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jpg                                                             이전                  

  *마치 의원이 좋은 방법으로  미친 아들을 다스리기 위하는고로  살아 있건마는 죽었다 말하되   허망(虛妄)이라 하는 자 없음과 같이, 나도 또한 세상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고통을 구하는 자라.-----*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bar03_dot3x3_red.gif
 
 법화경(法華經)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1-12-06
 
---그 때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보살(菩薩)과ㆍ*성문(聲聞)과ㆍ하늘과ㆍ용(龍)의 *팔부(八部)와 사람과ㆍ사람 아닌 것이 다 멀리서 저 용녀가 성불해서, 그 때 그 곳에 모인 사람과 하늘을 위하여 널리 법을 설함을 보고, 마음에 크게 환희해서 다 멀리 바라보고 공경하고 예배함이라.---
 
그 때 용녀가 변성남자(變成男子)하여 성불한 뒤, 많은 사람을 위해 교(敎)를 설하는 것을 바라보고, 영산 법화회상의 모든 대중이 다 크게 기뻐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용녀의 성불은 누구든지 수행을 쌓으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범부라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본성,  *불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성심껏   *대승교를 배우고 일념으로 *보살도를 힘써 행하면, 결국 부처님이 된다는 것을 실제로 보고 자기들도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법화회상의 대중은 축생 용녀의 성불을 기뻐하고 공경하였습니다.
 
-----한량 없는 중생이 법을 듣고 해석하고 깨달아서 *불퇴전(不退轉)을 얻으며, 한량 없는 중생이 *도(道)의 수기(授記)를 받으며, 무구세계(無垢世界)*육종(六種)으로 진동(震動)하는지라. 사바세계의 삼천 중생은 불퇴지(不退地)에 머무르고 삼천 중생은 *보리심을 일으켜 *수기(授記)를 얻음이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은 지금까지 여자는 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자도 남자와 같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지금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법화경 교학을 믿고 실행하면,오랜 동안 수행한 것과 같은 *행천공심(行淺功深)  곧  인행과덕이 나타나는 *즉신성불론과,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고자 하는 소원을 일으키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보살행을 선택함으로써 당연히 수기를 받습니다.
 
<불퇴전>,  신앙이 해이해지지 않는 경지에 이른 적극적인 몸과 마음의 자세입니다.
<도(道)의 수기(道記)>, 장차 *보살도를 힘써서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자각(自覺)입니다.
<육종으로 진동하다>란, 용녀성불이 모든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지적보살과 *사리불(舍利弗)과 일체의 중회(衆會)는 묵연(默然)히 믿고 받음이라.----
 
지적보살과 사리불존자는생 용녀의 성불,    *여인성불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용녀의 성불을 찬탄하였습니다.  지적보살이나, 지혜제일의 사리불존자는 각자의 능력,  *자력(自力)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고, 부처님의 힘  곧 *타력(他力)에 의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용녀성불을 보고 법화사상의  * 신근(信根)의 소중함과 부처님의 힘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천지기운임을 실증하는 것으로 제바달다품의 막이 내립니다.
 
* 법화경 제바달다품 가지 가르침을 내놓으셨습니다. 하나는 불교의 적(敵)이었던 악인(惡人) 제바달다도 부처님이 된다고 하시는 일체중생 구제사상입니다. 또 하나는 무한한 가능성,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힘을 받아 부처님이 된다는 평등사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악(惡)한 사람ㆍ착한 사람 모두 구원해서 부처님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무한한 자비심을, *천지기운(天地氣運)  우주심(宇宙心)  곧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  근본자리에서 송출(送出)하십니다.  惡한 사람이란, 아직 착한 일을 모르는 사람,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불교의 삼세 분상에서는 절대의 인은 없습니다. 나쁘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달으면 한 짓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라고 적(敵)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불쌍히 여기시고, 지혜가 열리고 생각이 차차 발달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생명 있는 자는 모두 부처님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십니다.
 
그리고 남녀노소(男女老少), - 여자다ㆍ남자다ㆍ젊다ㆍ늙었다-- 관계없이 오직 부처님을 믿고 일심으로 부처님의 도(道)를 배워서 그 마음이 부처님 가까이 되면,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경전에서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나이 따라 제한을 합니다. 젊은 사람은 <나는 아직 젊다ㆍ교(敎)다ㆍ깨달음이다 하는 것은 나이 들고 늙은 다음에나 할 일이다>고 합니다. 반면에, 늙은 사람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제 새삼스러이 그런 걸 해서 뭘해>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삼세(三世) 관점에서  죽음이 머지 않았다 해도 그것은 다만 무상체,  육체의 죽음일 뿐, 영적(靈的)생명영원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부터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 적시(適時)라는 것입니다. 늦었다고 하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생명은 현재에서 끝나는 금생만의 생명이 아니라, 구원(久遠)의 생명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명이 구원(久遠)하듯이 중생의 수명도 영원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고 적음 같은 것은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큰 하나>를  포착(捕捉)하는  마음이 깨달음시작입니다.
 
--인간인 이상, 인간으로서의 보람있는 생활을 하자그리하여 현세를 마치고 후세에는 더욱 의의(意義) 있는 생활을 하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어떤 장애(障碍)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일체중생구제론이라는 케치프레이즈로 일관하시는 부처님의 가르치심,    circle03_darkgreen.gif 불교의 근본교리(根本敎理)를 믿고  circle03_darkgreen.gif 석가모니 부처님의 덕성(德性)을 하나 하나 실행하여 다 함께 부처님이 되라는 깊은 뜻을 제바달다품에서 찾는 것입니다.
 
 bar03_dot3x3_blue.gif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석가모니 부처님의 덕성(德性) (8) →*(7) → *(6) *(5)*(4)  → *(3)  → *(2)  → *(1)
 
                                                                                              불교성경-p87~p90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다섯 가지 뛰어나게 훌륭한 을 갖추고 세상 사람의 공경을 받으신다. 그것은 뛰어나게 훌륭한 (行)과, 뛰어나게 훌륭한 견해(見解)와, 뛰어나게 훌륭한 지혜(智慧)와, 깨달음의 길을 밝게 말하는과,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르친 대로 수행하게 해 주는 일이시다.
또 부처님께서는 여덟 가지 이 있으시다. 첫째 모든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이익과 행복을 주시는 일이요, 둘째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서 눈앞에 이익이 있는 일이요, 셋째 세상의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심이요, 네 째 올바른 길을 가르쳐 깨달아 듣게 함이요, 다섯째 어떠한 사람이라도 한가지 길  곧 *일불승 법화경으로 인도(引導)하여 주심이요, 여섯째 부처님께서는 자랑이 없음이요, 일곱째는 말과 같이 실행하고 행(行)과 같이 말함이요, 여덟째 어리석고 어두움이 없으사 원(願)하는 바를 성취하고 원만하게 행(行)을 이루시는 일이다. ---파리 중부에서--
 
또 모든 부처님은 *선정(禪定)에 들어 고요함과 화평함을 얻고,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인자한 마음과불쌍하게 여기는 마음과ㆍ즐겁게 여기는 마음과ㆍ평등한 마음을 갖고, 마음 속에 모든 산란한 것을 쉬어 청정한 자들만이 가진 환희를 지니고 계신다.---- 파리중부에서
 
부처님은 *십력(十力),  열 가지 힘을 성취하고, *사무외(四無畏),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여 대중 가운데서 능히 *사자후로 법을 설하신다.---잡 아함에서----
 
가지 두려움 없음이란, 첫째 부처님이 비할 바 없이 바르게 깨달음을 이룬 것을 말함이니, 어떤 중생이 너는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려 해도 되지 않고, 사문이나 바라문이 부처님을 비방하여 너는 비할 바 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려해도 되지 않고, 되지 않으므로 곧 안온(安穩)하심이다. 이것이 비할 바 없는 바른 깨달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이다, 곧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이다. ---잡 아함에서----
 
둘째 부처님은 번뇌가 이미 다해 버린 것을 말함이니, 사문이나 바라문이 아직 번뇌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려 해도 되지 않고, 되지 않으므로 곧 편안 하심이다. 이것이 번뇌가 영영 없어진 데에 대한 두려움 없음, 곧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이다.
셋째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은 성현(聖賢)이 고(苦)에서 벗어남을 얻는 것이라 실제로 고제(苦諦)를 다한 것이므로,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 아직 고제를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려 해도 되지 않고, 되지 않으므로 곧 편안하심이다.
이것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설함에 대한 두려움 없음, 곧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이다. ---잡 아함에서----
 
넷째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은 악취(惡趣)  곧 지옥 아귀 축생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 해도 되지 않고, 되지 않으므로 곧 안온하심이다. 이것이 깨달음을 장애하는 것을 설함에 두려움 없음   곧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이다. 이것을 여래의 *사무소외(四無所畏)라 한다.----잡아함경에서--
 
-- 부처님의 마음(佛心)은 곧 대자(大慈)시니, 대자에 의지하심은 고통하는 중생을 알고 계신 까닭이다. 자비로운 마음이란,  생각을 모아 <괴로워하는 중생>을 알아 보는 일이며, 괴로워 하는 중생이란,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자를 이른다. 이 가르침을 가지는 자는 곧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된다. 이같이 생각하는 자는 능히 부처님의 마음을 관(觀)하는 것이 된다. ---- 관불삼매해경에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자비로 그 마음을 삼으시고 *계해탈지견(解脫知見= *해탈에 있어서의 알고 보는 작용)으로써 그 몸을 삼으시며열 가지 힘(十力) ㆍ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 자비로움,*삼념처(三念處=중생이 부처님을 믿거나ㆍ안 믿거나ㆍ일부는 믿고 일부는 안 믿거나ㆍ 간에 마음에 동요하지 않는 것) 로 스스로 치장하시나니, 이와 같이 자세히 살펴보는 자는 부처님의 마음(佛心)을 보는 자라고 한 것이다.-----관불삼매해경에서---
 
부처님 자비(慈悲)가 있기 때문에 중생을 불쌍히 여겨 두루 일체를 보살피시고, 아직 제도(濟度) 되지 않은 자는 그로 하여금 제도를 얻게 하시나니, 일체 중생을 버리시지 않으심은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함과 같으시다.---관무량수경에서--
 
 bar03_dot3x3_blue.gif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불교의 근본교리(根本敎理)---①사성제(四聖諦)---             불교성경-p95~p105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 세계가 고통으로 충만하여 있음은 확실한 일이다. 나는 것도 고통이며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다 고통이다. 원한이 쌓인 사람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든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별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라든가, 또는 구(求)하는 대로 얻어지지 않는 것이 다 고통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의 몸 전체가 고통 아닌 것이 없다. *집착을 벗어나지 못한 인생은 모든 것이 다 고통이다. 이것을 가리켜서 고제(苦諦)라고 한다. --전법륜경에서---
 
그러면 이 인생의 고통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이 마음의 *번뇌(煩惱)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번뇌의 근본을 찾아 보면 날 때부터 사람이 가진 강렬한 집착이 근본이 되어 보는 것과 듣는 것을 다 하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켜, 이것이 한번 굳으면 죽음도 해아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② 집제(集諦)라고 한다. --전법륜경에서--
 
이 번뇌의 근본을 남김 없이 없애버리고 모든 집착을 끊어 버리면 사람의 고통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것도 또한 진실하고 사실이므로 이를 가리켜 ③ 멸제(滅諦)라고 한다. ---전법륜경에서--
 
이 고통을 없이하여 다한 경계에 들어가려면 여덟 가지 올바른 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여덟 가지 길, 곧 팔정도(八正道), 올바른 견해(見解)와ㆍ올바른 생각(生覺)과ㆍ올바른 말(言語)과ㆍ올바른 행실(行實)과ㆍ올바른 생활(生活)과ㆍ올바른 노력(努力)과ㆍ올바른 기억(記憶)과ㆍ올바른 마음(心)의 통일(統一)이다. 이 여덟 가지에 의해 고통을 없애는 것도 진실하고 사실된 것이므로 이것을 가리켜 ④ 도제(道諦)라고 한다---전법륜경에서--
.
이 세상에는 고통이 충만하여 있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고통의 근본인 번뇌를 끊어야 하고, 이 번뇌고통을 없애는 경지는 깨달음(覺)이 아니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덟 가지 바른 도(道)를 닦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전법륜경에서----
 
-- 도(道)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든지 이 사제(四諦)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길고도 먼 어두움을 헤매며 고통이 그칠 때가 없는 것이다. 이 사제를 아는 사람을 가리켜 깨달음의 눈을 얻는 사람이라 이른다. ---파리여시어경에서---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한가지로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이 사제의 도리를 명백히 알아야 한다. 어떠한 세상의 성인이라도 올바른 성인이라면 다 이 사제를 깨달은 사람이요, 사제의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 파리여시어경에서 -
 
사제의 도리를 밝게 깨친 사람이라야 비로소 욕심을 멀리하여 세상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고, 죽이지 아니하고, 도둑질하지 아니하고, 또한 난잡스러운 음행(淫行)을 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헐뜯고 중상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나의 몸이 무상(無常)함을 잊어 버리지 않고, 도덕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파리여시어경에서 -
 
--불자들이여, ① (苦)는 죽음이다. 억센 폭우가 쏟아지면 약초와 나무와 숲이 다 꺾이고 말지만 금강석만은 깨뜨리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폭우도 모든 중생을 다 쓸어가지만, 위대한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 보살만은 해치지 못한다. 저 금시조(金翅鳥)는 모든 용(龍)을 잡아 먹지만 *삼보(三寶)에 귀의한 용은 먹지 못한다. 죽음이란 금시조와 같아서 무수한 중생을 잡아 가지만 (空),  무상(無相= 공이기에 차별의 모습이 없음),  무원(無願=차별이 없기에 원하는 것이 없음)의 *선정(禪定)에 든 *보살은 잡아갈 수 없다.--- 열반경 성행품에서--
 
죽음이란 험난한 길에 노자가 없는 것 같고, 갈 길은 먼데 길동무가 없고, 밤낮으로 가도 끝을 알 수 없는 길과 같다. 어두운 길에 등불이 없고, 들어갈 문은 없는데 집만 있고, 아픈 데가 있어도 치료할 수가 없으며, 내 몸에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비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죽음은 참으로 큰 괴로움이다.  
불자들이여, (集)이란 애욕(愛欲)을 말한다. 사랑에는 선(善)과 악(惡)이 있는데, (善)한 사랑은 보살이 구하는 것이고, (惡)한 사랑은 중생이 구하는 것이다. 중생의 사랑집착이고, 보살의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왕이 거동하면 신하도 따라가듯이 애욕이 가는 곳에는 항상 어둡고 어리석음이 따른다. 습한 땅에 잡초가 무성하듯이 애욕의 습지에는 번뇌잡초가 무성하다. 또 애욕은 나찰의 딸과 같아 아이를 낳는대로 잡아 먹고, 마침내는 자기 남편까지도 잡아 먹는다. 중생들이 선업(善業)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대로 잡아 먹고, 중생까지도 잡아 먹는다. 애욕 또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은 꽃을 탐해 꽃밭에서 꽃을 꺾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또한 중생들은 *오욕의 꽃을 탐하다가 애욕이 뿜는 독을 받고 마침내 악도에 떨어진다.--- 열반경 성행품에서--
 
(滅) 애욕(愛欲)이 꺼짐이다. 보살 번뇌을 끄고 맑고 고요한 *적멸에 들어간다. 번뇌가 다한 사람에게는 즐거움 뿐이므로 어떤 괴로움도 받지 않는다.---- 열반경 성행품에서--
 
도(道) * 팔정도다. 빛이 있어야 물체를 볼 수 있듯이 보살은 대중 속에 살면서 팔정도에 의해 모든 진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대승의 *열반에 머물러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참된 이치를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한다.
만일 해와 달이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온갖 별들도 세상에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낮이니ㆍ밤이니ㆍ반달(半月)이니ㆍ한달(一月)이니ㆍ하는 등, 시절ㆍ달ㆍ시간ㆍ분ㆍ초ㆍ모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항상 어둡고 밝은 빛이 없어서, 오직 긴 밤만이 있어 어두운 괴로움만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와 같이 *여래가 세상에 나시지 않았던들 고성제(苦聖諦)와ㆍ고집성제(苦集聖諦)와ㆍ고멸성제(苦滅聖諦)와ㆍ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가 세상에 있음이 설해지지 않아서 세상은 어둡기만 하고 밝은 빛이 없어 완전한 큰 어둠 뿐이었을 것이다. 마치 해와 달이 세상에 나타나자 뭇별도 또한 나타나서, 주(晝)ㆍ야(夜)ㆍ반월ㆍ 일월(日月)ㆍ시절(時節)ㆍ시(時)ㆍ초(秒) 등도  모두 세상에 나타나 긴밤을 밝게 비추는 것과 같이,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사 고성제고집성제고멸성제와 고멸도성제가 세상에 나타나 다시는 어둡지 않게 긴 밤을 밝게 빛은 설하시니, 순일한 지혜가 나타난 것이다.-- 잡아함경에서--
 
--마땅히 사제법(四諦法)을 수행하여라. 어떤 것이 사제(四諦)인가 ?
첫째  고제(苦諦)이니, 그 뜻을 가히 다하지 못할 것이다. 그 뜻을 다하지 못하므로 법을 설함도 또한 다함이 없다.  둘째 고집제(苦集諦)요,   셋째는  고멸제(苦滅諦)며,   넷째는  고멸도제(苦滅道諦)니, 모두 뜻을 가히 다하지 못할 것이다. 뜻을 다하지 못하므로 법을 설함도 또한 다함이 없다.
고제(苦諦) 생고(生苦)ㆍ노고(老苦)ㆍ병고(病苦)ㆍ사고(死苦)ㆍ 우비노고(憂悲老苦)ㆍ원증회고(怨憎會苦)ㆍ애별리고(愛別離苦)ㆍ 소욕부득고(所欲不得苦)ㆍ오음성고(五陰盛苦)니, 이것이 고제라고 한다.
고집제(苦集諦)란, 이른 바, 애(愛)와 욕(欲)이 결합해서 마음이 항상 집착하는 것을 일러 고집제라 한다.
고멸제(苦滅諦)란, 다시 이른바 과 애(愛)가 길이 다하여 남은 것이 없고 다시 짓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고멸도제(苦滅道諦)란, 이른 바 팔정도(八正道)  곧 정견(正見)ㆍ정사(正思)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 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니, 이것을 고멸도제라 한다.
이와 같이 사제는 진실하여 헛되지 않고 부처님의 설한 바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진리(眞理)=諦>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 곧 두 발 가진 자ㆍ네 발 가진 자ㆍ *욕계색계무색계ㆍ또는 생각이 있는 자ㆍ생각이 없는 자 중에서, 부처님이 가장 훌륭히 이 사제를 성취하셨으므로 이름하여 네 가지 진리라고 한다. 이 사제를 깨달아 알지 못하면 영원히 나고 죽는 오악취(五惡趣)  곧 다섯가지 세계에 윤회하게 된다. 부처님은사제를 깨달았으므로 이 언덕으로부터 저 언덕에 이르러 이 뜻을 성취하사, 생사(生死)의 근본을 끊어 다시는 받지 않게 되시었다. -- 증일아함 사제품에서--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설하셨다.
-사제의 가르침이 있어도 / 이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면 / 생사(生死) 속을 길이 윤회하여서 / 마침내 해탈을 얻지 못하리.
이같이 사제의 도리를 깨닫고 / 또 그것을 밝게 알아서 / 생사의 근본을 끊어 버리면 / 다시는 태어남이 없으리로다. ----
 
만일 * 사부중(四部衆)이 이 사제를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오악취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마땅히 *방편을 지어 이 사제를 성취하여야 한다.---- 증일아함 사제품에서---
 
<네 가지> 진리를 성취하면 이름하여 대의왕(大醫王)이라 한다. 왕이란 왕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것을 갖췄기 때문이다. 네 가지란, ① 병을 잘 아는 것과ㆍ② 병의 근원을 잘 알 것과ㆍ③ 병의 치료법(治療法)을 잘 아는 것과ㆍ④ 을 치료한 뒤에 장래에 다시 재발하지 않게 하는 법을 잘 아는 일이다. ---잡 아함경에서--
 
병을 잘 아는 일이란, 이러 이러한 여러 가지 병의 종류를 잘 아는 것을 말한다. ② 병의 근원을 잘 안다는 것은, 이 병은 풍(風)으로 해서 일어났나ㆍ습(濕)으로 일어났나ㆍ침(延睡)으로 일어났나ㆍ냉(冷)으로 일어났나ㆍ괴로운 일로 일어났나ㆍ시대의 유행으로 일어났나 -등의 근본 원인을 잘 아는 일이다. ③ 병의 치료법을 잘 안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병을 잘 알아서 마땅히 약을 발라 치료할 것인지, 토할 것인지, 버릴 것인지, 훈(燻)할 것인지, 땀낼 것인지, 이러한 갖가지 치료법을 잘 아는 일이다. ④ 병을 치료한 뒤에 재발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병을 잘 치료하여 완전히 나은 뒤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잡 아함경에서--
 
처님 의왕이 되어 <네 가지 덕>에 성취하여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시다.
네 가지 (德)이란, 고성제를 참되게 알고ㆍ고집성제를 참되게 알며ㆍ고멸성제를 참되게 알고ㆍ고멸도성제를 참되게 아는 일이다. 세상의 의사는 생(生)의 근본 치료법을 참되게 알지 못한다. 또 늙음과ㆍ병과ㆍ죽음과ㆍ근심하고 슬퍼하는 고뇌의 근본 치료법을 참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대의왕(大醫王)이 되사 생(生)의 근본 치료법도 참되게 알고, 늙음ㆍ병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뇌의 근본 치료법도 참되게 아신다. 그러므로 부처님대의왕(大醫王)이라 부르는 것이다. ----- 잡아함경에서
 
비록 끝없는 착한 일들이 있더라도 그 모든 것은 다 사성제에 속하여 그 속에 포함된다.
사성제 온갖 사물에서 가장 으뜸이 된다. 그 이유는 모든 착한 일들을 거두어 들이는 까닭이다. 마치 모든 짐승의 발자국 중에는 코끼리의 발자국이 제일인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저 코끼리의 발자국은 가장 넓고 큰 까닭이다. 이와 같이 무량한 온갖 착한 일들은 모두 사성제 속으로 들어와 *용입되기 때문에 사성제는 일체 법에서 가장 으뜸이 된다. -- 중아함경에서-
 
---도(道)를 수행하는 자는, 비유하면 등불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어두움은 곧 없어지고 밝은 광명이 가득히 찬다. 도(道)를 배워 명백하게 사제의 도리를 알면, 지혜의 등불을 얻게 되어 어리석음의 암흑은 없어지고 만다.
부처님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를 생각하고, 어떠한 마음으로 를 수행하며, 또 어떠한 말로 를 펴셨는가? 오직 이 사제에 의하여 하시었다. -사십이장경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몸소 받는 자는 이 사제에 의하여 하잘 것 없는 세상에서 참된 깨달음을 얻어, 이 세상에 있어서 중생의 수호자(守護者)가 되며 의뢰자(依賴者)가 된다. 그것은 이 사제의 도리를 명백히 알면 모든 번뇌의 근본인 무명(無明)이 없어지는 까닭이다.
부처님 제자는 이 사제에 의해 모든 교리를 통달하고 모든 이치를 아는 지혜공덕을 갖추어, 어떠한 사람 앞에서나 자유자재하게 가르치심을 말하게 되어야 한다.----- 사십이장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