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05-(1) 
 
(1)비유컨대 五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circle03_darkgreen.gif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가령 어떤 사람이 부수어 가루로 하여 동방 五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나라를 지나서 이에 가루 하나를 떨어뜨리되,
(2)이와 같이 하여 동쪽으로 가서 이 가루를 다 떨어뜨렸다면, 모든  circle03_darkgreen.gif 선남자야, 생각에 어떠하뇨, 이 모든 세계를 생각하여 헤아려서 그 수를 알 수가 있겠느냐.
 
 bar03_dot3x3_red.gif
 
본문-004-(1) 에서 부처님의 수명<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라고 하신 말씀을 중생이 못알아 듣는다는 것을 감안시고, 부처님께서는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오늘 공부하는<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또는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의 비유입니다.
 
부처님의 수명은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끝도 없음을 <오백진점겁> 또는 <삼천진점겁>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생사(生死)의 변화(變化)를 끝없이 넘나드는 중생의 시각(視角)에서 과거ㆍ현재ㆍ미래 삼세(三世)를 말합니다. 그러나 *구원실성 석가세존 분상에서는 과거ㆍ현재ㆍ미래라는 삼세가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큰 하나> 본체입니다.
 
본문에, 동방은 동서남북(東西南北) 네 방위 가운데 동쪽을 가리킵니다. 네 방위 가운데 굳이 동쪽을 지적하신 것은 그 시대 고대 인도의 문화 정서(情緖)이기 때입니다.
 
3천 여년 전, 부처님 재세시는 물론, 가까이 17세기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은 우주(宇宙)중심지구이고 하늘의 모든 별들은 지구의 둘레를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감히,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시대적으로 천동설이 지배적인 문화 차원에서는, 동쪽은 시작이요 서쪽은 끝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이라는 동쪽의 개념은 <처음>,  시작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동방 五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나라를 지나간다--는 말씀은 근본(根本) 뿌리를 찾는다는 뜻이 내포 되어 있습니다.  근본을 뜻하는 동방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부처님(佛)이라는 존재는 근원 근본임을 중생에게 정서적으로 심어주시기 위한 방편입니다.
 
살피건대 부처님께서 정각을 여신 후, 50년간 설하신 50년설 교학(敎學) 관점에서, 42년간 설하신 방편의 가르치심 가운데 약사경(藥師經)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약사경에서는 약사여래께서 동방에 정유리국(淨瑠璃國)을 건설하고, 그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의 교주가 되어 *십이대원(十二大願)을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토(淨土) 중생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더 나아가서 다겁생래(多劫生來)를 두고 내려오는 정신세계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중생의 *무명(無明)까지도 치료하여 일체 중생을 구제한다고 서원(誓願)을 세우신 부처님이 바로 약사여래라고 하셨습니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 근본 시작입니다. 특히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속히 소생하기를 바라는 전제(前提)하에 약동(躍動)의 뜻으로 동방정유리국약사여래를 모셨다는 것은 *보편타당성(普遍妥當性)의 이치입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속히 쾌차하기를 바라는 중생의 마음을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동방이라는 방편을 통해 생명의 근원을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근본 바탕이신 본체  본불  부처님이라는 존재의 수명이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다는 것, 영원하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위의 본문의 깊은 뜻입니다.
 
   bar03_dot3x3_blue.gif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고대인도에는 불교가 일어나기 전,  세계의 한가운데 있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四방에 사대주(四大洲)가 있으며, 그 四대주를 통틀어서 한 세계, 또는 *사천하(四天下)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천하가  천(千)개 합친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라 하고, 그 소천세계천(千)개가 모인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라 하고, 다시 중천세계개가 모인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고 하였습니다.  소천세계중천세계대천세계를 합해 <삼천대천세계>라 하였습니다.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의 온갖 지종(地種)을 부수어 갈아서 먹물을 만들어서, 동방으로 일천 국토를 지나서 크기가 미진(微塵)한, 한 점을 떨어뜨리고 이렇게 하여 그 먹물이 다 없어진 뒤에, 지나 온 국토를 모두 가루로 만들어서 한 티끌을 일겁으로 헤아려서 이를 모두 계산한 것을 <삼천진점겁>이라고 복잡하게 말하였지만, 실은 어떤 수를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이미 성불하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입니다.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대우주의 영원한 존재, <큰 하나>,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절대(絶對)의 부처님의 존재를, 천지기운   *적정 자리를 비유한 것입니다.
 
<백천만억나유타겁>이라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수입니다. 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함을  중생에게 깨닫게 하기 위한 경전적 비유가 <오백진점겁>·<삼천진점겁>입니다.
 
<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 또는 <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에서 <점찍을 점(點)>자는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빻은 가루 한 점(點)을 말합니다. 그 티끌 한 점을 일겁(一劫)으로 계산합니다.
일겁(一劫)우리들 인간 세계의 태양력(太陽曆) 개념으로는 4억 3천 2백만년을 말합니다.
고대인도에서는 범천(梵天)천상(天上)의 하루를 일겁이라고 계산하였다 합니다
 
삼천대천세계라는 삼천(三千)과ㆍ삼천대천세계를 깡그리 모두 빻은 티끌을 뜻하는 <티끌진(塵)>자와ㆍ한 점(點)이라는 <점찍을 점(點)>자와ㆍ일겁을 뜻하는 <겁겁(劫)>자를 나란히 모아서<삼천진점겁(三千塵點劫)>이라 하여 부처님의 수명이 장구함을 나타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햇수는 보통 우리가 쓰고 있는 연(年)월(月)일(日)ㆍ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시간입니다. 즉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걸림이 없는 정신세계, 영성세계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성세계의 영원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천님의 수명을 대개 겁(劫)으로 표현합니다.
겁(劫)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circle03_darkgreen.gif개자겁ㆍ반석겁ㆍ 인수겁 등의 비유가 있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선남자(善男子)
 
선남자라 하니까, 혹자는 남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방편의 교(敎)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믿고 착한 마음을 일으키고 선행(善行)을 닦는 남자나 여자를 <선남자선여인>이라고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성수 72세부터 80세까지 설하신 법화경에 오셔서는 <선남자선여인>이라고 남녀를 분별하지 않고 법화회상에 집결한 모든 청중을 일괄적으로 <선남자>라고 하셨습니다.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관점에서 구제(救濟)와 평등(平等)을 말씀하신 부처님께서, 어째서 법화경에서는 남녀 차별을 하시느냐고 못 마땅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존여비(男尊女卑) 관점에서 사회적 지위나 권리에 있어서 남자를 여자보다 우대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하는 짧은 생각을 일으키실 수도 있다 생각되어 법화경에서의 <선남자>의 개념을 정확히 말씀드립니다.
 
돌이켜보건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42년 방편설,   화엄경아함경방등경반야경 등의 설법으로 제자들의 *근기가 수승해진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끊은 제자들은 더 이상 보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불안(佛眼), 부처님의 눈으로 보시고 다 아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미혹  번뇌를 끊은 *성문(聲聞)연각(緣覺), 이승(二乘) 제자들이 소승적인 독각에 빠져서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고 심각한 현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도 다 아시기 때문에, 법화경에 오셔서는 일체의 성문 연각의 이승 제자들이 모두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사는 홍익보살행으로 장진(長進)하라는 뜻에서,  보살 대우를 하신다는 뜻에서 선남자라고 하셨습니다.
 
일체 중생은 누구나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항상 유지하며 완전한 인간이 될수 있다는,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대전제하에 <선남자>라고 하셨습니다.
 
분명코 부처님께서는 재가불자출가불자 할 것 없이, 남자다여자다 젊었다늙었다하고 분별하지 않고, 똑같이 영산회상 청중에게 <보살> 대우한다 해서 <선남자>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사는 보살행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중도 수행이라는 전제하에, 건강한 육신과 건강한 마음이 하나가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중생 구제의 눈을 뜨고 불교의 이상을 주도적으로 구현하는 선구자라는 뜻에서 부처님께서는 <선남자>라고 하셨습니다
 
*법화삼부경의 무량의경 설법품에,---*문사수일 이의각이(文辭雖一 而義各異)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비록 말과 글은 같을지라도 뜻은 각각 다르다-는 뜻입니다.
같은 용어나 문구라도 법을 설하는 시기(時期=)에 따라 또는 듣는 청중의 의식 수준에 따라 개념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미 공부하였습니다.
분명코, 법화경 분상에서의 <선남자>의 개념은  circle03_darkgreen.gif 보살(菩薩)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선남자야, 생각에 어떠하뇨, 이 모든 세계를 생각하여 헤아려서 그 수를 알 수가 있겠느냐.--고 하신 이 말씀은, 부처님의 수명을 나타내는 백천만억나유타겁이다오백진점겁이다삼천진점겁이다하는 부처님의 수명장원(長遠)하다는 것을, 너희들 세간에서 쓰는 연(年)월(月)일(日) 따위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는 그런 말씀입니다.
 
지금부터 설하는 법화경을, 너희들 세간에서 아는 척하는 지식이나 분별심을 앞세우고 들으려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설할 수가 없구나 하고 일체의 청중을 경계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애민(哀愍)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중생의 선입관(先入觀)을 앞세우고 듣지 말라는 *자비(慈悲), 자애로운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bar03_dot3x3_blue.gif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
 
부처님의 수명이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나유타겁>이라는 아득한 세월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이라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 개자겁이란, 사방 400리의 넓은 땅에, 높이가 400리가 되는 성곽을 쌓은 큰 공간에 깨알보다 작은 개자씨를 가득히 넣고, 그 개자씨를 천상에서 2년에 한 번씩 선녀가 내려와서 한 알씩 가져 간다면, 그 깨알이 몇겁이 지나야 다 없어지겠느냐 ?  그 개자씨가 다 없어지는 기간 보다도 더 오래 전에 부처님께서 성불하셨다는 그런 뜻입니다.
반석겁이란, 사방 400리의 넓은 땅에, 높이가 400리가 되는 성곽을 쌓은 공간에 바위를 가득히 채워 놓고, 천상에서 2년에 한 번씩 선녀가 내려와서 선녀의 옷자락으로 바위를 스쳐서 그 바위가 다 닳아서 없어진 기간 보다도 더 오래 전에 부처님께서 성불하셨다는 뜻입니다.
 
개자겁반석겁이 모두 처음도 끝도 헤아릴 수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에 부처님께서 성불하셨다는 절대성(絶對性)을 뜻하는 최상의 비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법구를 말씀하시더라도 설법회상에 모인 청중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삼주설법(三周說法)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재삼 알 수 있습니다.
 
삼주설법(三周說法)이라는 것은 법설(法說)비유설(譬喩說)인연설(因緣說)을 말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보살(菩薩)
 
은 범어의 보리살타의 준말입니다. 보리(菩提)란, <깨달을 각(覺)>,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살타>란 사람을 뜻합니다. 그래서 보살이라는 뜻은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자기도 미혹(迷惑)을 제거하고, 동시에 남도 미혹이 없어져서 더 이상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하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열심히 배워서 지금부터라도 부처님을 본받아 전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도적(主導的)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자각(自覺),  자기가 깨달은 것과, 각타(覺他),   남이 깨닫도록 끊임없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업중생(同業衆生)입니다.
그래서 보살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그 깨달음도 혼자서 깨닫고자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도 깨닫고 다른 사람도 깨닫는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며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은, 자기 자신이 구원 받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다 도와 주고 싶다ㆍ부처님 법을 세상에 펴고 싶다ㆍ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불교에 귀의하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이러한 *발심(發心)을 한 사람을 불교에서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보살이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부처님과 우리들 평범한 사람과의 중간에서 위로는 보리(菩提) · 정각(正覺)이라는 ·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부처님 법을 전해주는 교량역할(橋梁役割)을 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어느 때, 보살수행자가 내부의식 선정삼매(禪定三昧)로부터 외부의식으로 나왔습니다. 무심코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때마침 새끼를 낳은 어미 호랑이가 몹시 굶주린 탓으로 자기가 낳은 어린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찰나였습니다. 보살수행자는 비장한 생각으로 옷을 벗어 버리고,--나를 먹어라. 네가 좋아하는 고기덩어리가 여기 있다. 어서 먹어라--하며 알몸뚱이가 되어 낭떠러지에 몸을 던져서 그 무서운 호랑이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자기 몸을 내던져가면서 불쌍한 미물을 살렸습니다. 그야말로 숭고한 보살정신이며 보살행의 극치입니다.
 
우리는 무명 중생인지라, 번뇌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절대의 지혜절대의 자비를 갖추신 분입니다. 그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부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설해주시기도 하지마는, 때로는 *육혹시현,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널리 세상에 펴도록 도와주는 보살 역할을 하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 오셔서 모두 <선남자>라고 하셨다는 것을 거듭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