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내가 성불로부터 지내 온 모든 겁수는  한량 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라. 항상 법을 설하여 수없는 억만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게 함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옴이 한량 없는 겁이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는고로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냄이나,  그러나 실은 멸도하지 않고 항상 이에 머물러 법을 설함이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bar03_dot3x3_red.gif
 
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德行品)-2-01-04
 
----그 비구의 이름은 큰 지혜의 *사리불ㆍ신통의 *목건련*혜명(慧命) 수보리*마하가전연ㆍ미다라니의 아들 *부루나ㆍ아야교진여ㆍ천안(天眼)의 *아나율,ㆍ지율(持律)의 *우바리, * 시자(侍者)의 아난*부처님 아들의 나운(羅雲=나후라)ㆍ우바난타ㆍ리바다ㆍ겁빈나ㆍ박구라ㆍ아주타ㆍ사가타ㆍ*두타(頭陀)의 대가섭 *우루빈나가섭가야가섭나제가섭,- 등 이와 같은 비구 일만이천인(一萬二千人)은 다 아라한으로서 모든 *누(漏)를 다하여 다시 착심에 얽힘이 없는 진정한 *해탈이라.---
 
----法華經을 설하시려는 영산회상에는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불퇴전의 보살들 이외에도,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끊은 비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사리불존자를 비롯한  circle03_darkgreen.gif 부처님의 십대제자와 일만이천의 *아라한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견사의 미혹과 일체의 *번뇌를 끊고 *열반락을 얻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 비구의 이름은 큰 지혜의..>에서, 비구는 남자로서 출가한 사람입니다. *역겁수행으로 부처님과 같은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이 *보살이라면, 보살 지위까지 이르지 못하였으나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람을 비구라고 합니다. 비구는 자신의 미혹  번뇌를 제거할 힘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남을 구원할만한 덕(德)은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보살의 거룩한 덕목(德目)을 미처 액션하지 못했습니다. *보살십지 수행을 아직 실천하지 못한 단계입니다.
 
---그 때 대장엄보살마하살이 대중이 자리에 앉아 각각 뜻의 정(定)함이 있음을 두루 살피고, 대중 가운데의 팔만(八萬)의 *보살마하살과 함께 자리로부터 일어나, 부처님 앞으로 와서 두면(頭面)으로 발에 예배하고 백천번을 돌며 하늘의 꽃을 흩고ㆍ하늘의 향을 피우고ㆍ하늘의 옷과ㆍ하늘의 영락이며ㆍ하늘의 값이 없는 보배구슬이 공중에서 빙빙 돌면서 내려오되, 사면(四面)에서 구름 같이 모여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며, 천주(天廚)ㆍ하늘 그릇에다 하늘의 백(百)가지 음식을 가득히 채워 담음이라. 빛을 보고 향기를 맡으면 저절로 배부르고 족함이라.---
 
----이때 대장엄보살은 모든 보살 대중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고. 수만명의 보살마하살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 아래 머리숙여 예배한 다음에, 부처님의 둘레를 백번ㆍ천 번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하늘꽃ㆍ하늘향ㆍ하늘옷ㆍ하늘영락ㆍ하늘보배 구슬을 정성껏 받들어 부처님께 공양하였습니다. 또 하늘 그릇에 빛과 향기가 훌륭한 온갖 맛있는 하늘 음식을 가득 담아서 부처님께 올렸습니다.---
 
<백천(百千)번을 돌다>란, 둘레를 도는 것은 공경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아도ㆍ뒤에서 보아도ㆍ옆에서 보아도 똑같이 훌륭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늘>이란,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훌륭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일대사인연으로 circle03_darkgreen.gif 사바세계에 오신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법(法)설(說)해 주시므로, 감사와 귀의하는 마음을 무한대,  <하늘>이라는 명사로 부처님에 대한 공양의 극치를 형용하였습니다. *육념 가운데 여섯 번 째 *염천(念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하늘을 생각하여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인간계에는 가지가지 더러움이 있고, 천상(天上)은 청정(淸淨)하다고 믿어 오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부처님에 대한 공양의 극치를 <하늘>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하늘 깃대에 하늘 깃발을 날리고ㆍ하늘의 헌개(軒蓋)와ㆍ하늘의 묘한 악기를 곳곳에 두고ㆍ하늘이 기악을 지어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ㆍ곧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ㆍ일심으로 같은 소리로 함께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하되,----
 
----대장엄보살 비롯한 모든 보살들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으로 모든 중생이 다 구원받을 것을 전제하고 귀의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하늘 깃대ㆍ하늘 깃발ㆍ하늘의 헌개ㆍ등 가지가지로 부처님께  circle03_darkgreen.gif 공양하는 마음을 나타내며 부처님의 성덕(聖德)을 찬탄하였습니다.----
 
 bar03_dot3x3_blue.gif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지혜 제일의 사리불사리불존자는 많은 부처님 제자중에서 특히 지혜가 첫째 가는 제자입니다.
불교에서 지혜란, 모든 사물의 진정한 성질,  모든 법(法)의 실상을 아는 힘입니다. 법(法)이란 사물이라는 뜻입니다. 사리불존자 *십대제자 가운데 제일 먼저 *화광여래(華光如來)라는 수기받았습니다.
 
신통 제일의 목건련*목건련존자천상계ㆍ인간계ㆍ지옥계를 자유자재하게 왕래하는 신통력을 가졌습니다. 그 신통력으로 지옥계에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모친을 구했습니다. 고대인도는 불교가 일어나기 전부터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ㆍ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ㆍ등 여러 가지 신통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그다지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신통력은 *<누진통(漏盡通)>입니다. (漏)는 미혹입니다. 미혹을 없애는 힘만이 진정한 신통력입니다.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거나ㆍ남들이 못 듣는 것을 듣는다고 해서 행복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혹을 없애는 힘만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평생을 마음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공 제일의 수보리 *수보리존자해공(解空)이 첫째 가는 제자라고 합니다.
<(空)>평등입니다. 평등의 이치를 잘 아는 것이 곧 해공입니다. 인간에는 어리석은 사람ㆍ지혜로운 사람ㆍ악(惡)한 사람ㆍ착한 사람ㆍ성급한 사람ㆍ느린 사람도 있고, 거만한 사람ㆍ겸손한 사람도 있습니다.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지마는 가르치는 방법에 따라서 모두 구원 받습니다. 저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가르치면 착하게 될 것이다ㆍ이 사람은 어리석지만 이렇게 가르치면 지혜롭게 될 것이다ㆍ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힘을 해공이라 합니다. 또 사람마다 그 능력이 뻗어나가는 시기가 각각 다릅니다. 어릴 때 부쩍 뻗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만큼 자라서 뻗어 나가는 사람도 있고, 또 나이가 지긋해서 뻗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조건 탓할 것이 아니라, 지혜로써 평생을 지켜보아야 한다해서 혜명(慧命) 수보리(須菩提)라 합니다. 수보리존자평등의 이치에 통달한 제자입니다.
 
논의 제일의 마하가전연마하(摩訶)는 크다는 뜻입니다. 세존의 제자들 가운데 가전연이라는 이름의 제자가 많았습니다. 마하가전연존자는 여러 가전연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라는 뜻입니다.  마하가전연존자는 논의(論議),  이치를 따져 자세히 설명하는 데 능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자세히 설명해서 남이 잘 알아 듣게 하는 재주가 뛰어난 제자입니다.
 
설법 제일의 부루나→<미다라니의 아들 부루나존자(彌多羅尼子(富樓那)>입니다. 부루나라는 이름도 흔해서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미다라니의 아들>이라고 전치사가 붙었습니다. *부루나존자대단한 웅변가로서 설법을 잘 했습니다. 불교에서 설법을 잘한다는 것은말재주가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한없이 깊은 뜻을 열심히 정성껏 풀어낸다는 뜻입니다.
석가 세존께서는 제자들이 교(敎)를 설하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실력이 없이 남에게 하면 도리어 남을 현혹(眩惑)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존께서 설법을 시작하신지 15년이 지나서야 제자 가운데 뛰어난 제자에게 <오랫 동안 배우고 실행해 왔으니, 이젠 부처님을 대신해서 敎를 설해도 좋다>고 하시며 겨우 설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때 부루나존자가, <저도 다른 나라에 가서 가르치심을 하겠습니다>하고 자기와 인연이 있는 서쪽 나라에 가서 법을 하겠다고 아뢰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네가 가려는 그 나라는 인심이 몹시 험악해서 네가 를 설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너는 어떤 결심을 하고 가려느냐. 네가 열심히 해도 아무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부루나존자는, <만일 들어주지 않는다면, 비웃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만약 많은 사람들이 네 설법을 듣고 비웃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비웃으면 욕하고 꾸짖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욕하고 꾸짖으면 어떻게 하겠는냐><욕하고 꾸짖으면 돌이나 막대기로 때리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 
<돌이나 막대기로 때리면 어떻게 하겠느냐>/ <돌이나 막대기로 때리면 칼로 베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칼로 베면 어떻게 하겠느냐> / <죽게 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거의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 <그 때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비로소 기뻐하시며, <그만한 결심이 되어 있거든 가 보아라. 가서 네가 지금까지 배운 것을 說해라. 확고한 신념으로 펴는 것이다>라고 허락하셨습니다.
 
천안 제일의 아나율*아나율존자는 남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에 번뇌가 없어지면, 전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까지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지계 제일의 우바리 *우바리존자는 계율을 잘 지켜서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으므로, 지계가 첫째 간다고 했습니다. *계율이라는 것은 부처님과 맞바로 통하는 도구의 하나입니다.
法華經이 세상에 펴지게 되면서 대승무(大乘無戒)라는 것이 논의 되었습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은 정도가 낮은 사람들이나 할 일이고, 대승교를 배우는 사람은 대승무계(大乘無戒), 계율을 지키지 않아도 좋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원래 대승교를 배운다는 것은 넓고 큰 *자비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진심을 털어 놓으시어 하신 것이 *대승교이므로 그 대승교를 배우는 사람은 항상 부처님과 같은 자비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비심을 가지고 있으면, 굳이 계율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행동이 부처님의 계율과 일치해진다 해서 <무계(無戒)>라고 하였습니다. 계율을 무시해도 좋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천태대사께서도 파계(破戒)한 사람은 깨어진 그릇과 같아서 아무 곳에도 소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시며 계율에 대해 엄격하셨습니다.
 
다문 제일의 아난*아난존자는 세존의 사촌동생입니다. 아난존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25년간 모셨습니다. 아난존자는 25년 동안 부처님을 모시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었으므로 많이 들음(多聞)이 첫 째 간다고 하였습니다.
석가세존께서 열반에 드실 때, <내가 입멸하더라도 슬퍼할 것은 없다. 나는 평생동안 說할 것은 모두 說했다. 이젠 이 세상에서 더 說할 것이 없어서 열반에 드는 것이다. 새삼스러이 슬퍼할 것은 없다. 남아 있는 너희들이 내가 說한 것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실행해 주기만 하면, 내가 살아 있는 것과 같으니까 조금도 슬퍼하지 말아라> 고 유언하셨습니다. 그 때 아난존자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밀행 제일의 라후라*라후라존자석가세존께서 가비라성의 태자로 계실 때 낳으신 아드님이며, 밀행(密行),  이 높은 것을 조금도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언제나 겸손하였습니다.
라후라존자가 수계(受戒) 받을 때, 석가세존께서는 아드님 라후라 *화상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평소에는 세존께서 화상이 되시는데, 라후라 아드님의 경우는  아난존자가 화상이 되었습니다.
유교(儒敎)에서도, <군자는 자식을 바꾸어 가르친다>고 하여 남의 자식은 가르치되, 자기 자식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정서가 있습니다. 어딘가 맥락을 같이한다고 느껴집니다.
수계(受戒),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성심으로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수계할 때, 그 맹세를 들어 주는 사람을 <화상(和上)>이라고 합니다.
 
두타 제일의 마하가섭 circle03_darkgreen.gif 두타(頭陀)두수(枓수)라고도 하며 <떨어 버린다>는 뜻입니다.물질적 욕망을 떨어 버리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ㆍ고운 옷을 입고 싶다ㆍ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ㆍ하는 욕망을 뿌리쳐 버리는 것,  내려놓는*두타입니다.
*가섭존자 누구보다도 두타행에 뛰어났습니다. 마하가섭이라고 한 것은, 역시 가섭이라는 이름의 제자가 여럿이 있기 때문에 뛰어난 큰, 대가섭(大迦葉)이라고 구별하였습니다.
 
 bar03_dot3x3_blue.gif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공양하는 마음
 
부처님께서法華經을 통해 면면히 <부처님을 찬양하거나 물건을 바치지 않아도 좋다ㆍ다만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펴기만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것으로 만족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도(道)를 배우는 범부의 입장에서는, 부처님의 를 펴고 있으니까,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찬송하지 않아도 좋다 라고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일체중생구제론을 선언하신 부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장하여 공경하고 물질면으로 공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물에는 경중(輕重)이 있습니다. 선후(先後)를 분별해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펴는 데 전력을 다하면,  *매자의 비원에 동참하면 그 또한 공양하는 마음입니다.
대체로 부처님을 찬송하는 데는, 세 가지 면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세 종류의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이 아니라, circle03_darkgreen.gif 삼신즉일(三身卽一),  한 분의 부처님을 법신(法身)보신(報身)ㆍ응신(應身)이라고 하는 세 가지 면으로 우러러 뵙고 더욱 더 공양하게 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삼신즉일(三身卽一)
 
불신(佛身),  부처님이라는 존재를 중생의 시각에서 그 성질상으로 나누어 응신불(應身佛)보신불(報身佛)법신불(法身佛)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신(三身)<큰 하나>, *천지기운 입니다.
 
응신불(應身佛)→우리들의 눈 앞에 나타나신 *자비의 부처님이응신불(應身佛)입니다.
모든 중생이 고해(苦海)라는 늪에 빠져서 구원(救援) 받고자 하는 요구에 응하여, *사바세계 *일대사인연으로 역사상 실존인물로 오셔서 모든 중생을 구원해 주시는 어른이 응신불입니다. 우리는 이 응신불에 의하지 않고서는 부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서 부처님의 구원을 힘 입고 있으므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감사하는 마음이 인연이 되어, 부처님이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구명해 보게도 되는 것이므로, 응신(應身)으로서의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부처님이라는 존재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대우주에 유일(唯一)한 것이 있다는 논의(論議)는 철학에서도 말합니다. 불교 신앙의 대상, 대우주 본체라고 하는 *구워실성 부처님과 우리 중생과의 합일(合一)은 응신으로 오신 부처님에 의하는 것입니다.  
석가여래라는 실존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셔서 모든 중생의 근기 따라 각각 알맞는 가르치심을 설해 주셨다는 이 사실로 해서, *개현법 방법론으로 대우주의 본체 본불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대자대비하신 석가세존께서 일체의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일체의 인간을 구원하는 위대한 힘을 갖추시고, 끊임없이 우리들을 구원하고자 노력하시는 부처님이 곧 응신불이십니다.
 
보신(報身佛)→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것인가 하면, 그것은 무한한 *지혜를 갖추고 계셔서 모든 중생의 마음을 환히 보시고, 중생의 괴로움이라던가ㆍ고민이 어째서 일어나는가ㆍ하는 것을 잘 아시고 또 그 괴로움과 고민을 없애는 방법도 잘 아시므로 모든 중생을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곧 그 자비의 작용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혜를 완전히 갖추고 계신 것이 아니라, 차차 수행을 쌓아서 온갖 난행고행을 수없이 겪으시는 과정에서, 그러한 괴로운 수행을 쌓아 오신 결과로서 그와 같은 지혜를 갖추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수행,  액션한 결과로서 완전한 지혜를 갖추시게 되었다 하여 보신불이라 합니다. (報)오랜동안의 수행의 갚음이라는 뜻입니다. *역겁수행한 결과로서 무한한 지혜를 갖추신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보신불지혜의 부처님입니다.  지혜의 방면으로 본 부처님을 보신불이라 합니다.
 
법신불(法身佛)→그러나 아무리 수행을 쌓는다 하더라도 없는 것이 있도록 되지는 않습니다. 그와 같은 절대의 깨달음이 열리는 것은 본래 그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성질, *불성씨앗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불성씨앗이 완전히 발휘 되었다는 것은 절대의 깨달음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될 종자는 본래부터 있는 것으로서 그 불종자(佛種子)가 수행을 쌓아 마침내 큰 지혜를 갖추고 일체 중생을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그 본래의 성질이 완전히 발휘 된 면으로 본 부처님이  법신불입니다.  이란 실재(實在)라는 입니다.
 
이상과 같이 부처님을 세 방면으로 봅니다. 부처님은 자비를 가지고 계시고, 그 자비지혜에서 나옵니다. 그 지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면,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성질을 본래부터 가지고 계시고 그러한 성질을 완전히 발휘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삼신이라고 합니다.
삼신이란 자비를 베풀려면 반드시 지혜가 있어야 하고, 지혜가 완전하게 되려면, 본래의 *불종자가 있어야 합니다. 또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그러한 본래의 성질이 있으면, 그 본래의 성질이 발휘되어 무한한 지혜가 되고, 지혜가 있으면 그 지혜가 자비의 작용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삼신즉일(三身卽一),  세가지가 각각이 아니고 <큰 하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누구든지 수행하는 데 따라서는 부처님과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려는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한없는 자비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웠으니까 이 세상의 도움이 되어야겠다부처님처럼 자비의 마음으로 일체의 인간을 구원하고 싶다>ㆍ이러한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전을 읽거나 남의 설교를 듣거나 그밖에 다른 여러 가지 책을 읽거나 하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근본이 되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지혜의 연마를 힘쓰는 데 있어서는 본래 자기에게 부처가 될 거룩한 성질,  대우주 본체와 통하는 불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도를 수행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액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본래의 성질이 충분히 발휘되면 색신(色身), 그 형상에도 훌륭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법신이 나타난 것을 색신으로 보아 좋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부처님의 *삼십이상(三十二相)이니 *팔십종호(八十種好)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의 거룩함이 저절로 형상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色)이란, 겉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얼굴이나 몸의 모양도 이지마는, 목소리 같은 것도 역시 에 속합니다. 요컨대 외형에 나타난 것은 모두가 입니다. 거룩한 본성이 발휘됨에 따라, 그 거룩한 마음이 모습에도ㆍ목소리에도 나타납니다.  일거일동(一擧一動)에 나타나는 것이 32가지 또는 80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형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그저 훌륭하게 보인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색신(色身)은 굉장한 감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얼굴을 뵙기만 해도ㆍ부처님의 음성을 듣기만 해도 더러운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지고 또한 마음의 미혹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그 뛰어난 색신을 갖추고 계시는 그 자체가 또한 모든 중생을 구원하시는 힘이 됩니다.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부처님의 *매자의 비원이 우뚝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法華經을 공부하는 사람은 부지런히 수행을 쌓아서 참으로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우리들 자신의 것이 되면, 상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서서히 상쾌해 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바세계에 오신 부처님
 
부처님이면 어느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가 다 같고, 또 어느 부처님께서 하시는 가르치심이나 다 결국 귀착점(歸着點)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부처님을 찬송하는 것은 곧 모든 부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한 분의 부처님을 믿는 것은 모든 부처님을 믿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부처님 가운데서 우리들 사바세계 중생과 특별히 인연이 있는 부처님과 별로 특별한 인연이 없는 부처님이 계십니다. 이것은 부처님에 차별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바세계에 태어난 우리는 여기 지구촌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나신 부처님이 특히 우리와 인연이 있는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또한 우리들 인간의 정서입니다. 다같은 부처님이시지마는, 우리는  지구촌에 오셔서 친히 몸으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시고 50 여년간 가르치심을 설해 주신 석가모니불특별거룩하게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