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026-(6)-1-i
 
*매양 스스로 이같은 생각을 하되, 어떻게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無上道)에 들어 속히 불신(佛身)을 이룩하게 할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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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본문-026-(6)-1-h-- * <관보현보살행법경> 이 계속됩니다
 
-----그 때 행자(行者)는 이 말씀을 듣고 허공(虛空) 소리 나는 곳을 향하여 묻되, 저는 지금 어느 곳에 * 참회(懺悔)의 법을 행하오리까.----
 
<어느 곳에 >란, 마음 가짐을 말합니다. 몸은 어디에 있든지 상관 없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마음 가짐을 어떻게 가져야만 진정한 참회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 허공(虛空)에서 소리가 있으되 이와 같은 말을 설하리라. 석가모니불을 비로자나 변일체처(毗盧遮那遍一切處)라고 이름하느니라. ---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 가운데, 영혼(靈魂)이 깊이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부처님을 일상 생활과 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나의 마음속에 고이 모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참회의 근본이 아니냐 하는 것을 스스로 자각(自覺)함을 말합니다.
<석가모니불을 비로자나 변일체처라고 이름한다>-를 42년 방편설과 8년 진실설로 나누고 끝내는 *일불승 법화경으로 올인 시킨 *천태대사의 교판 *오시팔교, <큰 하나>입니다.
 
42년 방편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고대인도 가비라성태자로 태어나 17세에 야수다라비와 결혼하시고, 18세에 라후라 아드님을 낳고 19세에 출가하시여 설산고행 6년과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6년 단좌명상으로 성불하신 후, 50년간 중생을 교화하시다가 80세에 *열반에 드시어 역사적으로 증명되는 실존의 석가모니불로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8년 진실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 오셔서는 시간이 존재 하지 않는 *무시무종천지기운(天地氣運), 시작과 끝이 없는 대생명체라는 *구원실성 본불의 신분으로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항상 사바세계에 머물러 계시면서 모든 중생을 자비  방편으로 구제하신다는 *개현론을 드러내셨습니다. 본체  본불자비 분상에서 응신불(應身佛),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말씀하시는 석가모니불이란, 80세로 열반에 드신 금생 석가모니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본체 부처님이 모든 중생을 구원하시려고 일부러 인간의 모습으로 인도에 나타나셨다는 본체 실상론(實相論)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이, 여기<석가모니불을 비로자나 변일체처라고 이름한다>맥락을 같이 합니다.
 
비로자나(毗盧遮那)란, 변일체처(遍一切處), circle03_darkgreen.gif 삼신불의 근본이 되는 *법신(法身)을 뜻합니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아상재차사바세계(我常在此娑婆世界),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 법신실재(實在)라는 뜻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체 본불께서 모든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원하고자 세상에 나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대우주 만유 일체는 본체 본불의 힘, *여래비밀신통지력영향권이라는 것을 확실히 파악하는 그 <한 마음  한 믿음>자리에서 진정한 참회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부처님의 머무른 곳을 상적광(常寂光)이라 하느니라.----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법신 언제나 조용하고 언제나 광명가득한 곳, 세상의 변화라든가, 세상의 더러움이라든가 하는 것을 떠난 * 정토에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법화경 여래신력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탐진치 삼독이 훨훨 타고 변화 무상한 *사바세계라는 * 예토(穢土)법화경을 받아가지는 *오종법사가 왕성하게 일어나 이 사바세계정화하겠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그 자리가,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이고ㆍ정각을 여시는 자리이고ㆍ모든 부처님이 *법륜전하시는 자리이고ㆍ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자리, 상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상바라밀(常波羅蜜)의 섭성(攝成)되어 있는 곳ㆍ아바라밀(我波羅蜜)의 안립(安立)되어 있는 곳ㆍ정바라밀(淨波羅蜜)의 유상(有相)을 멸하는 곳ㆍ낙바라밀(樂波羅蜜)의 몸과 마음의 상(相)이 머무르지 않는 곳ㆍ(有)와 (無)의 모든 법의 상을 보지 못하는 곳ㆍ여적해탈(如寂解脫)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니라. ----
 
네 가지 바라밀,*상(常)(樂) (我) (淨)이라는 부처님의 사덕을 말합니다.
<상바라밀에 섭성되어 있는 곳>은, 변화 무상한 가운데서 법화경 수행에 의해 상주(常住)의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부처님의 깨달음이 확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행을 통해 미혹(迷惑)을 벗고 나와 깨달음을 얻는 것이므로 <바라밀>이라 합니다.
<아바라밀에 안립되어 있는 곳>이란, 범부의 자기(小我)라는 것은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수행하면 자기라는 것이 차차 <큰 하나>에  합성됩니다. 자기라는 것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주위에 어떤 변화가 있어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게 되는 대아(大我)를 말합니다.
<정바라밀의 유상을 멸하는 곳>이란, 정(淨)은 자기 멋대로의 생각을 버린 깨끗한 상태입니다. 자기 멋대로의 생각을 버리면 유상(有相), 차별상(差別相)없앨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차별이란 친하다든가ㆍ친하지 않다든가ㆍ멀다든가ㆍ가깝다든가ㆍ이익이라든가ㆍ손해라든가ㆍ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차별을 떠나는 방법은 마음의 미혹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멋대로의 생각을 릴리스,  깨끗이 놓아 버림으로써 그러한 차별두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낙바라밀의 몸과 마음의 상(相)이 머무르지 않는 곳>이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수행입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자기의 환경과 처지가 어떻든,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몸과 마음이 평화로운 부처님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常) (樂) (我) (淨)> 이라고 하는 사덕을 범부의 이상으로 삼고 자기의 행동을 고쳐나간다면 그것이 참회의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회 지금 잘못 된 생활을 깊이 인정하고 새로 태어날 것을 맹세하는 마음 자리입니다. 진정참회란 지혜를 닦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비교하며 항상 참회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와 중생의 생각은 전연 다릅니다. 부처님에게는 사덕이지마는 범부에게는 네 가지 뒤집혀진 생각,   circle03_darkgreen.gif사전도(四顚倒)입니다.
<여적해탈과 반야바라밀이니라>에서 여적(如寂)이란, 언제나 조용한 것이요, *해탈이란 세상의 미혹이나 괴로움에서 떠나는 것이요, 반야바라밀이란 *부처님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요컨대 떠난다든가ㆍ번뇌를 끊는다든가ㆍ하는 것은, 결국 반야바라밀, 사물을 밝히 아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인간이 法華經을 통해 모든 법의 실상 *십여시를 알면 악한 짓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색(色)은 상주(常住)의 법(法)인 까닭으로 이와 같이 응당 시방의 부처님을 관할지니라.--
 
<(色)은 상주의 법인 까닭으로>에서, 색(色)이라는 것은 자기 앞에 나타나 있는 모든 사물을 말합니다. 사물의 진실을 파악하면, 마음에 올바른 지혜가 빛나서 모든 사물의 진정한 성질을 바라보게 됩니다. 마음의 미혹이라든가ㆍ한 때의 오해라든가ㆍ하는 따위로 저지른 죄는 억지로 지우려고 하지 않아도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근본을 바로 잡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것입니다.
<응당 시방의 부처님을 관하다>--이 말씀은 석가여래의 경지를 알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경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도 상주(常住)하신다는 것을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시방(十方) 부처님께서 각각 *오른손을 내미사 행자(行者)의 머리를 어루만지시고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야, 네가 지금 대승경을 읽고 외우는 까닭으로 시방(十方)의 모든 부처님께서 참회의 법을 설하시느니라. -----
 
<참회의 법을 설하신다> 것은 참회하는 의의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롤모델로 하여, 자기의 모자라는 바를 삼가고 진심으로 참회하고, 새로운 생활에 들어간 사람이, 자기의 새로운 생활을 어디서 해나가느냐 하는 참회의의를 말씀하십니다. 만약 자기는 마음의 미혹이 없어졌다고 해서 미혹한 사람을 싫어하고 외면한다면 모처럼 참회한 보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회를 한 사람은 지혜가 충분히 발달하고 지혜가 발달하면, 그 지혜 가운데서 일체의 인간을 불쌍히 여기고 일체의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지혜가 밝아져서 행동이 깨끗해지면 자기도 원래는 *여덟 가지의 삿된 생활을 해 왔는데, 다행이도 法華經을 배워서 마음이 깨끗해졌다는 것을 생각하고 부처님공완(功完)에 보답하고자, 삿된 행동을 하고 가르치심에 친근하지 않는 사람을 가엾게 보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자기의 마음 가짐은 깨끗해야 하고, 실제의 생활만은 미혹한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꽃이 물에 있음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연꽃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연꽃에 진흙이 조금도 묻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 깨끗한 마음에 머물러 있으면서 삿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곳에 진정한 참회의 의의가 있습니다.
 
----보살의 행할 바는 결사(結使)를 끊지 아니하고 사해(使海)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
 
<결사(結使)> *번뇌입니다. (結) 마음을 속박하는 것이고, (使) 마음을 부리(使役)는 것입니다. 마음부린다는 것쓸데 없는 일에 마음을 사역(使役)한다는 뜻입니다.
<사해(使海)>는 많은 번뇌(煩惱)를 뜻합니다. 마음에 미혹이 있으면  쓸데 없는 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circle03_darkgreen.gif오이사(五利使) 오둔사(五鈍使)로 분별하셨습니다.
<결사를 끊지 아니한다>미혹이 일어나기 쉬운 세상과 인연을 끊지 않고, 미혹이 일어나기 쉬운 세상 속에 자기의 몸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세상을 차차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결사를 끊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그러한 미혹 가운데 끌려 들어가거나 함께 물들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부처님께서는 <사해(使海)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海) 많다는 뜻입니다. 법화행자미혹한 세상에서  세간락안주하지말고, 항상 세상의 온갖 사물얽매이지 않는 고결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부처님 자리로 인도하는 선구자(先驅者)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관(觀)함에 마음이 없으니 *전도(顚倒)의 생각에서 일어남이라. 이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은 망상(妄想)으로부터 일어남이라. 허공(虛空)의 바람이 의지(依支)할 곳이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은 법(法)의 상(相)도 나지도 않고 멸(滅)하지도 아니함이라.------
 
<마음을 관(觀)함에 마음이 없다 >는 것은 범부의 마음은 *십계호구인지라 일정하지 못하여 항상 이리저리 흔들려 옮아가고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 끊임없이 동요함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은 망상(妄想)으로부터 일어남이라.>--이 말씀은 사물을 차별하는 마음입니다. 자기가 급할 때는 여유 있는 사람이 못 마땅하고, 자기가 여유 있을 때는 서두르는 사람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등, 이러한 차별을 두는 것이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생각하는 마음은 망상에서 일어납니다. 망상이란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사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사물을 생각하는 데서, 여러 가지 제멋대로의 차별이 생깁니다. 그것은 공중의 바람이 아무데도 머무를 데가 없는 것과 같이, 범부의 나날의 마음이 끊임없이 변하여 종잡을 수 없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망상이라 합니다.
 
----어떠한 것이 죄(罪)이며, 어떠한 것이 복(福)이뇨. 나의 마음이 스스로 공(空)하면 죄도 복도 주인이 없음이라. 일체의 법이 이와 같아서 머무르지도 않고 허물어지지도 않느니라. 이와 같은 참회를 하면 마음을 관함에 마음이 없고, 법도 법 가운데에 머무르지 아니함이라.---
 
<일체의 법이 이와 같아서 머무르지도 않고 허물어지지도 않느니라>에서 (法)이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뜻합니다. 모든 사물은 다 실체가 아니므로 현재의 상태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삼체삼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착한 일을 했다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머물지 말고 다시 더 착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나는 악한 짓을 했다이제는 끝장이다>고 생각하지 말고 악한 짓을 착한 쪽으로 체인지 하면 얼마든지 착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는 선악(善惡)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 하여 부처님께서는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라는 *중도 조화, 곧 삼원론적 대생명체 의식을 드러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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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삼신불(三身佛)
 
삼신불이란, *일체중생구제론의 일환입니다. 부처님이라는 존재,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부처님의 권능중생의 시각에 맞게 <법신보신응신>으로 나누어 드러낸 <큰 하나>입니다.
법신(法身)→대우주 본체라고 하는 실재(實在),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입니다.
보신(報身)→오랜 세월 수행한 인연과보로 지혜를 갖춘 신앙상의 모든 부처님입니다,
응신(應身)→역사적인 실존인물로 *자비를 갖추시고 직접 중생 교화하신 석가세존입니다.
<(應)>한다는 것은 인간이 괴로워서 어떻게 하면 그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소망에 응하신다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응신불(應身佛)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매자의 비원으로 자비를 갖추고 무명 중생의 미혹을 제거하기 위해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으로 오셔서 *사제 팔정도 *십이인연과 그리고*육바라밀이라고 하는 이치(理致), 우주원리를 열어 놓으시고 부처님의 성수 72세에 이르시자 성불경 법화경을 설하시여 무시무종 <큰 하나  한세계>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사전도(四顚倒)===사도(四倒)===네 가지 뒤바뀐 견해
 
사전도부처님사덕을 범부의 생각으로 이치(理致)에 어긋나게 뒤바꾼 네 가지 견해입니다.
 
범부무상(無常)한 것을 상주(常住)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변하기 쉬운 것을 변하지 않는 줄로 생각합니다. 하루 하루 나이 들어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굵어지고 몸이 무거우면 오래지 않아 저 세상으로 갈 줄을 알면서도 쉽사리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범부무락(無樂), 즐겁지도 않은 것을 즐겁다(樂)고 생각합니다. 즐겁지 않다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즐거울 것 같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서 건강을 해칩니다. 권력을 잡으면 즐거울 것 같은데 외롭습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아직 얻지 못했을 때얻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고, 얻고 나서는 빼앗길가 괴로워 하고, 빼앗기고 나서는 잃은 것을 괴로워한다>고 하셨습니다.   범부 입장에서 말한다면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는데, 즐거움도 하나의 전도입니다.
범부는 <자기>라고 할 것이 없는 무아(無我=假我)인데 대아(大我=眞我)라고 생각합니다.
무아(無我)는 깨달은 상태, 모든 집착을 떠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의뢰(依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범부가 내세우는 <자기>라는 것은 항상 변하고 있어서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또 그런가보다 생각합니다. 생각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진짜 <자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도입니다.
범부마음은 무정(無淨), 깨끗지 못하고 더러운데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러움이란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한다든가, <남이야 미혹해 있어서 괴로워하건 말건, 나만 즐거우면 그만이다>고 하는 이러한 자기 멋대로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기를 마치 깨달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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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오이사(五利使) 오둔사(五鈍使)===견사(見思)의 미혹
 
오이사(五利使)는 ① 신견(身見)    ② 변견(邊見)   ③ 사견(邪見)    ④ 견취견(見取見)   ⑤ 계취견(戒取見), 견혹(見惑)이라고 하는 오견(五見)입니다. <(利)> 그 작용이 격렬하고 날카롭다는 뜻입니다.
 
오둔사(五鈍使)는 ① 탐(貪)  ② 진(瞋)  ③ 치(癡)  ④ 만(慢)  ⑤ 의(疑), 사혹(思惑)입니다. 둔(鈍)인간의 능력을 무디게 하며 마음을 몹시 속박해서 자유로운 작용을 방해한다는 뜻입니다. 범부의 갖가지 미혹을 편의상<견혹과 사혹>으로 나누어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견혹이란, 자기가 별로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든가 세상의 상태를 본다든가 또는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활동적(活動的)인 상태에서가 아니라, 수동적(受動的)인 상태에 있을 때에 일어나는 미혹입니다. (見)이란 사물을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사혹 범부가 실제로 무엇인가 활동하는 동안에 마음 가운데 솟아나는 미혹으로 수혹(修惑)이라고도 합니다. 견혹사혹 두 가지를 합하여 <견사(見思) 미혹>이라고 합니다.
오이사
신견(身見)이란,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사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더라도 자기 중심으로 하여 모든 사물을 해석하고 판단합니다. 부자간(父子間)이라 해도 아버지의 처지에서 사물을 보는 것과 아들의 처지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 틀립니다. 노인은 젊은이를 경박하다고 생각하고 젊은이는 노인들을 진부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이즈러진 마음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온갖  마찰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을 신견이라 합니다.
변견(邊見) 이란, 모든 사물의 겉모양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장님 코끼리 말하듯,  성질이 급한 사람은 일부분을 알면서도 전체를 아는 것처럼 행세한다거나, 또는 좀처럼 사물을 완전히 알려고 들지 않는 아주 짧은 생각을 변견이라 합니다.
사견(邪見)이란, 자기의 이해를 주로하여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만을 중심으로 하는 것신견(身見)이라면, 사견 자기의 이해(利害)를 중심으로 하여 이렇게 하면 이익이 된다ㆍ 저렇게 하면 손해가 된다ㆍ 하고 이해타산(利害打算)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사견이라 합니다.
견취견(見取見)에서, (見)이란, 자기의 생각이고, (取)는 집착하고 고집하는 입니다. 인간은 고집이 있어서 일단 자기가 이렇다고 생각한 일은 무조건 고집 부립니다. 그것이 옳지 않은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기가 거북하고 무안하기 때문에, 체면이 깎이는 것이 싫어서 좀처럼 고치지 못하는 것을 견취견이라 합니다. 잘못을 고치겠다는 용기가 없는 것이 견취견입니다.
계취견(戒取見)에서, (戒) 부정(否定)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번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 다음에는 그것이 옳지 않은 줄을 깨닫고도 자기의 말을 고집하여 웬만해서는 고치지 않습니다. 역시 자기 체면이 깎이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계취견입니다.
 
이상의 -신견변견사견견취견계취견 - 이 다섯 가지 견혹(見惑)은 범부와 함께 합니다. 그러나견혹(見惑)은 오직 *부처님의 지혜를 닦아야 없앨 수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서로가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면 다섯 가지 오이사(五利使)라고 하는 견혹은 없어집니다.
 
오둔사
탐욕(貪)탐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명예를 탐내고권력을 탐내고심하면 남의 친절까지 탐내는 것을 탐욕이라 합니다.
성냄(瞋)자기 멋대로 하려고 하는데서 일어납니다. 자기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남은 저렇게 생각하면 불쾌하고, 그 불쾌가 극도에 이르면 성이 나는데 그것이 범부의 한계입니다.
어리석음(癡) 무엇이나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전체를 생각한다거나 앞뒤의 관련도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눈앞에 것만을 생각하고 눈앞에 나타난 것만으로 전체를 본 줄 알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교만(慢)조금만 사물을 알면 완전히 안 듯이 뽑내는 것입니다. 경전의 몇 구절을 보고 불교를 전부를 아는 것처럼 자만합니다. 이러한 만심(慢心)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질투라는 것이 일어나 항상 남의 위에 서려 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하여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아래로 끌어내리려 하고 미워하면서 질투를 뿜어대는 것이 자만입니다.
의혹(疑)자기가 변변치 못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보다 월등한 사람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자기를 표준으로 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보살이나 위대한 사람의 행적을 책으로 읽어보거나 말로 들으면, <그럴 수가 없다. 그건 뒤에 지어낸 말이다>이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못하는 일을 남이 했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못하는데서 의혹이 일어납니다.
 
이상이 오둔사, 사혹(思惑)입니다. <견혹과 사혹>을 합하여 <견사의 >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견혹사혹>으로 뭉쳐진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려고 부처님께서는 -- 매양 스스로 이같은 생각을 하되, 어떻게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도에 들어 속히 불신(佛身)을 이룩하게 할까 하노라.---하고 *매자의 비원을 선언하십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