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중생이 나의 멸도함을 보고  널리 사리에 공양하며  다 연모마음을 품어  갈앙하는 마음을 냄이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무량의경(無量義經) 설법품(說法品)-2-02-01-
 
*무량의경 법화경(法華經)의 개경(開經)이라 하고, *불설 관보현보살행법경, 곧 관보현경을 法華經의 결경(結經)이라 하여, 法華經과 아울러 *법화삼부경이라고 합니다. 개경이라는 뜻은 진실의 가르치심 法華經을 설하실 것을 전제(前提)합니다. 결경이라는 것은 *일체중생구제론을 전제한 *일불승 법화경귀착점이 어디냐 하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뜻입니다.
 
석가세존께서는 어느 경전이나 혼신(渾身)의 힘을 쏟아 설하셨지마는, 法華經 이전의 경(經)은 부처님의 뜻을 완전히 털어놓은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진실의를 나타내지 않았다고는 하셨지마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설(說)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처님의 생각을 모두 털어 놓은 *수자의교에는 미치지 않으셨다는 것 뿐입니다. 석가세존께서는 40 여 년의 방편설을 마치고 이제부터는 진실의(眞實義)를 그대로 하시게 된다는 것이 무량의경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무량의경개경이요 법화경본론이라 합니다. *무량의경에서는 40 여년 동안에는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셨고, 法華經에 이르러서는 방편(方便)을 버리고 진실(眞實)한다고 하셨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40 여 년 교화에서 법(法)을 설하실 때마다 이 경(經)이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다시 法華經에 이르러서도 法華經이 가장 뛰어난 이라고 하신 그 깊은 뜻을 포착할 것을 전제하셨습니다.  무량의경法華經함께 읽으면, 法華經 가운데 해 있는 가르치심의 뜻,  부처님의 참마음포착하게 됩니다.
 
무량의경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치심한량 없는(無量) 뜻(義)이 있음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자식으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한 마음에서 상대의 힘에 따라ㆍ시대에 따라ㆍ 경우에 따라ㆍ알맞게 하십니다.  무량의는 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여 부처님의 가르치심 전체의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한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한 마음이란, 하는 편에서 말하면 석가여래의 큰 자비의 힘이요, 듣는 편에서 말하면 부처님과 일치하는 마음입니다. 하는 사람과 는 사람의 마음이 일치해지면, 모든 것을 다 환히 알아집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이란 무엇이며 부처님과 일치하는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무량의경만으로는 교(敎)로서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法華經 관점에서 말한다면 法華經의 전제로서 무량의경이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무량의경 관점에서 말한다면 무량의경만 설해서는 무의미(無意味)하므로 法華經을 아울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량의경의 조직은 세부분으로 나뉘었습니다. 첫째덕행품둘째설법품세째십공덕품 입니다. 이 세품의 중심을 이루는 핵심이 설법품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 동안 무엇을 목적으로 설법하셨는가ㆍ어떤 순서로 하셨는가ㆍ결국 어디에 귀착하는 것인가 하는 이른바 부처님의 설법에 대한 대체의 설명을 하신 것이 설법품입니다. 이 설법품을 설하신 준비로서 설하신 것이 첫째의 덕행품입니다.
덕행품은 석가여래는 어떠한 부처님인가 하는 것을 보통 인간이 설명한 것이 아니라 덕(德)이 매우 뛰어난 *보살,  <대장엄보살마하살>이 설명한 것입니다.
석가여래설법은 어떤 목적에 의한 것인가를 밝히기 전에 석가여래께서 갖추고 계신 을 말했다는 것은 참으로 용의주도한 테크닉입니다.
그러면 석가여래가 어떠한 부처님이신가를 알고 이 고마우신 부처님께서 지금까지 40 여년 동안이나 하신 가르치심은 어떠한 것일까, 또 앞으로도 가르치심하실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떠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일으키면서 * <무량의경 설법품 제 2 >를 열겠습니다.
 
---그 때 대장엄보살마하살이 팔만의 *보살마하살과 함께 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여 마치고 다 함께 부처님께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우리들 팔만의 대중은 지금 *여래의 법 가운데서 묻고자 하는 바가 있나이다. 어찌하오리까, 세존이시여, 불쌍히 생각하사 들어 주시옵소서. ---
 
대장엄왕보살은 8만명의 보살들과 함께 덕행품 제 1에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찬송을 하고 나서, 다시 일제히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세존이시여, 지금 저희들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의 근본적인 것을 한 가지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지혜(智慧)가 부족합니다.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들의 질문을 받아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과 팔만의 보살에게 이르시되,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이 때를 잘 알았노라. 너희 뜻대로 물으라. 여래는 오래지 않아 마땅히 *열반(涅槃)에 들리니, 열반한 후, 널리 일체로 하여금 다 의심이 없게 하리라. 무엇을 묻고자 하느뇨, 곧 말하라. ---
 
---착하고 거룩하다. 지금이 바로 그런 질문을 할 가장 좋은 시기다. 나는 40 여 년간 하고, 이제 오래지 않아 이 세상떠나려고 하니 지금 들어두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너희 뜻대로 하라. 너희들이 알고 싶은 일이 있거든 무엇이든지 자유로히 물어보아라. 내가 죽은 뒤에, 후세 사람들이 의심을 품는 일이 없도록 밝혀 두고자 한다.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곧 말해라---
 
------이에 대장엄보살이 팔만(八萬)의 보살과 함께 곧 같은 소리로 부처님께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속히 이룩하여 얻고자 하면 마땅히 어떠한 법문을 닦고 행하여야 하나이까, 어떠한 법문이 능히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룩하게 하나이까.-----
 
 --부처님이시여, *대승교를 수행하고 있는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려면, 어떤 가르치심을 똑바로 배워서 닦아 실행해야 정각(正覺)을 열수 있습니까 --
 
<속히(疾) 이룩하다>라는 말은 <빨리> 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길을 거치지 않고 <바로가기>라는 뜻입니다. <속히 이룬다>는 것은, 단시일에 이룬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고 오직 어떤 가르치심만으로 속히 부처님이 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과 팔만(八萬)의 보살에게 이르시되, 선남자야, 한 법문이 있으니(有一法門) 능히 * 보살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이룩하여 얻게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이 법문을 배우면 곧 능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리라. --------
 
---선남자야, *즉신성불,   곧바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법문이 있다. 이 법문은 능히 모든 보살로 하여금 곧바로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한다. 이 법문을 배우는 보살은 능히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세존이시여, 그 법문의 이름은(是法門者) 무엇이라 하며(號字何等)그 뜻은 어떠하며(其義云何)보살이 어떻게 닦고 행하나이까(菩薩云何修行).-----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하는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 법문의 뜻은 무엇이며보살이 어떤 방법으로 닦고 행해야 합니까.---
 
대장엄보살지혜롭게 불교의 수행이란 무엇이며ㆍ수행방법은 무엇이며ㆍ그리고 실행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점을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선남자야, 이 법문의 이름은 *무량의(無量義)라 하느니라. 보살이 무량의를 닦고 배워서 얻고자 하면, 마땅히 일체의 모든 법은 본래부터 지금까지   (性)과 상(相)이 공적(空寂)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으며나(生)는 것도 없고 멸(滅)하는 것도 없으며머무르지도(住) 않고움직이지도(動) 아니하며나아가지도(進) 않고물러서지도(退) 않으며마치 허공(虛空)과 같이 두 가지의 법이 없다고 관찰할지니라.------
 
---그 법문은  무량의다. 만일 보살이 무량의를 수행하려면 마땅히 일체의 모든 을 알아야 한다. 일체의 법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뜻한다. 모든 사물은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찰나찰나 변한다. 그러나 모든 사물은 모두 하나의 커다란 힘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근본을 구명해 보면, 그 본성형상이 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은 혹은 커 보이는 것도 있고ㆍ작아 보이는 것도 있으며ㆍ혹은 좋아 보이는 것도 있고ㆍ나빠 보이는 것도 있어ㆍ온갖 차이가 다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물의 차이나 근본을 따지자면 어느 것이나. 다 <하나의 힘>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性) (相)의 공적(空寂)을 살펴야 한다. 하나의 이치(理致)가 인연 따라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십여시를 잘 알아야 한다. 즉 ① 공(空)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인간의 경우도 지혜로운 사람ㆍ어리석은 사람ㆍ부자ㆍ가난한 자ㆍ악(惡)한 자ㆍ착한 사람--등, 만이면 만 사람이 다 각각입니다. 눈으로 보면 끝없이 다르지만 그 끝없이 다른 가운데. 인간으로서의 성질,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질,  거룩한 *불성이 있음을 똑똑히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허망(虛妄)하게 비뚤어지게 헤아려서 이를 이것이라 하고, 이를 저것이라 하며이를 얻었다이를 잃었다 하며, 선(善)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키어 여러 가지의 악업(惡業)을 지어 *육도(六道)에 윤회(輪廻)하며, 모든 독한 괴로움을 받아서 한량 없는 억겁을 스스로 나오지 못함이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밝게 관하여 불쌍히 생각하고 큰 자비심을 내어 곧 구해 내고자 하며 또 다시 깊이 일체의 모든 법에 들게 함이라. -----
 
-----그러나 모든 중생은 허망(虛妄),  항상 자기를 중심해서 사물을 생각한다. 인간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자기만을 중심해서 자기 멋대로 이것 저것 헤아린다. 이것은 이렇다ㆍ저것은 저렇다ㆍ또는 이것은 이익이다ㆍ저것은 손해다 하고 자기만을 위주로 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온갖 좋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 온갖 악업(惡業)을 지어, 육취(六趣), 지옥계아귀계 축생계수라계인간계천상계 라는 여섯 개의   경계를 마치 수레바퀴가 빙글빙글 돌아가듯이 돌아간다. 때에 따라 성내고 기뻐하고슬퍼하고즐거워하고욕심 부리고난폭해지기도 하며 끊임없이 육취 육도를 왔다 갔다한다. 그리하여 모든 독한 괴로움을 받는다. 듣거라, 괴로움이란 만족이 없는 것이다. 만족이 없으면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그 괴로움과 번뇌(煩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곧 *육도 육취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밝게 관하여 불쌍히 생각하다>란, 法華經을 공부하는 사람이 생명의 불멸(不滅)을 구한다면, 그와 동시에 그 영원한 생명 가운데서 차차 나아질 길을 찾는 실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생각해서, 세상 사람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깊이 일체의 모든 법에 들게 함이다>, 남을 구원하려면, 모든 사물의 진실한 성질을 생각해 보는 것이 대승불교 수행의 근본입니다. 인간이란 어떠한 것인가인생이란 어떠한 것인가우주 만물은 어떻게 해서 존재하며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깊이 충분히 배워서 자기의 지혜가 밝아지면 남을 구원하는 길이 저절로 열리게 되며 뜻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 큰 자비를 일으켜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뜻이 서지 않으면, 진실이치를 연구하려는 결심이 서지 않게 됩니다. 자기 한 사람만의 일이라면 별로 노력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옳은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 곧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근본이라는 생각이 들면, 온갖 어려움을 무릎쓰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자기의 지혜를 닦아서 수행을 하려는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을 세우는 것과 스스로 힘써서 자신을 닦는 것, 이 두 가지는 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해내다>, 한 때의 괴로움을 구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근본은 *견사의 미혹이므로, 그 미혹을 아주 뽑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구제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미혹에 빠져 있으면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나쁜 행동을 하고 있어서는 남을 나무랄 수 없듯이, 남을 구원할 생각이라면 우선 자신의 수행부터 힘쓰라는 것입니다.
<모든 법>이란, 모든 사물입니다. 세상의 온갖 일, 세상의 온갖 자연 현상까지도 깊이 파고들어가 살피라는 것입니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사상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 되어 갈 때도 있고 잘못 될 때도 있는 것이므로 그것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하는 사상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눈앞의 일만 생각 할 것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사상변화를 깊이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① 공(空)                       불교성경-p157~p161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이 없으므로 보살의 과거세(前際)를 파악할 수 없으며, 중생이 (空)하므로 보살의 과거세를 가히 파악하지 못하며, 중생을 벗어났으므로 보살의 과거세를 가히 파악하지 못하며, 색(色)하므로 보살의 과거세를 가히 파악하지 못하며, (受)(想)(行)(識)(空)하므로 보살의 과거세를 가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空)가운데서는 과거세ㆍ현세ㆍ후세를 가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 보살과 다르지 않고 또한 과거세와도 다르지 않다. 과ㆍ보살과ㆍ전제(前際=前世)는 둘도 아니고 다름도 없으니, 이런 인연(因緣)으로 보살의 과거세는 가히 파악하지 못한다. 보살의 과거세ㆍ현세ㆍ후세도 또한 이와 같다.----마하반야바라밀다경에서---
 
--너희들은 마땅히 모든 사물의 진실한 모양을 살펴 보아라. 어떤 것이 모든 사물의 진실한 모양인가. 모든 사물에 는 없다(無垢). 왜냐 하면 모든 사물은 본성이 하고, 모든 사물은 <(我)>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모든 사물은 또한 꼭두각시와 같고ㆍ꿈과 같고ㆍ메아리와 같고ㆍ그림자와 같고ㆍ불꽃과 같다. 너희들이 만일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의 참모습(實相)을 자세히 살펴 보아  *진리(眞理)를 가르치는 스승을 따르면 오래지 않아 마땅히 *지혜의 완성을 보게 될 것이다.----소품반야바라밀경에서.---
 
--참되게 살펴 본다는 것은 그것이 이기 때문에 모든 이치(理致)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법성(法性)이 스스로 <>한 때문이다. 모습이 없기 때문에 사물을 모습이 없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스스로 모습이 없는 것이다. 일어남(起)이 없으며ㆍ진(滅)이 없으며ㆍ내(我)가 없고ㆍ 취(取)함이 없으며ㆍ성품(性品)이 없을 뿐이며ㆍ성품이 일어남이 없으며ㆍ일어남이 없으므로 성품의 없음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물이 스스로 무기(無起)ㆍ무취(無取)ㆍ무성(無性)임이니, 이와 같이 살펴 보면 이를 진실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대보적경에서---
 
사람이 없으므로 이름하여 이라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스스로 하여 과거(前際)도 하고ㆍ미래도 하고ㆍ현재도 한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에 의지하거나 사람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만일 을 얻음으로써 문득 에 의지한다면 이는 불법(佛法)에서 곧 물러감이 된다. 이와 같이 차라리 (我)라는 생각을 일으켜서 수미산같이 쌓을지언정, 의 소견(空見)으로써 *증상만심(增上慢心 자기자신을 가치 이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그릇 된 견해는 에 의해 벗어날 수 있지마는, 만일 공견(空見)을 일으키면 그것은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의사가 약을 주어 병(病)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약(藥)이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떤가. 이 환자는 나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 이 나오지 않으면 그 은 점점 더할 것이다. 모든 그릇된 견해는 오직 만이 능히 멸하지만, 만일 공견(空見)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대보적경에서---
 
---망녕된 마음을 쫓아 나는 일체의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설(說)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 이치에 *집착하여 궁극의 것으로 삼는다면, 의 성품도 또한 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하여 을 만든 것도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만일 의 진리에 집착(執着)하여 궁극의 것으로 삼는다면, 모든 것이 다 해서 (因)도 없고 (果)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은 저 *순세외도(順世外道=고대인도 부처님 당시에 있던 이교도로써 물질만 인정하고 정신을 부정하는 쾌락주의자)와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대승본생 심지관경에서---
 
---반야바라밀(지혜(智慧)의 완성)을 수행할 때에 여러 사물의 모양을 분별하여 존재의 성질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다음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不可能) 해진다.   
만약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 물질ㆍ느낌ㆍ생각ㆍ의지작용ㆍ 식별과 다른 사물에 사사로운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참으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모든 존재(存在)의 성질은 해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존재를 떠나 따로 이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결국 이요 은 곧 모든 존재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때에는 존재에 대해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지도 말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집착하지도 말며, 있으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집착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집착해도 안된다. 모든 존재는 본성(本性)이 없는 것이 본성이므로 그 을 찾아 볼 수는 없다.------대품반야경에서
 
---*불성(佛性)이란 무엇이며, 왜 영원하고 즐겁고 실체(實體)가 있고 깨끗하다고 하는가. 누구든지 진리를 위해 질문을 한다면, 그는 지혜복덕을 갖추게 되고, 이 지혜복덕을 갖추게 되면 다시 불성을 알 게 될 것이다. 불성제일의공(第一義空=절대적 공)이라 하니, 그것은 곧 지혜요, 지혜 다시 불공(不空)을 보고ㆍ상(常)무상(無常)을 보며ㆍ괴로움과 즐거움을 보고ㆍ실체실체 없는 것을 본다. 과ㆍ무상(無常)과ㆍ(苦)와 실체 없는 것은 생사(生死)요, 불공(不空)과ㆍ(常)과ㆍ낙(樂)과ㆍ실체 *열반이요ㆍ어느 한 쪽만을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하면 이것은 중도(中道)라고 할 수 없다. *중도(中道)불성이요 바른 깨달음의 종자다. --열반경에서--
 
중생은 *무명(無明)에 덮여 있어 이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누에가 마치 고치를 만들고 죽는 것과 같이, 스스로 *업(業)을 지어 생사에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 성문과 연각한 것만 보고, 하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며, 실체가 없는 것만 보고, 실체인 것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절대의 을 얻지 못하고, 절대의 을 얻지 못하므로 중도를 행하지 못하고, 중도(中道)가 없으므로 불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열반경에서--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허망(虛妄)
 
허망(虛妄)망상(妄想)망어(妄語)망론(忘論)--등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모두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고 일으키는 거짓, 헛된 것들입니다. 원래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서로 돕고 서로 이끌어 주어서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늘, 그러한 본성을 잊어버리고 자기 중심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을 이른 바 허망망상망어망론이라고 합니다. 누에가 제 입으로 실을 토해서 만든 그 고치 속에 제 스스로 갇히는 것과 같이, 중생은 스스로 모든 허망한 것들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부자유한 *과보를 받고 괴로움속에서 항상 삽니다.
 
               (性)과 상(相)이 공적(空寂)
 
<(性)과 상(相)이 공적(空寂)하다>에서 <(空)>은 이차별(離差別),  차별을 떠남을 뜻합니다. <(寂)>은 이변화(離變化),  변화를 떠남을 말합니다. 은 여러 가지로 다르지마는 그 다른데를 일관해서 평등한 것이 있는 것이고, (寂)은 여러 가지로 변하지마는 아무리 변해도 미래영겁토록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空寂)이라는 말은 차별을 떠나고 변화를 떠나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영원히 변하지도 않는 진실의 도,  *진여를 말합니다. 평등하고 변하지 않는 *상주불변체확고하게 포착하는 것을 이른 바 불교 신앙의 이상(理想)으로 *<(性)과 (相)이 공적(空寂)하다> 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