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018-(2)-1 -나-
 
모든 비구야, 여래얻어 보기가 어렵다고 하면, 이 중생들이말을 듣고 반드시 만나기 어렵다생각을 내어서 마음에 연모(戀慕)하는 생각을 품고, 부처님을 갈앙해서, 곧 선근(善根) 심으리니, 이런 고로 여래는 실로 멸도하지 않건마는 멸도한다고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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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신 본불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기 위해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오셨습니다.
 
불교에서 구제 미혹(迷惑)한 세계에서 다람쥐 채바퀴 돌 듯, 생사(生死)의 변화만을 되풀이 하는 중생의 고통을 건져내어 생사가 없는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영성세계로의 구제입니다. 세간에서 자연적인 재해나 사회적인 피해를 당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도와주는 것으로 그치는 그런 물질세계의 일회용의 구제가 아니라,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한 홍익사랑으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불성세계(佛性世界)에 눈을 뜨고 영겁토록 자유롭게 살게 하는 <영혼(靈魂) 완성>이 불교 특유의 *일체중생구제론입니다.
 
본문에, <여래를 얻어 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덕(德)이 없는 사람 가운데는 백천만억겁이라는 한량 없는 세월 동안에, 겨우 부처님을 만나 뵙고 법화경(法華經) 설법을 듣는 사람도 있고, 혹은 영영 法華經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음을 아시고, 그런 사람들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을 뵙는 것어렵다는 뜻으로 *맹구천년봉일목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마음에 연모하는 생각을 품는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감동을 받아 마음이 부처님 법에 끌려서 오로지 부처님 자리만을 염원(念願)하고 실천하는 신앙의 극치를 말합니다.
<선근을 심는다>, 法華經 사상에 감동하고 그 보답으로 *일불승 법화경을 펴는 행위입니다.
 
*법화경 권지품에서 일체중생구제론을 말씀하신 法華經이 널리 펴져나가게 하기 위해서 약왕보살대요설보살을 따르는 이만(二萬)의 권속과ㆍ五百 아라한과ㆍ학(學) 무학(無學) 팔천인(八千人)과ㆍ * 마하바사바제 비구니와ㆍ*야수다라 비구니를 따르는 권속이 모두 합세하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라도, *삼류의 강적을 만나 어떤 어려움을 받더라도 용맹정진(勇猛精進)하여 法華經 *오종법사실행하겠다고 부처님께 *이십행게송으로 맹서합니다.
 
*법화행자法華經받아 가지고(受持)읽고(讀)외우고(誦)바로 기억하여 생각하고(正憶念)닦고 익히고(修習)옮겨 쓴다(書寫)고 해서 法華經이 삽시간에 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삼류의 강적을 만나서 방해를 받아야만 法華經이 펴지는 것도 아님을 잘 아시는 부처님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법화경 안락행품에서 축생(畜生) 용녀를 제도한   circle03_darkgreen.gif 문수사리법왕자를 상대역으로 하여, 어떤 방법으로 法華經 선근을 심느냐 하는 것에 대해 설(說)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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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法華經) 안락행품(安樂行品) 제 14
 
세상사는  선후완급(先後緩急)의 흐름입니다.  먼저나중이 있고 느림빠름이 있는 집합체입니다. 모든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는 성불경 法華經을 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을 불노불사(不老不死),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대생명체 *천지기운에 합성시키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일불승(一佛乘) 법화경 교학불사(敎學佛事)를 실행함에도 화음(和音)이 있습니다.
교향악단에서 아름다운 교향악을 연주할 때, 장중한 최저음(最低音)을 내는 튜바가 없으면 김 빠진 맥주처럼 아름다운 음률(音律)을 느낄 수 없습니다. 法華經 불사(佛事)도 그와 같습니다.
法華經 권지품이십행게송과 같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보살들의 추진력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다정한 배려로, 미혹(迷惑)한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그런 진솔(眞率)한 마음이 있어야만, 法華經이 널리 펴져나갑니다. 이점에 대해서 문수사리법왕자가 모든 보살을 대표하여, *오탁악세에서 어떻게 法華經을 펴야만 모든 사람이 구제되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여쭙는 것으로 안락행품이 시작됩니다.
 
*법화경 안락행품 제 14에,---그 때 문수사리법왕자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은 심히 있기 어렵나이다. 부처님께 공경하고 순종하는 고로 크게 서원을 일으키어 후의 악한 세상에서 이 법화경받들어 가져 읽고 외우고 설하오리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후의 악(惡)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여 능히 이 경을 설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이르시되, 만일 보살마하살이 후의 악한 세상에서 이 설하고자 하면, 마땅히  circle03_darkgreen.gif 네 가지 법에 편안히 머물러야 하나니, 첫째 보살이 (行)할 바와, 친근(親近)할 바에 편안히 머물러서 능히 중생을 위하여 경(經)을 설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안락행품은  신안락(身安樂)   구안락(口安樂)   의안락(意安樂)  서원안락(誓願安樂)의 네 가지  사안락(四安樂)으로 나누어 설해주셨습니다.  
자기의 몸가짐을 안락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가ㆍ
입으로 사물을 설할 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설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ㆍ
언제나 마음 속에 즐거움을 느끼고 언제나 그 환경에 만족하는 마음으로 있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ㆍ그리고
서원(誓願), 교(敎)를 펴는 서원을 성취하기 위해 언제나 안온한 마음으로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ㆍ하고 네 가지 안락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안락행이란,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히 살면서 수행한다는 그런 물질적인 안락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法華經을 펴는 *오종법사평화롭고 기쁘고 안온한 마음으로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보살의 자질(資質)설(說)하신 덕목입니다.
 
*법화경 안락행품 제 14에,--문수사리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행(行)할 바라 하느뇨. 만일 보살마하살이 인욕지(忍辱地)에 머물러 부드러이 화(和)하고 선(善)에 순종해서 거칠지 아니하고 마음에 놀라지 말 것이며, 또다시 법(法)에 행(行)하는 바가 없이 하여, 모든 법을 실상(實相)과 같이 관(觀)하고, 또한 행(行)하지도 말며 분별하지도 말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행(行)할 바라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인욕지에 머물다>에서 *인욕이란 성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성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교만하지 않습니다. 남이 나쁘게 말하고 박해를 가해도 절대로 성내지 않는 사람은, 남이 칭찬한다 해도 조금도 교만하지 않고 항상 부처님 마음 <큰 하나>속에서 삽니다. 역경(逆境)에 있거나 순경(順境)에 있거나 환경이 어떻게 변하거나 제약(制約) 당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이 진정한 인욕을 행하는 사람이며 인욕지에 머무른 사람입니다.
<부드러이 화(和)한다>는 것은, 얼굴 빛을 부드럽게 한다든가 말을 부드럽게 한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我)라고 하는 아집(我執)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중심해서 사물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法華經에서 말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뜻하는 *사상(四相)이 아니라,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라고 하는 사상(四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善)에 순종하다>는 것은, 다만 온순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치(理致)에 잘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과, 이치에 순종한다는 것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하나 *절대(絶對)의 진리를 체득하신 *대정각자(大正覺者)이므로 부처님 뜻에 순종한다거나ㆍ이치에 순종한다거나ㆍ하는 것은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거칠지 아니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대해 거친 행동이나 남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교(敎)하는 사람이 남을 선동하고 주목(注目)을 끌기 위해 거창한 말을 하거나 하여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고 언제나 친절하고 조용한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놀라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환경의 변화에도 조금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밭에 부처님이 자리 잡고 있으면 놀라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시 법(法)에 행(行)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아무 것도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아상(我相)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나는 法華經믿고 있다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하는 자만심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
<모든 법을 실상과 같이 관한다>고 하는 것은, 억지로 착한 일을 행하려 하지 않아도 나날의 행동에서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치심이 밖으로 배어나와 저절로 실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법>이란, 모든 것ㆍ모든 사물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물의 진실한 성질을 알려면 *중도,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이 자유로워야만 모든 사물의 진실한 상(相)을 알 수 있습니다.
<분별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자기와 친한 사람은 특별히 도와주고 친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그런 친소(親疎)의 차별을 두지 않는 *자비심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필히 법화행자 circle03_darkgreen.gif 행처와 친근처오종법사의 자질을 드러내시면서 法華經을 배우는 사람은 항상 이점을 *참회(懺悔)하고 노력하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행처(行處)와 친근처(親近處)
 
*법화경 안락행품 제14에서,---①항상 *좌선(坐禪)을 좋아하되, 한적한 곳에 있어 마음을 닦을지니라. 문수사리야 이것을 첫째의 친근처(親近處)라고 이름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첫째의 친근처, ① 신안락(身安樂)에서는 오로지 차별(差別)만을 하셨습니다. 국왕 대신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사람들과는 교제해서는 안된다는 등-- 대인관계에서 금기사항을 드러내는 차별 위주로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항상 조용히 좌선으로 마음을 닦으라 하셨습니다.
<좌선>이란, 선종(禪宗)에서 어떤 격식을 갖추고 하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조용히 생각하는 넓은 의미의 명상입니다. 어째서 이러 저러한 사람은 친근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를 조용히 되풀이해 생각하고 마음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즉 法華經 <듣고(聞)생각하고(思)행하고(修)>하는  *문사수(聞思修)의 삼혜(三慧)를 계속 되풀이 하며 완전하게 터득하는 체득 수행을 말합니다.

② 또다시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법(法)공(空)함을 관(觀)하되 실상(實相)과 같이 하여 전도(顚倒)하지 말고
동(動)하지도 말며퇴(退)치 말고전(轉)하지도 말며허공과 같이 해서 있을 바의 성품은 없음이니, 일체의 말도 도(道)도 끊어져서 생(生)하지도 않고나(出)도 않고일어나지도 않으며이름도 없고상(相)도 없어서, 실로 소유(所有)없고헤아림도 없고끝도 없고거리낌도 없고장애도 없건마는, 다만 인연으로 있음이니, 전도에 따라서 생(生)하는 까닭으로 설함이니라. 항상 즐겨 이와 같이 법(法)상(相)관할지니라.
이를 보살마하살제이(第二)친근처(親近處)라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친근처, ② 구안락(口安樂)에서는, 오로지 평등(平等)만을 설하셨습니다. 착한 사람 악(惡)한 사람, (善)이나 (惡)은 결국 같은 것이라고 귀착점(歸着點)을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방편설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차별상(差別相) 무상(無常)을 설하시고,   진실설 法華經에 오셔서는 일체중생을 모두 성불로 인도하는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평등을 설하신 것과 같이 무슨 일이든지 차별에서 출발하여 평등귀착하는 근본하셨습니다. *종일다출(從一多出)이요 종다귀일(從多歸一)이라는 일체론을 설하셨습니다.
 
③ 일체 중생에게 평등하게 법을 설하되, 법(法)순종하는 연고많이도 하지 말고 적게도 하지 말며, 깊이 법(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또한 많이 설하지 말라. 문수사리야,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후의 말세에서 법(法)이 멸하고자 할 때에 이 제삼(第三)안락행(安樂行)을 성취하는 자이 법(法)을 설할 때에 능히 뇌란(惱亂)케 함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셋째의안락(意安樂)은, 남녀노소 부귀빈천 가리지 말고 구제를 전제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똑같은 자비심을 가지고 똑같이 부처님의 도(道)에 들게 하겠다는 성의를 가지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 다같이 행복하게 해주리라 하는 평등한 마음에서 출발하되, 실제로 說할 때상대근기따라 차별적으로 하는 입니다. 평등하게 說한다는 것똑같은 것을 說한다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지만, 실은 說하는 내용이 상대의 근기나 정도 따라 알기 쉽게 교감(交感)되도록 하는 자비심의 방법론을 말합니다.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후의 말세에서 (法)하고자 할 때, 법화경받아 가지는 자가 있거든, 재가(在家)이거나 출가한 사람 중에서 대자(大慈)의 마음을 일으킬지며, *보살 아닌 사람 중에서도 대비(大悲)의 마음을 내어서 마땅히 이같은 생각을 하되, 이와 같은 사람은 *여래께서 방편으로 근기를 따라 을 설하심을 크게 잃어 듣지도 못하고알지도 못하며깨닫지도 못하고묻지도 않으며믿지도 않고해석도 하지 못함이니, 이 사람이 비록 이 경을 묻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며 해석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을 때, 비록 어떤 곳에 있을지라도 따라서 신통력지혜력으로써 이를 이끌어서 이 법(法) 가운데 머무르게 하리라 할지니라. 문수사리야, 이 보살마하살이 여래가 멸도한 후, 이 제사(第四) (法)을 성취하는 자는 이 법을 설할 때에 잘못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넷째서원안락(誓願安樂) , 모든 사람을 성불하도록 인도하려는 대자대비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대자대비의  마음이란,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뽑아주는 마음입니다. 물질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인생의의를 깨닫게 하는 의식(意識)의 성장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는 길을 열어주는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사상입니다
<(法)이 멸하고자 할 때>란, 세상이 극도로 절박한 말법시대는 웬만한 교(敎)로는 설득력(說得力)이 없기 때문에, 재가불자ㆍ 출가불자가 다같이 法華經을 펴야한다는 것입니다.
<방편으로 근기를 따라>란, 범부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선듯 *대승(大乘)의 교학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승으로 이끌기 위해 방편상 *소승(小乘)으로 제도한다는 뜻입니다.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법화경 구제사상을 모릅니다. 法華經 설법을 들어도 바르게 듣지 못해서 그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 알아야만 의심나는 점은 묻기도 하며 깨닫는데, 아무 것도 모르니까 묻지를 못하고 따라서 믿음이 생기지 않고 뜻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피건대 ④ 서원안락(誓願安樂)은, 부처님의 불멸(不滅), <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겁>성불하신 본불 석가세존수명론(壽命論)을 믿음으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부처님의 힘은 없어지지 않는다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라고 하셨다부처님은 언제든지 계시며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분명히 * 아상재차사바세계(我常在此娑婆世界)라고 하셨다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어 하며 교화하며, 또 다른 곳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의 나라에서도 중생을 인도하여 이익(利益)케 한다고 하셨다. 내가 어떤 곳에 있건, 또 어떤 환경에 있거나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근기 따라 자유롭게 인도해서 다 함께 실대승  法華經에 들게 할 것이다--고 하는 그런 굳건한 믿음과 보살의 자질(資質)에 의해서만 서원안락이 이루어집니다.
 
法華經공부하면서도 자칫하면 용기가 꺾이고 게으른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직도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부처님의 수명론>을 믿는 마음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수명론, 구원실성을 믿고-부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부처님 가운데서 살고 있다, 나는 평화로우며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하는 그런 신념이 굳으면, 누가 무어라고 방해를 하더라도 기필코 일불승 *법화행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개공성불도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결심이 조금도 느즈러지지 않고 서원안락 수행을 계속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안락, 안주사법(安住四法)하시고 난 다음에 종합해서 말씀하시기를, 法華經은 쉽게 얻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circle03_darkgreen.gif 상투속의 명주 비유로서 法華經의 거룩함을 말씀하셨습니다. 法華經중생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중생 근기따라 방편으로 설하시다가, 부처님의 성수 72세에 이르러서야 法華經하시고, 이어서 法華經을 만나게 된 거룩한 인연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법화경은 한량 없는 나라에서 다만  *이름만이라도 얻어 듣지 못하거늘, 어찌 하물며 얻어 보고 받아가지고 읽고 외움이랴--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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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문수사리법왕자(文殊師利法王子)
 
문수보살보현보살석가여래의  좌우보처(左右補處)로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보현보살 석가여래의 오른 쪽에서 뫼시는 우보처(右補處)이며, 이덕(理德)정덕(定德)행덕(行德), 곧 (理)를 대표합니다. 반면에 문수보살 석가여래의 왼쪽에서 뫼시는 좌보처(左補處)로서, 지덕(智德)체덕(體德), 곧 (智)를 대표하는 보살입니다.
 
보처(補處)란, 다음 생에는 부처님이 될 보살로서 주불(主佛)좌우모신 보살을 말합니다.
<(理)를 대표한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물의 원리(原理), 정당한 조리(條理)절대의 이치(理致), 진리(眞理)를 구명(究明)하고 깨닫는 데 능(能)하다는 뜻입니다.   <(智)대표한다>는 것은, 깨달은 진리를 살려서 일체의 인간을 돕는 데 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보살은 남을 구원하는데 힘쓰지 않을리가 없지마는 이것은 중생 분상에서 보았을 때 보살의 특징을 말한 것입니다. 일체중생구제 분상에서는 (理)(智)는 하나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상투속의 명주(明珠)=계중명주(髻中明珠)
 
사천하(四天下)를 통치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 불순한 자를 토벌하고 나서 부하 장수들의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 금ㆍ은ㆍ보화ㆍ논문서ㆍ집문서 등 온갖 것을 상으로 각기 줍니다. 그러나 왕의 상투 속의 명주(明珠) 동곳은 함부로 주지 않습니다. 명주는 월등하게 공을 세운 장수에게만 줍니다. 그와 같이 法華經도 너무나 소중하여 함부로 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42년 방편의 교학으로 중생의 근기가 업그레이드 된 것을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이 바로 이때다-하시고, 사바세계에 오신 *일대사인연을 설해도 제자들이 이해하고 환희하여 능히 수행을 감당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부처님의 본회경, 법화경을 오랫동안 때를 기다리며 소중하게 간직하시다가 부처님의 성수(聖壽) 72세에 이르러서야 설하셨습니다.   <상투속의 명주>를 빼서 공이 큰 사람에게 준다는 뜻은, 부처님께서 42년간 방편교하시면서 法華經 說 할 때를 기다리시다가 금생 육신을 버리실 때가 가까워졌음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 된 法華經을 세상에 내놓으셨습니다.
 
--문수사리야, 이 법화경은 모든 여래제일설이니라. 모든 설법 가운데서 이것이 가장 깊어 맨 끝으로 설해 주나니, 저 힘이 강한 왕오래도록 지키던 밝은 구슬을 이제서야 주는 것같으니라. 문수사리야, 이 법화경은 모든 부처님 여래비밀히 감추어 두었던 바라, 모든 가운데서 가장 그 위에 있으니, 오랜 세월에 수호해서 함부로 선설(宣說)하지 않다가 비로소 오늘에야 너희들에게 주어 이를 널리 펴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