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통력이 이와 같아서   아승지겁에   항상 영축산과 다른 모든 곳에 있노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무량의경(無量義經) 설법품-2-02-06
 
------이런고로 선남자야, 내가 *도(道)를 얻고 처음에 일어나 법을 설함으로부터 오늘 *대승(大乘)무량의경을 설함에 이르기까지 아직 일찍이 (苦)와ㆍ(空)과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비진(非眞)ㆍ비가(非假)ㆍ비대(非大)ㆍ비소(非小)하여 본래 생(生)하지도 아니하고 지금도 또한 멸(滅)하지도 아니하며, 일상(一相)ㆍ무상(無相)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불래(不來)ㆍ불거(不去)나 모든 중생이 네 가지의 상으로 옮겨진다고 설하노라. ----
 
--- 내가 깨달음을 얻고 처음으로 비구들을 상대하여 교(敎)를 펴기 시작한 이래 오늘 무량의경을 펴는 이 시점에 이르러서도, 이 세상에서의 생활에는 아무도 만족이 없다는 <(苦)>와 ㆍ 이 세상은 갖가지로 괴롭지마는 수행을 쌓으면 부처님의 경지,  차별없이 인간은 결국 한 곳에 귀착한다는 <공(空)>과 ㆍ 이 세상의 온갖 차별은 쉴 사이 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과 ㆍ 현재의 자기의 위치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 현재에 집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무아(無我)>와 ㆍ 어떤 사물을 가리켜 참이다 또는 거짓이다 하고 차별하는 데, 그러한 현상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비진(非眞)ㆍ비가(非假)>와 ㆍ 어떤 사물을 가리켜 크다느니ㆍ작다느니 차별로 보고 <비대(非大) ㆍ 비소(非小)>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로 생멸(生滅)의 변화가 있지마는 그러한 세상의 변화를 초월해서 진실의 이치를 생각해야 한다.   본래 생(生)하지도 아니하고ㆍ지금도 또한 멸(滅)하지도 아니한다.   모든 것은 일시적현상이다. 일시적인 것에 얽매여서 참이다ㆍ거짓이다 라고 한다거나ㆍ세상에 나타나는 사물의 모양이 크다ㆍ작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로 차별하지마는 그 근본은 하나다. 모두 *진여 근본자리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차별을 초월하는 이치가 있다는 <일상(一相)ㆍ무상(無相)>과ㆍ 일체의 사물은 제각기 다른 형상이 있고 제각기 다른 성질이 있다는 <법상(法相)ㆍ법성(法性)>과ㆍ가고 오는 것이 없다는 <불래(不來)ㆍ불거(不去)>,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얽매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모든 중생에게 생겨나고(生)머무르고(住)변하고(異)멸한다고(滅)  설(說)하는 것이다.---
 
<네 가지의 상으로 옮겨진다>에서 <네 가지 상>은  생겨나고머무르고변하고멸하는 것,  사물이 생겼다가는 얼마 안가서 없어지는 *사상,  <생주이멸>을 말합니다.
<옮겨 진다>는 것은, 눈앞에 나타나 보이는 일체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變化)합니다. 그러한 사물의 변화에 쏠리여 항상 마음이 흔들려서 이랬다 저랬다 하며 마음이 지배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남자야, 이러한 뜻이 있는 까닭으로 하여 일체의 부처님은 두 가지의 말씀이 없느니라. 능히 한 말씀으로써 널리 모든 중생의 여러 가지 말에 응하며, 능히 한 몸으로써 백천만억(百千萬億) 나유타의 한량 없고 수없는 항하사의 몸을 보이느니라. 하나 하나의 몸 가운데서 또한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항하사의 가지가지의 종류와 형용을 보이느니라. 하나 하나의 형용 가운데서 또한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항하사의 형용을 보이느니라. ----
 
----보살들이여, 모든 부처님의 가르치심의 근본은 다르지 않다. 모든 부처님은 다 똑같은 마음으로 중생구제를 전제하고 똑같이 하신다. 어떤 범부라도ㆍ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ㆍ아무리 악(惡)한 사람이라도ㆍ  불성(佛性)이 있어서 결국은 깨달음을 열어서 부처님 경지에 이르게 하려는 생각으로 를 설하시기 때문에 다른 말씀(二言)이 없으시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언제나 같지마는 그 말씀을 듣는 중생의 마음,  모든 사람의 바라는 바는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르다. 그래서 구하는 바에 따라 각각 그에 알맞는 가르치심을 주신다. 부처님이라는 존재는 오직 하나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무량무수(無量無數),  한량 없이 많은 몸을 나타내 보이신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환경이나 경우에 따라ㆍ법(法)을 듣는 사람의 처지나 성질에 따라, 을 듣는 상대에 따라 각각 알맞는 모습을 나타내어, 그에 알맞는 가르치심을 하신다.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부처님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부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시어 가르치심을 하시기도 한다. ------
 
-----선남자야,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은 불가사의(不可思議)의 경계이니, *이승(二乘)이 알 바가 아니며 또한 *십지의 보살도 미칠 바가 아니니라.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이를 능히 연구해 마치심이라.--------
 
 ----보살들이여, 모든 부처님이 때로는 부처님이 아닌 모습으로 나타나서, 모든 사람에게 각각 그에 알맞는 가르치심을 설하시는 데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경지다. 인생 무상을 느끼고 세상을 벗어난 생활로 만족하는 정도의 성문이나 연각의 신분으로는 알지 못한다.   보리심을 일으키고 보살행을 쌓은 *십지보살이라도 부처님의 진정한 힘이 어떤 것이며, 그 힘이 얼마나 크고 넓은가를 짐작조차 못한다. 오직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신 모든 부처님만이 부처님의 경지가 얼마나 거룩하고 뛰어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은 불가사의의 경계이다>라는 것은 글자대로 해석하면, 너희들 모든 중생은 부처님이 아니니까 부처님의 자리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은 지금 범부이지마는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앞뒤가 서로 거들어서 法華經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나는 범부이니까 수행을 쌓아야 한다>고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는 마음과, 아울러 <나는 범부이지마는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커다란 희망과 자각을 안겨줍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에게 반성촉구하며  동시에 다시 희망을 주십니다.
 
----선남자야, 이런 까닭으로 내가 설하노라. 미묘하고도 심히 깊고 위없는 대승의 무량의경은 문리(文理)가 진정(眞正)하고 존귀하여 다시 더할 바가 없느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함께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바이니, 모든 마(魔)와 외도는 들어오지 못하고 일체의 사견(邪見)과 생사에 헐려 이를 무너지게 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만일 속히 *무상보리를 이룩하고자 하면, 응당 이와 같은 심히 깊고 위없는 대승의 무량의경을 닦고 배울지니라.------
 
-----보살들이여, 나는 지금 미묘하고도 뜻이 깊어 이 위에 다시 없는 무량의경한다. 무량의경문리(文理)진정(眞正)하다.   모두가 진실이고 틀림이 없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므로 로서 이 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이것을 참되고 올바르게 이해하면 지금은 범부라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  과거ㆍ현재ㆍ미래에 걸쳐 나오시는 모든 부처님이 다 함께 지키고 보호하신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가 세상에 널리 펴져서 모든 중생이 구제 받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이 무량의경의 깊은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면, 비록 지금은 범부이지마는 수행을 쌓아 가면 장차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떤 장애가 있다든가ㆍ어떤 괴로움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용기가 꺽이는 일이 없다. --
 
<모든 마(魔)와 외도(外道)는 들어오지 못한다>란, 무량의경이 너무도 거룩하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특히 타종교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일체의 사견과 생사에 헐려 무너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세상의 가지가지 물질세계의 변화에 의해 자기의 마음이 갈팡질팡 하지마는 무량의경을 믿고 수행하는 사람은 그러한 천박한 세상 일 때문에 마음이 헝클어진다거나, 또한 세상 일 때문에 중도에서 불도(佛道) 수행을 그만두게 되는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대승 수행하고 있는 <보살마하살>이 다른 길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법화삼부경본론(本論)法華經이 전제된 무량의경 수행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하여 *즉신성불한다는 말씀입니다.
 
   
 
              불성(佛性) 불성무아(無我) → * ②불성(佛性) *① 마음   
 
                                                                           불교성경-p199~p209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몸과 마음은 인연(因緣)에 의하여 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 몸은 내가 아니라 인연(因緣)이 모인 것이요, 따라서 무상(無常)한 것이다. 만약 몸이 나의 것이라 할 것 같으면 나의 몸은 이렇게 하라 하면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지 말라 하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같이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내 것이라면, 마치 이 한 나라를 통치하면서 벌(罰)을 줄 자는 벌 주고, 상(賞)줄 자는 상(賞)을 주어서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는 것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은 병(病)을 원하지도 않는데, 을 앓고, 늙기(老)를 바라지 않는데 늙어서 하나도 나의 생각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몸은 나의 것이 아니요, 인연의 모임으로 출생한 것이어서 변천무상(變遷無常)함을 알 게 된다.-----파리증지부 소살차가경에서--
 
만약 마음이 나의 것이면 이렇게 하자 하면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지 말자 하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악(惡)을 생각하고, 원하지 않는데 선(善)을 멀리하여 하나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되어가는 것이 없다.--파리증지부 소살차가경에서--
 
또 세상에는 네 가지 진실한 이 있으니, 첫째모든 생명 있는 것은 다 *무명(無明)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일이요, 둘째 모든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무상(無常)하고 괴롭고 변천한다는 일이요, 셋째 모든 존재하는 것은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한다는 일이요, 넷째 나와 나의 것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체는 다 무상하여 변천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어떠한 것이라도 나(我)가 없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셨거나 출현하시지 않았거나 언제든지 결정되어 있는 진리이다. 부처님은 이것을 알고 이것을 깨달아서 가르치고 지도하시는 것이다.--파리증지부 소살차가경에서--
 
사람에게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면 이교도(異敎徒)들이 말하는 나(我)와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왜냐하면, 나(我)는 부정(否定)하지 않으면 안되는 *집착인데 대해, 불성(佛性)은 계발(啓發)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보배인 까닭이다.
불성(我)와 같으나 (我)는 아니다. 나(我)가 있다고 생각함은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거꾸로 보는 견해(見解)요, 불성이 없다고 부정함도 있는 것을 없다고 거꾸로 생각하는 견해이다.
어린아이가 이 들었을 때는 의사에게 보인다. 의사는 약(藥)을 주며, 이 이 속에 들어가 소화되기 까지는 젖을 주지 말라고 이른다. 그래서 어머니는 젖에 쓴 물을 발라서 아이가 젖을 싫어하게 한다. 그 뒤에 아이가 마신 이 다 소화되었을 때에 어머니는 젖을 물로 씻어 버리고 어린애 입에 대고 <아가, 아가, 먼저는 네가 먹은 약이 효과 있게 하기 위해 쓴 것을 발랐지만,  지금은  때가 지나서 씻어 버렸기 때문에 젖이 쓰지 아니하니 빨아 먹어도 좋다>고 이른다. 아이는 그대로 알고 젖을 빨아 마신다.
꼭 이와 같이 세상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나(我)의 집착을 벗겨 주기 위하여 나(我)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잘못된 견해를 버리게 한 다음에는 다시 불성이 있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我)에 대한 집착은 어리석고 망녕된 경지로 인도하지만, 불성(佛性)은 바른 깨달음으로 들 게 하는 까닭이다.---대반 열반경에서--
 
황금을 담은 석함(石函)을 땅에 묻어 놓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 생활을 하는 여자가 있을 경우, 그 여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지혜있는 자가 그 황금이 담긴 석함을 파내주는 것과 같이,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불성을 계발하여 저들에게 보여주신다.---대반 열반경에서--
 이 몸은 영원한 것이냐무상한 것이냐ㆍ하고 묻는다면, 누구나 무상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무상한 것은 고(苦)가 되는 것이냐ㆍ낙(樂)이 되는 것이냐ㆍ하고 물으면, 누구나 다 괴로운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무상하며 변천하고 괴로운 것은 나(我)요, 또 나의 것(我所)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대반 열반경에서--
 
마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나(我)가 아니다. 그렇다고 보면, 이 몸둥이로 인연하여 성립된 몸과 마음과 경계는 다 같이 나(我)나의 소유(我所)를 여의고 있다. 다만 지혜가 없는 허망한 마음이 나요, 나의 것이다고 집착함에 불과 하다. 몸과 경계도 인연에 의지하여 난 것이기 때문에 변(變)하고 옮겨서 잠깐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들어서,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왜냐 하면 몸과 마음의 집착을 여의게 될 때에 도(道)를 깨닫게 되는 까닭이다.-------대반 열반경에서--
기이하고 기이하다. 어째서 여래의 구족한 지혜가 그 몸에 있건마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가 ? 내가 마땅히 저들 중생을 가르쳐 * 팔정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망상을 깨고 속박을 영원히 벗어나, *여래의 지혜가 그 몸에 있어서 부처님과 다름 없음을 익히 보게 하리라. --화엄경에서--
 여래는 곧 중생을 가르쳐 팔정도를 닦아서 허망ㆍ전도(顚倒)를 버리게 하고, 그리고 여래의 지혜를 갖추어 여래와 같게 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신다.----화엄경에서--
부처님의 눈으로 일체 중생을 자세히 살펴 보면, 욕심ㆍ성냄ㆍ어리석음의 모든 번뇌 중에 여래의 지혜여래의 눈(眼)여래의 몸(身)이 있어서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일체 중생이 비록 *육도(六道)를 헤매고 있으나, 번뇌의 몸(身)속에 여래장(如來藏)이 있어서 항상 물들지 않고 덕상의 구족함이 나와 다름이 없다. --대방등여래장경에서--
 
비유하면, 천안(天眼)이 있는 사람이 아직 피지 않은 꽃을 관(觀)할 때에, 그 모든 꽃속에는 여래의 몸이 있어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것을 보고, 그 시들은 꽃을 떼어 버리면 여래의 몸이 곧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중생의 여래장을 보시고 그것을 피게 하고자 하여, *진리하여 번뇌를 없애 버리고 불성이 나타나게 하신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그러하다,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거나 세상에 계시지 않거나, 일체 중생의 여래장은 영원히 변하지 아니하건마는, 중생이 번뇌에 덮여 있으므로 여래가 세상에 태어나 널리 가르침을 하사 번뇌의 티끌을 없애 버리고 *일체지를 밝히시는 것이다.----대방등여래장경에서--
 
나(我)라고 하는 것은 곧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뜻이니,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그것이 곧 (我)다. 그러나 나(我)는 항상 무량한 번뇌에 덮여 있기 때문에 중생들은 능히 그것을 얻어보지 못하는 것이다. -----대반 열반경에서--
한 여인의 집에 많은 순금의 창고가 있었으나, 그 집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나 알지 못했다. 그 때에 다른 사람이  좋은 방편으로 가난한 여인에게 말했다. <내 지금 너에게 품삯을 줄 터이니, 너는 나를 위하여 김을 매라. 그러면 내가 그 순금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
여인이 답하기를, <나는 할 수 없다. 네가 만일 능히 우리 아들에게 순금의 창고를 보여 준다면, 그 때에 나는 그대를 위하여 일을 하리라>
<내가 방편으로 능히 그대 아들에게 보이겠다>
<우리 집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아무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그대가 어찌 능히 알겠는가>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안다>
<나도 또한 보고 싶으니 내게도 보이겠는가 ?>
이 사람이 곧 그 집에서 순금을 파내니, 여인은 그것을 보고서야 마음이 기쁘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내어서 그 사람을 우러러 보았다. 중생의 불성(佛性)도 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이 능히 불성(佛性)을 얻어 보지 못하는 것은 순금의 창고를 가난한 여인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내 이제 널리 일체중생이 소유한 불성이 모든 번뇌에 덮이고 가린 바 되어서, 저 가난한 여인이 순금장이 있으면서도 능이 볼 수 없었던 것과 같음을 보이겠다.---대반 열반경에서--
 
*여래가 이제 널리 중생의 깨달음의 보배의 창고인 불성(佛性)을 보이셨으므로, 모든 중생은 이것을 보고서야 마음에 환희를 일으켜 여래에 귀의하게 되었다. 좋은 방편이라 함은 곧 여래요, 가난한 여인이라함은 곧 일체 무량한 중생이요, 순금의 창고라 함은 곧 불성을 말한 것이다. ----대반열반경에서--
 
옛날 어떤 사람이 심부름으로 멀리 가다가 어떤 빈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밤중에 한 귀신이 죽은 사람 시체를 짊어지고 와서 나그네 앞에 내려 놓았다. 조금 후에 다른 귀신이 쫓아와서 먼저 온 귀신을 보고 꾸짖었다.
<이 시체는 내 것인데, 네가 왜 짊어지고 왔느냐?> 두 귀신은 각각 한 팔씩 잡고 서로 다투다가 먼저 온 귀신이 말했다. <여기 사람이 있으니 물어 보자>고 하였다.
먼저 온 귀신은 <이 시체는 누가 짊어지고 온 것인가?> 하고 나그네에게 물었다. 
그 때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두 귀신은 힘이 세다, 나는 사실대로 말해도 죽을 것이요, 거짓말을 해도 죽을 터이니, 이왕 죽을 바에는 어찌 거짓말을 하랴 하고, < 먼저 온 귀신이 짊어지고 왔다>고 했다. 뒤에 온 귀신은 크게 노하여 그 사람의 팔을 잡아 빼어 땅에 놓았다. 그러자 먼저 온 귀신은 죽은 사람의 한 팔을 빼어서 다시 이 사람에게 붙여 주었다.
이렇게 이 두 팔과ㆍ두 다리와ㆍ머리를 모두 빼어 놓고, 그 대신 죽은 사람의 몸으로써 계속해서 붙여 본래와 같이 만들었다. 그리고 두 귀신은 함께 바뀐 사람의 몸을 먹고 입을 닦으며 가버렸다. ---중경찬잡 비유경에서--
그 사람은 생각하기를,-- 우리 부모가 낳은 내 몸은 두 귀신이 다 먹어 버렸다. 지금 내 이 몸은 모두 남의 몸이다. 그러면 지금 나는 확실히 있는 것인가 ? 없는 것인가 ?  만일 있다면 그것은 남의 몸이요, 만일 없다면 지금 현재의 몸은 무엇인가 ? 이리하여 그 사람은 마음이 어둡고 어리석어 미친 사람같이 되었다. 그 이튿날 길을 떠나 목적한 곳에 이르러 부처님께 나아가 우선, <제 몸이 있습니까ㆍ없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하고 물었다.
<저 자신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고, 곧 자기가 당한 일을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나(我)가 없음을 스스로 아니, 득도(得道)시키기가 쉽겠다--하시고, 이내
<네 몸은 본래부터 나(我)가 없는 것이다. 이제 와서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대(四大) 화합한 것을 일러 말하기를 내 몸이라 할 뿐이다>라고 제도하여 도(道)를 닦게 하니, 그는 모든 번뇌를 끊고 아라한도를 얻었다. 그러므로 능히 *무아(無我)를 알면 를 얻는 일이 멀지 않다고 해야 한다.---중경찬잡 비유경에서--
 
옛적에 묵은 집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이 집에 항상 악귀(惡鬼)가 있다 하여 두려워 감이 접근하지 못했다. 그 때에 한 사람이 있어 스스로 대담하다고 자처했다. <내가 이 집에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리라> 하고 곧 묵은 집에 들어가 머물렀다.
그 때에 또 한 사람이 있어 역시 스스로 담력과 용기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자처했다. 그 집에는 항상 악귀가 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곧 그 집에 들어가려고 문을 밀었다. 그 때 먼저 들어간 사람은 이것을 귀신으로 생각하고, 곧 문을 걸고 가로 막으며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뒤에 온 사람도 또한 귀신이 있어서 막는다고 생각하여 두 사람은 밤새 싸웠다. 날이 밝은 뒤에야 서로 얼굴을 보고 비로소 귀신이 아닌 것을 알았다.
온갖  세상 사람도 모두 이와 같아서, 인연으로 잠시 모였을 뿐, 주재(主宰)하는 실체는 없는 터이다. 낱낱이 분석해 보면 어디에도 나(我)란 것은 없다. 그런데 모든 중생이 그릇 시비를 만들어서 서로 다투고 분쟁하는 것은 저 두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백유경에서--
 
 
                    잠깐 !     .   보리심(菩提心)
 
진정한 불교의 수행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적인 상태가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사가행입니다.  사가행의 마지막인 세제일법, 불교가 세상의 온갖 가운데서 가장 위라는 확신을 갖고 그 때부터 불교를 열심히 배우게 됩니다. 불교를 믿게 되는 준비단계로 사가행을 거치고 나면 심신풀이나 장난삼아 불교 신앙하던 사람도 정성들여 수행하여 드디어 성문의 *사과 단계에 이릅니다.
 
이어서   성문 단계를 지나 더 나아가면 *벽지불, 연각 단계에 이릅니다.
 
여기서 다시 더 나아가 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는 경지에 이릅니다.
 
보리심이란,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려는 목적을 가지고 수행하는 마음입니다.
보리심 단계에 이르면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성문 단계에서 시작하여 연각 단계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보살십지 단계로 나아가 *부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