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25-(4)-
 
 circle03_darkgreen.gif 이 모든 죄의 중생은(是諸罪衆生=시제죄중생)
 circle03_darkgreen.gif 악업의 인연으로(以惡業因緣=이악업인연)
 circle03_darkgreen.gif 아승지겁이 지나도록(過阿僧祗劫=과아승지겁)
 circle03_darkgreen.gif 삼보(三寶)의 이름조차 듣지 못함이라.(不聞三寶名=불문삼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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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신 *구원실성(久遠實成)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출현하신 것을 *패연(沛然)이라 합니다.
 
강물이 마르고 논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모든 동식물(動植物)이 타죽는 칠년 큰 가물에, 인간을 비롯한 자연계가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로,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ㆍ작은 나무는 작은나무대로ㆍ가뭄에서 해갈하고 모든 생물이 다시 소생하듯이. 부처님께서 사바세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오신 것이 구제가 목적이라 해서 패연(沛然)이라 합니다.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 제 5에,---*가섭아 마땅히 알라. 비유컨대 큰 구름이 세간에 일어나서 일체를 두루 덮음이니, 혜운(慧雲)윤택을 품고 번개빛이 밝게 비치며, 우뢰 소리는 멀리 진동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미리 즐겁게 하며, 햇빛이 가려져서 지상은 서늘해지며, 뭉게구름이 손에 잡힐 듯이 내리덮임이라. 그 비는 널리 평등하여 사방에 함께 내리며 한량 없이 흘러서 모든 국토에 흡족하면, 산천이나 험한 골짜기얕은 곳에 난 초목 약초 크고 작은 모든 나무와 백곡(百穀)의 모종이며 감자 포도가 다 비에 젖어 풍족함이라. 마른 땅은 널리 흡족해져 약초와 나무들이 함께 무성함이니, 그 구름으로부터 나온 같은 비맛에 초목과 수풀이 분수에 따라 윤택을 받음이라.--
 
중생 다겁생래로부터 짓고 나오는 갖가지 *업보라든가, *인생팔고(人生八苦)를 비롯해 *삼재팔난(三災八難)으로 끊임 없이 괴로움을 당하지만, ---만일, 법문을 듣는 자는 한 사람도 성불 못하는 사람이 없느니라.--- *법화경 방편품(方便品) 제 2에서 법화경 공덕을 필히 말씀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50년간 설하신 8만4천 대법문을 크게 크게 둘로 나누었을 때, 하나성불하는 가르치심이고, 또 하나방편가르치심이라는 것은 이미 공부하였습니다. 방편의 가르치심도, 성불(成佛)하는 길을 완전히 내놓지는 않으셨지만, 실은 성불전제가르치심중생눈높이에 따라 여러 방면의 시각(視角)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한 그루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를 받치고 뿌리로부터 수분이나, 양분흡수하는 본줄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길고 짧은 무성한 가지와 잎과 열매가 화합하여 나무가 되었습니다. 본줄기는 성불을 전제한 법화경입니다. 길고 짧은 무성한 가지 잎과 열매42년 방편의 교입니다. 방편의 교 법화경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본줄기가지와 잎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듯이, 방편교와  법화경둘이 아닙니다.
 
*법화경 법사품(法師品) 제 10에서,--일체 보살의 *아뇩다라삼막삼보리(阿뇩多羅三막三菩提)는 다 이 법화경에 속함이니라. 이 법화경은 방편의 문을 열고 진실의 상을 보이시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이, 법화경은 진정으로 모든 중생성불의 도(道)를 여는 근본 경전입니다. 법화경 권선징악(善懲惡) 다룬 이분법(二分法)이 아닙니다. 다겁생래로부터 못 된 죄를 짓고 나온 중생이라도, 법화경 교학철통같이 믿고 실천하면, 성불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대화합대생명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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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이 모든 죄의 중생은(是諸罪衆生=시제죄중생)
 
<이 모든 죄의 중생>이란, 모처럼 부처님될 성질, *불성(佛性=佛種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거룩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을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수명론 분상에서는, 큰 죄를 짓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번뇌에 얽매여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전부를 뭉뚱그려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간에서는 도둑질이나ㆍ살인이나ㆍ사기 치는 사람을 악(惡)하고 못된 사람이라 합니다. 반면에 남에게 해코자 하지 않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구원실성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는, 자기의 능력을 아끼지 않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있는 힘을 다 기울여 인류 의식의 진보(進步)홍익한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하고, 반면에 노력하지 않고 편한 것만 좋아하고 엄벙덤벙 사는 사람을 악(惡)한 사람이라 합니다. 힘껏 노력했는데 그것이 세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더라도, 힘껏 노력한 *과보(果報)는 반드시 있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 하더하도 열심히 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간에서는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표면에 나타난 결과만으로 결정 짓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인과법(因果法)에서는 내가 인류 의식진보를 위해인류공생공존(共生共存)을 위해 능력을 다 발휘했는가ㆍ 않았는가에 따라 악(惡)과 선(善)의 개념이 다릅니다.
불교에는 *십악(十惡)이라고 하는 열 가지 죄(罪)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만이 죄(罪)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게으름피우고 좋은 일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큰 죄(罪)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세간의 법률상으로는 아무런 도 범하지 않고, 또 세상의 풍속이나 습관상으로 말해도 별로 죄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을 반성해 보았을 때,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양심은 개인의 법정이라고, 바로 법화경 성불 수행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죄의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모ㆍ형제ㆍ처자식 먹이고ㆍ가르치고ㆍ하는 것에 얽매여서 진정한 가르침이나 * 도(道)를 구하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육신이 편한 것만 좋아하고 안이하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한 사람도 <이 모든 죄의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량 없는 과거세 >에 성불하신 석가세존 분상에서는 <이 모든 죄의 중생>도 모두 법화경 교학으로 구제하신다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악업(惡業)의 인연(因緣)으로 아승지겁(阿僧祗劫)이 지나도록
 
 <악업의 인연>이라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굳이 를 범하거나, 아니면 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 그렁저렁 하다 보면, 금방 인생 칠팔십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한 불완전삶을 살아온 인연으로 해서 참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금생을 마치면, 내생도 또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릇 세상에는 별로 한 짓을 하지 않지마는 지금의 불완전(不完全)한 상태에 만족하고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인가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언가 좋은 가르치심이 있는데, 인간은 왜 사는가 --하는 궁금한 생각을 하지 않거나, 또는 무언가 진리의 가르침을 구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못됐다고 비난 받지도 않고, 을 어기는 일도 없이 그렁저렁 그날 그날을 지내는 사람은, 부처님도 모르고()ㆍ부처님의 가르치심도 들으려 하지 않고(法)ㆍ부처님의 가르치심세상에 펴는 사람(僧)의ㆍ거룩함을 알려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인간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나왔는가ㆍ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을 가리켜 <악업의 인연으로 아승지겁이 지나도록>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삼보(三寶)의 이름조차 듣지 못함이라.
 
한량 없이 오랜 아승지겁을 지나도 부처님의 이름도 듣지 못하고ㆍ 거룩한 법화경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ㆍ또 그 가르치심을 세상에 펴는 법사의 이름도 듣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의 이름조차 듣지 못한 사람까지도 구원실성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다 구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한량 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라, 전생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전생 일이라 하셨습니다.
--욕지내생사 금생작자시(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라, 내생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내생 일이라 하셨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업(業)회로입니다. 앞에서 한 행동, 업(業)갚음으로 해서 현재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현재의 행동입니다. 현재으로해서 다음 생의 갚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업보(業報)의 관계를 <악업의 인연>으로 되풀이 하고만 있으면, 어느 하간에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만나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가르치심을 구하는 마음이 불현 듯 생기면, 가르치심의 힘에 의해 행동이 새로워집니다.
내 안에 내재(內在)된   circle03_darkgreen.gif불성에 의지하여 나의 업(業)을 새롭게 리모델링 한다면,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정서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현재로 만족하지 않고 찰나찰나 더욱 가르치심을 구하면, 그 다음의 갚음이 더 좋아집니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가르치심을 구하는 것은 깨달음의 문화 가운데서 산다는 뜻입니다. 만일 세상 사람에게서 욕을 먹지 않는다든가ㆍ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내는 것쯤으로 안심해 버리면, 항상 범부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진정한 기쁨도 진정한 만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삼보(三寶)의 이름조차 듣지 못함이라>고 법화 신앙 관점에서 그리 말씀하십니다.
 
법화경한 법구를 아는 것도 소중하지만, 실은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법화경입니다. 법화경에서 말씀하신대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사랑을 열심히 실천한 사람이 완전한 인간,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는 영원한 자유인이 되어 미래영겁을 산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 <*신독(身讀)ㆍ색독(色讀)>미식(味識)>한 사람이 성불합니다.
 
<신독색독미식>이라는 것은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법화경실천행입니다. <몸신(身)읽을독(讀)>자의 신독(身讀)과, <빛색(色)읽을독(讀)>자의 색독(色讀) 뜻이 똑같습니다. 부처님의 *일불승 법화경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몸으로써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질(物質)을 색(色)이라 하셨습니다. 인간의 육신(肉身)이라는 것을 비롯하여 눈에 보이는 일체 것을 색(色)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신독(身讀)색독(色讀)>을 나란히 함께 말씀하신 것은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법화경에서 배운대로 실천하고 나면 이 나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좋은 일을 하고 돌아서면, --내가 잘했다. 그냥 지나가지 않고 무거운 짐을 잘 들어다 주었구나--하고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것은 보살행, 자비심을 낸 사람만이 느끼는 독특한 입니다.
<맛미(味)알식(識)>자의 미식(味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하면, 그 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착한 일한 사람즐겁고 나쁜 짓한 사람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령, 길에서 여자가 애기를 업고 보따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았을 때, 도와드리겠습니다 하고 들어주면, 그것은 신독(身讀)입니다. 간혹, 도와 주는 그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개의치말고 도와준다면 그것이 신독(身讀)색독(色讀)입니다. 우리 사회는 의심 풍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화경 가르치심이 마음속 깊이 깔려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이 어려운 난세를 불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미 3천여년 전, 구세경 법화경이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는, *중도성불론(中道成佛論)법화경에서만 설하신 것이 아니라, 42년설, 방등시ㆍ반야시의 능엄경ㆍ금강명경ㆍ승만경ㆍ등에서 대승적으로 설하셨습니다. 반야 600부 대승경전 가운데서는, 성불경 법화경이라는 결정적인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일체 중생을 성불의 길로 인도해 가는 것이라고 *사실단 논법으로 살짝 비치기만 하셨습니다.
그것을 안 사람은, *사리불존자 *가섭존자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지혜 제일사리불존자는 42년설에서 면면히 기회있을 때마다, 부처님께서 비치신 성불(成佛)의 도(道)를 이때나 설하실까 저때나 설하실까 하고 무척 듣고 싶어하였습니다.
본시 사리불존자는 바라문교 출신으로 오백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였습니다.
사리불존자는 상당한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인가 느꼈습니다. 사리불존자는 인간의 껍질을 벗기는 그 무엇인가가 알고 싶어서 항상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드디어,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 들어오시면서 *방편품 제 2에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십여시(十如是)>를 말씀하시자, 사리불존자흔쾌(欣快)하게 기뻐했습니다.
사리불존자내가 법화경 실상론(實相論)을 알고자 부처님께 귀의하지 않았는가 하며 기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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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불성(佛性)
 
 *불성(佛性)이란 글자 그대로 <부처님과 같은 성품성질>을 말합니다.부처님이 되는 법화경을 공부하였다고 해도 수행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아주 작은 나팔꽃 씨앗이라도 땅속에 묻고, 물을 주고ㆍ거름을 주고ㆍ햇빛이 쬐이면 그 씨앗에서 싹이 터서 잎이 되고ㆍ줄기가 나오고ㆍ꽃망울이 잡히고ㆍ어느 날 아침 나팔꽃이 피어납니다.
그러나 아무런 씨도 뿌리지 않고 덮어놓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햇빛을 쬐어 주어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거룩한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있다 해도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그 가르치심을 받아들이는 불종자(佛種子)가 본래부터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될 성질, 불성(佛性)이 원천적으로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들여 불도에 들어 올 수 있다는 인과(因果)의 이치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불성 인간이 갓 태어날 때부터 나타납니다. 처음 태어난 갓난 아이는 눈ㆍ귀ㆍ코ㆍ입이 분명히 있지만, 미처 작용을 못하여 엄마를 비롯한 사물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어둡다ㆍ밝다ㆍ배고프다ㆍ배부르다ㆍ차다ㆍ뜨겁다만을 압니다.
그러나 갓난아기는 엄마를 따르고 엄마의 숨소리와 손길과 엄마의 품속을 아는 본성이라고 하는 마음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는 학문도 지혜도 없는 풋내기 엄마라도 아이가 울면 가슴을 젖히고 젖을 물리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불성이 있다고 하십니다.
 
불성이란 무엇입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공심(空心)입니다. 불종자입니다. 불종자라고 하는 *자비는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부처님이 되는 불연(佛緣)을 만나지 못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 버립니다. 마치 가물어서 땅이 메마르면 아무 것도 자랄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열반경에서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circle03_darkgreen.gif 삼인불성(三因佛性)이라고 하여 수행을 전제하고 셋으로 나누어 말씀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삼인불성(三因佛性)===정인불성요인불성연인불성
 
 정인불성(正因佛性)→ 원래 인간은 나면서부터 부처님이 될 종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정(中正)의 이치를 구명(究明)하여 그 이치와 일치한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본성이므로 정인(正因)이라 합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ㆍ받지 않은 사람이나ㆍ적어도 인간인 이상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종자를 천부적으로ㆍ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세간에서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자간ㆍ부부간ㆍ형제간에 서로 화목하고 공생공존(共生共存)할 줄을 압니다. 내 마음과 남의 마음이 일치했을 때에 즐거움을 느낄 줄 압니다. 그러므로  근본 마음, 본체를 찾아 계발하면, 일체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적어도 인간인 이상은 다 부처님이 될 씨앗이 있음을 알라는 것이 정인불성입니다.
 요인불성(了因佛性)<똑똑할요(了)>자는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요인(了因)이란 바르게 아는 힘이 완전히 갖추어지는 것으로서, 잘 배워서 잘 알아 차차 불성계발(啓發)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물을 배워서 차차 *지혜가 나아감에 따라,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이 점점 커져서, 그 인과(因果)로 차차 발휘해가는 것이 요인불성입니다.
 연인불성(緣因佛性)→  배운 것을 가지가지 인연에 의해 실행하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면 남을 도와주는 일에 노력하게 됩니다. 인연에 의해 배운 것을 실행하고, 실행해 가면 더욱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이 차차 그 힘을 발휘해 갑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이 앎으로 인해 크게 되고 실행함으로 인해 다시 더 커집니다. 결국은 부처님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반경에서는 삼인불성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본래부터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요, 배울 기회를 얻는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불교가 없는 나라에 태어났으면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배울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배운다고 하더라도, 산속에 자기 혼자 틀어박혀 있어서는 이것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다행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가 배운 것을 실행할 수 있는 것도 고마운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있음을 가엾이 생각하는 동시에, 불행한 사람들이 눈앞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남을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도 일어나는 것이므로, 이 불행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다만 가엾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도와야 합니다. 일체 모든 것에 대해 고맙다생각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 삼인불성입니다.
 
부처님 재세시, 어느 날, 20세를 갓 넘어선 <선다니>라는 여인이 찾아와서,--저는 세상이 염증나서 못살겠습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인을 *마하바사바제 비구니에게 보내서 불도(佛道)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나자, 선다니 비구니는 부처님께 찾아와서,--저는 죽어도 여기 못있겠습니다. 퇴속(退俗)하겠습니다---며 떠나갔습니다. 2-3년이 지나자, 선다니 비구니는, 또 다시 부처님을 찾아와 수행하겠다고 해서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너는 어째 그 모양이냐--고 야단을 치실 것이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리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간 여인은 나가서 음욕(淫欲)이라는 생명의 활동을 해봐도, 그것 역시 싫증나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자 또 퇴속하겠다고 하여 부처님께서는 그리하라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불쌍한지라. 선다니 비구니가 하겠다는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어느 덧 일곱 번  퇴속하고 여덟 번째 돌아왔습니다. 그 때 나이가 70세였습니다. 그후로는 영원히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내가 잘못을 저질렀으면 * 참회하고, 또 참회하고 가르치심대로 실천해야 하는데, 대개는 그렇지 못합니다. <나같은 것이 무엇 하나라도 제대하는가>하고 자학(自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학대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자학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불성까지 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 모든 죄의 중생은 악업의 인연으로 아승지겁이 지나도록 삼보의 이름조차 듣지 못함이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