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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항상 중생이 (道)를 행하고 행치 아니함을 알아서 응하여 제도될 바를 따라 가지가지 법을 설함이니라.--------*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법화경(法華經) 약초유품(藥草喩品)-1-05-02
 
--------가섭아, 마땅히 알라. *여래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세상에 출현(出現)함은 큰 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큰 음성으로 세계의 천상계(天上界)와 인간계(人間界)와 아수라(阿修羅)에게 널리 펴는 것은, 저 큰 구름이 삼천대천국토(三千大千國土)를 두루 덮음과 같음이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이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시는 것은, 마치 큰 구름이 허공에서 일어남과 같은 것이다.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모든 부처님의 *사자후(獅子吼)는 널리 천상계ㆍ인간계ㆍ아수라계 까지도 다 가르쳐 구제하신다. 마치 저 큰 구름이 멀리 삼천대천 국토의 온 땅을 다 덮고 비를 내려 일체 만물을 *생성(生成)시키는 것과 같다.---
 
------대중 가운데서 이같이 외치되, 나는 이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佛)ㆍ세존(世尊)이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구제를 전제하고 세상에 출현하신다. 그리고 모든 대중에게 이르기를, <나는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 천인사ㆍ불ㆍ세존>이라고 스스로 *부처님의 십호를 밝히고 교(敎)를 설하신다. --
 
---제도 안된 자를 제도하고ㆍ알지 못한 자를 알게 하며ㆍ편안치 않은 자를 편안히 하고ㆍ*열반을 얻지 못한 자를 열반을 얻게 하며ㆍ차생(此生)과 후생(後生)을 실상(實相)대로 아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범부의 경지를 떠나서 깨달음으로 옮겨가지 못하는 사람을 제도하고ㆍ불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깨닫게 하고ㆍ부처님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주고ㆍ또한 눈앞의 현세의 일도 아시지마는 다가 올 후세의 일까지, 곧 * 모든 법의 실상(諸法實相) 십여시까지도 잘 알고 계신다.---.
 
<제도(濟度)>란, 변화가 많은 세상을 지나, 그 세상의 변화로 인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을 제도라 합니다. 세상에는 <(凡) (聖)><(迷) (悟)>의 구별이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범부(凡夫)미혹에 갇혀 있는 사람이고, 성인(聖人)미혹을 떠나 깨달음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미혹(迷惑)깨달음(悟)의 경계(境界)는 깨달음을 선택하였느냐 아니냐로 결정됩니다. 범부(凡夫)환경제어(制御)받는 사람이고, 성인(聖人)은 능히 환경제어하는 사람입니다. 환경에 제어 당하는 사람은 아직 *미혹해 있는 것입니다. 남이 존경하면 우쭐해지고ㆍ남이 나쁘게 말하면 겁을 먹고ㆍ더우면 맥이 풀리고ㆍ추우면 떨며ㆍ이익이 나면 사치해지고ㆍ손해를 보면 걷어치워 버립니다.
그와 같이 주위 환경 여하에 따라 항상 변하는 사람범부입니다. 반대로 스스로에게 내재된 *불성믿고 능히 환경을 제어하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도 행복합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상당한 일을 하고, 부자가 되면 그만큼 보람있는 일을 하며 언제나 스스로의 환경을 제어해 가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미혹과 깨달음과구별은 환경을 제어하느냐 제어를 받느냐로 정해집니다.   환경에 제어당하는 범부의 경지에서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성인의 경지로 옮겨가는 것<제도>입니다. 곧    불교의 근본교리를 배우면 그 *과보로  마음이 행복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알지 못한 자>란, 불교의 기초교리라고 하는 삼법인(三法印) 하나라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대강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마는, 마음 깊이 깨닫고 체득한다는 것은 쉽사리 되는 일이 아니므로, 여러 가지 미혹이 생깁니다. 이 미혹(迷惑)이 어째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바라보면, 그것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迷惑을 하나하나 없애 나갈 수 있게 된 때가, 곧 알 게 된 때입니다.   안다는 것미혹(迷惑)을 없이 한다는 것과는 같은 것입니다. 자기의 미혹(迷惑)이 어째서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없애지 못하는 것이요, 알기만 하면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마치 병의 원인을 알면 약을 먹고 고칠 수 있지마는 무슨 병인지 모르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르므로, 병이 낫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 곧 마음의 의혹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쳐 일깨워서, 미혹(迷惑)을 제거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편안치 않은 자>란,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직 서지 않은 사람입니다. 마음의 미혹(迷惑)이 없어졌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편안히 머물면서, 이만하면 능히 부처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용이한 일이 아니므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다시 깊은 *일승교(一乘敎)를 주어서 스스로 *참회하게 하고 자기가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 바로 나아가면 반드시 부처님 경지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열반(涅槃)을 얻지 못한 자>란, 아직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곧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교(敎)를 설하시는 목적입니다.
 
----나는 일체를 아는 자이며(一切知者)ㆍ일체를 보는 자이며(一切見者)ㆍ*(道)를 아는 자이며(知道者)ㆍ(道)를 여는 자이며(開道者)ㆍ(道)를 설하는 자(說道者)이니라.--------
 
---- 나는 일체의 지자(知者),  모든 사물을 철저하게 알고 있고, 일체의 견자(見者),   일체의 사물을 분명히 구명(究明)하는 이 있다. 그리고 지도자(知道者),   진실의 도(眞實道)를 알고 있고, 또한 내가 도(道)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를 펴서 의 길로 들어오게 하는 개도자(開道者)이고, 바른 를 설하는 설도자(說道者)이다.--
 
도(道)를 아는 자ㆍ도(道)를 여는 자ㆍ도(道)를 설하는 자라는 것은, 몸(身)입(口)뜻(意)삼업(三業)을 말합니다. 즉 삼업을 다 갖추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도(道)를 안다는 지도(知道) (意),  마음의 도(道)를 알고ㆍ도(道)를 연다는 개도(開道)몸(身)으로서 도(道)를 열고ㆍ 도(道)를 설한다는 설도입(口)으로써 도(道)를 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매자의 비원으로 모든 사람을 *인도(引導)하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몸으로 행하시는 그 하나 하나의 일이, 다 모든 사람의 본보기가 되므로 입으로 설하시는 도(道)는 다 거룩한 가르침이니까, 모든 중생은 부처님을 본받아서 몸(身)입(口)뜻(意)삼업(三業)을 삼위일체(三位一體)하여 실행할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흔히 불언실행(不言實行),  말보다는 실행이 좋다고도 하지마는,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못하니까 실행하고 입으로 설하여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석가여래께서는 열반경을 통해---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자는 가장 하등(下等)의 인간이다. 말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다음으로 하등의 인간이다. 행하고 말하지 않는 자는 그보다 위이고, 가장 위는 행하고 또한 말하는 사람이다.--네가지로 나누어 말씀하신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매자의 비원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너희들 천상ㆍ인간ㆍ아수라들이 다 이곳에 온 것은 법문을 듣기 위함이니라. 그 때 수없는 천만억 중생들이 *부처님 처소(處所)에 이르러 법문을 듣는지라. 여래는 이 때 이 중생들의 모든 근기가 날카롭고 둔하고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관하여 그의 감당할 바를 따라 위하여 법을 설하되, 가지가지로 한량 없이 하여 다 환희케 하고 선리(善利)를 얻도록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천상계ㆍ인간계ㆍ아수라계가 법을 듣기 위해 오면 모두 적당한 敎를 주신다. 여래 중생의 *근기가 각각 달라서, 를 이해하는 힘이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ㆍ둔한 사람도 있으며ㆍ또 정진 곧 열심히 정신을 모아 수행하는 사람도 있고ㆍ해태(懈怠) , 마음이 항상 산란하고 집중력이 없으며 수행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도 있음을 아신다. 그러한 사람들을 잘 분별하시어 그 사람이 능히 감당할만하게, 그의 힘에 알맞게 법을 설하신다. 가지가지로 듣는 사람에 따라 얕게도깊게도높게도낮게도설하셔서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기뻐하고, 또 다 선리(善利),  그 를 실행해서 진정한 행복을 얻게 하신다---
 
----모든 중생이 이 법문(法門)을 들으면 현세(現世)에서 편안하고 후생(後生)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 도(道)로써 낙(樂)을 받고 또한 법문을 얻어 듣느니라. ---------
 
----모든 중생 부처님이 되는 것을 전제한 법화경(法華經)을 들으면 지금 세상에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고, 내생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 항상 법을 얻어 들을 수 있게 된다.--.
 
<현세에서 편안하다(現世安穩)>는 것은, 얕게 해석하여 세속에서 물질에 국한된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마음이 바른 와 일치해 있으면, 남이 보기에는 괴로운 환경 같아도, 그 사람에게는 편안한 안식처입니다.  환경을 제어할 수만 있으면,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행복합니다.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세에서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부처님의 敎를 믿는다면, 현재의 생활에서 편안함을 얻습니다. 생명은 영원한 것이므로, 현세에서 편안함을 얻었으면 그 *과보로 후세에서도 계속 행복합니다.
<후생에는 좋은 곳에 태어난다(後生善處)>는 것은 생명의 불멸(不滅)을 뜻합니다. 불멸하는 생명의 찰나가 이 세상에서의 생명입니다. 과거에서 미래 영겁토록 생명이 계속되므로 그 중간이 현세입니다. 현세에서 그릇 된 일을 하고서 후세에 행복하게 될 까닭이 없습니다. 인간이 죽는 것은 싫은 일이지마는, 그러나 다만 오래 사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오래 살아가는 동안에 에 의지하여  *견사의 미혹을 끊고 차차 부처님께 가까이 가게 되리라 하는 확신이 서야만, 비로소 오래 사는 것이 정말 가치 있고 최고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낙(樂)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물질적인 즐거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기쁨은 잠깐이며 인간의 참된 즐거움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道를 배워서, 그 를 실행하는 가운데 영혼이 즐거워하기 때문에 언제나 거룩한 부처님의 법을 듣고자 노력하는 것이 입니다.
<법을 얻어 듣는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자기가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법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설사 법을 들어도 법의 깊은 뜻을 모릅니다. 그릇된 해석을 하거나, 그릇된 생각에 빠져 있으면 법을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항상 깊이 *참회하고 마음이 밝아야만, 비로소 부처님의 敎를 듣고, 부처님의 마음*용입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법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미 법을 듣고는 모든 업장과 걸림을 여의고 모든 법 가운데 알맞는 힘으로 능히 점차 도(道)에 들게 되느니라. --
 
-- 부처님의 敎를 듣고 이해(理解)할 수 있으면, 모든 장애(障碍) 곧 迷惑을 없이 할 수 있다. 迷惑을 떠나 여러 가지 를 듣고 자기의 힘에 상당하게 가르침을 이해해서 마음으로 깊이 믿고 몸으로 행하고, 차차 깊이 불도(佛道)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저 구름이 일체의 초목이며 수풀이며 모든 약초에 비를 내리면, 각기 그 종류의 성품에 따라 흡족히 윤택(潤澤)을 입어 생장하느니라.---------
 
---마치 큰 비구름이 하늘 가득히 일어나 지상(地上)에 비를 내리면, 자연계, 일체의 나무와 풀과 모든 약초가 자라는 곳에 비를 내리면, 그 비에 의해 나무와 풀과 약초가 각기 그 성질, 그 종류에 알맞게 빗물을 받아서 각각 자라는 것과 같다.---
 
----  여래의 설법은 같은 상(相)이며 같은 맛이니, 이른 바    해탈상(解脫相)이며이상(離相)이며멸상(滅相)이니ㆍ마침내  *일체종지(一切種智)에 도달함이니라.-----
 
---부처님의 설법 부처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자대비한 마음의 지혜이기 때문에, 가르치심에 여러 가지 가 있을 수 없다. 라는 것은 요컨대 한 가지 뿐이므로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중생을 구제하는 대열에 들어가는 것이다---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마음에 새겨야 할 메시지입니다. 범부가 생사를 떠나 인생의 변화에 지배(支配) 당하지 않게 되면, 이번에는 인생을 가벼이 보는 버릇이 생깁니다. 세상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거나, 또는 인생의 득실(得失)에 얽매여 있는 자를 보면 어리석은 자이니 상대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기는 생사에서 떠나있더라도 세상에는 생사의 물결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을 불쌍히 보고 자비심을 내어 구제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 중생이 여래의 법을 듣고 혹은 가지며읽고외우며설한 바와 같이 닦아 행하나, 얻는 공덕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느니라.-------

 

---만약 중생이 부처님의 敎를 듣고 그것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믿는 마음을 그대로 계속해 가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생각하고 수행할 때, 우리의 삶에 접목(接木)시켜 실행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차 범부의 경지를 벗어나간다.--

 

초목이 언제 자라는지 보기만해서는 알 수 없지만 계속 자라고 있는 것과 같이, *오종법사를 실행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범부의 迷惑을 떠나 부처님 경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교리(根本敎理)-삼법인(三法印)--*②*①        불교성경-p113~p118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온갖 바뀌어 머뭄이 없고, 모두 허망하여 실체(實體)가 없으며, 오직 열반만이 안식처(安息處)이거늘, 이른 바 이 세 가지 진리를 *삼법인(三法印)이라 이른다.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거나 혹은 태어나지 않거나, 이 진리의 세계와 진리가 머무는 성품과 진리의 틀림 없는 성품(法決定性)은 영원 불변하지만, 온갖 것은 무상(無常)이요ㆍ온갖 것은 고(苦)요ㆍ온갖 사물은 실체(實體)가 없다. 모든 부처님은 이것을 면전에서 깨닫고 살펴 보셨다. 그래서 온갖 것은 무상하고ㆍ온갖 사물은 고요하고ㆍ온갖 사물은 실체가 없다고 설하시고, 주장하시고ㆍ열어 분별하시고ㆍ나타내신 것이다.-- 파리증지부에서
  
어느 때에 네 명의 바라문이 모두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서 선법을 수행하다가, 한 곳에 모여 이런 의논을 했습니다.
<목숨을 빼앗아 가는 자, 즉 무상의 귀신이 오는 데는 어떤 강자라도 어찌할 수 없으니, 우리가 각각 숨어서 무상의 귀신으로 하여금 올 데를 알지 못하게 하자>하고, 한 바라문은 공중으로 올라가 죽음을 면하려 하였으나 죽음을 면치 못해 공중에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둘째 바라문은 큰 바다 물밑으로 들어가 죽음을 면하려 하였으나 역시 거기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셋째 바라문은 죽음을 면하고자 수미산 속으로 들어갔으나 그도 거기서 죽었고, 넷째 바라문은 땅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면하려고 하였으나 그도 거기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불안(佛眼)으로 네 바라문이 각각 죽음을 피하려 하였으나 모두 함께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시고 즉시 게송으로 ---허공도 아니요바다도 아니며산과  돌 사이에 들어갈 것도 아니다. 어떠한 방향과 장소를 찾아가도 죽음을 면할 장소는 없나니,---하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여기 네 사람의 바라문이 한 곳에 모여 의논하다가 죽음을 면하려고 각각 도망쳤으나 죽음은 면치 못했다. 한 사람은 허공에 있었고ㆍ한 사람은 바다 속으로ㆍ한 사람은 산으로ㆍ한 사람은 땅속으로 들어갔으나 모두 함께 죽었다. 모든 비구여, 죽음을 면하려거든 마땅히 네 가지 진리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라 --증일 아함경에서
 
<어떤 것이 네 가지 가르침인가 ? 온갖 것이 무상하다는 것이 첫째 *진리(眞理)이니 마땅히 생각하여 수행하라. 온갖 것이 고(苦)라는 것이 둘째의 진리이니 마땅히 깊이 생각하라. 온갖 사물이 무아(無我)라는 것이 셋째 진리이니 마땅히 깊이 생각하라. 그리고 번뇌(煩惱)를 없앰이 곧 열반이라는 것이 넷째 진리이니 마땅히 깊이 생각하라. 네 가지 진리를 생각하는 자는 태어남늙음병듬죽음근심걱정고뇌를 벗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불제자들은 마땅히 방편을 구하여 이 네 가지 진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 잡아함경에서
 
< 물질성(物質性)>은 무상(無常)하다. 모든 물질성을 생기게 하는 인(因)이나 연(緣)은 저도 또한 무상(無常)하니, 무상한 인(因)ㆍ무상(無常)한 연(緣)에 의하여 나는 모든 물질성(物質性)이 어찌 영원히 존재하는 유상(有常)한 것이겠는가 ? 이와 같이 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식별도 또한 무상(無常)한 것이다. 모든 식별(識別)을 내는 인(因)이나 연(緣)은 저도 또한 무상이니 무상한 인(因)ㆍ무상한 연(緣)에서 나는 모든 의식(意識)이 어찌 유상(有常)한 것이겠는가 ?
이와 같이 물질성은 무상(無常)하고, 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식별도 또한 무상한 것이다. >---- 잡아함경에서
 
< 물질성은 주체(我)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물질성에 주체가 있다면 물질성에서는 병고(病苦)가 나지 않을 것이요, 또한 물질성은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않고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질성에는 주체가 없으므로 물질성에 병(病)이 있고ㆍ고(苦)도 있으며, 또한 물질성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않고자 하게 되는 것이니. 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식별도 또한 이와 같다. > ---잡아함경에서
 
<제자들이여. 물질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변하는 이치다. 비구들아, 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식별도 또한 이와 같다. 이러므로 모든 있는 바의 물질성의 과거ㆍ미래ㆍ현재, 혹은 내(內)ㆍ외(外), 혹은ㆍ추(麤)ㆍ세(細)ㆍ호(好)ㆍ추(醜)ㆍ원(遠)ㆍ근 (近) 등 일체는 내가 아니요, 나의 것(我所)도 아님을 참되게 관찰해야 한다. 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식별도 또한 이와 같이 해야 한다. 비구들아, 다섯 가지 *오온(五蘊), 취온(取蘊)은 내(我)가 아니요, 나의 것(我所)도 아님을 보아서 여실히 관찰해야 한다. 모든 세속에는 도무지 취할 바가 없고취할 바가 없으므로 애착할 바가 없고애착할 바가 없으므로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내생(來生)이 이미 다하고조촐한 행이 이미 서고,지을 바를 이미 지어서 스스로 내세(來世)의 삶을 받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잡아함경에서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해탈상(解脫相)이상(離相)멸상(滅相)
 
<해탈상(解脫相)>이란, 생사(生死)를 떠나는 것입니다. 생사란 인생의 모든 변화로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해탈입니다. 어떠한 경우를 당해도 곤란해 하지 않고어떠한 환경에 있어도 미혹하지 않고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곧 해탈입니다.
 
 <이상(離相)>이란, 떠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떠나는가 하면 <(偏空)>을 떠나는 것입니다. 편공이란  공(空)에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무차별(無差別) 평등(平等)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니까, 그 떠났다는 것에 집착하고 치우쳐서 <나는 깨달았다저 사람들은 미혹해 있다> 하고 자기와 세상과를 분리시켜 버립니다. 그것이 편공(偏空)입니다. 분명코 편공*일체중생구제론은 아닙니다. 편공의 집착에서 떠나 세상의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ㆍ번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대해 동정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이상(離相)>입니다.
 
<멸상(滅相)>이란, 자타(自他)의 구별을 완전히 없이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곧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이상(離相)>에 있어서는 세상의 괴로워하는 사람, 번민하고 있는 사람은 가엾은 사람이니까, 이를 구원해 주어야겠다 하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이상(離相) 경계에서는 자기는 구원하는 입장이고, 저 사람은 구원을 받는 입장이라고 하는, 곧 자기와 남과를 아직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윗 단계로 의식이 진화(進化) 되어야만 부처님처럼 자타(自他)의 구별을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구원 받는 사람이 기뻐하면 구원하는 당사자도 기뻐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웃으면 젖을 먹이는 어머니도 함께 기뻐하는 것과 같아서, 자타의 구별이 전연 없습니다.  다음과 같이 세 단계가 됩니다.
<해탈상(解脫相)>은  생사(生死)를 벗어남이고,   <(離相)>편공을 떠남이고,  <멸상(滅相)>자타(自他)의 구별을 없이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사를 벗어나고다음에는 세상을 떠나서 혼자 깨달았노라 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세상을 구원하려는 마음이 되고다시 자타(自他)를 하나로 해서 소위 *무연(無緣)의 자비로써 일체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 해탈상(解脫相)ㆍ이상(離相)ㆍ 멸상(滅相) 입니다. 이 세 가지를 가르치는 것이 부처님의 설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