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jpg                                                                            

  *느 때는 이 중생을 위해(或時爲此衆=혹시위차중) 부처님의 수명이 한량 없다고 설하며(說佛壽無量= 설불수무량) 오랫 동안 부처님을 친견하는 자에게는(久乃見佛者=구내견불자)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 설하느니라.(爲說佛難値=위설불난치)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bar03_dot3x3_red.gif
 
법화경(法華經)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1-12-03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比丘)에게 이르시되, 오는 세상에서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을 듣고 깨끗한 마음으로 믿고 공경(恭敬)하여 의혹(疑惑)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에 떨어지지 않고 시방(十方) 부처님 앞에 나며, 태어난 곳에서 항상 이 경을 들으리라. 만일 사람으로 태어나면 가장 묘(妙)한 낙(樂)을 받을 것이고 만일 부처님 앞에 나면 연꽃 위에 화(化)하여 나리라.------
*구원실성 석가세존께서는,---후세에 선남자 선여인이 묘법화경제바달다품,  지금 내가 이야기한 제바달다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깨끗한 마음으로 삼세인연(三世因緣)을 믿으며 공경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는  *삼악도, 지옥ㆍ아귀ㆍ 축생ㆍ따위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항상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 앞에 태어나서 언제나 *일불승(一佛乘) 법화경을 듣게 될 것이다. 또 만약 그가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그는 더할 수 없이 훌륭한 묘한 즐거움을 받을 것이다. 만약 부처님 앞에 태어난다면, 연꽃 속에서 나올 것이다.--
<깨끗한 마음으로 믿는다>, 조금도 대가성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어떠한 바램이 있어서, 이용할 생각으로 믿는 것은 깨끗한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법화경을 듣더라도, 또는 법화경을 설하더라도, 그 듣거나 설하거나 함으로서 자기에게 이로운 무엇을 얻고자 하는 생각이 섞여 있으면, 그것은 결코 깨끗한 마음이 아닙니다.  마음에 딴 생각이 섞여 있으면, 그것은 깨끗한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님은 물론, 아무런 공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혹(疑惑)을 내지 아니한다>, 신앙적으로 소중한 덕목입니다. 무릇 의혹이 생기는 이유는 조그만 자기의 마음으로 아주 큰 것을 헤아리기 때문입니다. 그럴리가 없다는 의혹이 생기는 것은, 자기의 능력으로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경험이 적은 사람은 남의 말을 좀처럼 믿지 않고 오히려 그럴리가 없다고 합니다. 예컨대 법화경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 *구원실성론을 들으면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합니다. 42년 방편의 가르치심만을 공부한 사람은 아미타불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더 오래 전에 성불하였다고 합니다.  여래수량품 자아게에서, * <내가 성불로부터 지내 온 모든 겁수는 한량 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라. 항상 법을 설하여 수없는 억만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게 함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옴이 한량 없는 겁이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는 고로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냄이나, 그러나 실은 멸도하지 않고 항상 이에 머물러 법을 설함이니라.---고 하시는 구원실성,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명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무량수불 아미타불의 수명론에만 머무릅니다.
 
분명코아미타불수명론은 단 한 분,  대정각자(大正覺者) 석가세존의 입으로부터 탄생되었습니다. 아상재차 사바세계(我常在此 娑婆世界), 곧--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다--고 선언하신 본불 본체 석가세존의 *무시무종(無始無終) 수명론을 모르기 때문에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법화경에 대해 의혹을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묘한 낙(樂)>이란, 아름다운 빛을 본다든가ㆍ고운 소리를 듣는다든가ㆍ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가 하는 즐거움은 되풀이하면 싫증이 나지마는 진정한 *도(道)를 구한다든가 *교(敎)를 배운다든가 하는 즐거움은 되풀이 하면 할수록 그 즐거움이 깊어집니다. 그것이 <묘한 낙>입니다.
<연꽃 위에 화(化)하여 나리라>란, 연꽃이라는 것은 뿌리는 진흙 속에 박혀있고 그 진흙 위로 뻗어 나와서 아름답게 피어 향기로운 냄새를 풍깁니다.  부처님이나 보살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연꽃에 비유하였습니다.
 
연꽃에서 나온다는 것은 설혹 범부라 하더라도 부처님이나, 보살의 경지에 가까이 이를 수 있는 성질을 갖출 수 있다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시면서 제바달다의 관한 전생담을 마치쳤습니다.
-----이 때 하방(下方) *다보세존(多寶世尊)을 따르는 보살은 이름이 지적(智積)이라. 다보불(多寶佛)께 말씀하고 본국토(本國土)로 돌아가려 하거늘, 석가모니불께서 지적(智積)에게 이르시되, 선남자(善男者)야, 잠깐 기다리라. 여기에 보살(菩薩)이 있으되 이름이 * 문수사리(文殊師利)라, 서로 만나 묘법(妙法)을 논설(論說)하고 가히 본토(本土)로 돌아갈지니라.---
 
----이때 다보여래를 따라 온 지적(智積) 보살이 다보여래께 <석가여래께서 하신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사바세계에 나타나신 목적은 끝나셨으니 그만 본토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리니까,  
그 때 석가여래께서는 지적보살에게 이르시기를, <잠시 기다려라. 내게 문수사리라는 보살이 있다. 문수사리와 만나서 일불승 법화경 가르치심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나서 본위치로 돌아가도록하라>-----
 
석가세존께서 어째서 기다리라고 하셨는가 하면, 아직 *오탁악세 말법세상에서 교(敎)를 펴라는 부촉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탁악세의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자기 중심으로 되어 있는 험악한 세상, *투쟁견고 백법은몰 시대의 사람들이므로, 그러한 말세에서 법화경을 펴려는 결심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부처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자라도 성불할 수 있음을 분명히 말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석가세존께서는 지적보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부터는 문수보살의 적극적인 교화 *인연과보용왕성불하는 이야기입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보살수행을 쌓기만 하면 *견사의 미혹을 제거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보살수행을 가르쳐주는 대승교를 배워서 *보살의 (道)를 실행하면, 마침내 부처님과 같이 된다고 법화경 *방편품을 비롯하여 법화경 전편을 통해 누누히 말씀하십니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보살수행을 쌓으면, 역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축생 용녀의 성불로써 뒤를 이어오는 모든 중생에게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 때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크기가 차륜(車輪)과 같은 천엽(千葉) 연꽃에 앉고, 함께 온 보살도 또한 보배연꽃에 앉아 대해(大海)의 사가라(娑竭羅) 용궁(龍宮)으로부터 자연히 솟아나 허공중에 머물러 영축산(靈鷲山)으로 와서 연꽃에서 내려와 부처님 앞에 이르러 두면(頭面)으로 두 세존 발에 경례(敬禮)함이라. 경례를 마치고 지적보살(智積菩薩)의 처소(處所)로 가서 같이 서로 위문(慰問)하고 물러서 한쪽에 앉음이라. ------
 
--그 때 문수사리보살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들이 수레바퀴 만큼이나 큰 연꽃에 앉은 모습으로 바다속 사가라 용궁으로부터 솟아 올라와 영축산 허공 법화회상으로 왔습니다. 문수사리보살과 모든 보살들은 연꽃에서 내려와 두 분 부처님,  석가여래다보여래께  머리 숙여 정성스럽게 합장 예배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수사리보살 지적보살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안부를 나눈 다음에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용궁으로부터 자연히 솟아나 허공중에 머물다>, 적어도 생명이 있는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것을 허공 회상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를 들을 수 있고 를 들으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허공에 머무는 것으로 상징화 한 것입니다.  천상계에서 온 자도 구원 받고, 바다 속에서 온 자도 모두 구원 받는다는 것을 형상화 한  circle03_darkgreen.gif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慈悲),  <큰 하나> 본체 권능입니다.
-----지적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묻되, 인자(仁者)께서 용궁으로 가서 교화(敎化)한 중생의 수는 그 얼마나 되나이까. 문수사리 말하되, 그 수는 한량이 없어 가히 헤아리지 못하리니, 입으로 말 할 바가 아니며 마음으로 측량치 못하겠나이다. 잠시 기다리면 스스로 마땅히 증명하여 알리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수없는 보살이 보배의 연꽃에 앉아 바다로부터 솟아나 영축산에 나와 허공(虛空)에 머물러 있음이라. 이 모든 보살은 다 문수사리(文殊師利)의 교화(敎化) 제도(濟度)한 바니, 보살의 행을 갖추고 다 같이 육바라밀을 논설하며, 본래가 성문이었던 사람은 허공중에 있어 성문의 행을 설하고 지금 대승(大乘)의 *공(空)의 뜻을 닦고 행함이라. 문수사리가 지적(智積)에게 일러 말씀하되, 바다에서 교화한 그 일이 이와 같나이다.------
 
--지적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보살은 용궁에서 敎를 설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교화했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문수사리보살이, <그 수는 한량이 없어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나는 를 설했지마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행했는지는 나도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 문수사리보살의 말이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수없이 많은 보살들이 아름다운 연꽃을 타고 깊은 바다에서 솟아나와 영축산 허공에 머물렀습니다. 이 보살들은문수사리보살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설해서 화도용궁보살들입니다. 용궁보살들은 모두 보살도를 갖추고 육바라밀을 해설하고, 성문중 공중에서 성문의 수행을 설하고, 소승교로 만족하던 무리는 문수보살의 감화를 받아서 모두  circle03_darkgreen.gif 대승교에 들어와 평등한 이치를 수행하게 되었다고 문수보살지적보살에게 답변했습니다.
<바다로부터 솟아나 영축산에 나와 허공(虛空)에 머물러 있음이라>란,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이, 다 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의해 모조리 구원 받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물속에서 공중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어떠한 환경에 있더라도 한번 성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면 반드시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소승의 敎대승의 敎에 들어가는 사다리입니다. 보통의 범부는 소승를 듣고 자기 마음의 욕심을 제거한다든가, 마음의 미혹을 없앤다든가 하면, <이만하면 충분하다이만큼 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한 정도라도 물론 좋은 것이지마는 그쯤 안 사람이면 대승의 敎가 더욱 훌륭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제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구나. 그렇다면 다시 더 노력해 보아야지> 하는 마음이 됩니다. 문수사리보살의 설하는 를 듣고 훌륭한 덕을 갖추게 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러면 나도 대승의 敎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는 그런 뜻의 말씀입니다.
<대승(大乘)의 공(空)의 뜻을 닦고 행함이라>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이른 바 법의 실상(實相),  *십여시를 아는 힘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空)>은 평등이라는 뜻입니다마는, 불교에서 평등은 단순한 평등이 아니라, 차별이 엄연히 있는 가운데 그것을 꿰뚫고 있는 평등의 이치를 말합니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지마는 다같이 불성(佛性)이라는 공통분모를 갖추었으므로 수행 여하에 따라서 마침내 부처님이 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결코 차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그 차별 가운데를 일관해 있는 평등의 이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지적보살(智積菩薩)이 게송(偈頌)으로 찬탄하되, 큰 지혜(智慧)와 덕(德)이 용건(勇健)하사 한량 없는 중생을 교화 제도 하셨도다. 지금 이 모든 대회와 나는 이미 다 보았노라. 실상(實相=모든 사물 가운데 존재하는 진실의 이치)의 뜻을 연창(演暢)하시고 일승(一乘)의 법(法)을 열어서 널리 모든 중생을 인도하여 속히 보리(速成菩提)를 이루게 하셨나이다.---
 
그 때 지적보살은 게송으로 ---모든 것의 진실의 뜻을 잘 아시고 모든 사람을 부처님의 지혜를 활용하여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 누구든지 부처님이 되는 길을 알 수 있도록 밝혀 주어서 모두가 곧바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고 문수사리보살을 극구 찬탄하였습니다.
<용건>이란, 용감하고 굳세다는 말입니다. *천태대사께서는 이것을 불권(不倦)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말 용감하다는 것은 싫증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보다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강하거나 약하거나 한 것은 극히 사소한 일입니다. 증내지 않는 것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라면 언제까지도 싫증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싫증을 내기 쉽습니다. 조금만 힘이 들어도 곧 싫증이 나고, 조금만 오래 계속해도 곧 싫증이 납니다. 이 싫증 나는 것이 모든 일의 장애가 되므로 증내지 않는 것이 소중합니다.
<일승의 법>불승(佛乘),  모든 중생이 다같이 부처님이 되는 길을 여는 가르침입니다.
<속히 보리(速成菩提)>란, 그저 <빨리 깨달음을 얻는다>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길을 통하지 않고 오로지 법화경에 의지하여 성불,  똑바로 <길로> 라는 뜻입니다.
----문수사리(文殊師利) 말씀하되, 나는 바다 가운데서 오직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선설(宣說)하였나이다.---------
 
그 때 문수사리보살은, <나는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묘법화경,  석가세존께서 *방편이 아닌 진실의(眞實義)를 말씀하신 성불경 법화경을 설했을 뿐입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bar03_dot3x3_blue.gif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慈悲)    (5) → *(4)  → *(3)  → *(2)  → *(1)   불교성경-p56~p60
 
석가세존께서는,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대자대비 마음이시다.  이것은 여러 방면으로 모든 사람을 구제하시는 것이 크게 사랑하는 대자(大慈)의 마음이요, 남과 같이 병을 앓고 남과 더불어 괴로움을 같이 하여 괴로워하는 것이 크게 슬퍼하시는 대비(大悲)의 마음이시다.  마치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와 같이 잠깐이라도 생각을 떠나지 않고 중생을 보살피며 구원(救援)하여 이끌어 주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시다. 그러므로, < 너의 고뇌(苦惱)는 나의 고뇌요, 너의 안락(安樂)이 나의 안락이다>고 하여 한 생각, 한 찰나 사이라도 버리지 않음이 부처님의 마음이다. ----관무량 수경에서---
--부처님의 대비심(大悲心)사람에 의해서 일어나고, 이 대비심에 의지해서 믿는 마음인 신심(信心)이 일어나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마치 자기 자식에 의지해서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의 정에 의지해서 자식의 마음이 편안함을 얻는 것과 같다--유마경에서
그러나 사람들은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그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애착을 일으켜 고통을 받으며 *번뇌의 행동을 일으켜 괴로워 한다.그리하여 죄업의 큰 짐을 지고 헐떡거리며 길없는 속으로 들어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것이다.---능가경에서---
부처님의 자비금생 일생의 일이 아니라 다겁생의 일이라고 생각하라. 그것은 과거 오랜 아승지겁 영원한 옛날부터 내려왔으니, 중생이 나고 죽고 어둡고 어리석음을 거듭하여 온 그 처음으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부처님은 항상 중생 앞에 나타나사 중생들에게 가장 친한 모습을 보이시고 구제의 방편을 다하신다. ---법화경에서---
사캬족의 태자로 나시어 출가하고 고행을 닦고 도(道) 깨치고 설법하시다가 열반에 드심을 보이신 것도, 모두가 구제 방편*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과 중생의 번뇌가 한량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노력도 한이 없으며, 사람과 중생의 죄가 한량 없이 깊어 그 바닥이 보이지 않으므로 부처님의 자비도 그 바닥을 헤아릴 수가 없이 무량합니다.---법화경에서--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그 수행의 처음에 네 가지 큰 소원을 일으켰다.   첫째 맹세코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이요, 둘째 맹세코 모든 번뇌를 끊겠다는 것이요, 셋째 맹세코 모든 진리를 배우겠다는 것이요. 넷째맹세코 이 보다 더함 없는 부처님의 도를 얻겠다는 것이었다. ---심지관경에서---
부처님 수행의 기초가 이 네 가지 서원에 있다는 것은 이대로 부처님의 마음이 사람과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대자대비한 마음인 것을 나투어 보이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자식과 같이 여기는 부처님의 큰 자비는  평등한  한 맛(一味)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성질에 따라서 구제하는 방법에는 차별이 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동일(同一)한 것이지만, 비를 맞는 초목에 따라 제가끔 다른 은혜를 받는 것과 같다.  이나 이나 골짜기의 여러 가지 풀과 나무들 위에 비가 내리면, 각각 그 성질과 종류에 따라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동일한 비를 맞고 자라는 풀과 나무라도 역시 제각기 차별이 있다.
부처님의 대비심은 저 비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동일하게 내리지만, 중생과 중생의 신심에 따라 그 구제하는 손길에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유하면, 부모는 많은 자식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 사랑하는 마음에 차별이 있을 수 없지만, 그 가운데 병든 자식이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그 병든 자식에게 더욱 많이 끌리게 된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자식과 같이 평등하게 사랑하시지만,  죄많은 자와 업보가 무거운 자와 어리석고 못난 자를 깊은  사랑으로써 불쌍히 여기고 더욱 더 건져 주려고 하신다.
 또 비유를 들면, 해가 동쪽 하늘에 솟아올라 어둠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비치고 키워 주는 것과 같이, 부처님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나셔서 악(惡)한 것을 없애고 착한 것을 키워주며 밝은 빛을 주고 어두운 것을 물리치며 깨달음의 세계로 이르게 하여 주신다. ---법화경에서--
 그러므로 부처님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요, 자식을 불쌍하게 여기는 어머니시다. 부처님은 어둡고 괴로운 세상에서 허덕이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구제하고자 힘쓰신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모두 부처님의 아들로서 이 대자대비부처님의 마음을 우러러 찬탄하지 않으면 안된다.---법화경에서--
 
bar03_dot3x3_blue.gif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대승교(大乘敎)     circle03_darkgreen.gif 대승경(大乘經)
 
대승교(大乘敎)란, 성불을 전제하고 원대한 큰 이상을 설파한 교법을 말합니다. 예컨대 법화경화엄경을 말합니다.
대승경(大乘經)이란, 최고의 깨달음, 성불하는 큰 이상에 이르는 도법을 밝힌 경전을 모두 총칭한 것입니다. 예컨대 화엄경법화경반야경무량수경--등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