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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顚倒)범부(凡夫)를 위해 실은 있건마는 멸(滅)한다고 말함이니라. 항상 나를 보는 까닭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내며 방일(放逸)하고 오욕(五欲)에 착해서 악도(惡道) 중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법화경(法華經) 약초유품(藥草喩品)-1-05-01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법화경 신해품을 통해 *가섭존자를 비롯한 *사대성문이 자기들도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있는 거룩한 성질,  *불성이 있으니까 *홍익 사랑하면 분명코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 느낀 바를 *장자와 궁자의 비유로 화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그만큼 알았으니 좋다. 그러나 너희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는 너희들보다 정도가 낮은 사람도 있어서, 그들은 잘 알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좀더 너희들의 말부연(敷衍)하여 설명하겠다> 하시고서, *약초유품을 설하셨습니다.
 
법화경은 모든 품(品)이 잘 네트워크<큰 하나>입니다. 즉 부처님 혼자서만 법을 설하시면 거룩한 교(敎)임에는 틀림없지만, 과연 우리가 실행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신 다음에는 그 말씀을 잘 터득한 제자가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바를 설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이 알았다면 나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제자의 설법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을까>하는 의심도 일으킨다는 중생의 속성을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그 말이 옳다. 내가 좀 더 보충(補充)해서 설하겠다> 고 하십니다. 이와 같이 어떤 때는 부처님께서 설하시고, 어떤 때는 깨달아 터득한 제자가 설하는 과정에서 *근기가 낮은 사람도 결국 <그러면 나도 함께 실행해 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멀티미디어(?) 상호작용원조가 바로 법화경(法華經)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법화경 약초유품 제 5 첫머리에,-----그 때 세존께서  *마하가섭(摩訶迦葉)과 모든 큰 제자(弟子)들에게 이르시되, 착하고 착하다, 가섭아. 여래의 참되고 진실한 공덕을 잘 설하였노라. 진실로 네가 말한 바와 같음이라. *여래(如來)는 또 한량 없고 가이 없는 아승지(阿僧祗)의 공덕이 있으니, 너희들이 설사 한량 없는 억겁(億劫)을 두고라도 능히 다 설하지 못하리라.-----
 
석가여래께서는 가섭존자를 비롯하여 많은 제자들에게,---가섭아, 너는 잘 알고 있구나.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잘 말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하지 못하므로 내가 보충해서 설하겠다.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한 모든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너희가 한없이 오랜 세월 동안을 설하더라도,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다 설(說)하지 못할 것이다.---
 
-----가섭아, 마땅히 알라, 여래는 모든 법의 왕이니, 설하는 바는 다 헛됨이 없느니라.----
 
---잘 듣거라. 부처님이라는 존재는 어떤 라도 다 설하실 수 있는 힘을 갖추고 계시다. 모든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도 거짓이 없다. 다만 그 중에는 얕고 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얕은 방편의 (方便敎)라고 한다. 방편교에진실도(道)에 통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일체경은 모두 진실교(眞實敎)에 통하는 길이 열려 있다. ----
 
---일체의 법을 *지혜의 방편으로 설함이니라. 그 설한 법은 다 *일체지에 이르게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가지가지의 법을 설하시지마는, 원래 모든 부처님께서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혜를 갖추고 계시기 때문에, 그 지혜의 힘이 나타나서 여러 가지 방편이 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상대에게 알맞는 를 설해 줄 방법을 잘 알고 계시므로, 그 알맞는 방법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주시는 것이다.---
 
<지혜>, <지혜지(智)>자와 <지혜혜(慧)>자의 합성어(合成語)입니다. <지혜지(智)>자는 (有)를 비춘다는 뜻으로 차별을 뜻합니다.   변화(變化)를 뜻합니다. 자연과 인간과의 가지가지 차이와 가지가지 변화를 각각 구명(究明)하는 힘을 <(智)>라고 합니다. <지혜혜(慧)>자는 (空)을 밝힌다는 뜻으로 평등을 전제하는 힘입니다.  이란 평등이요, 평등이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지간(天地間)의 가지가지 작용ㆍ인간계의 가지가지 변화 가운데를 꿰뚫고 천만년을 가도 변하지 않는 *(道)를 확고하게 아는 작용을 <(慧)>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의 인간의 *근기(根機)를 각각 알아보시고, 각기 적당한 구원(救援)을 주시는 작용을 <불지(佛智)>라고 합니다.  만고(萬古)를 통하여 변하지 않는 * 절대(絶對)의 진리(眞理), 영원한 (道)를 확고(確固)하게 잡는 힘을 <불혜(佛慧)>라고 합니다.
<일체지(一切智)>란, 부처님의 불지(佛智)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부처님의 지혜에 도달하게 하고자 하신다. 어리석은 사람이나영리한 사람이나악한 사람이나지금 당장은 각각 차이가 있어 다르지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열심히 수행하면 누구나 다 일체를 아는 힘을 갖춘 '부처님의 지혜' 에 이를 수 있다>를 목적으로 하고 를 설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법을 설하신다>는 것이 바로 차별을 아는 지(智)의 작용이므로 인간의 성질심리환경ㆍ등의 차별상을 확고하게 낱낱이 분별해서 각각 적당한 를 주십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불교의 근본교리에는 얕은 것도 있고 깊은 것도 있지마는, 결국은 듣는 사람을 다 <일체지>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데 목적을 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래(如來) 일체 모든 법의 도달하는 곳을 관(觀)하여 알며, 또한 일체 중생이 깊은 마음의 행(行)하는 바를 알아서 통달(通達)하여 걸림이 없느니라. -------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법(一切諸法),   세상에 일어나는 일체의 일이, 결국 어떠한 곳에 귀착(歸着)하며, 그 귀착하는 곳모든 부처님께서는 환히 내다보고 계시므로 통달(通達)하여 걸림이 없으시다, 어떠한 인간의 처지라도ㆍ어떠한 인간의 마음이라도ㆍ환히 보고 계셔서 조금도 모르시는 것이 없이 속속들이 잘 알고 계신다.---
 
범부는 눈앞의 일만 보고 있어서, 세상이 결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그것이 결국은 어떻게 낙착(落着)될 것인가ㆍ이것은 어떠한 결과가 되어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ㆍ하는 미래까지 일체의 것을 환히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범부는 자기 마음의 움직임, *십계호구를 모릅니다.  좋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마음 속에 나쁜 생각이 움직이고 있고, 또 열심히 하고 있어도 어느 사이에 게으른 마음이 섞여 듭니다.  악(惡)한 일을 하고 있어도 조금은 착한 마음이 그 마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어서, 좀처럼 자기 마음을 자기가 알 수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잇따라 일어나는 그러한 십계호구마음모든 부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겉에 나타난 것 뿐 아니라, 마음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마음의 변화, 십이연기(十二緣起)를 부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또 모든 법의 궁극을 다 밝혀 모든 중생에게 일체 지혜를 보이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그 진상(眞相)을 다 구명(究明)하셔서, 미래에 일어나는 일까지 환히 내다보고 계신다. 모든 사람들이 <(惡)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에게도 일체의 지혜를 보여 주신다.--- -
 
<악한 사람>이란, 요컨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간의 도리(道理)를 정말 알고 있으면 한 짓을 하지 못합니다. 모르니까 한 짓을 합니다.  한 사람에게 진정한 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요컨대 바른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가 모자르고 사려(思慮) 분별(分別)이 모자르면 죄를 범하고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을 아시고 인간에게 진정한 지혜를 주십니다. 진정한 지혜가 갖추어져서 인생의 의의, 곧 우주만유(宇宙萬有)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의의(意義)라든가, *도(道)란 무엇이며 *이(理)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다면 惡한 짓을 하라 해도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참된 지혜를 얻게 하자는 *매자의 비원으로 일관하십니다.
 
-----가섭아, 비유컨대 삼천대천 세계의 산천계곡땅 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며ㆍ수풀이며ㆍ약초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며ㆍ 각각 색과 이름이 다르니라. -----
 
---가섭, 비유해서 말하면, 삼천대천세계, 곧 지구촌 전세계의 산이나강이나골짜기나모든 땅에서 자라는 가지가지의 나무가지가지의 풀들이 한없이 많다. 초목(草木)의 종류도 여러 가지요이름도 각각 다르며그 모양이 또한 각각 다르다.----
 
-----가득 찬 구름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두루 덮어서 일시에 큰 비가 고루 내리어 널리 흡족하면, 모든 초목과 수풀이며, 약초의 작은 뿌리ㆍ작은 줄기ㆍ작은 가지ㆍ작은 잎새와, 중간 뿌리ㆍ중간 줄기ㆍ중간 가지ㆍ중간 잎새와, 큰 뿌리ㆍ큰 줄기ㆍ큰 가지ㆍ큰 잎새와,   circle03_darkgreen.gif 크고 작은 모든 나무의 상(上)(中)(下)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느니라.  
 
---허공 가득한 비구름이 온 세계를 덮어 일시에 비가 고루 내리면 그 빗물은 널리 모든 대지의 나무와 풀을 모두 적신다. 가지가지 나무와풀의 작은 뿌리와 줄기작은 가지와 잎도 적시고, 중간되는 뿌리와 줄기중간되는 가지와 잎도 적시고, 큰 뿌리와 줄기큰 가지와 잎도 적신다. 그와 같이 모든 나무와 풀이 대(大)중(中) 소(小) 상(上)중(中)하(下)가 각각 다르지마는, 각기 그 나름대로 모두 흡족하게 빗물을 받아 윤택하게 자란다.-- -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네 가지를 지적하여 말씀하신 것을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라 합니다. 모든 초목은 반드시 뿌리가 있고뿌리에서 줄기가 나오고줄기에서 가지가 나고가지에서 잎이 돋습니다.
-뿌리(根)는 믿음(信)을 뜻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워도,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마음이 없으면 실행하지 못합니다. 부처님의 敎를 믿어 <그렇다, 이것이 틀림이 없다>고 견고(堅固)하게 믿는 마음을 비유하면 나무의 뿌리입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나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계행(戒行)을 지키는 마음,  지계(持戒)입니다. 믿음에서 지혜의 마음이 생기면 그 (戒)를 지키는 것이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믿지를 않고 만 지키려고 하면 그것은 큰 고통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계행을 지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마치 뿌리에서 줄기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계행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가지가 뻗습니다. 가지 (定)입니다. 정(定)이란, 마음이 산란하여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일이 없이, 꽉 결정되어 의심이 없게 되는 상태입니다. 마음이 정해져서 미혹(迷惑)으로 인해 동요하지 않게 되면, 거기서 이 돋습니다. 그 이 곧 지혜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신심에서 계행을 지킬 마음이 생기고, 계행을 지킴으로써 마음결정(結定)되어 동요하지 않게 되고, 그 정(定) 가운데서 참된 지혜가 생겨서 남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기본 덕목 *삼학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같은 구름의 비에 그 종류와 성질에 맞추어 생장(生長)하며 꽃과 열매를 맺느니라. 비록 한 땅에서 나고 같은 비에 젖으나 모든 초목이 각각 차별(差別)이 있느니라.-----
 
---한 구름에서 쏟아내리는 비와, 지구(地球)라는 똑같은 대지에서 일체의 초목이 성질에 따라, 각기 나름대로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음에는 차이가 있다. --
 
부처님께서는 똑같은 자비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를 설하시지만 를 듣는 사람, 곧 오대양 육대주라는 자연 환경과 인류의 문명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작게ㆍ크게ㆍ깊게ㆍ얕게ㆍ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모든 중생구제를 전제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공덕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불교의 근본교리(根本敎理)----십이연기(十二緣起)*①             불교성경-p106~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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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나는 이제 마땅히 연기법(緣起法),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도리와, 연이생법(緣已生法),  인연에 의해 생긴 도리를 설하리라. -어떤 것을 연기법이라 하는가 ?   이른 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음이, 곧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行)이 있고, 으로 말미암아 (識)이 있으며, 으로 말미암아 명색(名色)이 있고, 名色으로 말미암아 육입(六入)이 있으며, 六入으로 말미암아 (觸)이 있고, 으로 말미암아 (受)가 있으며, 로 말미암아 (愛)가 있고, 로 말미암아 취(取)가 있으며, 로 말미암아 (有)가 있고, 로 말미암아 (生)이 있으며, 으로 말미암아 노사(老死)의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어서 큰 고(苦)가 무더기로 뭉치는 것이다.--
 
그리고 연이생법(緣已生法)이란, ① 무명ㆍ행ㆍ식ㆍ명색ㆍ육입처ㆍ촉ㆍ수ㆍ애ㆍ취ㆍ유ㆍ생ㆍ노사, 곧 우비고뇌(憂悲苦惱)의 12가지를 말한다. 설사 부처님이 나타나시거나 나타나시지 않으시거나 이 도리(道理)는 항상 있는 것이므로, 도리(法)가 머무는 법계(法界)라고 한다. 모든 부처님 이 도리를 스스로 깨달아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셨다. 곧 ① 무명으로 말미암아 ②이 있고,------⑪으로 말미암아 ⑫늙음죽음이 있다고 하셨다. 모든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아 비할 수 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고 하시는 말씀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늙음병듬죽음근심슬픔고뇌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모든 것들은 머물고하고도리(道理)가 같고도리처럼 그러한 것이다. 도리 진실을 여의지 않고, 도리는 진실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진실하여 앞뒤가 바뀌지 않으니, 이와 같이 수순하여 일어나는 것을 연이생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무명(근본적인 어리석음) (드러나지 않으면서 만들어내는 힘)  (식별하는 작용) 명색(이름과 형태를 뜻하며, 또는 정신과 물질) 육입처(눈 귀 코 혀 몸의 촉각, 곧 인식작용) (감각기관과 대상의 접촉(감수하는 작용) (맹목적인 충동) (집착) (생존), (태어남) 노사(老死)와 우비(憂悲) 고뇌(苦惱)니,   이것을 연이생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연기법연이생법을 바르게 알고 잘 보아, 과거세가 있었는가없었는가과거세에 어떤 종류였던가과거세는 어떠했던가를 구하지 말고, 또한 미래세(後際)도 구하지 말 것이니, 내세는 있는 것인가없는 것인가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생각지 말라. 왜 이것이 있고앞이 되며누가 마침내 어찌할 것인가이 중생은 무엇으로부터 왔으며여기서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것 등을 생각지 말라.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범속(凡俗)한 소견에 얽히면 이것을 일러 아견(我見), 곧 나라는 존재가 실제로 있다고 하는 생각에서 얽혔다 하며, 중생견(衆生見), 중생이란 존재가 실제한다는 고집에 얽혔다 하며, 수명견(壽命見), 생명 또는 시간의 실제를 고집함에 얽혔다 한다.
 
이러한 실상(實相)을 알아서 그 근본을 끊으면 마치 다라수(多羅樹=인도에서 서식하는 나무 ) 뿌리를 끊는 것 같아서 미래세에 나지 않는 도리를 이룰 것이다. 이것을 일러 연기법연이생법을 진실하게 알고바르게 알고잘 보고잘 깨닫고잘 닦고잘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중아함경에서
 
석가세존께서는,----연기법도리설함이란, 이른 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ㅡ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니, 무명(緣)하여 행이 있고으로 연하여 (識)이 있고(識)으로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명색(名色)으로 연하여 육입(六入)이 있고육입(六入)으로 연하여 (觸)이 있고(觸)으로 연하여 (受)가 있고(受)로 연하여 (愛)가 있고(愛)로 연하여 (取)가 있고(取)로 연하여 (有)가 있고(有)로 연하여 (生)이 있고(生)으로 연하여 노사(老死)우비고뇌(憂悲苦惱)라고 하는 큰 고(苦)무더기가 있게 된다.> 이것을 연기법의 설법이라 한다. 연기법의 도리를 설명한다는 것은 이른 바 ① 무명   등 12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중아함경에서
 
석가세존께서는,---그럼 무명(無明)이란 어떤 것인가 ?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거나미래를 알지 못하거나과거와 미래를 다 알지 못하거나안을 알지 못하거나밖을 알지 못하거나안팎을 다 알지 못하거나업(業)을 알지 못하거나 *과보를 알지 못하거나업(業)과 보(報)를 다 알지 못하거나불타(佛陀)를 알지 못하거나승가(僧伽)를 알지 못하거나*고(苦)와 집(集)과 멸(滅)과 도(道)를 알지 못하거나인(因)을 알지 못하거나인(因)이 일으키는 일들을 알지 못하거나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거나유죄(有罪)와 무죄(無罪) 습(習)과 불습(不習)나쁨(劣)과 좋음(勝)더러움(汚染)과 깨끗함(淸淨)을 분별하지 못하여 연기하는 것을 모두 알지 못하고 육촉입처(六觸入處), 곧 눈 등의 여섯 감관을 참되게 깨달아 알지 못하며, 저 모든 것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곧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어두운 것을 이른 바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석가세존께서는,----① 무명으로 말미암은 (行)이란 어떤 것인가 ? (行)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입의 행뜻의 행>이다.
(行)으로 말미암은 (識)이란 어떤 것인가 ? 이른 바 육식신(六識身)이다. 곧 안식신(眼識身)이식신(耳識身)비식신(鼻識身)설식신(舌識身)  신식신(身識身)의식신(意識身)이다.
(識)으로 말미암은 명색(名色)이란 어떤 것인가 ? 이른 바 네 가지 모양 없는 것(無色蘊)이니, 느낌(受蘊)과생각(想蘊)과의지작용(行蘊)과 식별(識蘊)이다. (色)이란 어떤 것인가 ? 이른 바 만물의 구성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를 말한다. 사대(四大)물질이다. 이 사대(四大)라는 (色)과, 네 가지 모양 없는 이름 뿐인 것, 곧 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의식과 합하여 명색(名色)이라 한다.
명색(名色)으로 말미암은 육입처(六入處) 어떤 것인가 ? 이른바 육내입처(六內入處)이다. 곧 안입처(眼入處)이입처(耳入處)비입처(鼻入處)설입처(舌入處)신입처(身入處)의입처(意入處)이다.
육입처(六入處)로 말미암은 (觸)이란 어떠한 것인가 ? 이른 바 육촉신(六觸身)이다. 곧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다.
(觸)으로 말미암은 (受)는 어떤 것인가 ? 이른 바 삼수(三受)이다. 곧 고수(苦受)낙수(樂受)불고불낙수(不苦不樂受)이다.
(受)로 말미암은 (愛) 어떤 것인가 ? 이른 바 삼애(三愛)이다. 욕애(欲愛)색애(色愛)무색애(無色愛)이다.
(愛)로 말미암은 (取) 어떠한 것인가 ? 이른 바 사취(四取)이다. 곧 욕취(欲取)견취(見取)계취(戒取)아취(我取)이다.
(取)로 말미암은 (有)는 어떠한 것인가 ? 이른 바 삼유(三有)이다. 곧 욕유(欲有)색유(色有)무색유(無色有)이다. (有)로 말미암은 (生)이란 어떤 것인가 ? 저 중생들의 몸이 종류가 출생할 때에 (陰=오음을 가르킴)을 얻고 (=십팔계)를 얻으며입처(入處=십이처)를 얻고명근(命根)을 얻은 것을 (生)이라 한다.
(生)로 말미암은 노사(老死) 어떤 것인가 ? 이른 바 늙는다는 것은 머리털이 희고이마가 벗겨지며가죽이 늘어지고육근(六根)이 쇠약하여지며사지가 약해지고등이 굽어지며머리가 세고신음하며 숨이 가뻐서 지팡이에 의지해 걸으며살빛이 검어지고 검버섯(班點)이 생기며정신이 암둔(闇鈍)해지고 행보(行步)가 곤란해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죽는다는 것인가 ? 저 중생들의 몸이 파괴되고 목숨이 다하여 *오음(五陰), 곧 오온(五蘊)을 버릴 때가 오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이 죽음과 앞에 말한 늙음을 합하여 노사(老死)라 한다. 이것이 연기(緣起)의 해설이다.--- 중아함경에서 .
 
석가세존께서는,---내가 *고행림(苦行林) 우루빈라 숲의 니련선하 근처 보리수하에서 가부좌 맺고 처음으로 바르게 깨달음을 얻고 칠일간 *해탈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앉아 있었다. 칠일이 지난 후, 나는 그 정(定)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나면 저것이 난다.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行)이 있고, 으로 말미암아 (識)이 있고,------(生)으로 말미암아 늙음과ㆍ죽음과ㆍ근심과ㆍ 슬퍼하는 고뇌가 있다. 이 괴로움의 무더기(苦聚)가 이같은 순서로 일어나는 것이 이와 같다>는 연기의 도리를 살폈다. 그 때가 초저녁이었다.
 
나는 다시 한 밤중에 다음과 같이 연기의 도리를 관하셨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滅한다. 곧 무명(滅)말미암아 행(行) 滅하고, 말미암아 식(識)滅하고,-----(生)(滅)말미암아 늙음죽음근심 슬픔고뇌한다. 이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함은 이와 같다> *십이연기의 실상을 정확히 깨달았다.-- 중아함경에서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크고 작은 모든 나무의 상(上)(中)  하(下)에 따라 각기 받아들인다.
 
사람의 정도를 나무<(大) (中)(小)(上)(中)(下)>로 비유하였습니다.
작다(小)는 것은, 다만 불교(佛敎)가 소중하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 아직 불교와 다른 교와의 구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정도의 수준을 <(小)>라 합니다. 사람은 한 짓을 해서는 안되며 어찌하여 정직한 것이 좋은가 하는 근본은 알지 못하고 다만 정직하게 하면 좋다는 것쯤을 생각하는 것이 작은 사람입니다.
(中)이라는 것은 도(道)라든가 교(敎)를 자기 혼자서 생각해야 진정한 것을 알 수 없으므로 어떤 좋은 에 의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이 <(中)>입니다.
(大)라는 것은, 정직하게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의해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大)>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근기(根機)가 좋고 나쁜 차이는 있지마는, 각기 자기의 분(分)에 따라 부처님의 敎를 잘 이해해서 그 힘으로 실행하므로써 *일체중생구제론*용입됨을 전제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