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전도(顚倒)된 범부(凡夫)를 위해  실은 있건마는  (滅)한다고 말함이니라.  항상 나를 보는 까닭으로  교만하고 방자한 마음을 내며  방일(放逸)하고  오욕(五欲)에 착해서  악도(惡道) 중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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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德行品)-2-01-01
 
무량의경법화경(法華經)의 개경(開經)이라 하고,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菩薩行法經),  곧 관보현경(觀普賢經)法華經결경(結經)이라 하여, 法華經과 아울러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고 합니다.
개경전체 메시지가 되는 (經)결경은 끝맺는 이라는 뜻입니다.
언제부터 그리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중국의 *천태대사(天台大師)께서 法華經을 설하실 때 이미 그러한 신앙적 통념(通念)이 있었다고 합니다. 천태대사께서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수행하시기 전, 아직 젊었을 때, 이미 法華經과 아울러 무량의경관보현경을 읽고, 또 남에게도 강의하셨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적어도 약 1천 3~4백년 전부터 무량의경관보현경법화경과 함께 나란히 읽는 신앙(信仰) 관습(慣習)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석가세존께서는 경치도 좋고 그다지 높지도 않아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교(敎)를 설하시기에 알맞은 영축산에 자주 가셨습니다. 마지막에 가셨을 때, 무량의경法華經을 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무량의경法華經과 함께 한 곳에서 설하셨고, 또한 法華經에도 法華經을 설하시기 전에 무량의경을 설하셨다고 합니다. 짐작컨대, 이 두 경전은 떼어 놓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곳에서 계속하여 설하셨다든가 하는 것만으로는, 무량의경法華經과 함께 읽는 이유로는 미흡하지만, 이 두 경전의 내용을 자세히 통찰해 보면 확실히 떨어질 수 없습니다.
 
法華經을 읽으면 누구나 짐작이 가듯이, 법화경석가세존의 설법 중에서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법화경 가운데는,--정각을 열고 40 여년간 설한 것은 *방편교(敎)다ㆍ法華經은 모든 경전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진실교다ㆍ法華經은 내가 한평생 동안 설한 중에서 가장 혼신(渾身)의 힘을 쏟은 *수자의교이다--라고 세존께서 스스로 法華經이 제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설했고ㆍ지금 설하고ㆍ장차 설할 것이다>라고 하셨음을 보아도, <法華經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것을 세존께서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후세 사람이 <法華經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정한 것이 아니라, 세존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루건대, 法華經이 모든 경전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42년설 *방편교를 설하실 때도, <이 경은 참으로 좋은 제일의 경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경전을 읽는 사람마다 제각기 어떤 경전이 제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해 합니다.
석가세존께서 제일이라고 하는 뜻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컨대, <아직까지는 이 이상 없다>고 하는 뜻도 있고, <너희들에게는 이것이 제일 좋다>고 하는 뜻도 있습니다. 다른 경전도 좋은 경전이요, 法華經도 좋은 경전이라면, 다른 경전의 좋은 점과 이 경전의 좋은 점과는 어떻게 다른가ㆍ어떤 흐름이 있나 하는 근본 문제를 살펴야 되겠습니다.
*무량의경 설법품 가운데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점(基準點), 기준(基準) 틀이 있습니다.  
法華經 이전의 모든 경전과, *일불승 法華經과는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사십여년 미현진실, 곧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아니했노라>이정표(里程標)가 있습니다.
어느 경전이나 세존께서는 성의를 다해서 설하셨지마는 法華經 이전의 것은 부처님의 뜻을 완전히 털어놓은 것이 아닌 방편의 敎입니다. 물론, 진실설을 전제한 방편교였다고 하셨지마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설(說)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석가세존의 생각을 모두 털어 놓지 않으셨다는 것 뿐입니다.
이제 40 여년 방편설을 일단락(一段落) 마무리 짓고, 이제부터는 세존께서 믿으시는 바를 그대로 설하시게 된다는 것을 무량의경을 읽는 동안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무량의경法華經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무량의경에서 지금까지 40 여년 동안에는 진실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셨고, 法華經에 이르러서는  *정직사방편 단설무상도=正直捨方便 但說無上道) 라고 하셨습니다.
방편을 버리고 정직하게 다만 *무상도(無上道)를 설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량의경法華經과 함께 읽으면, 法華經 가운데 설해 있는 가르치심의 뜻,   어째서 法華經을 가장 뛰어난 경이라고 하신 참 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상대자의 힘에 따라ㆍ그 시대에 따라ㆍ또는 경우에 따라ㆍ얼마든지 알맞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량의>의 개념은 부처님의 가르치심 전체의 뜻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의 내용이 얼마나 되는가는 도저히 추측할 수 없지마무량의는 한마음에서 나옵니다.
한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부처님의 자식처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한 마음에서 하시어 그 뜻이 한량 없다는 것입니다.
무량의경에는 한 마음근본임을 여러 면으로 설해 있습니다. 한 마음이란 설하는 에서 말하면 석가여래의 큰 * 자비심의 힘이요, 듣는 에서 말하면 부처님과 일치하는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부처님과 일치하는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ㆍ하는 문제는 法華經에 설해 있습니다.   무량의경만으로는 로서 완전하지 못합니다. 法華經에서 말한다면 法華經의 전제로서 무량의경이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무량의경 에서는 무량의경만 설하면 미흡(未洽)하므로 法華經을 아울러 설(說)하시는 것입니다.
 
무량의경의 대체의 조직 세부분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첫째 <덕행품>ㆍ둘째 <설법품>ㆍ세째 <공덕품>입니다. 공덕품 그 공덕이 열가지가 있으므로 <십공덕품>이라고 합니다.
무량의경의 중심설법품입니다. 설법품 석가세존께서 평생 동안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어떤 순서로 설하셨으며결국어디에 귀착(歸着)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체의 설명입니다.
설법품을 설하실 준비가 되는 것이 첫째덕행품입니다.
덕행품이란, 많은 보살이 석가여래의 거룩한 권능을 찬탄한 경문입니다. 석가여래 어떠한 부처님인가 하는 것을 보통 인간이 찬탄한 것이 아니라, 덕(德)이 매우 뛰어난 큰 보살이 극구(極口) 찬양한 것입니다.
석가여래의 설법어떤 목적에 의한 것인가를 밝히기 전에, 세존께서 갖추고 계신 을 큰 보살이 나서서 말했다는 것은 참으로 용의주도(用意周到)한 신앙적 *작법입니다.
석가여래는 어떠한 부처님이신가를 알고, 지금까지 40 여년 동안 설하신 교학은 어떠한 것일까ㆍ또 앞으로도 가르치심을 설하실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떠한 것일까ㆍ하는 자연스러운 의문덕행품에서 일으켜 놓고 이어서 설법품으로 들어가도록 조직되어 있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먼저 부처님의 을 큰 보살의 입을 통해 보인 다음에 그 설법의 목적을 설하시고 마지막으로 십공덕품을 설하셨습니다. 십공덕품무량의경을 믿고 몸으로써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 하는 것이 설해 있습니다. 십공덕품무량의경을 믿는 공덕 뿐 아니라 *대승교를 배우는 사람의 자세를 설한 것입니다.
 
이상이 무량의경의 대체의 조직입니다. 이 무량의경을 읽고 나면, 그 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疑問)이 남습니다. 의문이 큰 만큼, 나중에 설하시는 法華經이 크게 기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이 무량의경法華 개경으로 하고 읽는 것입니다.
 
이어서 法華經을 읽은 다음에 결경관보현경을 읽는 까닭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 제 28 마지막 덕목보현보살에 관해 설해 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미흡하신지라, 보현보살을 중심으로 다시 관보현을 설하셨습니다.
관보현경 요컨대 法華經을 펴는 법화행자*참회를 가르치신 경전입니다. 法華經 가르치심을 대강 안 다음에는 필히 익혀야 할 극히 중요한 덕목이 참회(懺悔)입니다.
法華經을 읽어 보면,  세존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그 취지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도 수행을 쌓으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항상 바삐 돌아가고, 게다가  범부이므로, 마음에 끊임 없이 미혹(迷惑)이 일어납니다. 수행 여하에 따라서는 틀림 없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짐작이 가지마는, 어떻게 방해를 받지 않고 부처님이 되는 길을 향해 견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미혹을 완전히 떨쳐 버릴 특별한 어떤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法華經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또 추론(追論)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懺悔는 왜 필요한가에 대해 설하신 것이 관보현경입니다.
 
 法華經이 제일 좋은 경전임을 안다면, 부처님의 뜻대로 法華經을 수행하기 위해,   여설수행(如說修行)하기 위해, 자기에게 과연 그 힘이 있는가 어떤가를 충분히 반성하는 것입니다.
法華經을 배우고 있으면서, 생각대로 수행이 안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항상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의 마음이 흐려져 있으면 되도록 빨리 그것을 떨쳐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상(理想)만을 생각하면, 자칫 과대(誇大)하게 사물을 생각하기 쉽고, 현실(現實)만을 보면, 자칫 용기가 꺾이기 쉽습니다. 천태대사께서 언제든지 양쪽을 다 생각해야 한다는 뜻에서 <의겁(疑怯)>을 제거 해야 하고 <만대(慢大)>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의겁(疑怯)>이란 자기를 의심해서 겁내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불성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도저히 부처님이 될 성 싶지 않다ㆍ나는 미혹이 가득 차 있어서 부처님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ㆍ수행을 쌓아야 헛 수고일 것이다ㆍ하는 약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만대(慢大)>란, 조금만 알면 자만심이 생겨서 우쭐하여, 이젠 다 알았다ㆍ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문제 없다ㆍ내 마음이 곧 부처가 아니냐ㆍ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자만하여 자기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행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현재의 자기를 반성하며, <의겁(疑怯)><만대(慢大)>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무량의경 *구마라집(鳩摩羅什) 삼장법사께서 法華經을 번역한 때로부터 약 100년 쯤 뒤, 중국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담마가다야사(曇摩伽多耶舍)라는, 본래 인도 사람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경전의 한역(漢譯)은 누가 했다고 기록되지마는 실제로는 번역한 사람이 직접 문장을 쓴 것이 아니고, 원본(原本)에 대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 설명을 여러 사람이 듣고 기록해서, 그것을 모아 놓고 검토하고 토론하여 그 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을 채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량의경 담마가다야사(曇摩伽多耶舍)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설명을 듣고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번역문에 대한 전책임은 설명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므로, 번역은 아무개 누가 했다고 굳이 이름을 밝히는 것입니다.
法華經 번역에는 2천여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무량의경에 대해서는 몇 명이 모여 번역했는지 전해 오는 말이 없습니다마는 역시 상당한 인원이 이에 종사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지금부터 법화삼부경개경이라고 하는 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 제 1을 열겠습니다.
 
 * 덕행품 제 1에,-----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 한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 산중에 계시사 큰 비구 대중 일만이천인과 함께 하시고, *보살마하살 팔만인과,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와ㆍ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도 함께 하시니,----
 
---무량의경 덕행품은 왕사성 법화회상의 환경을 아난존자의 입을 통해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
 
경전세존께서 직접 쓰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가섭존자*경전편찬위원회를 소집하고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존자 법상에 앉아 가부좌 맺고, 500명의 *아라한에게, "나는 이와같이 들었다(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이러 저러하게 말씀하셨다" 고 하면, 가섭존자는 청중을 향해, 틀렸느냐맞느냐고 소리치면, 오백명의 아라한이 맞다고 하면, 즉시 나무닢에 적었습니다. 그것이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前提)된 8만4천 법문입니다.
 
<이와 같이(如是我聞)>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확실히 <그와 같다>는 뜻이고, 하나 만약 틀린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큰 비구 대중>*사리불존자를 비롯한 *십대제자는 아직 보살수행을 충분히 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청정한 마음으로 소승(小乘)의 수행을 잘 익힌 훌륭한 수행자라는 뜻입니다.
<하늘>은 천상계에 있는 사람<용> 바다 속에 살고 있는 것<야차>는 맹악(猛惡)한 귀신<건달바> 천상계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향내만 맡고 산다는 신(神)<아수라> <가루라>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귀신<긴나라>는 천상계에서 *제석천에게 시중 들며 음악을 연주하는 <마후라가>는 역시 음악의  <비구>는 출가(出家)한 남자<비구니>는 출가한 여자 곧 승려(僧侶)이고ㆍ<우바새>는 출가하지 않은 남자<우바이>는 출가하지 않은 여자, 곧 세속의 생활을 하면서 불교에 귀의한 재가신도(在家信徒)입니다.
 
이상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 여러 가지를 나열한 것은, 공중에서 살고 있는 것이거나ㆍ바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거나ㆍ생명 있는 것이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워야 하고, 또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의해 구원 받아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참으로 넓고 큰 자비 사상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라 하더라도, 마음이 교만해서 인간만 구원 받으면 된다ㆍ다른 생물은 아무래도 괜찮다ㆍ라는 마음이라면, 대생명체 대자대비 분상에서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도가 낮은 종교는 인간만은 특별한 것이라 합니다.
바라문교(婆羅門敎)에도ㆍ이슬람교에도 그런 사상이 있고, 기독교의 성경에도 은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특히 인간을 만들어서 이 세상에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인간은 부득이 다른 동물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마는 그것은 조금도 자랑으로 여길 것이 못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혜가 아직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가엾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적어도 생명 있는 것은 다 대우주 본체 분상에서 구원 받아 모두 괴로움이 없게 구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으면, *대승교, 자기가 구원 받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는 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량의경법화경의 첫머리에서, <너희들 인간만을 위한 가 아니다. 천상계ㆍ바다 속ㆍ공중ㆍ어디에 살거나 관계없이 모든 생명은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무릇 생명 있는 것은 다 부처님의 *자비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한다>고 하는 말씀으로 두 경전이 시작됩니다.
소승교, 자신의 마음의 괴로움이나 번뇌(煩惱)를 없애고자 하는 를 수행하는 사람과, 대승교를 수행하는 사람 뿐 아니라, 천상계ㆍ허공ㆍ바다 속ㆍ 모든 생명 있는 것이 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자, 법화설법 회상, 기사굴산으로 모여와 법을 듣는 것입니다.
 
----대전륜왕(大轉輪王)ㆍ소전륜왕(小轉輪王)ㆍ금륜(金輪)ㆍ은륜(銀輪)의 모든 윤왕(輪王) 등과, 국왕ㆍ왕자ㆍ대신ㆍ국민ㆍ circle03_darkgreen.gif 선비ㆍ여인ㆍ큰 장자와 그의 각각 권속 백천만(百千萬)의 수가 스스로 위요(圍繞)해서 부처님 앞에 나아가 두면(頭面)으로 발에 예배하고 백천(百千)번을 돌며 향을 피우고 꽃을 흩어 가지가지로 공양을 마치고 물러서 한 쪽에 앉음이라.-------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왕사성 기사굴산에 집결한 모든 대중이 부처님께 예배올립니다.---
 
<대전륜왕ㆍ소전륜왕ㆍ금륜ㆍ은륜의 모든 윤왕>이란, 이 높은 왕을 뜻합니다.
고대인도의 정서(情緖)에는 이 높은 왕에게는 하늘이 *윤보를 내려주신다는 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윤보를 가진 왕은 천하통일할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윤보(輪寶)에는 금(金)으로 된 것ㆍ은(銀)으로 된 것ㆍ구리 또는 로 된 것이 있습니다. 이 가장 뛰어난 왕에게는 금(金)으로 만든 윤보를 내리고, 그 다음이 은(銀), 이렇게 그가 갖추고 있는 의 정도에 따라 차례로 구리 또는 쇠로 만든 윤보를 내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불교가 일어나기 전부터 내려온 고대인도 사회의 뿌리 깊은 통일사상입니다.
고대인도 크고 작은 여러 나라가 서로 싸우고 빼앗기고 하여 편안한 시대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높고 강력한 리더 쉽을 갖춘 <대전륜왕>이 나타나서 고대인도 전역을 통일하여 태평한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갈망(渴望)하는 추세(趨勢)에 불교가 등장하였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불교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국왕대신(國王大臣)에게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정법치국(正法治國) 곧 정법(正法)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재세시, 고대인도에는 마갈타국과 코살라국을 비롯한 16개국의 크고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석가세존께서는 16개국의 군왕(君王)과 태자들 30 여명을 모아 놓고 인왕경(仁王經)을 설하시면서,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국민을 삿되게 다루거나 탐욕(貪慾)을 부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백성을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하겠다백성 구제를 전제하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치심대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은,----지금 인도 전역의 국가들은 서로 자기 세력을 팽창하려고 전쟁하며 살생하는데, 이런 때는 어떻게 국가를 통치해야 합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군왕득백성 득천하(君王得百姓 得天下)하고 군왕실정실덕(君王失政失德)하면 백성수재앙(百姓受災殃)이라 하셨습니다, 군왕이 백성의 마음을 읽으면 천하를 얻고, 군왕이 德을 잃고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이 재앙을 받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탐욕 때문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전부를 내려 놓아라. 자신은 물론, 내가 이다 하는 까지 내려 놓아라. 그러면 세상이 환하게 보인다. 미혹 번뇌가 나가고 마음이 열리면 헐 벗고 굶주리며 질병을 앓고 있는 아비규환(阿鼻叫喚),   *환난(患難) 속의 백성의 신음소리가 다 보인다. 환난 속의 백성을 어떻게 구제하겠다는 방법론이 나온다. 내가 어떻게 구제하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군왕 자신의 눈으로 찾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백성에게는 약을 주고, 굶주린 사람에게는 쌀을 주어 보호하면 세상은 평화가 온다. 그런 *지혜를 남의 말만 듣고 하려면 안된다. 저 어리석은 불쌍한 백성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겠다는 *자비의 마음이, 군왕이 제일 먼저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석가세존께서는 *일체중생구제론에 초점을 맞추고 42년간 방편의 교학을 펴셨고, 다시 法華經에 이르러서도 모든 중생 구제를 전제하고 *전륜성왕을 비롯한 그 시대 크고 작은 나라의 모든 왕들이 모여와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도록 영산설법 회상을 여셨습니다.
 
왕법(王法) 곧   왕(王)의 정치와,   불법(佛法), 곧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일치하는 것을 명합(冥合)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좋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하고, 불교에서는 열심히 좋은 가르침을 설하면, 자연히 쌍방이 잘 어울려서 명합(冥合)을 이루면 국가가 번성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진정 좋은 정치는 불법에 알맞는 정치입니다. 그리고 좋은 정치를 펴는 나라가 아니면, 불법은 제대로 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펴는 사람이 정치하는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서, 그들 정치인의 입맛대로 보호를 받아 를 펴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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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선비ㆍ여인ㆍ큰 장자
 
<선비>ㆍ<여인> 중산층(中産層)의 백성을 말합니다. 어떤 나라이고 중류층의 사람들이 건전(健全)해야만 나라가 번영합니다. 잘 사는 상류층의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가난한 하류층의 사람은 *불성,  부처님이 될 본바탕은 갖추고 있지마는 가난하여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람에게 민족을 생각하라ㆍ국가를 생각하라고 해보았자 그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산층의 사람은 생활에 곤란도 받지 않고, 문화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므로 별로 걱정이 없습니다. 게다가 중산층를 배울 시간적 여유도 있으므로 이들은 국가의 재동(潛在動力)입니다. 이들 중산층 상류층(恣行)견제하고, 또 서민층의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회적 교량 역할을 하였을 때, 국가 사회가 급속히 발전합니다. 그래서 중류층(中流層) 사람들의 마음 가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자 모여 오는 것입니다.
<큰 장자>란, 지주(地主)나 상인(商人) 중에서 유력한 사람ㆍ두드러진 사람입니다. 이들은 왕이나 대신들과도 서로 대등(對等)하게 교제하고 그 밑에 따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귀의하면, 불법이 세상에 펴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모든 계급의 사람들과 또 그들의 많은 권속(眷屬)들이 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들으려고 영산 법화회상에 모여 왔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발 아래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의 둘레를 수없이 돌고, 또 향을 피우고 꽃을 흩어서 부처님께 공양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 자리에 앉았습니다.
부처님의 둘레도는 것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향을 피우거나 꽃을 흩어 공양하는 것은 부처님께 감사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