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원림과 모든 당각은 가지가지 보배로 장엄되고 보배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많아 중생이 즐거이 놀 곳이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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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서품(序品)-1-01-05
 
------또 저 국토(國土)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ㆍ그 모든 부처님의 설(說)하시는 법문(法門)을 듣고ㆍ아울러 그 여러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의 가지가지로 수행(修行)하여 득도(得道)하는 이를 보며,----
 
--석가여래의 가르치심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귀착(歸着)하는 곳은 같습니다. 즉 다른 세계에서의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여기 *사바세계에서 모두 들을 수 있고, 또한 그곳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 *사중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귀의하여 수행하는 모습과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이곳에서 보았습니다 - -
 
<저국토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뵙는다>란, 모든 부처님(敎)석가여래교(敎)다르지 않다*사일개회론(四一開會論) 사상입니다. *<제불동도(諸佛同道)> 석가모니불께 귀의하면 다른 세계의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모든 부처님(諸佛)>이란, 부처님이란 두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타(佛陀), 부처님이라는 것은 깨달은 사람(覺)이란 뜻입니다.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 *절대의 진리를 체득하였다는 뜻입니다.
<깨닫는 길>그 사람의 환경과 사정에 따라 다르고, 설(說)하는 방법도 상대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깨달아 얻은 절대의 진리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깨달음의 내용이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부처님마다 깨달음이 다르다면 그것은 절대의 진리가 아닙니다. 절대 귀의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또는 모든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의 가지가지의 인연(因緣)ㆍ가지가지의 *신해(信解)ㆍ가지가지의 모습으로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함을 보며,--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려는 부처님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고자 하는 이상(理想)을 가지고 수행하는 모든 보살마하살 가지가지의 인연과ㆍ가지가지의 신해(信解)와ㆍ가지가지의 모습으로 수행하는 모양을 여기 사바세계에서 환히 보았습니다. --
 
<신해(信解)>란, 믿는다는 것안다는 것입니다.<믿음(信) (解)>이라는 마음상태입니다. 우리가 경전을 읽거나 설법을 들을 때, 건성으로 읽거나 들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경전을 읽거나 설법(說法)을 들어서 그대로 자기 것이 되는 것은, <믿음(信) (解)>이 갖추어졌을 때 입니다. 믿음(信)이 있다해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다만 기계적으로 믿으면 행동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解), 이해하기만 해서도 자기 것되지 않습니다.
열반경 <신해(信解)원통(圓通)해서 비로소 행실의 근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신해원통(信解圓通), <(信)(解)>가 갖추어져서 <하나되기>가 되었을 때 그것이 신심(信心)이요 *마음의 근본이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가지가지의 모습(種種相貌)>이란, 마음으로 믿어서 행하고 있는 일이 상(相)에 나타났음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결심한 일은 반드시 겉에 나타납니다. 그 나타난 것을 모습(相貌)이라고 합니다. 몸으로 행하는 것ㆍ입으로 말하는 것ㆍ마음으로 생각하는 것ㆍ이 세 가지< (身)(口)(意)>삼업(三業)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진실(眞實)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누구든지 어느 한 가지에 치우쳐 있습니다. 몸으로는 행하지만 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ㆍ입으로는 잘 이야기 해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ㆍ생각으로는 가지고 있지마는 말로도 못하고 행동으로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삼업(三業)을 다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불교에서는 삼업(三業)상관성(相關性)을 잘 조절하는 *중도 수행에 힘쓰라고 합니다. 으로 행하기만 하면 자연 입으로도 나오고 마음도 견고해집니다. 또 으로 항상 좋은 말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마음에도 정착(定着)하고 몸에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음이 견고하면 으로 하는 말이나 으로 행하는 일이 자연 좋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말고, 끊임없이 으로 행하는 일과ㆍ으로 하는 말과ㆍ마음 심어진 생각을 조심해서 수행하면 삼업이 갖추어진 *중도, 조화의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반성해서 자기는 어느 쪽이 부족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또는 모든 부처님의 *열반(涅槃)하심을 보며,(復見諸佛 般涅槃者=부견제불 반열반자)--
 
--여기 사바세계에서 저 다른 국토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는 모양도 보았습니다.--
 
<열반>이란,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열반 하심을 보다> 이 경문은 반열반(般涅槃)을 뜻합니다. 반열반직역(直譯)하면 (滅)입니다. 죽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를 다 하시면 육신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80세입멸하셨습니다. 언제까지 살아 계시는 것보다도 당신께서 이 세상에서 떠나시면, 중생은 부처님을 다시 뵙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치심을 진실하게 수행할 것이다 하는 뜻으로 입적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열반입니다.
우리들 중생은 <나중에 한 번 찾아 뵙지요ㆍ그건 나중에 천천히 합시다>라고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나중에>라는 말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인지ㆍ모레인지ㆍ1년 후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그런 말을 써서 오늘 할 일을 오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 안으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제 죽을런지 모른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 죽을런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갖가지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보았을 때, <과연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언제 죽을런지 모른다. 주어진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내서는 안되겠다> 하는 사(死)각오(覺悟)도 진심으로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가르치심을 다 하신 다음에 반열반으로 육신무상(無常)함을 보여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생사(生死)를 통해 교훈을 주십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6대의 차량과 50 여명의 사상자를 낸 너무도 불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한 참변이 교훈이 되어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서울시에서는 1996년 3월부터 기존 다리를 헐고 새 성수대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998년에 완공하고 뒤이어 2004년 9월에 8차선으로 확장하였습니다. 그 사고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 가엾다고 명복을 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죽은자로부터 하나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인과교훈,  많은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것의 대한 해석을 멀리ㆍ넓게ㆍ길게ㆍ창조적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또는 모든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 후, *불사리(佛舍利)를 위하여 칠보(七寶)로 *탑(塔)을 일으킴을 봄이라.---
 
 --모든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부처님의 유골을 칠보로 장식한 커다란 탑(塔)을 세워 봉안(奉安)하고 영원히 그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기념하는 것을 여기 사바세계에서 다 보았습니다. --
 
<불사리(佛舍利)>부처님의 정골(精骨)입니다. 영골(靈骨)입니다.
<칠보(七寶)로 탑(塔)을 일으킴을 보다>란, 부처님의 *백호광명(白毫光明)으로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부처님의 지혜가 열리면 다른 세계의 일들을 여기서 다 알 게 된다는 뜻입니다.
<탑(塔)>이란, 범어의 솔도파(率都婆)를 생략해서<탑파(塔婆)>라고 하였습니다. 탑파(塔婆)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고현(高顯)>입니다.  <높이 나타난 >이라는 뜻입니다.
<높이 나타난 >이란, 죽은 사람의 덕(德)을 세상에 나타내는 동시에, 그 죽은 사람의 가르침을 자기들이 영원히 계승(繼承)한다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에는 방울을 달아 그 방울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서 그 죽은 사람의 정신이 세상에 널리 전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석가여래를 위해 을 세운다면 그것은 석가여래의 을 나타냄과 동시에, 석가여래의 가르치심반드시 지켜가겠다는 맹세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인도에는 옛날부터 은혜를 받는 사람을 위해서라든가ㆍ자기의 조상을 위해서라든가ㆍ아무튼 우러러 사모하는 이를 위해 을 세우는 습관이 있어서 그 습관이 중국ㆍ한국ㆍ일본에 전해졌습니다.
 
---그 때 *미륵보살(彌勒菩薩) 생각하기를, 지금 세존(世尊)께서 신통변화(神通變化)의 상(相)을 나타내시니 무슨 인연(因緣)으로 이 상서(祥瑞)가 있음인가.----
 
 --그 때 미륵보살은 부처님의 영적 에너지  백호광명으로 다른 세계의 제자들, 곧 모든 보살들의 신해와ㆍ갖가지 수행과ㆍ모든 부처님의 반열반을 보고 무슨 까닭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
 
---지금 부처님께서는 *삼매(三昧)에 드셨으니 이 불가사의(不可思議)의 희유(希有)한 일이 나타남을 누구에게 물어 볼 것인가ㆍ누가 능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
 
--미륵보살은 처음 보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 부처님께 여쭈어 보고 싶었지만 부처님께서는 삼매에 드셨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ㆍ누가 능히 잘 대답해 줄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
 
---다시 생각하기를,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는 이미 과거(過去) 한량 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親近) 공양(供養)하였으니 반드시 이 희유(希有)한 상(相)을 보았으리라. 나는 지금 마땅히 물어보리라.-----
 
--미륵보살은 다시 생각했습니다. 문수사리법왕자는 부처님으로부터 항상 가르치심을 받은 사람이다부처님의 마음을 잘 알 것이다ㆍ또 과거세에 많은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 공양하였으니 이러한 불가사의(不可思議)상(相)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어떠한 인연으로 이러한 희유한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에게 물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일찍이 *천태대사께서는 여기 등장한 문수보살미륵보살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미륵은 묻고 문수는 대답한다. 미륵이 왜 묻느냐 하면 자기 한 사람만이 의문이 생겨서 묻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인간을 대신해서 묻는 것이므로 그것은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문수가 대답한 것은 자기가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려고 대답한 것이 아니다. 대중의 마음의 의혹을 제거해 주려고 대답한 것이다. 이것도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묻는 미륵보살이나 대답하는 문수사리보살은 다같이 자비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 공덕은 같다>고 주석하였습니다.
 
세간에서라면, 한 사람이 묻고 한 사람이 대답했으니까 묻는 사람보다 대답한 사람이 더 훌륭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묻는 것도ㆍ대답하는 것도ㆍ모두 대중을 위한 자비심이니까 그 공덕은 똑같습니다. 인생을 이롭게 한다ㆍ인간을 구원한다세상을 유익하게 한다 하는 커다란 목적, 곧 *일체중생구제론을 전제하는 일이면, 그것이 큰 일이건ㆍ작은 일이건ㆍ겉에 드러나는 일이건드러나지 않는 일이건ㆍ다 함께 가치(價値)가 있어서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심, circle03_darkgreen.gif <주(主)ㆍ(師)ㆍ(親)>삼덕(三德)의 일환이 되겠습니다.
<법왕자>란, <(主)(師)(親)>삼덕을 갖추었음을 말합니다. 문수사리 과거세에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 문수사리를 법왕(法王)의 아들, 부처님의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문수사리보살은 제자이지만 부처님의 아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過去) 한량 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親近) 공양(供養)하다>문수사리보살석가여래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분입니다. 그것은 이미 과거세에 한량 없는 모든 부처님께 친근하고 공양하였으며, 또 가지가지로 수행하고 그 가르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인과(因果)로 이 세상에서 특히 지혜가 뛰어난 것입니다. 과거의 세상에서 수행한 결과로 이 세상에비상한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생각하여 안다면, 이번에는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하면 후세에 비상한 지혜가 갖추어져서, 비상한 공덕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하는 생각을 전제하라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의 백년미만(百年未滿)으로 끝나는 생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나기 전부터 살아 있었고, 또 이 몸이 없어진 뒤에도 이 생명이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후세에 계속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현세가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현세란 앞 세상에서부터 계속되는 오랜 생명 가운데의 찰나입니다. 이 현세 전에는 전생이 있었고, 그 전생으로 부터의 생명이 현세에 계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현세는 백년미만이라 하더라도 현세의 생명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내세(來世)가 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에 치우쳐 현세(現世)를 경시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현세는 백년미만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생명 가운데의 일부분입니다. 마치 대나무의 한 마디와 같습니다. 대나무가 땅위로 2미터 4미터 --계속 자랍니다. 그 중의 한 마디는 30센치 40 센치 밖에 안되지만, 그 한 마디를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전체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세에서의 생활을 소홀히 하여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ㆍ인간으로서 마쳐야 할 책임을 다 하지 않고ㆍ후세에 갑자기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현세에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을 다하여야만 비로소 후세에 행복이라는 갚음을 받습니다. 늦잠이나 자고ㆍ남에게 빚을 져가며 술이나 마시고ㆍ남을 속이고ㆍ집안을 돌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좋은 과보를 받겠습니까. 갑자기 후세에는 극락에 가겠다는 그런 *복(福)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런 무리가 다 극락에 간다면 극락이라는 곳은 게으름뱅이의 집회소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즐거운 곳이 못 될 것입니다.진심으로 내세를 생각한다면 현세에서 매일 매일의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우는 것입니다. 조사설(祖師說)이 아닌 불설(佛說)을 배우는 것입니다.
분명코 석가세존께서는 불설(佛說)을 전하는 *오종법사 보살행에 무게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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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신해원통(信解圓通)
 
불교 신앙에는 보편적으로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 믿는 것으로 시작되는 길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경전을 읽는 것을 보고 자라서 함께 경전을 읽기도 하고, 함께 제목봉창을 하기도 하여 믿는 습관이 몸에 익었습니다. 그러나 가르치심을 모르고 고마움을 알지 못하면 큰 다음에는 그 신심(信心)이 무너져 버립니다. 믿는 것은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배웠지만 <> 이해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의혹이 생겨서 싫어집니다. 그러므로 믿는 습관으로 시작된 사람은 적당한 시기에 <(解)> 가르치심을 배워 신심(信心)을 길러야 합니다.
다른 하나 이해(理解)로 시작하여 들어가는 길입니다. 이유만 따지고 있으면 믿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치로만 문제를 생각하면 새로운 문제가 자꾸 생겨서 신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해로 시작한 사람은 믿는 습관평소길러서 반듯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부터 출발해서 <>이라는 토대(土臺)를 쌓고, <>에서 시작하여 믿음이라는 뿌리를 심어서 <(信)(解)>가 갖추어진 상태를 *신해원통(信解圓通)이라 합니다. <원통>에서 (圓)이란 갖추어지는 것이요, (通)이란 갖추어진 것이 하나통일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대로앎대로ㆍ각기 따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갖추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갖추어진 이 서로 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힘아는 힘이 컨버젼스,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서 자기 마음의 전체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보살행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해(信解)는 언제나 <(信)(解)>가 통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남을 구원할 수 있게 되는 상태, 곧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보살행이 되겠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여는 거룩한 보살행이 전제(前提)된 한세계 구제불사(救濟佛事)를 체득(體得)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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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주(主)ㆍ(師)ㆍ(親)>삼덕(三德)
 
불교에서는 보편적으로 아래(上下)의 관계를 생각할 때 크게 세 가지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① 부모자식과의 관계  ㆍ  ② 주인하인과의 관계   ㆍ   ③  스승제자와의 관계입니다.
세상에서 아래의 관계를 세세하게 나누면 수없이 많겠지마는 대체로 나누면 이 세 가지가 됩니다.
 
천태대사께서도 *주(主)ㆍ(師)ㆍ(親)의 관계에 대하여 좀더 적극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이면 주인과 스승과의 힘을 갖추어야 하고, 주인이면 부모와 스승 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스승이면 부모와 주인 될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귀찮고 까다로운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식이면, 부모를 부모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ㆍ주인으로 존중하자스승으로 우러러 보자ㆍ자기는 자식인 동시에 하인이요 제자다ㆍ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남에게 쓰이는 사람이면, 자기 주인을 부모로 친근하자ㆍ스승으로 섬기자ㆍ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윗 사람을 단지 윗 사람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모로 생각하고 친근하자ㆍ주인으로 생각하고 존경하자ㆍ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로는 <(主)(師)(親)>의 세 가지가 하나가 되고, 이래로는 <(子) (從)(弟)>, 자식하인제자세 가지하나가 되는 성통공완(性通功完)입니다. 개인의 완성우주의 본성과 통하고 더 나아가 이를 세계화하는 *성통공완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세상은 정말 융합(融合)안정(安定)된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들 생각이 모자라서 고용인이 동맹파업(同盟罷業)을 하기도 하고ㆍ자식이 부모와 싸움을 하기도 하고ㆍ제자가 선생을 때리기도 하고ㆍ부모가 자식을 내쫓기도 하고ㆍ주인이 종업원(從業員)을 혹사(酷使)하기도 하고ㆍ선생이 학생에게 감화(感化)를 주지 못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이 세 가지 관계가 실은 네트워크, 곧  상보적(相補的) 교류가 된다면 세상은 진정 좋은 세상, *영산정토가 될 것입니다. 웰빙 문화 사회가 될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고대 한국 고조선의 건국 이념입니다. 홍익인간이란, 삶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홍익(弘益) 사랑에 두고 뛰는 사람입니다. 홍익 사랑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화(理化)하기 위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보살을 뜻합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 성어(聖語) 가운데 성어입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理致)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대우주 본체론의 핵심 사상입니다.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法華經과 맥락을 같이 하는 우리 나라 고유의 애민(愛民) 정서입니다.
분명코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육혹시현 관점에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연다는 실천론*사바세계가 불국토 건설 현장임을 각성(覺醒)케 하는 지구인으로서의 액션입니다. 민족인종종교정치이념ㆍ따위를 넘어선 지구인 공동체 의식(意識), 법화세계를 여는 것을 전제한 일체중생구제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하나 되기> 본체에너지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