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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모든 중생을 보니, 고해(苦海)에 빠져 있음이라. 이런고로 몸을 나타내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갈앙하는 마음이 나게 하여, 그 마음이 인(因)이 되어 연모케 하고 나와서 법을 설하느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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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화경(法華經) 화성유품(化城喩品)-1-07-03
 
 ---그 때 동방 오백만억(五百萬億)의 모든 국토 중에 있는 범천 궁전에 광명이 밝게 비치되, 항상 있던 광명보다 배나 됨이라. 모든 *범천왕이 각각 이 생각을 하되, 지금 궁전에 비쳐 있는 광명은 예로부터 있지 아니하였음이니. 무슨 인연으로써 이 상서(祥瑞)가 나타남인가.--
 
---대통지승불께서 *부처님의 지혜를 얻으실 때, 모든 국토가 동시에 *육종진동하였습니다.그 때, 동쪽 오백만억이라는 많은 나라들 가운데 범천(梵天)이라는 천상계의 궁전도 평소보다 갑절이나 밝은 광명으로 빛났습니다. 그 빛은 해와 달의 빛보다도 더 밝고 대단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동쪽 오백만억 범천왕들은 각각 생각하기를, <지금 우리 궁전에 일찍이 없었던 큰 빛이 비치고 있다. 무슨 까닭일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때 모든 범천왕은 곧 각각 서로 찾아가서 함께 이 일을 의논하더니, 그 대중 가운데 한 대범천왕이 있어 이름이 구일체(救一切)라. 모든 범천 대중을 위하여 *게송을 설하되,----
 
---이때 동쪽 오백만억의 모든 국토 가운데 있는 범천왕들은 자기네 궁전이 평소보다 갑절이나 밝은 광명으로 빛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즉시 서로 찾아가서 어찌 된 광명(光明)이냐며 함께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들 범천왕 가운데 구일체(救一切)라는 이름의 대범천왕은 목소리를 높여 범천 궁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게송으로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우리들 모든 궁전의 이 광명은 예로부터 있지 아니하였음이라. 이것이 무슨 인연(因緣)인고, 마땅히 함께 이를 찾을지어다. 이는 대덕(大德)이 하늘에 나심인가ㆍ이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하심인가ㆍ이 큰 광명이 두루 시방(十方)을 비치도다.-----
 
구일체 대범천왕은,----우리 궁전에 이토록 아름다운 빛이 비친 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요. 이것은 무슨 인연인가요.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해서 그 까닭을 알아봅시다. 이 광명은 대단히 덕(德)이 높은 천상계의 왕과 같은 분이 어디엔가 나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그 지혜 광명으로 일체의 인간의 마음을 비추시어 일체의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그 징조자비 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요. 아무튼 이 큰 광명은 고루 시방세계를 비추고 있오. 이 광명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알아봅시다.--
 
---그 때 오백만억(五百萬億) 국토의 *모든 범천왕이 궁전(宮殿)과 함께 하며, 각각 꽃 담는 그릇에다 모든 하늘꽃을 가득 담고 함께 서방(西方)으로 가서 이 상서(祥瑞)를 찾다가,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께서 도량 보리수나무 아래 계시되, 사자자리(獅子座)에 앉으시고 모든 하늘과ㆍ용왕과ㆍ건달바ㆍ긴나라ㆍ마후라가ㆍ인비인ㆍ들이 공경하여 둘러서 있고, 십육왕자(十六王子)는 부처님께 *법륜(法輪) 설하시기를 간청하는 것을 봄이라.----
 
--그 때 동쪽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들은 그들의 궁전과 함께 꽃바구니에 하늘꽃을 가득 담아 가지고 광명을 내는 곳을 찾아 서쪽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모든 하늘ㆍ용ㆍ야차를 비롯한 *팔부신중의 옹호(擁護)를 받으며 보리수 아래 사자좌에 앉아 계신 대통지승불 부처님을 보았습니다. 또 십육왕자가 부처님께 가르침을 설해 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동쪽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은, <대통지승불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교()를 설하시려고 하는구나. 대통지승불께서 이제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가르치심을 설하실 징조로 모든 세계에 고루 널리 광명을 비치셨구나. 그래서 우리들 범천 궁전에도 어두운 것을 다 제거하려고 광명을 비쳐 온 것이구나> 하고 비로소 알았다는 그런 대문이 되겠습니다.
 
----이 때 곧 모든 범천왕이 두면(頭面)으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백천번을 돌고, 하늘꽃을 부처님 위에 흩으니 그 흩은 꽃이 *수미산과 같고 아울러 부처님 앉으신 보리수 나무에도 공양(供養)하였으니 그 보리수나무의 높이는 십유순(十由旬)이라.---
 
---이때 동쪽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들이 머리를 땅에 조아려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의 둘레를 수없이 빙빙 돈 다음에 가지고 온 하늘꽃을 부처님 위에 흩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수미산(須彌山)처럼 높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 보리수나무에도  *공양하였습니다. 그 보리수나무는 높이가 십유순(十由旬)이나 되는 큰 나무였습니다.----
 
<하늘꽃을 부처님 위에 흩으니 -->에서 꽃을 흩는다는 것은 부처님을 찬탄(讚歎)하고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그 흩은 꽃이 수미산과 같다>란,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뜻합니다.
<보리수 나무에도 공양(供養)하다>란, 보리수나무는 그늘을 지어서 부처님을 편안하개 보호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들은 보리수나무가 부처님을 보호하는 것이  너무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그 보리수 나무에도 공양을 한다는 것입니다. *의정불이(依正不二) 정서를 뜻합니다.
 
--꽃 공양을 마치고 각각 궁전을 그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고 이런 말을 하였으니. 오직 우리들을 불쌍히 보시어 널리 요익(饒益)되게 하시며 원컨대 드리옵는 궁전을 받아 주시옵소서.--
 
--동쪽 오백만억 모든 국토의 범천왕들은 대통지승불께 하늘꽃 공양을 올린 다음, 모든 범천왕들은 자기네가 살고 있던 하늘 궁전을 대통지승불 부처님께 올리며,---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희들이 올리는 이 모든 궁전을 받아 주십시오.--
 
<각각 궁전(宮殿)을 그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고>, 부처님께 궁전을 올린다는 것은, 인간들이 서로 물건을 주고 받고 하는 것과 다릅니다. 부처님께 올려서 그 물건이 부처님의 것이 된다는 것은, 바친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서, 필경에는  부처님의 권속(眷屬)이 될 것을 허락해 주심을 뜻하는 *일불승 법화신앙 정서입니다.
<원컨대 드리옵는 궁전을 받아 주시옵소서>→ 모든 범천왕들이 올리는 궁전을 부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은, 부처님의 광명이 궁전안에 가득해지면 궁전을 바친 사람이 부처님의 권속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으로 포용(包容)해 주십사 하는 뜻입니다.
 
---이 때 모든 범천왕이 곧 부처님 앞에서 일심으로 함께 게송으로 말씀하되, 세존은 심히 희유하심이니 가히 만나 뵈옵기가 어렵도다. 한량 없는 공덕을 갖추셨으니 능히 일체를 구호(救護)하시며 하늘과 사람의 큰 스승이시니 세간을 불쌍히 여기심이라, 시방의 모든 중생은 다 널리 요익을 입나이다. 우리들이 온 곳은 오백만억(五百萬億)의 나라이며, 깊은 선정낙(禪定樂)을 버렸음은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우리들이 전세(前世)에 복이 있어 궁전이 심히 장엄하옵니다. 지금 세존께 드리오니 원컨대 오직 불쌍히 여기사 받아 주시옵소서.--
 
----그 때 동쪽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들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게송으로,---부처님께서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나오시는 것은 아주 드믄 일입니다. 부처님을 만나 뵙는다는 것은 큰 은혜이며, 천상계ㆍ인간계가 다같이 큰 스승으로 우러러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敎)를 주십니다. 시방의 모든 나라의 중생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유익함을 얻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동쪽 오백만억 국토에서 왔습니다. 깊은 선정(禪定)의 즐거움을 버리고, 일부러 이 곳에 온 것은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들이 전세에서 *복이 많아 지금 차지하고 있는 궁전이 매우 장려(壯麗)합니다.궁전을 세존께 드리오니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받아 주십시오.----
 
불교가 일어나기 전, 고대인도 사람은, 사후(死後)에 하늘이라는 천상계에 태어나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금생에 *선근,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세(後世)에는 천상계에 태어나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석가여래께서는,--수고로움없는 은 조금도 즐거운 것이 아니며 그릇된 생각이다. 인간이 괴로운 곳에서 사니까,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우리라고 생각하지마는 괴로움도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의미하고 더 답답하다. 항상 선근을 쌓는 노력으로 괴로움도 즐거움도 초월하면 그 자리가 진정한 즐거운 자리다.---
 
<깊은 선정낙(禪定樂)을 버렸음은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함이다>→범천왕들이 천상계를 떠나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서 선근을 쌓아 진정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발아(發芽) 되었다는 뜻입니다.  괴로움이 없는 천상계를 버리고 왔다는 것은 천상계도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에,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으로 진정한 즐거움을 찾을 결심이 섰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하고 남의 대접만 받고 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고락(苦樂)을 통해 삶의 실상(實相),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며 진정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보살의 마음을 드러내는  경문입니다.
<지금 세존께 드리오니 원컨대 오직 불쌍히 여기사 받아 주시옵소서>→지금부터 부처님과 인연을 맺사오니 영원토록 부처님의 *권속으로 이끌어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는 대문입니다. 이 대문은 극히 짧지마는 진정한 불제자(佛弟子)의 정신을 잘 나타낸 것이므로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의 심득사항(心得事項)이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괴롭기 때문에 교(敎)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무상(無常)이 전제 된 물질적인 만족으로 그치지 말고, *선근을 쌓는 노력으로 진정한 행복, *상락아정 부처님 자리에 들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것을 전제한 대문입니다.
 
--그 때 모든 범천왕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각각 이 말씀을 하되,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법문을 설하사 중생을 제도하시어 *해탈케 하시고 *열반의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이 때, 동쪽 오백만억 국토의 모든 범천왕들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송한 다음,--부처님이시여, 를 설해 주십시요, 그리하여 저희들의 미혹제거하시여 열반, 곧 일체의 괴로움과 번뇌를 완전히 없이한 경지를 저희들에게 열어주십시오.--.
 
 --이 때 모든 범천왕이 일심으로 함께 게송으로 설하되, 세웅(世雄) 양족존이시여, 오직 원컨대 법을 설하시고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힘으로 괴로운 번뇌의 중생을 제도하시옵소서--
 
-----동쪽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들이 부처님께 귀의한 이상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자기들도 부처님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고자 다시 한 마음ㆍ한 목소리로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시고 대자대비의 힘으로써 *번뇌로 괴로워 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하여 주시옵소서.--
 
<세웅 양족존>은 부처님을 가리킵니다. 부처님은 세상에서 뛰어난 분이시므로 세웅(世雄)이라 하고, 또 <(福)과 지혜(智慧)>를 갖추고 계시기 때문에 *양족존이라 합니다.
 
---그 때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께서 묵연(默然)히 이를 허락하심이니라.---
 
--그 때 대통지여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잠자코 계셨지마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묵연(默然)히 이를 허락하심이니라>, 범천왕들의 성심(誠心)이 부처님께 통해서 *감응(感應),  깊은 인연이 맺어졌다는 뜻입니다.  감응(感應)이란, 간절하게 법을 구하는 사람이  circle03_darkgreen.gif 경전을 읽은 결과로서 가슴 깊이 느끼는 마음을 부처님께서 아시고 즉각 응하심을 뜻합니다. 중생이 *일불승 법화경을 읽고 나니까 부처님의 힘이 중생의 마음에 통하여 그 중생의 마음도 차차 맑아져서 어떠한 간난시고(艱難辛苦)를 겪더라도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면, 곧 그것이 감응입니다. 부처님의 힘을 자기의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은 친히 부처님을 뵈온 것 같이 느끼고 *부처님의 은혜가 무한함에 감동해서 일불승 법화경을 세상에 펴고자 결심하면 바로 그 마음 자리가 감응입니다.
 
중국 명나라 시절의 일여(一如) 스님도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에서 감응에 대해,--가르치심에 대해 느끼는 것은 중생이요, 응(應)하는 것은 부처님이다물(水)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달(月)은 내려오지 않는다*일월만영(一月萬影)과 같은 것이다.---
 
---모든 비구들아, 동남방(東南方) 오백만억(五百萬億) 국토의 모든 대범천왕이 각기 자기 궁전에 광명이 밝게 비치되, 예전에 없었던 일을 보고 기뻐 뛰며 희유한 마음을 내어 곧 서로 찾아가서 함께 이 일을 의논하더니, ----
 
---- 모든 비구들아, 동남쪽의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들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궁전에 옛날부터 일찍이 보지 못한 아름다운 빛이 비치고 있는 것을 보고 환희용약(歡喜踊躍),  매우 기뻐 뛰였다. 그들 범천왕들도 궁전 가득히 어두운 구석까지 비치는 광명을 보고 무한한 만족을 느끼고 모두 모여 앉아 의논했다.---
 
-----이 때 그 대중 가운데 한 대범천왕이 있으니 이름이 대비(大悲)라, 모든 범천 대중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하되,----
 
----그 때 동남쪽의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 가운데 대비(大悲)라고 하는 범천왕이 있었다. 대비(大悲) 범천왕은 총명하여 그 나름대로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서 모든 범천 사람들을 위해 게송으로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이 일이 무슨 인연으로 이같은 상서(祥瑞)가 나타남인가. 우리들 모든 궁전에 이런 광명은 예로부터 없음이라. 이는 대덕(大德)이 하늘에 나심인가ㆍ이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出現)하심인가ㆍ이같은 상서(祥瑞)는 일찍이 보지 못하였도다. 일심(一心)으로 마땅히 함께 찾을지어다. 천만억(千萬億)의 국토를 지날지라도 함께 이 광명을 찾을지어다. 아마도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 괴로운 중생을 제도하사 *해탈케 하심이리라.-----
 
--동남쪽의 오백만억 나라의 모든 범천왕 가운데 한 사람인 대비(大悲) 범천왕은,--무슨 인연으로 이런 불가사의한 빛이 나타났습니까. 우리들 모든 궁전이 이렇게 광명(光明)으로 가득 찬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덕(德)이 대단히 높으신 분이 천상계에 나신 것입니까. 아니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도(道)를 설하시려는 것입니까. 한번도 이런 기이(奇異)한 상서(祥瑞)를 본 일이 없습니다. 모두 힘을 합해서 천만억의 끝없는 나라를 지나가게 되더라도 이 광명의 근원(根源)을 찾아서 어째서 광명이 비치는가를 알아 봅시다. 아마도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괴로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천만억의 국토를 지날지라도 함께 이 광명을 찾을지어다>→어두운 곳에 있던 사람이 광명을 보았을 때, 그 빛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기필코 찾아가려고 합니다. 불도(佛道)수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되겠습니다. 범부의 삶이라는 것은 암흑 그 자체입니다.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 같은 것이 중생의 삶입니다. 그러나 보살이나 부처님 경지는 대낮 같은 광명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자비지혜광명만 찾을 수만 있다면 멀고 가까운 것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circle03_darkgreen.gif <큰 하나>를 구한다는 그런 마음 자리를 뜻합니다. 너무도 간절한 구도자(求道者)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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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경전을 읽은 결과로서
 
경전은 읽는 방법이 소중합니다. 경전은 띄엄띄엄 적당히 읽어서는 안됩니다. 경전이란 이해하는 것만이 주가 아닙니다. 신앙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경전을 읽는 목적의 하나입니다.
화성유품에서는 똑같은 말씀이 되풀이 해 있습니다. 거의 같은 문장이 중복되어 있습니다.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같은 경문은 빼놓고 읽어도 좋겠지마는 신심(信心)이라는 것은  과학적(科學的) 인 사상(思想)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과학인간의 힘으로 자연계를 구명(究明)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인간이란 대자연계 분상에서 한 점 티끌입니다. 인간이 대자연계의 한 구석을 구명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의 목적입니다.
과학은 자연계를 향해 인간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에, 발전이라고 합니다. 발전이라는 것이 전제된 과학적인 사고방식(思考方式)이 19세기 이래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며 오늘 21세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늘이라는 무한 경쟁시대를 사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것이지마는 오래지 않아 그 보다 나은 것이 등장하고 다시 얼마 후에는 더 나은 것이 나온다는 것을 예측하기 때문에, 항상 만족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는 과학적인 사상에 익숙합니다. 혹자불교 경전을 읽고 한다는 소리가,--부처님의 가르치심은 훌륭하다. 그러나 불교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3천여년 전의 말씀이다. 앞으로 훌륭한 가르치심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불교를 모르고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불교는 모든 종교를 포용(包容)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상, 생(生)주(住)이(異)멸(滅)의 변화 가운데 일관(一貫)해서 영원한 본체 자리를 잡는 것불교입니다.
무릇 과학은 무상(無常)한 물질세계,  변(變)하는 면(面)만을 구명(究明)하기 때문에, 어제 보다는 오늘이ㆍ오늘 보다는 내일이ㆍ더 좋은 것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발전이라는 허상에 쫓기며 알 수 없는 *인연과보에 허덕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상주불변체(常住不變體)라고 하는 변(變)하지 않는 면(面), *천지기운 천지마음을 구명하고 영원히 자유롭고자 함에 목적이 있습니다.  
 
과학은 변하는 면을 포착(捕促)하여 추구하고 불교는 변하지 않는 면을 포착하는 자오성(自悟性)입니다.
과학적인 사상만을 근본으로 하는 사람은 종교도 변하여 미래세계는 지금과 전연 다른 것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 된 생각입니다. 예컨대, 사탕은 달고 소금은 짭니다. 단 사탕이 짜게 될 것이라든가ㆍ짠 소금이 달 게 될 것이라든가 하는 것은 당찮은 생각입니다. *구원실성 석가세존께서 깨달으신 것은 범부 중생이 아무리 깨달아도 또 몇만년 후의 사람이 아무리 깨달아도 이 보다 이상의 것은 깨닫지 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활 상태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끌어내어 밝히셨습니다.
 
대정각자(大正覺者) 석가세존50년 설법은  뒤를 이어 수없이 많은 부처님이 나오신다 해도 그 가르침은 똑 같습니다. 특히 만법(萬法)의 근본인 법화경에서--모든 이치는 하나다(理一)인간은 누구나 부처님이 된다(人一)부처님의 마음 곧 부처님의 가르치심도 하나다(敎一)갖가지 수행 방법도 결국 하나에 귀착한다(行一)--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일체중생구제론을 정점으로 하여 일체는 하나라는 것을 * 법화경 방편품에서 *사일개회론(四一開會論)으로 끌어내셨습니다. 여기 화성유품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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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큰 하나>를 구하는 마음
 
보편적으로 인간은 노력하는 것을 꺼려하면서도 항상 가장 좋은 것을 구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 인간의 생명은 백년미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주체,  영원한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하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큰 것을 구하여 중단하지 않는 것이* 대승의 마음이요, 작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소승의 마음이다. 대승소승차이마음이니까 누구나 변하지 않는 영원한 <큰 하나>를 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실대승 법화 수행하면 언젠가는 일승진실(一乘眞實)   부처님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