니다. 부처님 자리 <큰 하나> 뿐입니다. 영원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법화경(法華經)은 눈 앞의 것만 생각지 말고, 영원성에 눈 뜨라는 뜻에서, *법화경 여래수량품을 통해 부처님의 수명론을 열어주셨습니다. 지나간 어제에 매달려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또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지 않는다든가 하지 말라는 뜻에서, 法華經을 통해 부처님의 수명론을 계속 드러내셨습니다. 무상(無常) 가운데서 영원한 것이 있음을 전제하고 찰나찰나를 보람되게 살라는 것이 부처님의 수명론입니다.
 
세상은 무상합니다. 찬 북풍이 불어오는가 하면,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잎이 돋는가 하면 꽃이 핍니다. 때로는 장마가 져서 문전옥답(門前玉畓)이 다 떠 내려가고, 어떤 때는 가물어서 밭작물이 모두 말라서 타 죽습니다. 사람도 검은 머리가 희어지고, 그 곱던 살결이 검버섯과 주름살 뿐입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상한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반드시 북풍이 불어오고 여름에는 반드시 장마가 옵니다. 봄에는 반드시 나뭇잎이 돋고 가을에는 잎이 떨어집니다.
 
부처님수명론 분상에서 보면, 인연 따라 찰나찰나 모두가 변(變)하는 것 같은 무상 가운데서도 언제나 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하는 인과(因果)라는 엄격한 바탕 원리(原理), 큰 질서가 있습니다. 무상(無常)이라는 인연과보를 통해서 찰나에 <큰 하나  대생명체>, 영원성의 존재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변화대전제(大前提)원리(原理)라는 것입니다.
 
허공 비행기를 띠우고ㆍ우주선을 쏘아 올리고ㆍ우주 정거장을 건설하고ㆍ우주 여행의 길을 열었다 해서, 세상이 빠르게 하니까, 범부는 거기에 맞추어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된다고 제각기 소리 높이고 안깐힘 쓰지만, 하늘은 하늘일 뿐입니다. 영원한 하늘입니다.
사이버 공간, 인터넷 문명시대를 열어 세계가 작은 모니터 안에 다 들어와서 모든 지식을 공유한다고 해도,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이라는 기본 틀, 본체  하드는 변하지 않습니다. 대우주 본체  원리(原理)하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계곡과 강물이 다 얼어 붙었어도, 얼음장을 들고 보면 물이 졸졸 흐르고 있습니다. 무상(無常) 가운데서 치 않는 영원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 영원한 속성을 불교에서는 부처님 자리 진여(眞如)라 합니다. <큰 하나> *상주불변체(常住不變體)라고 합니다.
인간은 일체가 무상이라 떠들고, 그 무상을 조금이라도 퇴치하겠다고ㆍ무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겠다고 과학을 발전시키지만, 그 무상 가운데를 일관한 *천지기운, 영원한 본체  원리(原理)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변한다든가 죽는다든가 하는 것 일체를 무상을 전제한 인과(因果)로 보십니다. 하는 가운데를 일관해서 하지 않는 <틀>, 바탕  체(體)를 포착하라는 것이 불교입니다. 중생의 눈에는 일체가 하는 만 보니까, 아주 끝나는 것으로 알고 괴로워 합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물질이 생겼다가 없어지니까, 생명이 아주 끝나는 것으로 알고 괴로워 합니다. 그것은 마치 동전의 한쪽 면만 보고 전체를 본듯 착각하는 것입니다. 나고 죽는 것을 <큰 하나>, 부처님의 수명론<너와 나>가 동참한 영원성을 무상 가운데서 찾는 것이 신앙이요, *인과(因果)의 질서를 말하는 *일불승(一佛乘) 법화경 사상,  부처님의 수명론이라는 근본 자리입니다. 부처님의 수명론에서  중생구제를 전제하고  방편설이다, 진실설이다, 육혹시현이다, circle03_darkgreen.gif 화광동진(和光同塵)이다 하는 성어가  쏟아져 나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다 내가 둔 바이니====아유(我有)
 
부처님께서 <이 삼계는 다 내가 둔 바이니-->라고 하시는 말씀을 한문으로 <아유(我有)>라 합니다. <아소유(我所有)>에서 <바소(所)>자를 빼고, 줄인말로 <아유(我有)>라 합니다. 아유(我有)라는 것은, <나아(我)있을유(有)>자의 <내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유(我有) <내 것>이라는 뜻이라 하니까,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부동산에 등기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그런 개인소유로 끝나는 물질세계의 정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 차원에서 내 것ㆍ네 것 하는 그런 저급한 <내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아유(我有)>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 자기에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또는 행동하는 그런 개인의 탐욕(貪欲) 같은 이기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화경에서 <아유>라고 하는 것은, 본체(本體), 하드라고 하는 절대자 부처님 자리입니다. 대우주 무변법계(無邊法界)는 모두 부처님의 수명론을 말씀하신 석가세존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중생 차원에서 개인의 이기심에서 터져 나오는 탐욕을 뜻하는 아유(我有)가 아니라, 대승적(大乘的)인 것입니다. 사사로운 이익이나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고 전체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런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모두 구제하심을 대전제(大前提) *실대승(實大乘) *일체중생구제론(一切衆生救濟論), *홍익(弘益) 사랑입니다.
 
대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일월성진(日月星辰)  산하대지(山河大地)  두두물물(頭頭物物)  진진찰찰(塵塵刹刹)이 그대로 부처님의 절대의 힘, 곧 인연 작용의 과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 뜻에서 아유(我有)본체라고 하는 천지기운 절대자 부처님 자리를 말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환난(患難)
 
부처님께서는 인간사의 고통을 최고의 형용사로 <환난(患難)>이라 하셨습니다. <근심환(患)어려울난(難)>자의 환난은, 인간사의 근심과 걱정 일체입니다. 환난이란, 화재(火災)풍재(風災)수재(水災)삼재(三災)라는 자연계의 환난과,  인간이 짓고 받는 마약ㆍ알콜ㆍ성범죄 등 삼대악(三大惡)을 비롯한 *인간팔고(人間八苦)가 다 환난입니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 복용을 중지하면, 불안ㆍ불면ㆍ흥분--따위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또는 마약을 복용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거나 끝내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폐인(廢人)이 됩니다. 그것이 모두 인간사의 환난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서 구제라는 것은 시궁창에 빠진 사람을 건져준다거나, 지나가는 비렁뱅이에게 밥 한 술 주는 것으로 끝나는 그런 잠시 잠깐의 일회용(一回用)의 구제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생각과 생각마다 불법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고, 부처님께서 남겨 놓으신 가르치심을 음미하고, 나도 부처님 가르치심에서 어긋나지 않고 부처님을 본받겠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신앙 정서(情緖)를 간직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간 구제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호함이라.(唯我一人=유아일인 能爲救護=능위구호)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히 구호함이라>란, 절대자 석가세존의 선언입니다.  사바세계 중생을 다 구제하신다는 뜻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내가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처자식하고 끼니를 거르고 있어도 누가 도와 주지 않는데, 무엇을 구제한다고 하시는가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속성은 배고프고 굶주리면, 굶어죽지 않고 어떻게 하던지 살아남으려고, 가족간에 마음이 뭉칩니다. 서로 아끼고 좋은 일ㆍ궂은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해지는 관찰자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에, 남에게 구걸하지 않아도 스스로 환난에서 벗어납니다. 그것이 구제입니다. 가난하다 해서 영원히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간에 서로 아끼고 부지런하여 어려움을 면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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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 
 
나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생각지 않아야 되지만, 또한 착한 것도 생각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라는 *중도(中道), 관찰자 관점에서 바라보기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닥쳤다 해서 지구가 끝나는 것으로 착각하고ㆍ고통의 절정이라 생각하고ㆍ마음 상해서도 안되며, 즐거운 일이 생겼다고 해서 자신이 제일 행복한 것 처럼 우쭐대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화광동진(和光同塵)
 
천태대사께서는 육혹시현을 다른 말로 <수적(垂迹) 화광(和光)>이라고 하셨습니다. 화광(和光)이란, 화광동진(和光同塵)을 말합니다.
 *화광동진이라는 뜻은,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법이나 수단으로 무루지광(無漏智光), 자기가 정각을 열었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부처님이다ㆍ보살이다 하는 신앙상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기의 신분을 잠깐 숨기고 육혹시현의 몸으로 일체 중생을 모두 구제하고자 몸으로 뛰는 인간 구제불사를 말합니다.
 
*법화삼부경 무량의경 설법품에서도 -- 능히 한 말씀으로써 널리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말에 응하며, 능히 한 몸으로써 백천만억 나유타의 한량 없고 수없는 항하사 보이느니라. 하나 하나의 몸 가운데서 또한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항하사의 가지가지의 종류와 형용을 보이느니라. 하나하나의 형용 가운데서 또한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항하사의 형용을 보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번뇌(煩惱)오탁으로 점철된 사바세계라는 티끌속에 섞여서 고통 받는 무명 중생들에게 부처님과 불연(佛緣)을 맺게하고, 마침내 法華經으로 인도하여 성불수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보살행을 화광동진이라 합니다. 법화경분상에서는 육혹시현이라 합니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 제 8 에서.
----그 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모든 비구들아, 자세히 들으라. 불자(佛子)가 행하는 도(道)는 *방편을 잘 배운 까닭이니, 너희는 가히 생각하기 어려우니라. 여러 가지 작은 법을 즐겨하며 큰 지혜를 두려워함을 알고, 이런 까닭으로 모든 보살이 성문연각으로 되어 수없는 방편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며, 스스로 성문이라 하고, 불도(佛道)는 심히 멀다고 말하며, 한량 없는 중생을 제도 *해탈케 해서 다 성취하게 함이라.
 
비록 작은 것을 희망하고 게으를지라도 점차로 닦아 마땅히 성불하게 함이니라. 안으로 보살행을 감추고 겉으로는 성문이라 이를 나타냄이라. 작은 것을 희망하고 생사를 싫어할지라도, 실은 스스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함이라. 중생에게 삼독(三毒)이 있다고 보이며, 또는 사견(邪見)의 상(相)을 나타냄이라. 나의 제자는 이같은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광동진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겠다고 원력을 세운 거룩한 보살의 덕목(德目)입니다. 세간에서 화광동진의 덕목을 실천하면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의 국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본체 본불이라는 혁혁한 위풍(威風)을 감추시고, 금생에 오셔서 남들 처럼 난행(難行)고행(苦行)을 다 하시고, 정각(正覺)을 여신 후, 50년간 설하신 교학 불사(佛事)구제를 전제한 방편 법문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헛 된 것이 없다는 것이 본문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