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 018-(1)

(1) 어찌하여 그러한고, 모든 박덕(薄德)한 사람은 한량 없는 백천만억겁(百千萬億劫)을 지나서, 혹은 부처님을 친견(親見)한 자도 있고, 혹은 친견하지 못한 자도 있음이라. 이런 일이 있는 까닭으로  나는 이와 같이 말하노라.
모든 비구야, 여래를 얻어 보기가 어렵다고 하면, 이 중생들이 이 말을 듣고 반드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어서 마음에 연모(戀慕)하는 생각을 품고, 부처님을 갈앙해서, 곧 선근(善根)을 심으리니, 이런 고로 여래는 실로 멸도하지 않건마는 멸도한다고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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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久遠)의 본불(本佛) 석가모니불께서 일체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부처님이 되게 하는데 근본 목적을 가지고,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오셨다는 것과, 우리들 인간은 누구나 다 부처님이 될 씨앗, *불종자(佛種子)ㆍ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오셨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 본래의 참모습을 <열어(開)불지견(佛知見)· 불성(佛性)이, 중생의 내면 깊숙히 내재(內在)되어 있음을 <보여서(示)>·  <깨닫게(悟)>하여· 불지견도(道)에 <들게(入)>한다는 *사불지견(四佛知見)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성품과 욕망과 근기가 각각 다른 모든 중생을, 모두 성불시키기 위해 방편교(方便敎)와, 진실교(眞實敎)로 나누어서 가르치심을 펴셨지만, 실은 모든 인간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여 성불시키기 위한 프로세스였다는 것도 공부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 삼주설법(三周說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는 곧 *열반에 드신다거나ㆍ만나기 어렵다거나ㆍ하는 방편을 쓰시면서 중생이 천부적(天賦的)으로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계발(啓發)해 주셨다는 것도 그동안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모든 박덕한 사람은 한량 없는 백천만억겁을 지나서, 혹은 부처님을 친견(親見)한 자도 있고, 혹은 친견하지 못한 자도 있음이라.>고 굳이 분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중생으로 하여금, 교만하고 게으른 마음을 버리도록 각성시키기 위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교만하고 게으르면 영영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때문에, 이 순간부터라도  circle03_darkgreen.gif 실천하는 마음을 일으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으로 성불의 길에 기쁜 마음으로 승차하게 하려고  다그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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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삼주설법(三周說法)
 
삼주설법이라는 것은 중생 제도 관점에서, ① 법설(法說) · ② 비유설(譬喩說) · ③ 인연설(因緣說)로 설법하시는 방법론입니다
 
상근기(上根機)의 월등한 사람에게는 법설(法說), 논리적 이치적으로 조리(條理)있게 설법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부처님께서 *법화경 방편품 제 2 에서 *사리불존자에게 맞바로 설하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사불지견(四佛知見)을 통해 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드러내 깨닫도록 하는 것을 법설(法說)이라고 합니다.
 
중근기(中根機)의 보통 사람에게는 비유설(譬喩說)로 설해주셨습니다. 예컨대 법화경  비유품 *삼거대차(三車大車)의 비유라던가ㆍ*·신해품*장자와 궁자의 비유라던가ㆍ*화성유품 제 7이라던가ㆍ여래수량품의 *양의와 양약과 치자의 비유ㆍ  등으로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처소(處所), 최고 무상(無上)의 깨달음 자리로 들어오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근기(下根機)의 미흡한 사람에게는 인연설(因緣說)로 설하시여 깨닫게 하셨습니다. 인연설은 금생만이 아니라,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를 한 마당에 놓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보시면, 다겁생래로부터 미래영겁의 인과(因果)를 보고 구제하십니다. 예를 들면,  circle03_darkgreen.gif 주리반특이라는 미련한 사람은 부처님의 삼주설법으로 *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불지견으로 중생을 보시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을 구제할 것인가를 전제(前提)하고 설법하시는 것을 <삼주설법>이라 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실천하는 마음
 
실천이라는 것은 생각한 바를 실제로 액션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실천>을 구호처럼 내뱉는 것이 아닙니다. 혼탁한 *오탁악세(五濁惡世)일수록 <의식(意識) 따로, 행동(行動) 따로>입니다.
 
예컨대,   어느 나루터나룻배를 젓는 뱃사공이 있었습니다. 그 나룻배에 공부 좀 했다는 대학생 서너 명이 올라 탔습니다. 노를 저어 강 건너편으로 가려면 삼사십분 걸리는 큰 강이건만, 뱃사공은 콧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노 젓는 것입니다. 배웠다는 대학생 <저 사람은 노  젓는 것이 무엇이 좋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흥겨워 하는가ㆍ뱃사공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는가> 라는 생각에서, <사공 ! 사공 ! 문학을 아십니까> 라고 하니까, 뱃사공은, <저는 세상에 나서 그런 것을 들어 본적이 없는데요>라고 하자, 대학생이, <사공! 사공 ! 철학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뱃사공, <들어 본 일이 없는데요>라고 응답하며 흥겹게 콧노래 부르며 노 젓는 것입니다. 뱃사공 문학도 알고 철학도 안다는 대학생 서너 명을 태우고 어느 덧, 강 한 복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바람이 심상치 않게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뱃사공은, <손님 ! 손님 ! 헤엄을 칠 줄 압니까>라고 말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대학생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어와서 그만 배가 뒤집히고 있었습니다.
뱃사공, <나는 철학도 문학도 모르지만, 헤엄 칠 줄은 알아서 강 한복판에서 빠져나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님은 철학도 알고 문학도 알지만, 헤엄 칠 줄 몰라서 여기서 죽어야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며, 뱃사공은 힘껏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왔습니다. 대학생들은 사공을 부르며 살려달라 애원해도 전혀 헤엄을 칠 줄 모르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대학생과, 오로지 노 젓는 것 밖에 모르는 뱃사공과의 생사관(生死觀)으로 보는 것으로 그친다거나, 또는 우스갯 소리라 하여 한쪽 귀로 흘려 들으신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행동(行動)이나 이론(理論) 따위에서 일괄(一括)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랄까 원리를 무시하고, <의식 따로행동 따로> 라고 하는 어리석음과, 부처님법을 가슴에 지니고 살겠다는 간절한 마음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사회적 규범(規範)이라던가, 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서, 원인(原因)결과(結果) 사이에 내재(內在)하는 작용으로써, 보편적(普遍的)필연적(必然的)불변(不變)의 관계, 실제가치를 무시하고, <의식 따로행동 따로>라는 그런 저급한 생각이나 행동을 부처님께서 제일 경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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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주리반특
 
부처님의 평신도 제자 가운데 자기 이름 석자밖에 모르는 주리반특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좋은 법구(法句)를 가르쳐도 주리반특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멍텅구리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身) (口)  (意)  삼업(三業)   죄를 짓지 말고함부로 유정(有情)을 해하지 말고정념(正念)으로 (空)(觀)하면  무익(無益) 고통은 면하리라>는 법구(法句)를 주리반특에게 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리반특은 외우지 못했습니다.
 
일설에는  <수구섭의신막범(守口攝意身莫犯)  여시행자득도세(如是行者得度世)>,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마음을 항상 가져 몸으로 죄를 짓지 말지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능히 세상을 제도할 수 있다- 는 이 14자를 3년이 지나도록 주리반특은 외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리반특은   두 개의 법구 가운데, 어느 법구도 외우지 못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어깨 넘어로 부처님의 말씀을 얻어 들은 동네 꼬마 아이들은 모두 외웠습니다.
 
주리반특 열등감으로 비분에 젖어 기원정사(祇園精舍) 담장 옆에 쭈구리고 앉아서, <세상에 나같이 미련한 바보가 또 어디 있는가ㆍ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ㆍ나는 짐승처럼 식충이에 불과하다ㆍ부처님 법은 내게는 천부당 만부당한 것이다ㆍ나같은 미련퉁이가 새삼스럽게 성불이 웬 말이냐> 하며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을 부처님께서 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너는 왜 슬피 우느냐>고  말씀하시니까, 주리반특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서 저를 위해 가르쳐 주신 법구를 외우지 못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따르르 외우는데 저는 외워지지 않습니다>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너는 훌륭하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면 바보가 아니다. 미련하고 어리석다 라는 말을 네 입으로 직접하는 것을 보니, 너는 어리석지 않느니라. 내가 시키는대로 하겠느냐> 고 하시니까 주리반특은 그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주리반특에게 빗자루를 주며, <이 빗자루로 기원정사 안팎을 깨끗이 쓸고 닦아라>고 하셨습니다. 주리반특, <네. 부처님 말씀대로 그리하겠습니다> 하며, 빗자루를 받아가지고 수백평의 기원정사를 한 달두 달일년을 정성껏 깨끗이 쓸고 또 쓸었습니다.
주리반특은 어느 날, <부처님께서 내게 빗자루를 주신 것은 정사를 쓸라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번뇌를 쓸어내라는 것이었구나> 하고 마음의 티끌도 함께 쓸어냈습니다.
 
주리반특 마음이 청정(淸淨)하게 맑아지면서 *아라한(阿羅漢)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즉시 주리반특아라한이 된 것을 아시고 찾아오시여 <빗자루는 어떻게 했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리반특, <제 마음의 먼지를 쓸어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재선재(善哉善哉)· 착하고 착하다. 너는 기원정사를 쓸었으나, 실은 네 마음의 티끌을 쓸었느니라. 그것은 온 세상의 티끌을 쓸어낸 것이나 다름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주리반특은, <네, 정성을 다해 쓸었습니다> 하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주리반특의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시고, 주리반특이 신통력을 얻은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주리반특에게 보명여래(普明如來)라는 수기(授記)를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구제 방편이라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행여 불교의 수행과, 빗자루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주리반특에게 빗자루를 주며 쓸고 닦고 열심히 하라고 하시니까, 주리반특은 기원정사에서 내쫓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감격하여 열심히 <빗자루 쓸기> 수행하다가 끝내는 미혹  번뇌를 끊고 대생명체 <큰 하나>에 합성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 학대(虐待)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나같은 것이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가>하고 자학(自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자학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고 소중한 부처님이 되는 성질 *불성(佛性)까지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보시면, 이 사람을 법구로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빗자루를 주어 쓰레질로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삼주설법이라는 구제 방편이 중요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주리반특 (다른 사이트로 전해진 것을 말씀드립니다.)
 
부처님 재세시,  왕사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사냐라고 하는 장자(長者)가 살았습니다. 장자집에는 재산관리를 취급하는 젊은 서사(書司)가 있었습니다.서사 장자의 딸과 눈이 맞았습니다. 성질이 완고한 장자는 가난한 서사를 사위로 받아드릴 수 없어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장자의 딸젊은 서사는 함께 멀리 도망쳤습니다.
도망나와 살다보니, 여자가 임신을 해서 산달이 가까웠습니다. 여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애를 낳으면 기르기도 힘들고 먹을 것도 없으니까 친정으로 가자고 남편에게 졸랐습니다. 남편은 아내는 부모가 용서할 수 있어도, 자기는 장자에게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것 같아 주저했습니다.
여자는 할 수 없이 날자가 촉박해서 친정으로 가다가 길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마침 착한 사람을 만나서 미역국도 얻어 먹고 몸조리도 잘하고 하여 친정에 가지 않고 되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여자가 또 임신해서 산달이 촉박해지니까, 여자는 이웃사람에게 남편이 돌아오면 친정에 갔다고 말해달라고 하며 혼자 집을 떠났습니다. 뒤늦게 남편이 알고 쫓아가니까 아내는 또 길에서 애를 낳았습니다. 생각 끝에 큰아들대로(大路)라 하고, 작은 아들소로(小路)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후, 아들 형제가 일고 여덟살이 되니까, 우리는 왜 일가친척이 없느냐고 엄마에게 여러 번 물었습니다. 엄마가, <여기서 백오십리 가면,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데 큰 부자다. 그 동네에는 사촌 고종형제 이종형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 형제는 할아버지 댁에 데려다 달라고 매일 졸라서 두 내외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습니다.
여자는 친정 아버지를 뵙고 용서를 빌었지만, 남자는 처가집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장자는 딸에게, <네 마음대로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면서 왜 왔느냐. 너는 죄인이다. 아이들은 두고 너희는 나가라. 땅마지기 떼어 줄테니 멀리 나가 살라>고, 딸을 내쫓고 손자들만 데리고 살았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그곳에 포교 나오셔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장자 손자들을 데리고 나가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며칠 후, 큰손자가 할아버지께 입산(入山)하고 싶다고 하였습이다.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 하라고 출가(出家)를 허락했습니다.
머리가 좋은 형은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즉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습니다.
어느 날 형은 동생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할아버지댁에 찾아가 동생을 만나보고 너도 나처럼 출가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니까, 동생이 좋다고 했습니다. 형은 할아버지를 뵙고, <동생도 출가를 원합니다. 허락해주십시요> 하니까 그리하라 했습니다.
형이 동생을 데리고 부처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부처님께서 입산을 승낙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부처님께서 외우라는 사구게를 3년이 지나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동생은, <아무래도 나는 머리가 둔해 아라한과도 얻지 못한다. 부처님 교단에서 멍청이로 낙인 찍힐 것이 아니라, 차라리 부자 할아버지댁에 가서 호강하고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멀리서 *불안(佛眼)으로 살펴보시고 동생을 찾아가셨습니다.
동생은, <부처님이시여 ! 제가 부처님 옆에 있다면 부처님 교단의 명예가 훼손될 것 같습니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외우라는 사구게는 못외워도 말만은 잘 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사구게(四句偈)를 외우려고 일념으로 노력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재산에 의지하여 재산을 축내려 하는구나. 탐욕이 생겼구나. 너는 번뇌가 많다. 네 마음은 진구(塵垢)로 꽉 차 있다. 먼지와 때로 꽉 차 있다. 네 마음속의 진구(塵垢), 번뇌(煩惱)를 털어내고 마음이 텅비어야 사구게 아니라, 그 이상의 법문도 외울 수 있다. 번뇌 망상을 제거하라>고 부처님께서는 정곡을 찌르셨습니다.
 
그후 동생은 49일만에 진구(塵垢)를 제거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했습니다. 그 때까지 형은 동생이 아라한이 되어 신통력을 얻은 줄도 모르고, <동생, 잘 있느냐> 하고 찾으니까, 동생이, <동생은 죽었습니다. 신통력을 갖춘 동생만 살아 있습니다>하고 응답했습니다. 형이 가까이 가서 동생을 보니, 동생의 눈이 번쩍하고 빛나는 것을 보고 아라한이 된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동생이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머리 나쁘고 멍청이로 알려진 주리반특입니다. 그러니까 주리반특이 어리석고 멍청했던 것은 진구(塵垢), 곧 번뇌(煩惱) 때문이었습니다. 진구(塵垢)가 바로 탐욕(貪欲)입니다. 탐욕이라는 것은 염수(鹽水)와 같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소금물을 먹으면, 더욱 더 갈증이 납니다. 탐욕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진구(塵垢)제거하는 방법은, 法華經 염불독경을 생활 가운데서 잊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 뿐입니다. 번뇌를 제거해서 · 미혹(迷惑)  번뇌(煩惱)가 끊어지면 초지성인(初地聖人)이 됩니다.
法華經을 공부한 사람은 지구촌 육대주(六大洲) 사색인종(四色人種)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진구(塵垢)를 제거하고 누구나 法華經을 지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본문-017-(3)에서 공부한 *성취사법(成就四法)에 진입하는 기점이 됩니다.
法華經을 신앙하면서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제목을 봉창(奉唱)하는 것만으로는 法華經 사상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길을 떠나면 교통 안내 지도가 있듯이, 영원한 생명, 法華經 생명지도릏 보고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法華經 *사바세계 전인류 구제를 전제한 영원한 생명의 지침서입니다.
 
부처님께서는,-마음이란 정처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일어나는 무상(無常)한 것임을 생각하여 집착하지 말라. 즐거운 일이나괴로운 일이나다같이 고(苦)의 원인이 되는 것임을 생각하여 집착하지말라.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란 어디서 오는 곳도 · 가는 곳도 모릅니다.  마음대로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오고 갑니다. 번뇌 망상이 내 마음에 범접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circle03_darkgreen.gif상락아정(常樂我淨),   부처님 처소에 들어갑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상락아정(常樂我淨)===사덕(四德)
 
상락아정이란 열반의 사덕(四德)을 말합니다. 생멸(生滅)이 없고 변천무상(變遷無常)이 없음을 뜻하는 상덕(常德)과, 괴로움을 떠나서 안락한 것을 뜻하는 낙덕(樂德)과, 무가애(),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아덕(我德)과, 번뇌  망상이 제거된 청정한 정덕(淨德)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처소, 부처님의 상락아정에 들어가려면, 염불독경으로 마음쉬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부처님을 뵙는다거나,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공부하기가 어렵다고 하셔야만, 중생은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부처님을 찾아 뵙고 공부하고 실천한다는 전제하에, 부처님께서는 멸도(滅度)하지 않으시건만,  열반에 든다고 방편을 쓰십니다. 삼주설법은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한 완전무결한 가르치심의 방법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