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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rcle03_darkgreen.gif 나의 지력(智力)은 이와 같아서(我智力如是=아지력여시)
  circle03_darkgreen.gif 지혜(智慧) 광명(光明)으로 한량 없이 비치고(慧光照無量=혜광조무량)
  circle03_darkgreen.gif 수명(壽命)이 수없는 겁(劫)니,(壽命無數劫=수명무수겁)
  circle03_darkgreen.gif 오랫 동안 (業)닦아 얻은 바이니라.(久修業所得=구수업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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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여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정각(正覺)을 달리 말씀드리면 부처님의 <큰 지혜>입니다.*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뇩多羅三막三菩提)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을 듣고자 찾아 온 사람들의 성품과ㆍ욕망과ㆍ*근기부처님의 지혜로 살피신 다음에, 상대눈높이에 알맞는 가르치심을 주시여 구제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어느 때는 부처님의 수명이 한량 없다고 말씀하실 때도 있고, 어느 중생에게는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고 설하시지만 모두가 중생 구제를 전제(前提)한 *부처님의 지혜라고 하셨습니다.
 
42년 방편설, *삼주설법(三周說法) circle03_darkgreen.gif 수타의교(隨他意敎)부처님의 수명론(壽命論)*구원실성(久遠實成)*일품이반(一品二半)*부처님의 십력(十力)*사비(四非)*육혹시현(六或示現)*오중현의(五重玄義)*오시팔교(五時八敎)--등, 이 모든 법화경 성어(聖語) 부처님의 지혜,  부처님의 지력(智力)을 드러내시는 단지 언어상의 표현일 뿐입니다.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구원실성 수명론 분상에서 중생구제는 물론이려니와, 축생(畜生) 미물까지도, 모두 구제하여 마침내 <큰 하나>를 얻게 하려고 *사바왕래팔천도(娑婆往來八千度)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받아 가지고 *사바세계를 팔천 번이나 오고 가시면서 보살행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시는 곳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이타행(利他行)하시여 중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주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수행을 쌓으신 그 인과(因果)만으로도 얻은 부처님의 수명은 물론이려니와, 부처님의 지혜 또한 한량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라는 것은, 부귀빈천ㆍ남녀노소 관계 없이 구제가 목적입니다. 일체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홍익사랑으로, 금생 수유(須臾)의 삶이나마 승격시켜 부처님의 자리<큰 하나>에 들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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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나의 지력(智力)은 이와 같아서(我智力如是=아지력여시)
 
<나의 지력(智力)은 이와 같아서>에서 지력(智力)은 한문 뜻대로 지혜의 힘입니다. 사전에서 지혜(智慧)란, 첫째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개인의 정신적 능력이며, 둘째 육바라밀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불교의 이상인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여섯 가지 수행을 한 인과(因果)로, *탐진치(貪嗔痴) 삼독이 끊어지면, 잃고 얻음,  또는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으로 일체의 * 견사의 미혹을 소멸하고 보리(菩提),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의 정각(正覺) 지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 일체중생 구제가 목적인 부처님의 예지(叡智)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實相)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낱낱이 분석한 다음에, 중생구제를 전제하고 종합적으로 보는 부처님의 눈, *불안(佛眼)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모든 부처님의 지혜(智慧)는 심히 깊고 한량이 없느니라. 그 지혜의 문은 알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움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방편품 제 2에서 제일성으로 부처님의 지혜알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지혜(智慧)심히 깊고 한량이 없다(제불지혜(諸佛智慧) 심심무량(甚深無量)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문은 알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기지혜문(其智慧門)  난해난입(難解難入)고 하셨습니다.
 
<모든 부처님>이라 지적하신 것은, 누구든지 인생의 참된 의의(意義)를 완전히 깨달으면, 남을 구제하는 부처님이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부처님이 나 올 수 있어서 석가세존을 비롯한 <모든 부처님>의 지혜도 역시 심히 깊고 한량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혜(智慧)라는 것은 <지혜지(智)>자와 <지혜혜(慧)>자가 결합된 합성어입니다.
 
(智)--->유(有)--->차별(差別)--->변화(變化)------->분석(分析)
(慧)--->공(空)--->평등(平等)--->불변화(不變化)--->종합(綜合)
(智)(有)아는 힘입니다. 불교에서 유(有)라는 것은 차별(差別) 차이(差異)를 말합니다.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 일체 것은 낱낱이 다릅니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 잎 하나도 똑같은 모양 똑같은 빛깔은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도 다 각각입니다. 특히 지문(指紋)이라는 손가락 무늬는 사람마다 다르고 평생을 두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을 식별하는 인장대용으로 지장을 찍기도 하고, 어떤 범죄수사에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인간이면 지문이 모두 똑 같을 것 같은 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다른 점을 끝가지 자세하게 구명(究明)하여 분석하는 것을 <(智)>라고 합니다.
<(智)>는 유(有), 즉 차별(差別) 차이(差異)변화(變化)면(面)을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얽혀 있거나 복잡한 것을 풀어서 개별적인 요소나 성질을 명확하게 나누어서 알아보고 자세히 분석(分析)하는 힘을 불교에서는 <(智)>라고 합니다.
 
(慧)(空)아는 힘입니다. 공(空)이라는 것은 평등(平等)입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화(不變化)라  해서 공(空)이라 합니다.
공(空)이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그 변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포착하는 것이 바로 공(空)아는 힘입니다.
(空)이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慧)라는 것은 공(空)평등(平等)  불변화(不變化)면(面)을 더욱 자세히 종합(綜合)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일체 것들 즉 모든 사물의 낱낱의 관념이나 개념을 분석한 바탕 위에서 새로운 관념이나 개념을 구성하는 판단 따위를 결합시킨 종합적인 것을 (慧)라고 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지혜(智慧)의 광명(光明)으로 한량 없이 비치고(慧光照無量=혜광조무량)
 
<지혜의 광명으로 한량 없이 비치고>라는 말씀은, 본불 석가세존께서 일체 중생 구제를 대전제(大前提)한 지혜,   지구촌 전인류 구제를 전제한 대자대비심 <큰 마음>을 뜻합니다.
 
보통 세간에서 지혜(智慧)지식(知識)과 동일시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지식이란, 어떤 주어진 대상에 대해서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認識)이나 이해로 끝나는 개인적인 정보입니다.
흔히 --사전 지식ㆍ전문지식ㆍ 기초지식ㆍ예비지식--이다 하는 말을 많이 쓰이는데, 분명코 지식지혜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지혜 세간에서 사심을 가지고 잔머리 굴리어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그런 저급한 지혜가 아니라, *실대승(實大乘) 법화경 분상에서 전인류 구제를 전제한 불지혜(佛智慧) 곧  공심(空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 사물을 볼 때, (有)(空)을 통합하여 보는 것입니다. 컴퓨터 윈도우에서 창을 여러개를 같이 띄우고 보듯이, 차별 가운데서 평등을, 변화속에서 불변화를 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나 경계에 임했을 때, 낱낱이 분석하고 종합하여 시너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광명으로 한량 없이 비치고>라는 말씀은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일체 중생 구제를 전제한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구제목적법등명(法燈明)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중생이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영원한 생명의 지침서입니다.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한 <(智) (慧)>라는 <차별 평등>은 불교의 진면목(眞面目)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라는 것은 결코 우원(迂遠)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인생사에서 유리(遊離)된 것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금생 백년 미만의 인생을 사는 우리의 에서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지혜의 광명으로 한량 없이 비치고>에서 비추어 본다는 것은 세밀하게 살펴서 중생의 소리를 듣고 구제의 손길을 펴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처마밑나는 참새높은 하늘나는 봉황의 마음을 어찌 알겠느냐--며 자신이 그릇이 크다는 것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가 없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넋두리입니다. 봉황이 처마밑을 나는 참새의 마음을 알고자 몸을 낮추고 <오직 모를 >이라며 애써 노력하는 지구력(持久力) 이라든가 *자비심 가운데서 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차이점을 알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란 사물을 알아 분별하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차별 가운데서 모든 것에 통하는 평등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모두가 다 다르지마는 그 다른 것을 통틀어 보면 거기에 다르지 않은 일관된 것이 있습니다. 그 일관된 것을 확고하게 포착(捕捉)하는 것이 (空)이요ㆍ평등이요ㆍ영원한 것입니다.
 
일체 모든 사물,  일체 것은 낱낱이 다 다르니까 그 다른 점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분별하여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지마는, 또한 그 다른 것에 구애(拘碍) 되어 불평 불만으로 일관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른 것들 가운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통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 일체 중생 구제를 전제한 부처님의 지력(智力)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行星), 지구촌은 보편적으로 사계절입니다. 남극이나 북극 또는 적도를 제외하고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을 맞으며 인연따라 살고 있습니다. 분명히 계절이라는 차별, 변화속에서 한결같이 문명(文明)을 이루고 삶을 진화시키며 살아오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에 치우치지 않고, 오히려 계절의 변화를 분석하고 그리고 변화를 통합하여 활용하며 발달한 지구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수명(壽命)이 수없는 겁(劫)이니,(壽命無數劫=수명무수겁)
 
세간에서는 지혜의 개념을 물으면 잔머리 굴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법화경에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중생구제를 전제한 실대승(實大乘)  구제입니다. 통합적인 것입니다.
 
바야흐로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화시대입니다. 많은 자료를 빠르게 분석하고 관리해야만 세계무역기구 WTO 시대에서 살아남습니다. 과거에는 주판으로 열심히 계산하여 장부를 정리하였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전자 계산기가 등장하면서 편리하다고 좋아하였습니다. 윈도우 95가 나오면서 전자 계산기를 대신해서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들은 자료관리ㆍ계산ㆍ챠트작성ㆍ정보검색ㆍ등을 빠르게 손쉽게 해냅니다.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한 엑셀입니다. 액셀 수식의 재계산 등 연산속도 등 실행능력이 엄청나게 빨라 그만큼 시간 절약이 됩니다. 엑셀이라는 것은, 각종 데이터를 쪼갤 수 있는 한 아주 잘게 쪼개어서 항목을 만들어 놓고, 면밀하게 쪼개어진 1차 데이터를 모아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파일의 집합체입니다. 액셀 사용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데이터를 검색 조작 또는 저장할 수 있고, 많은 자료들을 낱낱이 분석하여 항목별로 쪼개어 놓고, 가로 세로로 집계, 즉 크로스 체크하고 분석하여 종합정보를 찰나에 얻어냅니다. 인터넷 첨단문화 차원에서 액셀의 비중은 대단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智慧)라는 명사의 장난감이 오늘날 엑셀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드렸는데, 부처님의 지혜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오랫 동안 업(業)을 닦아 얻은 바이니라.(久修業所得=구수업소득)
 
부처님의 지혜<한량 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신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환하게 꿰뚫어 보시고 분석하고 통합하여 말씀하시는 구제(救濟)를 전제한 정각(正覺)지혜입니다.
우리들 무명(無明) 중생은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으로 보시고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지혜미혹(迷惑)한 중생의 육안(肉眼)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법화경 서품(序品) 제 1에,---내 생각하니 과거 세상 한량 없는 무수겁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은 일월등명이시라. 세존께서 법을 설하시어 한량 없는 중생과 수없는 억만 보살을 제도하사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 지혜에 들게 하심이라.---
 
부처님의 지혜에 들게 한다는 것은 부처님과 같은 지혜를 가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인간을 다 평등하게 보시지마는, 가르치심을 하실 때는 을 듣는 상대의 능력에 맞추어서    circle03_darkgreen.gif 수타의교하시는 데, 그것이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智)는 유(有)를 아는 힘이요 유(有)라는 것은 차별(差別)이요 변화라는 것입니다. 즉 일체 사물을 철저히 끝까지 파헤쳐 분석하여 그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제법의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慧)는 공(空)을 아는 힘이요 공(空)이라는 것은 평등(平等)이요 곧 변하지 않는 불변화(不變化)라는 것입니다. 즉 전체를 통합하여 보는 능력입니다. 권능(權能)입니다.
 
*법화경 서품 제1에,--또 어떤 불자착심(着心)을 떠나 이러한  circle03_darkgreen.gif (妙)한 지혜(智慧)로 위 없는 도(道) 구함을 보았나이다.--
 
인간은 평등이라 해서 다같이 평등하게 다루어도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차별을 두어서 다루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점은 다른 점으로서 확실하게 구명하고, 또 다른 점 가운데서 일관(一貫)하여 변하지 않는 것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분명히 구명하는 분석이 필요합니다. 차별이나 평등 어느 한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것, 곧 공평의 원리가 지혜입니다. 착심(着心)을 일으키면 어느 한 쪽을 보지 못하여 불행을 자초합니다.
 
예컨대 부모는 여러 자식을 기르면서 어느 자식이든지 남에게 처지지 않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잘 자라서 삶의 질을 높이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식을 기르다 보면 아이들 마다 성격이나 재능이 다 각각이라는 것을 알 게 됩니다. 큰 아이가 예능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밑에 아이도 예능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밑에 아이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구명하여 큰 애는 큰 애대로 예능 쪽으로 살려주고, 작은 애는 작은 아이대로 운동 기능을 살리도록 지구력을 길러주어서 보람 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요 부모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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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수타의교(隨他意敎) ㆍ수자의교(隨自意敎)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후, 50년간 설하신 교법<수타의교수자의교>로 나누어집니다.
수타의교 부처님께서 30세에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여신 후로부터 42년간 중생의 근기와 욕망에 따라 중생이 알아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중생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설(說)하신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42년간 중생의 눈높이에 맞추어 하시느라고 불교의 근본 목적무엇인가를 드러내시지 않고, 다만 중생의 고통이 무엇인지ㆍ괴로움이 무엇인지ㆍ그것으로 부터 벗어나는 길을 안내하여 중생의 *견사의 미혹*번뇌를 끊어주시는 가르치심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에 알맞게 최초로 설하신 것이 아함경입니다. 아함경을 통해 중생이 어째서 고통스럽고 괴로워 하는가 하는 근본으로써,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 *십이인연(十二因緣) 교학으로 중생의 근기를 점차로 높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셨습니다. 그것을 수타의교(隨他意敎)라 합니다. 보편적으로는 <작은 교소승(小乘)>이라는 것을 법화경 관점(觀點)에서는 수타의교라 합니다. 그러나 소승이라는 것도 실은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사는 보살행을 근본으로 하는 법화경으로 들어가게 하는 기초작업, 기반교육이요 시발점(始發點)입니다.
 
수자의교수타의교의 반대입니다. 부처님 뜻에 따라 부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처님의 마음을 그대로 설하신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42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가슴 깊이 간직하고 함부로 설하지 않으신 부처님의 본회(本懷)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법화경을 그대로 하신 것을 말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妙)한 지혜(智慧)
 
착심(着心)이란, 집착(執着), 어떤 일에 마음 뺏기는 것입니다. 애착(愛着)과 같습니다.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쁜 것입니다. 무조건 사랑에 얽매이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사랑에 집착해서 분별력을 잃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으로 집착끊어버리면 부처님의 지혜를 빠르게 터득합니다. 남보다 수승(殊勝)하게 됩니다. 그것을 묘한 지혜라고 합니다. (妙)라는 것은 가장 뛰어난 지혜입니다.   부처님정각(正覺)이요 *정변지(正遍智)입니다.
정변지라는 것은 지혜가 바르고 넓음을 말합니다. 즉 (妙)입니다. (妙)라는 것은 언어와 필설(筆舌)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지혜  <큰 하나>표현난기(表現難記)입니다. 부처님의 지력(智力)이라는 것은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부처님의 지혜(智慧)묘혜(妙慧)에 들어와 모든 중생을 모두 구제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