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이 겁(劫)이 다하여 큰 불에 타려할 때에도  나의 이 땅은 안온(安穩)하고 천인(天人)이 항상 가득 참이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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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서품(序品)-1-01-04
 
 ----그 때 세존께서는 *사중에게 둘러싸여 공양과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으시고,---
 
<사중(四衆)>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  교단(敎團)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의 출가불자(出家佛子)와, 우바새(優婆塞=청신사)ㆍ우바이(優婆夷=청신녀)의 재가불자(在家佛子) 일체합니다.
 
다른 하나 교(敎)를 듣는 사람의 *근기나 수준에 따라   ① 발기중(發起衆)  영향중(影響衆)  당기중(當機衆)  결연중(結緣衆)으로 나눈 사중(四衆)입니다.
 
발기중(發起衆)→부처님께서 교(敎)를 설하실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라도, 설하실 기회가 없으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 뜬금없이 대중 앞에 나타나셔서, <너희들 *불성있으니까 성불하라> 고 외치면 헛소리 한다고 할 것입니다. 설(說) 할만한 기회가 되지 않으면 하실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해 주십사 하고 청법을 한다거나, 또는 그럴 만한 기회가 아니면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느닷없이 대생명체(大生命體)라고 하는 당체(當體)하실 수 없습니다. 여기 *서품에서도 *문수보살 *미륵보살이 과거세의 있었던 신앙상의 이야기를 나누며 신앙적 분위기를 유도합니다. 그런 사람을 발기중이라 합니다.
영향중(影響衆)法華經 가르치심을 세상에 펴는데 노력하는 사람은 다 영향중입니다. 물건에 형상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물건에 소리가 있으면 울림이 있는 것과 같이, 부처님께서  法華經을 설하시면, 그 가르치심을 듣고 즉시 귀의하는 사람이 있고, 부처님의 음성(音聲)이 있으면, 그 음성이 울려서 많은 반향(反響)이 생깁니다.
고승(高僧)이니 석덕(碩德)이니 하지만, 실은 부처님 분상에서는 모두 그림자산울림과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화도(化導)를 돕는 사람,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일체중생구제론이라는 교학불사동참하고 시중 드는 사람을 영향중이라 합니다.
당기중(當機衆)→불법을 들으면 곧 이해(理解)하는 사람입니다. (機)란 법을 듣는 사람의 힘, 근기(根機)입니다. 法華經*무일불성불론을 듣고, <과연 그렇구나>하고 감동하며 즉시 신앙적 정서를 받는 사람을 당기중이라 합니다.
결연중(結緣衆)法華經 가르치심을 듣고 무엇인가 고맙다고 생각하고 인연을 맺는 사람을 결연중이라 합니다. 또는 法華經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ㆍ그러나 모르는대로 무엇인가 거룩함을 느끼고 고마워 하며 관심을 갖고 설법회상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차차 수행하여 결국에는 알 게 되는 사람이 바로 결연중입니다.
 
---모든 보살을 위하여 *대승경(大乘經)을 설하시니 이름이 무량의(無量義)라. *이는 보살(菩薩)을 가르치는 법(法)이며(敎菩薩法), 부처님이 호념(護念)하시는 바라.---
 
부처님법을 듣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교(敎)에 귀의하도록 하는 사람은 보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을 위해 특별히 *무량의경을 설해주십니다.
<무량의> <의(義)>일심(一心)에서 나옵니다. <무량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은 ㆍ많은 도리(道理)ㆍ많은 설(說)이라는 뜻입니다. 성품과ㆍ욕망과ㆍ근기가 다른 인간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 하는 것은 상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한량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이 진정 부처님 마음에 가깝게 되어가면, 어떠한 라도 할 수 있다ㆍ모든 착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 *무량의경입니다. 그러나 그 일심(一心)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무량의경에는 설해 있지 않습니다. 그 일심(一心)을 설명한 것이, *서품을 필두로 하여 시작되는 *실대승 법화경 본론입니다.
<부처님이 호념(護念)하시는 바다>, <호념>의 뜻 가운데는 <없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과 <함부로 펴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함부로 펴지 말라는 것은 서투르게  폈다가 잘못 되면 안 된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제발 널리 펴라>는 뜻과, <함부로 폈다가는 큰일 난다>는 뜻이 있습니다. 열(十) 이상의 실제가치(實際價置)가 있는 것을 둘이나 셋의 가치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경(經)을 설하신 후, *가부좌(跏趺坐)를 맺으시고(結跏趺坐), 무량의처(無量義處) *삼매(三昧)에 드시니, 몸과 마음이 동(動)하지 아니하시거늘, ----
 
---부처님께서는 무량의경을 설하신 다음에 무량의처 삼매에 드시어 그 하신 바를 조용히 생각하셨습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설하실 *일불승 법화경을 깊히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
 
<삼매>, 범어(梵語)의 발음으로 삼매야(三昧耶)입니다. <(三)새벽(昧)>라는 한문이 가지고 있는 뜻은 없고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좌정(坐定)한 상태입니다.
*대지도론에서 <삼매>에 대해서 <선심(善心) 한 곳에 머물러서 움직이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착한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은 *십계호구의 몸인지라 착한 마음이 흔들립니다. 때로는 좋은 일을 생각하고 부처님과 비슷한 생각도 하지마는 어느 새 *탐진치 삼독으로 빠집니다. 그래서 삼매를 기르라는 것입니다.
<무량의처 삼매(三昧)>, 부처님께서 42년 방편교(方便敎)를 마치신 다음 무량의경을 설하시고 나서, 법화경을 설하실 것을 전제하고 조용히 생각을 모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를 설하시기 에는 반드시 삼매에 드십니다. <어떻게 설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열릴 것인가지금 說한 것이 중생의 마음을 열었는가>를 생각하시는 마음입니다.
 
----이 때 하늘에서는 만다라(曼陀羅)마하만다라(摩訶曼陀羅)만수사(曼殊沙)마하만수사(摩訶曼殊沙)꽃을 부처님과 모든 대중 위에 비오듯이 내렸으며, 부처님의 넓은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六種震動)하였느니라. ----
 
천상계에서는  부처님과 모든 대중 위에 아름다운 하늘 연꽃을 내렸습니다. 또한 모든 세계가 *육종진동하였습니다. 하늘꽃이 내렸다는 것은 천상계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인간계 뿐 아니라, 우주의 온갖 것이 다 法華經 가르치심감탄(感歎)하고 귀의한다는 증표(證票)입니다.
 
--그 때 회중(會中)의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ㆍ하늘(天)ㆍ 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달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후羅伽)ㆍ인비인(人非人)과, 모든 소왕(小王)ㆍ*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모든 대중은 *미증유(未曾有)를 얻어 환희하여 합장하고 일심(一心) 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봄이라.---
 
--왕사성 기사굴산중에 모여 있는 모든 대중이 무량의경을 듣기만 하고도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감격을 느끼고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제부터 다시 어떤 敎를 설하실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합장하고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
 
<하늘(天)>  천상계에 사는 것이고, <(龍)>은 바다에 사는 것입니다. <야차>는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귀신 같은 것이고, <마후라가>는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 종류입니다. <인비인(人非人)>은 인간과 *팔부신중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으로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일체를 뜻합니다. <합장> 귀의하는 마음을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입으로 말할 때에는 <나무(南無)>입니다. <나무>는 한문으로 번역하면 <귀명(歸命)>입니다. 공경한다는 뜻과ㆍ의지한다는 뜻과ㆍ확실하다고 믿는다ㆍ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을 공경하고부처님께 의지하면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뜻이 <나무>입니다. 만약에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우지 않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재화복덕(財貨福德)을 구하고ㆍ병고액난(病苦厄難)을 면하고ㆍ속히 재앙소멸(災殃消滅)하여 주십사 하는 것만으로 부처님께 의지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우롱(愚弄)하는 것이 됩니다.
<전륜성왕> 은 고대인도의 정서입니다. 인도는 예로부터 작은 나라들이 많이 분립(分立)해 있었으며 한번도 고대인도 전역이 통일 된 적이 없었습니다. 석가여래께서 출생하신 가비라성(迦毘羅城)5백여 방리(方里)밖에 안되는 작은 성(城)입니다. 히말라야산의 남쪽, 중인도(中印度)지방만 해도, 십여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항상 나라와 나라 사이에 사소한 분쟁(紛爭)이 많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전인도(全印度)를 다스리는 통일 임금, <전륜성왕>이 나타나기를 바랬습니다. 덕이 매우 높은 훌륭한 왕이 나타나면, 하늘이 그 왕을 수호해서 이 세상에서의 활동을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장래에 전륜성왕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훌륭한 왕이 나타나면 *윤보라는 것을 하늘이 내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윤보라는 것은 수레바퀴 같이 둥근 것대여섯 개한 곳에 모여서 된 일종의 보배입니다. 아무튼 하늘이 윤보를 내리고 그 윤보를 받은 왕은 하늘이 수호하기 때문에, 나라가 번성한다는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미간(眉間) 백호상(白毫相)의 광명(光明)을 놓으사 동방(東方) 일만팔천(一萬八千) 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그 때 부처님의 미간 백호상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밝은 빛이 모든 세계를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세계에 존재하는 신도(信徒)들과 모든 사물의 실상을 골고루 보여 주셨습니다.--
 
고대인도 덕(德)이 매우 높은 사람은 *삼십이상이 갖추어진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반드시 그 형상에 나타난다는 생각입니다. 다정한 마음이 있으면 그 형상에 다정함이 나타나 보이고, 간사한 마음이 있으면 얼굴이나 몸가짐에 어쩐지 간사해 보이는 느낌이 나타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근본으로 해서 진정 높은 덕(德)을 갖춘 훌륭한 사람은 그의 마음이 저절로 그의 형상에 나타나서 그를 보기만 해도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해서 그 이상적인 몸의 형상삼십이상이라 하였습니다. 머리의 모양은 이런 것이 가장 좋다든가ㆍ귀는 이런 것이 좋다든가ㆍ손의 생김새는 어떻다든가ㆍ어깨의 모양은 어떻다든가 하여 몸의 형상서른 둘로 나눴습니다.
삼십이상은 서양에서 말하는 골상학(骨相學)과 맥을 같이 한다 합니다.
 
<백호>는 부처님의 *삼십이상의 하나입니다. 부처님의 이마 한 가운데에 솟아난 백호(白毫), 흰 털은 오른쪽으로 감겨져 있습니다.
<(白)>는 것은 <지혜밝음>을 뜻하고 <오른쪽으로 감겨져 있다>는 것은 <지혜의 상징(象徵)>입니다.
불교가 일어나기 전, 고대인도는 (左)쪽은 <(理)>를ㆍ오른(右)쪽은 <(智)>를 의미하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理)>도리(道理)  이치(理致)입니다. <(智)>이치를 운용(運用)하는 작용(作用)입니다.
<미간(眉間) 백호상(白毫相)>은 일체중생을 구원하시는 지혜의 작용을 형상으로 나타낸 것, *일체중생구제론의 상징(象徵)이 되겠습니다.
<두루 비추다(靡不周遍)>란,  어디든지 다 분명하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지혜정변지(正遍知)라고 합니다. 정변지란, 바르게 널리 아는 것입니다.    <바르게>란 지식이 통일 되는 것을 뜻합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통일되지 않으면 안되고, 통일되어 있어도 범위가 좁아서는 안되며 바르게 널리 아는 것부처님의 지혜 <묘지(妙智)>라고 합니다.
정변(正遍)<(妙)>라고 합니다. 바르게 모든 것에 통하면 <묘지(妙智)>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바르게 통일 됨을 <두루비추신다(靡不周遍)>고 합니다.
 
---아래로는 아비지옥(阿鼻地獄)에 이르고, 위로는 아가니타천(阿迦니타天)에 미치며,--
 
--우주의 모든 세계, 모든 것의 존재하는 상태가 모조리 부처님의 빛에 비쳐서 보였습니다.--
 
<아비지옥>이라는 것은 이른 바 무간지옥으로서 지옥계의 맨 아래라고 합니다.
<아가니타천>이란, 유정천이라고 번역합니다. 형상이 있는 세계의 맨 위라고 일러옵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 저 국토(國土)의 *육취중생(六趣衆生)을 다 보며,---
 
부처님미간 백호상의 빛으로 모든 세계에 살고 있는 육도중생이 다 보였습니다.
 
<저 국토의 육취중생>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밖의 다른 세계의 인간의 생활 상태를 말합니다.찰나 찰나 호흡하며 백년미만을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 상태를 개괄(槪括)해서  circle03_darkgreen.gif 육취(六趣) 또는  육도(六道)라는 여섯 가지의 생활상태가 됩니다.육도가르침, 교(敎)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인간이 *교(敎)를 배우고 *도(道)를 구하면 넓은 세상이 열리지만,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육도, 지옥계(地獄界)아귀계(餓鬼界)축생계(畜生界)아수라계(阿修羅界)인간계(人間界)천상계(天上界)만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며 무의미(無意味)하게 생을 거듭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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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육취(六趣) 또는  육도(六道)라는 여섯 가지의 생활상태  
 
불교에는 *진실의 교 *방편의 교가 있습니다. 방편의 교 고대인도에서 그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전설을 그대로 채용(採用)하여 진실의 교로 *용입시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첨단과학시대에는 아무도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방편 차원에서 경전에 등장한 팔한지옥(八寒地獄)이니ㆍ팔열지옥(八熱地獄)이니ㆍ 하는 것이 모두 땅속에 있다고 설해 있습니다.
그러나, 실대승 법화경 분상에서는 마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습니다. 육도육취 세계라고 하는 지옥(地獄)ㆍ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ㆍ모두가 인간마음 속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믿고 마음의 지혜가 밝아지면 그런 모든 세계의 상태가 분명하게 알아진다는 것입니다.
 
육도육취  세계   ;
지옥계(地獄界)진에(瞋恚), <성냄>의 세계입니다. 마음 가운데 <진에>가 한번 싹이 트면 그것이 자라서 마음 전체를 점령하여 다른 생각은 조금도 일어날 여유가 없게 되었을 때, 마음 속에 지옥계가 나타납니다. 인간의 *번뇌중에서 가장 큰 것이 <진에>입니다. 인생을 파괴하고 세상의 온갖 것을 파괴합니다. <진에>가 일어나는 최초의 원인은,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 불쾌를 느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 좀 다른 것이 생기면, 어쩐지 기분이 나쁩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던 것이. 조금씩 커지면 진에가 됩니다. 진에가 되면 자기와 다른 것은 모두 적(敵)으로 삼게 됩니다. 예컨대 노인의 눈으로 보면 젊은이는 다 건방져 보이고, 젊은이의 눈으로 보면 노인은 완고해 보입니다. 다른 것을 포용(包容)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 진에입니다. 그 진에가 한번 자기의 마음을 점령하여 성을 내면, 주위 사람이 모두 적으로 느껴집니다. 인간은 다 함께 살아가는 본성을 가지고 있거늘, 그 본성을  잃어 버리고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바로 지옥계입니다.
아귀계(餓鬼界)탐욕, <욕심냄>이 근원이 됩니다. 탐내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모두 점령해 버리고 다른 마음이 일어날 여유가 없게 되었을 때, 우리의 마음 가운데 아귀계가 나타납니다. 욕심낸다는 것은 돈이 욕심난다든가ㆍ지위가 탐난다든가ㆍ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체의 다른 사람이 다 자기를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탐욕>의 근본입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를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이 어떠한 일을 해주어도 만족하지 않고 좀더 어떻게 잘 해 주지 않나 합니다. 부모 자식이 효도하기만을 바라고 자식 부모가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고 친구좀더 자기를 친절하게 대해주기만을 바랄 뿐, 조금도 만족하지 않고 항상 불쾌하게만 생각는 것이 이른 바 아귀계입니다. 무엇이나 자기의 편의(便宜)를 중심으로 해서 많은 것을 외부에서 구하면서 무엇이나 만족하지 않는 것이 아귀계입니다.
축생계(畜生界)우치(愚痴) <어리석음>입니다. 우치는  눈앞의 것만 보고 앞뒤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이 자기의 가슴을 온통 점령했을 때, 거기에 축생계가 나타납니다. 사물 결코 우연(偶然)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생기게 되어서 생기고 없어지게 되어서 없어지는 필연적(必然的)인 것입니다. 일체의 사물이 극히 복잡한 인과(因果)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그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눈앞에 일어난 것만을 보고는 그것이 좋다고 기뻐하고, 또는 나쁘다고 성냅니다. 그것이 우치입니다.
아수라계(阿修羅界)는 <다툼>입니다. 서로 다투고 서로 싸우면 아수라계가 나타납니다. 다툼을 일으키는 근본은 인간의 첨곡(諂曲), 억지 쓰는 마음입니다. (諂)은 남에게 아첨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아첨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도록 둘러대는 마음이 첨곡입니다.예컨대, 회의장에 늦게 와서는 <내가 늦었습니다>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차가 고장이 나서-->라던가, <막 나오는 데 손님이 와서--> 라던가 하는 등 자기 탓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립니다. 제각기 조그마한 자기를 고집해서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좋도록 해석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충돌합니다. 자기의 고집을 버리면 그만인데, 굳이 고집을 써서 눈을 부릅뜨고 서로 노려보며 극단까지 갑니다. 그것이 아수라계입니다.
인간계(人間界)평정(平正)이라고 합니다. 앞에 지옥(地獄)아귀(餓鬼)ㆍ축생(畜生)수라(修羅)네 가지의 마음은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면 멈추는 것이 인간계입니다. 을 내더라도 지옥에 떨어지게 까지는 안가고 참습니다. 여러 가지 물건도 가지고 싶지만 아귀까지는 가지 않고 적당히 멈추는 것이 보통의 인간계입니다. 버스 안에서 남에게 발을 밟히면 <이놈이>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지만, <불교 신자니까 >하고 참습니다. 가지가지 번뇌가 일어나지만, 그 *번뇌를 억제해서 비교적 평온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인간계입니다.
천상계(天上界)환희(歡喜) <기쁨>의 세계라고 합니다. 기쁜 마음이 가슴에 가득하여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에 오른 듯한 기분이 오래도록 계속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인간계의 땅을 떠난 것 같은 충만한 기쁨에 젖는 것이 천상계입니다. 불교가 일어나기 전, 고대인도의 바라문교에서는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 이상(理想)이였습니다. 그들 바라문 이 세상에서 단식(斷食)을 하거나ㆍ혹은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거나ㆍ이것 저것 육신을 학대하는 고행을 하면 그 난행의 과보천상에 태어난다는 정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가여래께서는, <괴로움이 없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바쁠 때는 좀 한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마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괴로움이 없다ㆍ아무 것도 걱정할 일이 없다ㆍ고 하는 상태는 조금도 부러워할 것이 못됩니다. 괴로운 곳에서 괴롭지 않은 상태로 옮겨진 그 당시는 기쁠 것이지만,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무료하게 되어 무엇이던지 하고 싶은 속성이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인간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산 몸을 가지고 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상에는 살아서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은 타고난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없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어떤 뜻이 있고ㆍ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무의미해져서 역시 불만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道)도 (敎)도 분별하지 못하고 무심히 살아간다면 육취세계가 번갈아 가슴 속을 휘저어 놓습니다. 몹시 성을 내서 지옥계에 머물기도 하고ㆍ다시 욕심을 내서 아귀와 같은 마음이 되기도 하고ㆍ남과 싸움을 해서 수라와 같은 마음이 되기도 하고ㆍ좀 침착해져서 보통의 인간이 되기도 하고ㆍ어떤 때는 기쁜 일이 생겨서 천상계에 올라간 듯한 기분이 되기도 하고ㆍ그것이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다시 성을 내서 지옥으로 가고 하여, 이렇게 육도세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합니다. 마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것과 같이, 빙글빙글 돌면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곧 범인(凡人)의 경계입니다.
분명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를 설하시게 된 것은 요컨대 육도윤회하는 우리를 *윤회의 상태로부터 구원해 내고자 하신 큰 *자비발로라는 것을 자각하면 부처님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