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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화경(法華經) 법사품(法師品)-1-10-01
 
법화경 법사품에서는 부처님가르치심을 세상에 펴기 위해 성심껏 노력하는 법사(法師)가 소중하다는 것과, 그러한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 등이 설해 있습니다.
법사(法師)로서의 임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법화(法華經)  는 일에 힘을 다한다는 것과, 법화경 펴는 데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서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해 주는 것입니다.
法華經을 깊이 믿고 세상에 펴는 교학불사(敎學佛事)는 워낙 큰 일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동시에,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도와서 그의 노력이 유효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법화신앙의 정서(情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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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법사품 제 10 첫머리에,----그 때 세존께서 약왕보살로 인하여 8만의 큰 보살에게 이르시되, ----
 
----그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약왕보살을 비롯하여 성불(成佛),  곧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큰 뜻을 가진 8만 여명의 모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으로 법사품이 시작됩니다.
 
<약왕보살로 인하여> 부처님께서는 설법하실 때, 항상 상대역을 정하셨습니다. 물론 여러 대중을 위해 설하시지마는, 어느 한 사람을 골라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법(法)을 듣는 상대자의 이해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수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차 설하고자 생각하시는 바를, 여러 사람 가운데서 적당한 어느 한 사람을 찾아내서 우선 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을 듣는 부처님의 상대역은 모르는 점이 있으면 질문하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다 알 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상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마는, 실은 그 한 사람에게 설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반 모든 사람에게 *삼주설법으로 설하십니다.   법사품에서는 약왕보살법사품의 상대역으로 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큰 보살>이란, 부처님의 뜻,  *일체중생구제론에 동참하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세상에 펴서 그 공덕으로 부처님이 되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은 자기 한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되면 모든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큰 힘이 생기므로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큰 보살을 양성하기 위해 설(說)하신 것이 *실대승 法華經이므로 법화경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지금은 범부이지마는 장차 모든 중생을 구원할 사람이 되겠다는 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한 몸의 존재가 참으로 의의(意義)있는 것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이른 바 큰 보살이라 합니다.
 
----약왕아, 너는 이 대중 가운데의 한량 없는 모든 하늘과용왕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사람과비인(非人)과및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성문을 구하는 자와벽지불을 구하는 자와불도(佛道)를 구하는 자를 보라. 이와 같은 무리들이 다 부처님 앞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한 게송이나 한 구절을 듣고, 오로지 일념으로 따라 기뻐하는 자에게는 내가 다 수기(授記)를 주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게 하리라. ----
 
---약왕아, 지금 여기에는 인간계를 비롯하여 천상계, 그리고 모든 세계의 생명 있는 것이 다 모여 있다. 그리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의 성문을 구하는 사람과ㆍ벽지불을 구하는 사람과ㆍ불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 있다. 법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도는 모두 각각 다르다. 그러나 누구든지 내가 지금까지 설해 온 묘법연화경의 단 한 게송ㆍ단 한 구절만이라도 듣고서 일순간이라도  circle03_darkgreen.gif 번뇌(煩惱) 없이 *수희한다면, 그것은 한 없이 거룩한 것이다. 일순간이라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껴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수행을 계속한다면, 나는 그에게 *수기를 줄 것이다. 장차 부처님이 되게 할 것을 약속한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이 찰나에 자기 마음 가운데 부처님과 같은 *자비의 마음이 번갯불처럼 번쩍 일어나면 *승(乘),  *일불승(一佛乘)에 승차(乘車)하여 그 마음을 찰나찰나 유지하면 반드시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것과, 누구나 때로는 착한 마음이 일어나기는 하지마는, 그것은 *십계호구의 마음이니까 일불승에 계속 승차 할 것을 전제하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약왕에게 이르시되, *여래(如來)가 멸도한 후에, 만일 사람이 <묘법연화경>의 다만 한 게송이나ㆍ한 구절을 듣고 오로지 일념으로 따라 기뻐하는 자에게는, 내가 또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수기를 주리라. --
 
부처님께서 약왕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또 여래가 멸도하신 후, 인심이 험악하고 모두 이기적이 되어 *도(道)도 없고 *교(敎)도 없는 말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악(惡)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도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질, *불성이라고 하는 *신성(神性)이 들어 있다. 그러한   *오탁악세  *투쟁견고 백법은몰시대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묘법연화경의 단 한 게송한 구절만이라도 듣고 조금이라도 기쁘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어두운 세상을 밝힐 힘이 생기는 근본이 될 것이다. 그는 반드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것임을 내가 지금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둔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묘법연화경>의 오로지 한 구절을   * 받아 가지고읽고외우고해설하고옮겨쓰며이 경권(經卷)을 공경하여 부처님과 같이 보고, 가지가지의 꽃과ㆍ향과ㆍ영락이며ㆍ말향ㆍ도향ㆍ소향ㆍ증개ㆍ당번ㆍ의복ㆍ기악을 공양하고 또는 합장 공경하면, 약왕아, 마땅히 알라, 이 모든 사람들은 *이미 일찍이 십만억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대원을 성취하고 중생을 불쌍히 생각하는 연고로 이 인간에 남이니라.-----
 
--만약 또 말세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法華經의 단 한 게송이라도 받아 가지고읽고외우고해설하고옮겨 쓴다면, 한없이 거룩한 일이다.  이 法華經을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갖가지 향이나영락이나그 밖의 가지 가지 물건을 공양하고 음악을 올리며, 또는 합장하여 공경 예배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전세에서 수없이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그 모든 부처님 아래에서 수행을 쌓은 사람이다. *선근을 쌓아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잘 해득하여 큰 소원을 성취하고자ㆍ모든 중생을 구원하고자ㆍ그들과 함께 살고ㆍ함께 고생하면서 그들을 인도하고자 다시 이 말세에 태어나 나온 것이다.--
                                                                
  <이 경권을 공경하여 부처님과 같이 본다>란, 법화경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는 마음은  깊은 뜻,  부처님 마음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마음을 공경한다는 것은 거룩한 法華經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法華經 정신을 공경한다면 그 내용이 담긴 책을 공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전에 여러 가지 물건을 공양하고 향을 피운다고 한 것은, 그 형식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형식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 형식도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경전부처님과 같이 거룩하게 보아,   꽃이며향이며영락 등 온갖 물건을 공양하고, 또 음악을 올리고 합장하여 절하는 사람은 이미 전생에서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웬만큼 수행을 쌓은 사람이므로, 그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비전,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말세에 다시 인간계에 태어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질 만능의 세상에서 욕망을 버리고, 진정으로 맑은 마음으로 올바르게 法華經 가르치심을 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금생에 와서 처음으로 불교에 인연이 맺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생에서 이미 불교에 인연을 맺은 오종법사입니다.  오종법사지금의 세상을 가엾게 생각하고 모든 ② 사람의 고뇌 *구원하기 위해 다시 금생에 태어난 것입니다.
*일불승 법화경  받아 가지고ㆍ읽고ㆍ외우고ㆍ해설하고ㆍ옮겨 쓰는은 가장 거룩한 수행입니다. 이러한 수행을 *오종법사라고 합니다.  보살행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번뇌(煩惱)      ②  사람의 고뇌 *①                  불교성경-p222~p229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이 세상의 중생들은 인정이 박하여 서로 사랑할 줄을 모르고, 대단치 않은 일에 싸우고, 심한 고통 가운데서 각각 맡은 직업에 종사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분(身分)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부귀빈천(富貴貧賤) 관계없이 모두 금전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다. 또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고 괴로워 한다. 그래서 언제나 물욕(物欲) 때문에 몸과 마음을 괴롭혀 편안할 때가 없다. 부자(富者)들도 전답이 있으면 전답을 지키려고 근심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근심하여, 모두들 재물에 *집착해 근심을 거듭한다. 혹은 재앙을 만나고 *환난(患難)을 만나서 빼앗기거나 불에 타거나 없어지고 보면, 괴로워 하고 번민하다가 목숨까지 끊어 버리고 만다.-----무량수경  하 에서--
 
그러나 죽어가는 길에는 혼자서 갈 뿐이요, 누구 하나 따르는 자가 없다. 가난한 자는 항상 부족한 것을 근심하며 내집을 갖고 전답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을 애태우고 몸과 마음을 초초하게 지낸다. 그러다가 갖고자 하는 재산을 구하여 갖기도 전에 그 목숨을 보존치 못하고 죽고 만다. 그러나 죽어가는 황천(黃泉) 길은 부귀빈천 관계없이 혼자서 쓸쓸하게 가야 한다.-----무량수경  하 에서--
 
세상의 어떤 사람이건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늙어가는 몸이 늙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요, 둘째 병들어 앓는 몸이 병들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요, 셋째 죽어가는 몸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요, 넷째 멸망(滅亡)해 가는 자가 멸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요, 다섯 째 다해(盡)가는 것을 다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이 피하기 어려운 일에 부딪혀서 부질없이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피하기 어려운 일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기 때문에, 이러한 어리석은 괴로움은 갖지 않는다.---- 무량수경 하 에서-
 
----그러면 중생들의 근심과슬픔과괴로움과답답한 것이 어찌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필경 중생에게 *집착(執着)이 있기 때문이다. 부귀에 집착하고명예에 집착하고목숨에 집착하고나(我)라고 하는 작은 육신에 집착하는 것이다. 중생은 이 집착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과 번민이 생기는 것이다.----화엄경 십지품에서--
 
본래부터 중생의 세계에는 여러 가지 재난(災難)이 있다. 그 위에 늙음과ㆍ병드는 것과ㆍ죽음의 세 가지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슬픔과 괴로움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시 그 근본을 추구하여 보면, 집착이 있기 때문에 슬픔과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집착을 여의어 버리면 모든 번민과 괴로움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다시 이 집착을 자세히 추궁하여 보면, 중생들의 마음 가운데는 *무명(無明)탐애(貪愛)가 발견된다.
무명이란 변천무상한 현상경계를 바로 보고 지혜의 눈으로 인과(因果)의 도리를 바로 분별하지 못하는 어두운 지혜 때문에, 진리를 진리로 보지 못하는 일이다.
본래부터 물질과 경계(境界)에 차별이 없는 것인데 차별을 갖는 것은, 이 무명탐애 때문이다. 본래 선(善)악(惡)이 없는 것인데  을 보게 되는 것도, 여시 이 무명탐애 탓이다.---화엄경 십지품에서--
 
모든 중생들은 언제든지 그릇된 생각을 일으켜서 어리석게 욕심에 매달리고 나(我)라는 육신에 *탐착하여 잘못 된 행위를 한다. 이 때문에 어둡고 어리석은 몸둥이로 출생한다.
*업(業)을 밭으로 삼고ㆍ*식(識)을 종자(種子)로 삼고*무명을 덮개로 삼고탐애를 물로 삼아서나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그릇 된 견해를 더해서 미혹과 어두움(昏暗)을 일으키고 있다.-------화엄경 십지품에서---
 
----*불성(佛性)을 덮어 싼 중생의 번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도리(道理)에 어리석고 어두운 이성(理性)의 번뇌이니, 이것을 가리켜 *견혹(見惑)이라 한다. 둘째 실제에 당하여 미혹하는 감정의 번뇌이니, 이것을 가리켜 *사혹(思惑)이라고 한다. 이 <견혹과 사혹>의 두 가지는 모든 번뇌의 근본적인 분류이다.  그리고 또 이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것에 가지가 있다.------승만경에서---
 
첫째는 무명이요, 둘째는 애욕(愛慾)이다. 이 무명과 애욕은 마왕(魔王)이 악(惡)에 대하여 자유자재한 힘을 가진 것과 같이, 견혹사혹의 모든 번뇌를 낳는 자재한 힘을 갖고 있다.-----승만경에서---
무명무지(無知)한 것이어서 사물의 도리를 가리지 못하여 견혹의 근본이 된다. 애욕강렬(强烈)한 욕망이어서 생(生)에 대한 집착의 근본이며,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모든 것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된다. 그래서 다시 한 바퀴 돌아(一轉) 죽음을 원하는 것 같은 욕망도 되나니, 이것이 사혹의 근본이 된다. 무명과 애욕을 근본으로 하여 이것으로부터 탐(貪)하고ㆍ성(嗔)내고ㆍ어리석고(癡)ㆍ삿(邪)되고ㆍ분(忿)하고ㆍ한(恨)하고ㆍ질투(嫉妬)하고ㆍ아첨(諂)하고ㆍ속이고ㆍ방자(鰻)하고ㆍ거만(慢)하고ㆍ진실하지 못한 그밖의 여러 가지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승만경에서---
 
----탐욕이 일어나는 것은 마음에 적합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바르지 못한 생각을 가진 까닭이요, 노여움이 일어나는 것은 마음에 마땅치 아니한 것을 보고 바르지 못한 생각을 가진 까닭이요, 어리석음이 일어나는 것은 아는 것이 없어서 무지(無知)하기 때문에,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릇 견해가 일어나는 것은 옳지 못한 가르치심을 받아 가지고 바르지 못한 생각을 가진 까닭이다.---파리 증지부에서--
 
---이 탐욕노여움어리석음을 세상의 세 가지 불(火)이라고 한다. 욕심의 불이 일어나면 만족하지 못해서 마음이 괴롭기 때문에 마침내 성내는 마음을 낸다. 노여움의 불 격분하고 분한 마음을 일으키고, 성이 나서 남과 다투며 시기하고 미워하게 한다. 어리석음의 마음이 어리석어서 부처님의 가르치심,   모든 법의 실상(實相) *십여시를 알지 못하므로 사물의 이치를 몰라 매사 일을 그르친다. 실로 이 세상은 여러 가지 불(火)에 의하여 타고 있다.  욕심내는 불과ㆍ성내는 과ㆍ어리석게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불과ㆍ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번민하고 답답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이 일어나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파리 여시어경에서--
 
---욕심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짠 물을 마신 것과 같이 만족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자체에 괴로움이 꽉차서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 욕심에는 구해서 얻어지지 못하는 고통이 따르고ㆍ얻어서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초조해 하는 고통이 따르고ㆍ잃어버리면 정신을 잃고 괴로워하는 고통이 따른다----방광대장엄경에서--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다투고 욕심 때문에 전쟁을 한다. 지도자와 지도자가 싸우고ㆍ백성과 백성이 싸우고ㆍ부모는 자식과 싸우고ㆍ형은 동생과 싸우고ㆍ맏누이는 아래 동생과 싸우고ㆍ친구와 친구끼리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은 다 욕심 때문이다. --전법륜경에서
 
 또 사람은 욕심 때문에 몸을 상해 가면서 도둑질을 하고ㆍ사기를 하고ㆍ간음(姦淫)을 하고ㆍ마지막에는 관청에 잡혀가 여러 가지 형벌을 받아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또 욕심 때문에 마음과ㆍ말과ㆍ몸으로 죄를 거듭하여 금생(今生)에 고통을 받는 동시에, 내생(來生)에서도 암흑세계에 들어가 여러 가지 고통을 받는다.---전법륜경에서
 
---애욕 번뇌의 근본인 까닭에 여러 가지 번뇌가 이를 따라 다니며,  애욕 다시 번뇌의 싹을 자라게 하는 습지(濕地)이어서 여러가지 번뇌를 내게 하며, 또한 착한 행을 잡아먹는 귀녀(鬼女)이어서 모든 선행을 멸망시킨다. 애욕꽃속에 숨어 있는 독사이어서 애욕의 꽃을 탐해 오는 자를 물어 죽이고, 애욕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덩쿨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칭칭 감아놓고, 사람의 마음 속에 고여 있는 선행(善行) 공덕(功德)을 여지 없이 없애 버린다.
애욕 악마가 던진 낚시의 미끼이어서 사람은 이에 낚여 올라가 그릇 된 소견에 빠지고 만다. 굶주린 개(犬)에게 피묻는 뼈다귀를 던져 주면 개는 그 뼈를 빨며 물고 뜯는다. 그러나 입에 들어가는 것도 없이 다만 피곤함과 괴로움만 얻을 뿐이다. 애욕 사람의 마음을 이롭지 못하게 함은 전혀 이것과 같다. 한 조각의 고기를 다투어서 싸우는 중생은 서로 상처를 낸다.
횃불을 들고 바람을 향해가는 어리석은 사람은 달려 갈수록 몸을 태운다. 이 중생과 같이 사람들은 욕심과 애욕 때문에 그 몸을 상하고 그 마음을 태운다.----대반 열반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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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     ①받아 가짐②읽음③외움④해설⑤옮겨 씀====오종법사(五種法師)
 
받아 가짐(受持)읽음(讀)외움(誦)해설(解說)옮겨 씀(書寫)>--
이 다섯 가지 중에서 받아 가짐(受持)정행(正行)입니다. 곧 주(主)되는 수행입니다. 그 밖의 ② 읽음(讀) ③ 외움(誦) ④ 해설(解說) ⑤ 옮겨 씀(書寫)은 *조행(助行),  *정행을 돕는 수행입니다.
 
받아 가짐(受持) <받는다(受)>는 것은, 법화경을 마음에 깊이 믿는 것이며, <가진다(持)>는 것은 그 마음에 깊이 믿는 바에 승차(乘車)하여 마침내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는 마음이 계속되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런고로 <받아 가진다>는 것은 法華經 신앙의 생명, 곧 법화신앙의 근본이기 때문에 法華經 신앙 분상에서 정행(正行)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법화경<받아 가진다>정행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이 신앙의 관건(關鍵)입니다. 신심이 중요하다고 해서, 밤낮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여서는 신앙적 발전이 없습니다. 인간의 환경이란 항상 변합니다. 마음을 항상 거룩한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서 -② 읽음(讀)  ③ 외움(誦)   ④ 해설(解說)  ⑤ 옮겨 씀(書寫)-이라는 네 가지 조행(助行)이 필요합니다.
 
읽는다(讀)는 것은, 法華經 가르치심을 글자 그대로 읽는 것, 또는 귀로 듣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읽는다>는 것을 <듣는다(聞)>고도 표현합니다. 눈으로 읽든지 귀로 듣든지, 아무튼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치심을 마음에 올바르게 받아드리는 것이 <읽는다>는 뜻입니다.
 
외운다(誦)는 것은, 글자를 보지 않고 읽는 것입니다. 경전을 <외운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외운다>는 것은 다만 입으로 소리를 내서 외울 뿐 아니라, 마음 속으로 되풀이 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중에 그 이야기를 마음 속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외운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휑하게 외우더라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입으로 외우기만 해서는 피와 뼈와 살이 되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마음 속으로 되풀이 하여 생각해 보아야만 법화경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운다>는 것이 중요합니다.입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 심독(心讀),  마음에 깊이 믿어야 할 것이며, 또한 *색독(色讀),  가슴으로 깊이 믿고, 몸으로 직접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외운다>는 뜻입니다.
 
해설한다(解說)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경전을 <해설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남에게 설명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 혼자서 읽고 있을 때는 잘 아는 것 같다가도 막상 남에게 말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릅니다. 즉 남 앞에서 을 설한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참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올바르게 부처님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되 잘 안되는 것은, 요컨대 자기의 믿음과 아는 정도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남에게<해설한다>는 것은, 몹시 까다로운 일이지마는 힘써 노력하면,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신앙적으로 法華經을 받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실행하고 있는가를 가슴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설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옮겨 쓴다(書寫)는 것은 경전을 베끼는 것으로서, 옛날부터 많이 실행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옮겨 쓴다>는 것은 경전을 베끼는 것만이 아닙니다. 불교에 대한 책을 저술하는 것도, 경전의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므로 <옮겨 쓴다>의 일환입니다. <옮겨 쓴다>는 것은 <해설한다>와 같은 뜻이므로 스스로 신앙적으로 *참회, 반성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됩니다. 읽고ㆍ외우고ㆍ해설하고ㆍ옮겨 쓰고ㆍ하는 이 네 가지 조행은, <받아 가진다>고 하는 정행을 견고하게 하는 방법론입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을 우선으로 하는 법화신앙을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그 마음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 네 가지의 조행입니다.
<받아 가진다>고 하는 정행 필수이지마는 읽고ㆍ외우고ㆍ해설하고ㆍ옮겨 쓰고 하는  네 가지 조행은 전부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네 가지 조행 중에서 자기의 환경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하면 됩니다. 물론 전부하면 더욱 좋지마는 어려운 우리의 삶 가운데서 도저히 전부를 할 수 없으므로, 자기의 환경에 따라 실행하면 됩니다.
 
신앙과 실생활과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심(信心)한 결과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실생활을 아무렇게나 한다면 그 신심은 부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체중생구제론을 전제한 *구원실성 법화사상에 어긋나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