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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같이 하여 옴이 한량 없는 겁이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는 고로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냄이나, 그러나 실은 멸도하지 않고 항상 이에 머물러 법을 설함이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법화경(法華經) 약초유품(藥草喩品)-1-05-05
 
--------나는 일체를 관하되, 널리 다 평등하여 너라 하는 마음ㆍ나라 하는 마음ㆍ사랑하는 마음ㆍ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나는 탐(貪)내고 착(著)함이 없고, 또한 한계의 거리낌이 없노라. 항상 일체를 위해 법을 평등히 설하되, 한 사람을 위함과 같이 하며, 대중이 많을지라도 또한 그러함이니라. 항상 법만을 설하고 일찍이 다른 일은 하지 않으며, 가고 오고 앉고 서매 끝까지 피곤과 싫증을 내지 아니하여 세간에 충족케 함이 비가 널리 윤택(潤澤)하게 함과 같으니라. 귀하거나천하거나높거나낮거나계(戒)를 가졌거나계를 깨트렸거나위의(威儀)가 구족하거나구족하지 못하거나정견(正見)이거나사견(邪見)이거나근기가 날카롭거나근기가 둔(鈍)하거나평등하게 법비(法雨)를 내려 조금도 게으름이 없느니라.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나는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한 *불지견으로 일체의 인간을 다 평등하게 본다. 나는 누구나 다 사랑하고 구원해 주고자 한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는 차별하는 마음이 없다. 착한 사람이건 악한 사람이건미워하지도 않거니와 편들어주지도 않는다. *지혜가 있다해서 친근하거나 지혜가 없다 해서 멀리하지도 않는다. 결국은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곧 다같이 부처님과 같이 되게 해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는 탐(貪)내고 착(著)함이 없다>란, 남에게 교(敎)를 설할 때는, 자기가 아는 것만큼 다른 사람도 알게 해주리라는 생각으로 설해야 할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모처럼 자기가 애써서 배운 것이니까, 함부로 가르쳐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오랫 동안 고생해서 연구한 것을 그렇게 간단히 말해버린다는 것은 아깝다권위(權威)를 세워서 조금씩 가르쳐 주자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탐착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결코 그런 일이 없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탐착이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어렵게 아신 것이라도 되도록 빨리, 잘 알도록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이 불교에서 말하는 *대자대비입니다.
<한 한계(限界)의 거리낌이 없다>, 남녀노소부귀빈천의 구별(區別)이나 제한(制限)을 두지 않고, *일체중생구제론 관점에서 일체의 인간을 위해 평등하게 법을 설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을 위함과 같이 하며, 대중이 많을지라도 마찬가지다>란, 상대가 한 사람이면 열심히 하지마는, 상대가 많으면 적당히 해 넘기려는 마음이 범부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법을 설하시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 설해 주시듯이, 전력을 다해 설해 주십니다.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잡습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법구 하나를 설하시더라도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혼신(渾身)의 정성을 다하여 설하십니다.
<항상 법만을 설하고 일찍이 다른 일은 하지 않으며,>, 보편적으로 사람은 를 설할 때, 자칫 딴 생각을 합니다. 딴 생각이란, 가령 <이만큼 열심히 설해주었으니 고맙게 생각하겠지>한다든가, 심하면 <이만큼 가르쳐 주었으니, 얼마나 사례를 할까>하는 따위의 생각을 합니다.
분명코 딴 생각을 품으면 진정으로 를 설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를 설하실 때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것밖에 다른 생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이른바  *삼덕유연(三德有緣), <(主)(師)(親)>- 이 세가지를 갖춘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떤 곳을 가실 때나ㆍ오실 때나ㆍ앉아 계실 때나ㆍ서 계실 때나ㆍ언제나 피로하시거나 싫증내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를 주십니다. 마치 하늘에서 비가 고루 내려 모든 만물을 적시는 것과 같이, 존귀한 사람이나ㆍ비천한 사람이나ㆍ가난한 사람이나ㆍ부한 사람이나ㆍ웃 사람이나ㆍ아랫 사람이나ㆍ계(戒)를 굳게 지키는 사람이나ㆍ를 배반하는 사람이나ㆍ혹은 위의가 갖추어진 사람이나ㆍ그렇지 못한 사람이나ㆍ모든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나ㆍ  그릇 보는 사람이나ㆍ혹은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이나ㆍ둔한 사람이나ㆍ다같이 법우(法雨)를 내리시여 일체중생의 구제의 길을 열어 주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하나 되기>가 돼야만 바르게 가 전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일체 중생이 나의 법을 듣는 자는 힘에 따라 받아서 모든 경지에 머무르니라. 혹은 사람*전륜성왕(轉輪聖王)천상계(天上界)의 *제석천(帝釋天)범천(梵天)의 모든 왕(王)이 되면 이는 *작은 약초(藥草)이니라. *무루(無漏)의 법을 알아서 능히 열반을 얻고 *육신통을 일으키며 *삼명(三明)을 얻고 홀로 산이나 숲속에서 항상 선정(禪定)을 행하여 연각(緣覺)을 증득(證得)하면 이는 *중품(中品)의 약초(藥草)이니라. 부처님의 경지를 구하여 내가 마땅히 성불하리라 하고 부지런히 선정(禪定) 정진(精進)을 행하면 이는 * 상품의 약초(藥草)이니라. -----
 
---부처님 법을 듣는 모든 사람은 각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혜가 아직 충분하지 못한 자는 조금밖에 깨닫지 못할 것이요, 지혜 있는 자는 많이 깨달아서 각기 다른 경지에 머무를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수행을 하여 아직은 완전히 미혹을 없애지 못했더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공경 받는 정도에 이르면 그런 사람은 마치 작은 약초(小藥草)와 같은 것이다. 다시 더 나아가 무루(無漏)의 법, 미혹 번뇌를 떠나 *삼명(三明)의 지혜로  세상의 무상(無常)을 깨닫는 정도에 이른 사람은 중품의 약초라 할 것이다. 다시 더 나아가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를 것을 바라고 자기가 나중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부지런히 정진과 선정을 하면 가장 좋은 상품의 약초라고 할 것이다.---
 
------또 모든 불자(佛子)가 마음을 불도(佛道)에만 두어 항상  *자비(慈悲)를 행하며 스스로 성불(成佛)할 것을 알고 결정하여 의심이 없으면 이는 *작은 나무라. 신통에 편안히 머물러서 불퇴(不退)의 법문을 설하며 한량 없는 억백천(億百千)의 중생을 제도하는 이와 같은 보살은 *큰 나무니라.------
 
----다시 그보다 더 위인 사람은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참마음을 잘 알고 그 가르치심을 배워서 다른 일에는 마음쓰지 않고, 항상 자비를 행하여 혼자 깨달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구원하며 모든 사람의 번뇌를 제거해 주는 거룩한 행동을 실행하는 사람을 이른바 작은 나무라 이른다. 다시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을 갖추고, 어떤 일이 있어도 조금도 느즈러지는 일이 없이 부지런히 를 설해서, 한없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그들의 *견사의 미혹을 없애주고 구원해 줄 수 있는 불퇴의 바퀴(不退輪)를 굴리는 보살은 큰 나무와 같다.   --
 
---부처님의 평등의 말씀은 한 맛의 비와 같음이라. 중생이 성품에 따라 받아 가짐이 같지 아니함이, 저 초목의 받는 바가 각기 다름과 같음이라. 부처님이 이 비유와 방편으로 열어 보이시며, 가지가지 말씀으로 한 법을 설하심은, *부처님의 지혜에는 바다의 한 방울 물과 같으니라. --
 
----모든 부처님의 교(敎)는 평등해서 한 맛의 빗물과 같은 것이지마는, 중생의 성질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는 바는 같지 않다. 마치 저 풀이나 나무가 각기 그 분(分)에 따라, 빗물을 받아 들이는 정도가 각각 다름과 같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삼주설법으로 모든 사람의 *견사의 미혹을 끊어주시고 진실의 도(道)를 보여 주시기 위해, 여러 가지 말씀으로 하나의 법, 곧 일체 중생이 다 부처님이 된다는 를 설하신다. 그 설하신 바는 부처님의 지혜에 있어서 큰 바다의 한 방울 물과 같은 것이다. ---
 
<부처님의 지혜에는 바다의 한 방울 물과 같다>라고 하시는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지혜는 광대무변한 절대의 것이다 하는 뜻입니다. 또하나는 원래 말이라는 것은 한도가 있는 것으로서 아무리 말을 다 한다 해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천만권의 경전을 읽어도, 다만 그 문구만을 알고 있어서는 그것은 다만 유식(有識)하다고 할 수 있을 뿐, 신앙은 아닙니다.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법화경 사상,  글이나 말로는 다하지 못하는 깊은 뜻을 구하겠다고 마음을 일으켜야만 믿음도 깨달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緣起)가 소중합니다. 연기의 법(法)법화신앙의 관건입니다.
 
경전을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경전은 부처님의 진실한 깨달음을 아는 손잡이나 단서에 불과할 뿐이며, *경전으로 방향을 제시 받은 다음에는 유식(唯識), 곧 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실행하고 참회해서 그 결과로서 마침내 진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옛날부터 덕이 높고 행동이 훌륭한 사람은 다만 책을 많이 읽거나, 또는 문구의 해석을 익히기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체득(體得)하고 깊이 음미한 사람입니다.
 
석가여래께서는 여러 가지 일을 많이 듣고ㆍ많이 보고ㆍ체득하여 깨달아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시면서 비유하시기를,--숟갈로 음식을 나르는 것과 같다. 숟갈은 찬 물이나 뜨거운 물이나ㆍ단 꿀이나ㆍ짠 소금이나ㆍ다 떠내지마는 숟갈 그 자체는 그 맛을 조금도 모른다. 뜨겁고 찬 것을 느끼지 못한다. 너희들은 숟갈과 같은 인간이 되지 말라, 자기가 스스로 맛 보고 참회하고 수행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진실설 *일불승(一佛乘) 법화경을 배우되, 말이나 글 이상의 것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글이나 말로 할 수 없는 표현난기(表現難記)의 법화경*문저비침(文底秘沈)법화경을 잡아서 찰나에 *구원실성론올 인 하라는 것입니다.
 
   
 
                           연기(緣起) (法) --유식(唯識) * ② *①      불교성경-p140~p147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모든 것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것은 이 마음으로 보는 바의 불과하다. 이런 것을 깨닫고 *망상(妄想)을 떠나면 번거로운 일이 아주 없어지고 말 것이다.----능가경에서
 
망상이라는 허망한 경계는 필경 어리석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망상은 마치 환술장이가 교묘하게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내놓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삶ㆍ죽음ㆍ어리석음ㆍ깨닫는 것 등을 보는 것도 다 환술장이가 만들어낸 인형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중생은 인형(人形)의 출입함을 보고 (生)과(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능가경에서
 
사람의 마음그 활용에 의하여 <마음(心)의지(意志)의식(意識)>으로 나눈다. 의식(意識)이란, 보고ㆍ듣고ㆍ냄새 맡고ㆍ맛보고ㆍ닿고ㆍ생각하여 경계를 인식하는 작용이다.  의지, 의식의 작용하는 바를 안으로 생각하는 작용이다. 마음이란, 그 의식과 의지의 두 가지 작용의 근본이 되고, 또 모든 경험(經驗)을 그 가운데 거두어 두는 것이다.----능가경에서
 
(意識) 그의 경계가 본래부터 자기 마음으로부터 나타난 것임을 알지 못하고, 마음 밖의 경계라고 인식(認識)한다,   이것은 처음을 알 수 없는 먼 옛날로부터 깊이 어둡고 어리석게 숨어 들어 있기에 물질과 경계에 *집착을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意)라고 하는 것은 내부(內部)의 마음인 심(心)나(我)라고 인정하고 집착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안을 향하여 나(我)라는 것을 집착하고 있다. 그래서 (識) (意)도 마음의 한 작용임에 지나지 아니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능가경에서
 
마음이란 심(心)과ㆍ의(意)와ㆍ식(識) 작용근본으로서 그 가운데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감추어 그것을 내용으로 하고, 다시 의(意)식(識)으로써 작용해 내는 것이다. ----능가경에서
 
그 마음은 흐르는 물이 잠깐도 머물지 않는 것과 같이 천천히 움직여 그칠 때가 없다. 고요한 바다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는 것과 같이, 마음의 바다에도 *업보(業報)의 바람이 불어 오면, 있고ㆍ없고ㆍ착하고ㆍ악한 갖가지 어리석고 망녕 된 파도가 일어난다. 업보의 바람이 그쳐서 망념(妄念) 파도가 가라앉으면 비로소 마음의 바다도 고요하게 된다.----능가경에서
 
 이 몸인 육체와 눈앞에 보이는 경계도 모든 것이 다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이 마음으로부터 인식(認識)하는 주관(主觀)과 인식되어지는 객관(客觀)등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경계의 모든 것은 자기의 마음을 떠나서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나와 나의 것이란 본래부터 없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 다만 먼 옛날부터 *집착의 습관이 물들어 여러 가지 세계를 보게 되는 것 뿐이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물건과ㆍ여러 가지 말과ㆍ여러 가지 사건과ㆍ이 몸과ㆍ보배와ㆍ또 내가 사는 주소(住所)도 다 나의 분별 생각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을 일으킨데 따라서 나타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물들어 더렵혀 있는 어리석고 망녕된 견해를 뒤집어 버리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만물이 다 내 마음의 그림자인 줄 알라, 그림자에 속지 않고 그림자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능가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깨달음(悟道)이란, 이 어리석고 망녕된 경계를 헤아리는 의식(意識)을 (滅)해 없애는 것에 불과하다.---능가경에서--
 
이와 같이 어리석고 망녕된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도 이 마음의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 도리를 알아서 헤아리는 의식(意識)을 떠난 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에. *도(道)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곳이라도 그대로가 깨끗한 세계요, 사람들이 구하는 곳은 그대로가 부처님의 나라다. ----유마경에서
 
래부터 부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 중생을 불쌍히 여겨 세워진 것이다. 마치 집(家屋)을 주추(주춧-)에 세운 것과 같이 마음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중생이 머무르는 곳 그대로가 부처님의 나라다. ---유마경에서
 
그래서 부처님의 나라를 세운 것은 곧은 마음이요, 이 곧은 마음은 또 동시에 깊은 마음이요ㆍ(道)에 부합한 마음이요ㆍ베푸는 마음이요ㆍ*계행(戒行)을 지키는 마음이요ㆍ정진(精進)하는 마음이요ㆍ고요한 마음이요ㆍ지혜의 마음이요ㆍ자비의 마음이다------유마경에서-.
 
또 즉시 *방편을 돌려서 중생에게 를 얻게 하는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생각하고 깨끗한 세계를 만들려고 생각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음이 깨끗하면 그 머무르는 곳도 깨끗해지는 것이다. 만일 마음이 청정하여서 머무르는 곳이 청정해지면 내가 사는 세계도 부처님의 나라인 것이다. --유마경에서-.
 
그러면 왜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꽉 차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것은 맹인(盲人)이 해와 달을 보지 못하면서 해와 달이 밝지 않다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어두워 바로 보는 눈을 갖지 못하였으므로, 국토의 깨끗함을 볼수가 없는 것이다. 깨달음의 지혜를 얻어서 깨끗하고 평등한 마음을 갖게 되면, 이 세상도 그대로 *정토와 같이 깨끗함을 알게 될 것이다.--유마경에서-
 
 마음의 근본 성품은 불가사의하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능히 보아 알 것이다. 일체 중생의 * 아뢰야식은 본래 원만하고 청정한 성질을 가졌으므로 세속을 넘어선 *열반과 같은 것이라 보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달이 여러 나라에 나타나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일그러지고 찬(盈)것을 보지마는 달 자체는 일찌기 더 늘거나 덜함이 없는 것과 같이, 아뢰야식도 널리 일체 중생계(衆生界)에 나타나서 그 성품이 항상 원만하고 결백하고 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지마는, 지혜 없는 사람들은 망녕되이 집착을 한다. 만일 바르게 깨달으면 번뇌 없음을 얻을 것이다. -----대승밀엄경에서--
 
마치 달이 구름 속에 있더라도 본성은 항상 푸르고 밝아 맑고 깨끗함과 같이, 장식(藏識=아뢰야식) 전식(轉識=드러나 작용하는 식. 아뢰야식 이외의 일곱가지 식) 경계의 *습기(習氣=습관성) 속에서도 항상 청정하다. 또한 마치 냇물에 있는 나무가 흐르는 물을 따라 떠내려가지마는 나무와 물은 생긴 모습이 각각 다른 것과 같이, 장식(藏識)도 그러하여 비록 모든 식(識)의 습기와 항상 함께 하지만 같이 흔들리지 않는다.-----대승밀엄경에서--
 
아뢰야식 항상 모든 더럽고 깨끗한 일의 의지가 되며, 모든 성인이 진리를 깨달은 즐거움을 나누고   *삼매에 머무는 경계이며, 인천(人天)등의 여러 세계와 모든 부처님 나라가 다 그것을 원인으로 한다. 만일 이것을 통달해 깨달으면 곧 불도를 이룰 것이다. 일체 중생은 구족한 공덕이 있어서 위력이 자재하거나 또는 험난한 곳에 가더라도 아뢰야식은 항상 그 속에 있어서 의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중생의 모든 업(業)의 습기가 스스로 늘고 자라며, 또한 능히 나머지 칠식(七識)을 늘고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범부는 행위를 지어내 자아(自我)라고 집착한다.-----대승밀엄경에서--
 
(意) 물속에 있어 바람과 같이 속히 돈(轉)다. *의 바람은 불어서 모든 감각기관에 두루 있으므로 칠식(七識)이 동시에 물결같이 일어난다. 외도(外道)가 생각하고 말하는 승성(勝性)ㆍ미진(微塵)ㆍ자재(自在)ㆍ시(時) 등은 모두 이 청정한 아뢰야식이다.
아뢰야식은 먼저의 업력(先業力)에 의지하고, 또 애욕(愛欲)으로 윈인을 삼아서 세상의 모든 종류의 것을 성취하므로, 망녕되이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집착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식(識)의 체상(體相)은 미세하여 알기 어려우므로 진실을 보지 못하고 마음이 어둡고 어리석어서 깨닫지 못한 이는 감각기관과 대상과 마음에 애착을 내게 된다.------대승밀엄경에서--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하나 되기>가 되어야만 올바르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집니다. 남을 가르칠 때, 상대가 얼른 알아 듣지 못한다고 업신여긴다거나, 반대로 교(敎)를 구하는 편도 얼른 알 수 없다고 해서 낙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를 배우는 사람은 자기가 사려(思慮) 분별이 모자란다고 해서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고 업신여겨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편이나 배우는 편이나 항상 같은 마음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나면서부터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여가(餘暇)가 많은 사람은 여유 있게 천천히 생각하니까 잘 알고, 여가가 없는 사람은 별로 생각해 볼 시간이 없으므로 수월하게 알지 못한다는 그런 경우도 있지마는, 가르치는 편은 거기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배우는 편도 얼마간 노력해보고는 그것으로 잘 모르겠다고 해서 스스로 자기를 업신여기거나, 자학(自虐)해서도 안된다고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석가여래의 제자들 가운데는*사리불존자와 같은 근기가 몹시 날카롭고 지혜가 많은 사람도 있고, *주리반특같이 근기가 몹시 둔하고 매우 어리석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리반특어리석기로 이름이 난 사람이므로, 한 번에 두 가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은 주리반특은석가여래께서 많은 제자를 모아 놓고 를 설하시는 곳을 지나가다가, 자기도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어리석기로 이름난 사람이었지마는 부처님께서는 보시는 바가 있었던 모양으로 그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주리반특은 극히 둔한 사람이긴 했지마는, 석가여래께 귀의하는 마음은 지극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석가여래를 섬겨 마당을 쓴다거나 허드렛 일만 하고 있는 동안에 차차 마음이 맑아져서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분명코  성심(誠心)이 있기만하면 주리반특과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부처님의 참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반대로아무리 지혜가 있더라도, 지극한 성심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결국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사리불존자와 같은 지혜있는 사람도 믿음(信力)에 의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참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모른다고 *방편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이나ㆍ둔한 사람이나ㆍ영리한 사람이나ㆍ어리석은 사람이나ㆍ결코 차별하지 않고 를 설하셨습니다.   배우는 편에서는 그 점을 잘 생각해서 자기가 지혜롭다고 해서 뽑내도 안되고, 또는 어리석다고 해서 단념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 마음의 근본, 성심으로 를 구하는 마음이 있고, 그 근본되는 를 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부처님 문중에서 수행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