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내가 모든 중생을 보니, 고해(苦海)에 빠져 있음이라. 이런고로 몸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갈앙하는 마음이 나게 하여, 그 마음이 인(因)이 되어 연모케하고 나와서 법을 설하느니.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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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서품(序品)-1-01-02
 
-----그 *아라한(阿羅漢)들의 이름은 *아야교진여(阿若교陳如)*마하가섭(摩r訶迦葉)*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가야가섭(伽耶迦葉)*나제가섭(那提迦葉)*사리불(舍利弗)*대목건련(大目건連)ㆍ마하가전연(摩訶迦전延)ㆍ 아로누다(阿로樓馱)ㆍ겁빈나(劫賓那)ㆍ교범바제(교梵波提)ㆍ이바다(離婆多)ㆍ필능가바차(畢陵伽婆蹉)ㆍ바구라(薄拘羅)ㆍ마하구치라(摩訶拘치羅)ㆍ난타(難陀)ㆍ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ㆍ *부루나 미다라니자(富樓那 彌多羅尼子)와ㆍ*수보리(須菩提)와ㆍ *아난(阿難) *라후라(羅羅) 등이라.-------
 
--왕사성 기사굴산 중에 운집(雲集)부처님직접 제자들,  *오비구아야교진여(阿若교陳如)를 비롯하여 부처님의 아드님인 라후라존자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았습니다.----
 
<아라한들의 이름은->하고 낱낱이 나열되었습니다마는, 한 사람ㆍ한 사람의 내력은 이미 설명되기도 하고, 아직 설명이 안 된 제자는 필요에 따라 앞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치사(前置詞)가 있습니다. 이것은 <(大)>의 뜻입니다. 제자 가운데 같은 이름의 사람이 많아서 제자들끼리 식별하기 위해 이름이 같은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마하 누구(摩訶某)>라고 구별하였습니다. 예컨대, <가섭(迦葉)>이라는 이름이 많아서 그 중에 뛰어난 사람을 마하가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이는 모든 대중(大衆)에게 알려져 있는 큰 아라한(阿羅漢)들이며,---
 
이와 같이 거론 된 *아라한들은 부처님의 직접 제자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견사의 미혹을 끊은 제자,  부처님께서 아끼시는 아라한들입니다.
 
---또 배우고 있는 사람과, 다 배운 사람 이천인(二千人)이 있었으며,(復有學 無學 二千人)----
 
그리고 아직 아라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또 다른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배우고 있는 사람>이란, 유학(有學)입니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다 배운 사람>이란, 무학(無學)입니다. 다 배워서 더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마하바사바제(摩訶波사波提) 비구니는 그의 *권속 육천인(六千人)과 함께 있었으며,----
 
마하바사바제 비구니도 그의 권속, 딸린 겨레붙이 6천인도 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마하바사바제 비구니>는 부처님의 이모님입니다. 부처님의 어머님 마야부인(摩耶夫人)은 45세의 몸으로 *실달태자를 초산(初産)하고 이레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그 때 마야부인의 동생되는 교담미 언니 대신 부처님양육(養育)하였습니다. 그 후, 교담미 이모님은 석가세존께서 깨달음을 여신 후, 마하바사바제 비구니라는 이름으로 제자가 되었습니다.
 
--나후라(羅후羅)의 어머니 *야수다라 비구니도 또한 그의 권속과 함께 있었으며, -----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비(妃) *출가(出家)하여 야수다라 비구니의 신분으로 그의 권속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자 왕사성 기사굴산 중에 자리를 함께 하였습니다.
 
<라후라의 어머니(羅喉羅母)>, 야수다라비는 부처님께서 *실달태자로 계실 때의 부인입니다. 야수다라비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여신 후에 가르치심을 받아 제자가 되었습니다. 불교는 일체 중생에게 다 통하는 * 대자비심교(敎)입니다. 그러나 일체의 인간을 구원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정서(情緖)로 볼 때, 원근친소(遠近親疎), 친한 사람과 친하지 않는 사람ㆍ가까이 있는 사람과ㆍ멀리 있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래도 분별이 없을 수 없습니다. * 오음세간,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먼저 돌보는 것은 인간 본래의 성정(性情)입니다. 만약에 자기의 식솔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웃집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든가ㆍ내나라가 망해 가는데 이웃 나라를 구원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道理)로 볼 때 그리 되지 않습니다. 불교의 이상 *일체중생구제론을 전제했을 때, 원근친소(遠近親疎)선후완급(先後緩急), 먼저 할 일나중에 할 일, 또급히 서둘러야 할 일과 천천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결코 인간을 떠나지 않고 현실을 기반(基盤)으로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 근친의 감화에 무게를 주셨습니다. 왕사성 수행시절에 도반이었던 *교진여를 비롯한 오비구를 찾아가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부왕 정반왕을 비롯하여 아내였던 야수다라비와ㆍ이모이자 양모마하바사바제아드님 라후라ㆍ모두 소중히 생각하고 깨달음을 여신 후, 먼저 가비라성을 찾아가시여 이들에게 인간의 도(道)를 가르쳐 감화시키셨습니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팔만인(八萬人)이 있었으니-----
 
큰 마음을 가지고 부처님이 될 것을 이상(理想)으로 하고 수행하는 사람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삶을 사큰 보살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보살>이란, 범어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축약어입니다. <보리(菩提)>, <깨달음(覺)>입니다. 살타(薩埵)란 <사람(人)>이라는 뜻입니다. 보리살타<깨닫는 사람>입니다.  아직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깨달으면 부처님입니다. 계속 수업(修業)을 쌓아서  circle03_darkgreen.gif 깨닫게 될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에서 <마하>는 <크다(大)>이고, <(薩)> <살타(薩埵)>,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마하살> <큰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통해, <너희들도 모두 나와 같이 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서서히 *용맹정진하는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미혹한 사람들을 모두 구해주고 싶다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그러한 마음을 <큰 마음>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이 되려는 생각, 일체의 인간을 구원해 주고 싶다는 그러한 사람을 <마하살>, <큰 사람>이라고 합니다.<큰 사람>을 다른 말로 마음이 큰 사람 이라해서 대심지사(大心之士)>라 합니다. 곧 대사(大士)라고 하며. 보살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을 분명히 말씀하셨으므로, *대승교를 배우는 사람은 다 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여자경계하는 경우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석가여래의 제자 가운데 젊은이들이 가끔 여자의 용자(容姿)에 빠져서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므로 그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여자는 위험하다여자는 무섭다--ㆍ고 하셨습니다..
또하나는, 문화(文化)의 정도가 낮은 고대 사회, 인간생활의 초기(初期)에는 자연히 체력이 우수한 남자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한 습관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부득이 사회적 기능면에서 남자가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중요한 일을 맡게 되니까, 남자는 교육열이 높고 여자는 책임도 가벼우니까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므로 생존의 논리면에서 여자는 남자보다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여자는 억압(抑壓)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게 되니까 자연히 마음이 비뚤어지고 의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고집이 세어지고 여자는 질투심이 강해지는 세상의 통례(通例)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여자를 경계하신 듯한 말씀을 하신 것은 결코 여자를 소홀히 하고 멀리 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자로 하여금 반성하게 해서 남자에게 지지 않도록 분발(奮發)하라는 *자비심입니다. *대승 불교에서는 결코 남녀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남자여자 모두 수행해서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면, 다같이 *부처님의 지혜를 연다고 하셨습니다. 남녀 다같이 *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다같이 부처님의 지혜를 연다고 하셨습니다.
불교는 남녀의 차별이 없지마는 고대인도 *사성계급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 뒤떨어졌으므로 그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여자 쪽으로 더 많이 여러 가지 훈계(訓戒)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 부처님의 참마음이 그대로 보입니다.
<팔만인(八萬人)>이란, 이미 *수사(數詞)의 개념에 대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확하게 한 사람ㆍ두 사람 세어서 팔만인(八萬人)이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운집했다는 뜻입니다.
 
-----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뇩多羅三막三菩提)에서 물러서지 아니하고,(不退轉)-----
 
보살부처님의 지혜를 얻겠다는 목적으로 수행합니다. 고로 수행 할 때에는 중도에서 뒤로 물러서거나 중간에 마음이 다른 데로 빠지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될 것을 이상(理想)으로 하는 사람들은 신심(信心)을 중도에서 그치거나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범어입니다. <(阿)>자는 한문으로 번역하면 <(無)>자에 해당(該當)합니다. 경전에서 <(無)>자는 언제나 부정(否定)하는 뜻입니다.
* 아미타불<(阿)>도 역시 <무량(無量)>하다는 <(無)>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녹다라(녹多羅)>(上)라는 뜻입니다. 고로 <아뇩다라><무상(無上)>, < 위에 다시 없다>는 뜻입니다. <삼막(三막)>(三)이란 뜻이 아니고, 범어의 발음(發音)한문으로 적은 것 뿐입니다. 예컨대, <나무(南無)>도 범어의 발음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일 뿐, 한문자의 뜻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삼막><정(正)>, 바르다는 뜻입니다 <(三)><(遍)>, 넓음입니다. <보리(菩提)>지혜(智慧)입니다. 전체를 한문으로 표현하면 <무상정변지(無上正遍知)>입니다. - 이상의 것은 없다가장 뛰어난 지혜다--하는 뜻으로서 *부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부처님의 지혜 이 위에 다시 없이 뛰어나며 바르고 모든 사물에 널리 미쳐서 무엇이나 모르는 것이 없다는 그런 지혜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줄인 말로<불지(佛智)> 또는 <묘지(妙智)>라고 합니다.
<물러서지 아니하다(不退轉)>란, 보살은 부처님이 될 때까지 절대신심을 그치지 않습니다. 대승 수행에서 갖추어야 할 불제자(佛弟子)덕목, 신심자격(資格)입니다.
 
---모두 *다라니(陀羅尼)와 요설변재(樂說辯才)를 얻어 항상 법문(法門)을 설하며(轉法輪)--
 
 수많은 불퇴전보살들선(善)을 발전 시키고 누르는 그러한 좋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고 주저 앉지 않고  더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치심귀의하도록 하는 교학불사 *용맹정진합니다.
 
<다라니>는<총지(總持)>라고 번역합니다. <(持)>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善)>을 선택하여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는 <()>잡아서 일으키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善)을 선택한다><(惡) 잡아 누른다>는 두 가지 뜻입니다.
<(善)>을 선택한다→내가 착한 일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그것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오늘은 좋은 일을 했지만 내일그만두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때로는 좋은 일을 하지만, 오래 되면 모처럼 실행한 좋은 일을 그만두어 버립니다. 일단 좋은 일을 하였으면 그 선행(善行)을 오래도록 보존해서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惡)>은 잡아 누른다→ 나쁜 일을 저질렀으면 그것을 억눌러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때때로 한 일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지만, 자칫 한 일을 다시 저지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한 일은 잡아 눌러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설변재(樂說辯才)>에서 요설(樂說)이란, 언제나 기꺼이 교(敎)를 설하는 것입니다. 만약 약속이나 책임이 있으니까 하는 수 없이 설한다거나ㆍ피로하고 싫증 내는 마음으로 를 설하면 요설이 아닙니다. 불법이란 지극히 존귀한 것이므로 그 존귀한 가르치심을 남에게 설할 때에는 언제나 기꺼운 마음으로만족한 마음으로 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듣는 편이 설하는 말을 모두 만족해서 들어 주면 좋지만, 때에 따라서는 듣지 않고 비웃거나ㆍ욕하거나ㆍ하더라도 성내지 않고 기꺼운 마음으로 를 설하는 것이 진정한 요설입니다.
<변재(辯才)>란, 를 설하는 입니다. 요설(樂說)의 마음으로 기꺼이 를 설하면,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가는 강력한 힘을 말합니다.  변재란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심이 있으면 자연히 그 사람의 말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말재주가 좋아도, 속마음이 이에 따르지 아니하면, 절대로 남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언제나 부처님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서 어느 때라도 를 설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그러한 마음이 그대로 계속되면, 저절로 그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설변재>라고 합니다.
<항상 법문(法門)을 설하다>란, , 法華經 가르치심A에서 B로ㆍB에서 C로ㆍ계속하여 전해가는 것을 *전법륜(轉法輪),  <법륜을 굴린다>고 합니다. *법륜이란, 를 세상에 펴는 것이 마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굴러가는 것같다는 것입니다. 보살은 도중에서 물러서지 않고 어떤  간난(艱難)곤고(困苦) 가운데서도, 꾹 참고 * 인욕(忍辱)하여 불퇴전법륜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량 없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가지가지의 *덕본을 심어,----
 
왕사성 기사굴산에 모인 수많은 큰 보살들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세상에 널리 펴서 세상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불도에 귀의하도록 마음의 근본을 든든하게 하였습니다.
 
<부처님께 공양하다>란,고맙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해서 부처님께 물건을 바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法華經 가르치심을 실행하는 것,*경공양(敬供養)ㆍ행공양(行供養)으로 法華經이 세상에 널리 펴지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덕본>이란,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마음입니다. 모든 선(萬善)한 마음(一心)에서 나옵니다. 그 하나마음근본(根本)입니다. 모든 선행(善行), 선한 일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말단(末端)입니다. *근본과 말엽의 관계입니다. 교육을 통해 마음의 근본을 배워서 자신의 정체성이 세워지면, 그 착한 마음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인류 평화를 전제하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근본을 든든하게 해 놓지 않고서, 갖가지 좋은 말을 늘어 놓는 것만으로는 좋은 일을 못합니다. 학교에서 일심(一心), 한 마음을 가르치지 않고,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부모에게 효도해라나라를 사랑하라친구에게 친절해라>등등 좋은 말을 조목(條目)  조목 나열(羅列)해서 만 가르치면 유연성(柔軟性)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는 예상하지 못하는 뜻밖의 복병(伏兵)이 많습니다. 마음의 근본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조목을 늘어 놓는 것으로 그치면, 좋은 일들이, 충돌로  모순(矛盾)이 생깁니다. 가령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사람은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약속을 어기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고 가르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이라 열심히 듣습니다. 다시 아버지는 <욕심을 버려라남에게 친절해라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하면 아들은 그렇겠구나 하고 수긍합니다. 어느날 아들은 친구와 등산 가기로 약속 하고, 아침 7시까지 어디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는데, 버스를 탈 사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약속을 지켜서 7시까지 가려면 양보하지 말고 남을 떼밀고 버스를 타야 하겠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양보해야 하고 도저히 7시까지 약속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으니까, 아버지의 말이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그 뒤부터는 부모 앞이라 듣는 척 하고 한 귀흘려버립니다. 가정에서부터 불신(不信)이 틉니다.
학교에서 졸업생들에게, <세상은 모두 잘못 되어 있으니까, 너희들은 정도(正道)를 지켜서 정직(正直)할 것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한편에서는, <너희들은 부모님께 효도해라. 출세해서 돈을 벌어 부모를 편안하게 모셔라>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보면 정직하기만 해서는 출세하기가 어렵습니다. 출세를 하려면 부득이 거짓말도 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출세해서 부모에게 효도할 것인가, 아니면, 정도(正道)를 지켜서 정직하게 살 것인가 하는 이 두 가지가 양립이 안되고 충돌합니다. 부모를 위해서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며 사는 것이 좋을까ㆍ아니면 부모를 풍족하게 모시지 못하더라도 사회정의를 위해 정직하게 살 것인가ㆍ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아무려면 어떠냐ㆍ술이나 마시고 오늘 하루 유쾌하게 보내면 그만이다ㆍ하는 생각으로 허송 세월을 보내고 맙니다.
이와 같이 인간 사회가 복잡하면 좋은 말을 아무리 조목 조목 늘어놓고 가르치지만, 세상은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으로 되지 않고 오히려 선(善)선(善)이 양립하지 못하고 충돌합니다.
그러나 근본 마음이 확고하게 서면, 환경과 조건따라 을 넘나들며 자유자재로 통섭(通攝)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남을 먼저 타게하고 자기는 나중에 탈 경우도 있을 것이고, 급하다 싶으면 남을 밀치고 타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앞뒤의 사정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의 삶에는 선후완급(先後緩急)이 있고 원근친소(遠近親疎)가 있게 마련입니다. 환경과 조건따라 올바르게 분별하여 적당한 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일심(一心), 마음의 토대(土臺) 자아경계를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세상 한없이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틀에 박은 듯이 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을 전제한 승승(勝勝)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근본되는 마음이 소중합니다.
분명코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지혜자비심당체이신 부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큰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일에 부딪치더라도, 상황에 따라 가장 알맞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토대ㆍ자아경계를 기르라는 法華經 가르치심받아가지는 것입니다.
사소한 자기의 이해득실(利害得失)에 빠지지 아니하고, 마음을 넓게 키워서 그 때 그 때 바람직한 생각이 떠올라 올바른 처리를 할 수 있으면 바로 그것이 덕본의 작용인 것입니다. 를 배워 모든 착한 일을 하는 근본이 되는, 그 마음의 토대를 기르지 않고서 단지 형체(形體)만 배우는 것으로 그치면 나날이 변천(變遷)해 가는 세상에서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마음의 근본을 부처님과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 <덕본을 심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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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근친의 감화
 
인간이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을 감화시키기는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가족은 같은 생활권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결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감동시키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는 금시 한다는 소리가, <누가 아버지 찾거든 없다고 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는 날더러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하시면서 아버지는 거짓말을 하신다>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화경 서품에는 인간계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천상계 *팔부신중이 다 등장하여  法華經 가르치심을 듣고자 모여왔다는 것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래서 정반왕가권속들 일체가 석가여래께 귀의해서 가르치심을 들었다는 것은 실로 석존성덕(聖德)이 얼마나 높았던가 하는 것을 잘 증명하는 법화회상의 현장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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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깨닫게 될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자력(自力), 자기 혼자서는 깨달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으려면, 자각(自覺), 자기가 깨닫는 것과, 각타(覺他), 남을 깨닫게 한다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힘써야 합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자타(自他), <너와 나> 양쪽에 걸쳐서, 미혹을 제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각각타양쪽에 다 미혹이 없어져서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힘써야만 진정한 깨달음을 열게 됩니다. *보살<깨닫는 사람>이라고 하는 그 깨달음도 혼자서 깨닫고자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도 깨닫고 다른 사람깨닫는 길로 인도해 들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이른 바 보살입니다. 法華經 수지신앙(受持信仰)으로 보살심을 일으키는 사람, <초발의(初發意) 보살>이, <자기가 깨닫는 동시에 남도 깨닫게 한다>하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수업(修業)을 쌓으면  보살반열 *용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