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17-(2)

2) 만일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곧  circle03_darkgreen.gif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고 싫어지며, 게으름을 품어서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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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인간의 속성은,--부처님께서는 항상 사바세계에 계시다, 부처님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만나 뵈올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들을 수 있다--고 하는 약삭 빠른 생각이 들면, 중생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열심히 들으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부처님을 언제든지 뵈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부처님을 찾아 뵐 생각을 하지 않고 흥미도 없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언제든지 교(敎)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부처님을 찾아가 법문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덕(薄德)한 중생이라 합니다. 박덕한 사람은 평소에 부처님 을 듣고자 하는 *선근을 심지 않습니다. 보살행, 홍익 인연을 삼세에 걸쳐 짓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왕좌왕(右往左往) 헤맨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가난이란, 물질적 가난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마음이 가난한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탐진치(貪嗔痴) 삼독으로 가득차서 항상 만족할 줄 모르는 불만족(不滿足), 마음의 가난을 말합니다.
 
본문-017-(1)에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허망하게 보는 그물에 들어가리라> 고 하신 말씀과 같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배우는 일에 인색하고 따라서 게으름을 핀다는 것입니다.
 
<허망하게 보는 그물에 들어가리라>란, 조그만 자기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인생 백년도 못사는 육신의 생명을 전부로 알고, 자기중심으로 사물을 보고 여러 가지 그릇 된 생각 가운데 빠져 들어가 나오지 못합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서로 돕고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本性)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잃어 버리고, 주위환경이 자기를 위해 살고 있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수명론 관점에서 일체가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중심의 그물 속에 빠지는 사람이 말법시대 *오탁악세(五濁惡世) 일수록 많습니다. 그래서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항상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곧  circle03_darkgreen.gif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고 싫어지며, 게으름을 품어서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리라> 고 중생의 속성을 지적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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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고
 
<교만한 생각>이란, 자기 멋대로 하는 방자한 생각을 말합니다. 언제든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ㆍ언제든지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니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부처님법을 듣지 않아도 상관 없다ㆍ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가르치심을 배우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는 것을 말합니다.
 
<만나기 어려운 생각>이란, 부처님을 좀처럼 만나 뵈올 수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부처님 법을 소중히 들으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구제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언제든지 부처님을 뵈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교만한 생각이 일어나는 속성을 아시고, 교만을 몹시 경계하셨습니다. 실은 교만한 생각이 일어나 부처님첫 제자가 될 기회를 실기(失期)  circle03_darkgreen.gif 웃바까라는 무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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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웃바까
 
3천여년 전, 석가세존께서는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대우주의 진리, <천지기운ㆍ내기운ㆍ내기운ㆍ천지기운>을 체득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깨치시고 난 뒤 깊이 명상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곳에서 7일씩 머물다가 다음 장소로 일곱 번을 옮기셨습니다. 이렇듯 49일간 법계를 두루 살피시며 깨치신 진리를 남김없이 음미하고 체율체득(體律體得)하셨습니다. 정각(正覺)의 기쁨을 만끽하신 다음에, 왕사성 수행시절의 바라문대가(大家)라고 하는 두 학자에게 필히 전교(傳敎)해주고 싶어서 첫발을 내딛으셨습니다.
 
실은 부처님께서는 정반왕의 *실달태자라는 신분으로 출가하신 후에, 바라문의 대석학이라는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가 라마풋다>를 찾아가 수행하셨으나 얻은 것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였습니다. 생각 아닌 것도 아니고, 그 아닌 것도 아니라는 것이였습니다.
 
실달태자께서는 --내가 출가한 목적은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근본문제의 해결이다. 비상비비상처가 아니다.--하시고 왕사성 수행도량을 떠나려 하셨습니다.
그 때 바라문의 두 학자는 --태자야말로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는 사람이다. 태자와 함께 공동의 목적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태자는 20대 후반이고, 두 스승은 60 이 넘었습니다.
 
바라문의 두 학자는 자기네가 생각해보지도 않은 인간의 근본문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해결하겠다는 실달태자의 탐구적인 강한 의지가, 자기네와 경계가 다른 성자(聖者)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바라문의 두 학자는 젊은 태자에게 허리를 굽히고 스승으로 모시겠으니 떠나지 말라고 여러 번 간청했으나, 이미 *실달태자께서는 *보살십지(菩薩十地)법운지(法雲地) 경계에 계셨으므로, 단호하게 두 학자와 결별하고 니련선하 강가로 오셨습니다.
 
실달태자께서는, 인간은 왜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가ㆍ임금이라면 보통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하지 않는가ㆍ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면 임금 따위가 뭐 대수인가ㆍ내가 출가한 목적은 생로병사의 해결이다라는 출가목적으로, 왕사성 고행을 결별하고 부다가야에 오셔서 보리수 아래서 단좌명상  6년 수행으로 정각을 여셨던 것입니다.
 
이제 석가모니불께서는 정각의 기쁨을 바라문대석학이라는 <알라라 칼라마><웃다가 라마풋다>를 찾아가 속히 전해주려고 숲에서 나와 왕사성을 향해 가셨습니다.
 
그 때 최초로 만난 사람이 웃바까였습니다. 웃바까, 정각을 여신 부처님의 얼굴을 보니 맑고, 청정하여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육척(六尺) 장신(長身)의 부처님의 기상(氣像)이 너무도 위엄스럽고 도태(道態)가 나는 것을 보고, ---잠깐 실례합니다. 수행자는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며 무슨 경전을 공부하십니까 --라고 부처님께 인사를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나는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다. 나는 일체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두루두루 모두 깨달았다.  세상에서 나를 가르칠 사람은 없다. 내가 계발한 수행 방법에 의해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한 circle03_darkgreen.gif 일체지자(一切知者)요, 일체승자(一切勝者). --고 하셨습니다.
 
그 때, 웃바까가 부처님과 인연 중생이라면 얼른 부처님께 삼배 올리고,--저를 가르쳐 주십시요. 일체지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쭙고 최초의 제자가 되었어야 하는데,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성인(聖人)이라야 능지성인(能知聖人)이라, 성인만이 성인을 알아본다고 하였습니다. 웃바까가 수행자라고 하지만 부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부처님을 알아보고 엎드려 의지했다면, 그는 지구상의 칠보(七寶)를 다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을 것입니다. 가끔 누가 망했고 재산을 잃었다고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큰 손해를 본 사람은 웃바까입니다. 부처님이라는 대정각자(大正覺者)를 최초로 직접 만났어도 교만하고 불손하여 놓쳤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일체지자(一切知者)=나는 일체를 아는 자이며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 제 5 에서 --나는 일체를 아는 자이며ㆍ일체를 보는 자이며ㆍ도(道)를 아는 자이며ㆍ도(道)를 여는 자이며ㆍ를 설하는 자이니라.(我是=아시   一切知者=일체지자  一切見者=일체견자   知道者=지도자  開道者=개도자   說道者=설도자) --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일체지자(一切知者)라는 것은, 대우주 삼라만상,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두루두루 다 아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처럼 이 세상 일에 대해 모두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일체를 아는 자다> 하는 이 말씀은 다른 성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하시는 구구절절 한 법구도 진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일체지자다> 하고 선언한 사람은 부처님 이외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대왕이라 합니다.
 
*법화경 비유품(譬喩品) 제 3 에서도--나는 circle03_darkgreen.gif 법왕(法王)이라. 나는 에 자재하니 중생을 안온하게 하고자 세상에 나옴이니라.(我爲法王=아위법왕 於法自在=어법자재 安穩衆生=안온중생 故現於世=고현어세.) --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한 분의 유아독존(唯我獨尊)*대정각자(大正覺者)이십니다.
 
혹자는 부처님께서 <나는 일체지자다>라고 하시니까, 자만(自慢)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역사상 대우주의 진리를 체율체득하신 단 한 분의 대정각자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안통(天眼通)으로 일체를 다 보십니다. 전자현미경을 구태여 사용하지 않아도 부처님의 예지(叡智)로서 이 세상 일체 만유의 총상(總相)을 다 보시고 생성(生成)케 하는 관찰자이십니다.
중생은 *제법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헛 것을 보고 그게 전부인줄 알고 일체를 다 아는 척합니다. *불지견(佛知見)  곧 부처님께서는 보시면 저 중생의 전생을 거울을 들여다 보듯 다 아십니다. 전생에 무엇을 하다가 금생에 온 것까지 보시는 것이 부처님의 눈, *불안(佛眼)입니다.
 
우리가 절에 다니면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복을 달라고 시주하면, 그것으로 재를 올려주고 축원 올리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를 믿는다면서 42년 방편설 금강경(金剛經)이나 조사설(祖師說)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불교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법화경에서의 일체지자우주 삼라만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알고 구제한다는 절대자(絶對者)의 선언을 뜻합니다. 중생이 안다는 것이 줄 잡아서 열 서너 가지도 되지 않습니다. 핏줄이라고 하는 부모ㆍ처ㆍ자식ㆍ권속과,·철따라 갈아 입는 옷가지와,·하루 세끼 먹는 음식과,·잠자는 집--등·육신을 보호하는 것들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압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모릅니다. 눈으로 직접 봐야만 아는 것이 범부 중생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신 부처님께서는 일체지자이시기 때문에, 대우주 삼라만상·어떤 것이라도 보시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그 대상의 *인연과보(因緣果報)를 다 아십니다.
 
일월성진日月星辰) 산하대지(山河大地)를 보시면 그 인과(因果)를 아십니다. 해ㆍ달ㆍ별ㆍ산ㆍ바다ㆍ광대무변한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보시면 다 아십니다. 같은 꽃이라도 향내가 좋고 나쁘다는 것을 아십니다. 백합꽃이 아름답고 향이 좋지만 그 향을 많이 맡으면 사람이 죽고, 인도의 유미꽃도 한자리에서 30분만 맡아도 죽는다는 그런 것들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일체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는 권능이 자유자재하십입니다.  
일체지자라는 것은 중생을 모두 구제한다는 구제론(救濟論)이 전제된 무한한 *권능입니다.
 
누군가가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떤 분이시냐>라고 묻는다면,
방금 공부한 <나는 일체를 아는 자이며ㆍ일체를 보는 자이며ㆍ도(道)를 아는 자이며ㆍ도를 여는 자이며ㆍ도(道)를 설하는 자이니라>고 하신 이 거룩한 성구(聖句)를 부처님의 수명론 관점에서 풀어주시면 됩니다.
 
를 아는 자이며(知道者=지도자)>라는 말씀은 를 안다는 뜻입니다. 과거 우리 나라의 국민경제를 계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5년 단위로 시행한 경제계획의 일환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후 수많은 고속도로가 생겼으며 지금도 계속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몰고 밖에 나오면, 어느 길로 가야만 내가 목적하는 곳에 갈 수 있나를 생각하고 도로지도를 펴 봅니다. 잘못 가면 엉뚱한 곳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운전자가 도로 표지판을 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시속 80키로미터 이상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운전자가 잠깐 망상이 들어와서 이정표(里程標)를 못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갑니다. 네비게이션을 장착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한참 달리다가 깨닫게 되면, 일단 어느 지점의 인터체인지까지 가서 다시 되돌아 옵니다. 그와 같이 법화경을 공부한 사람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산정토  한세계를 찾아가는데, <도(道)를 아는 자>를 만나지 못하면 *성문(聲聞)연각(緣覺) 이승(二乘) *무기공에서 머물고 맙니다.
 
부처님께서 길을 안다고 하신 것은, 중생을 부처님이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대생명의 *일불승(一佛乘) 법화경 네비게이션을 꼭 만나야 합니다. 불교를 믿더라도 바른 길, 성불의 길로 들어가는 표지판을 만나야한다는 것입니다.
 
1400여년 전 소석가(小釋迦)라고 불리우는 *천태대사께서 주석하신 불교신앙의 표지판이라 할 수 있는 *<오시팔교(五時八敎)> 교판에 의지해야만 영원한 대생명의 길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를 아는 자이며>의 개념은 우주 삼라만상 안에 존재하는 모든 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안다는 뜻입니다. ,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안다고 해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불교의 불도(佛道)라고만 생각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속 좁은 옹졸한 어른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신선도(神仙道)를 비롯하여, 유교기독교이슬람교원불교 등- 동서양의 일체 모든 종교를 다 포함합니다.
 
종일다출(從一多出) 종다귀일(從多歸一)입니다.·하나는 많은 것을 낳고 많은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 근본 뿌리 관점에서, 모든 종교는 法華經에서 파생(派生)되고 法華經으로 돌아옵니다. 석가모니 부처께서는 지구 역사상 최초로 정각을 여신 시성정각자(始成正覺者)이십니다. 동서양의 철학자- 모두 부처님보다 늦게 나왔습니다.
 
무릇  각즉불(覺卽佛)이요 미즉중생(迷卽衆生)이라,· 미혹하면 중생이요 깨치부처님입니다.
<부처불(佛)>자는 한문으로 <깨칠각(覺)>자와 같은 뜻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법왕(法王)
 
대우주의 본체이신 석가모니불 법왕이라 합니다. 진리의 대왕이라는 뜻입니다. 혹은 유명계(幽冥界)의 왕인 염라대왕(閻邏大王)을 법왕이라고도 합니다. 염라대왕이 이승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저승에서 심판하니까 염라대왕을 법왕이라고도 합니다. 범부가 세상에 살면서 온갖 못 된 짓을 다 저지릅니다. 돈많고 권세 많다 해서 탐욕을 부리며 갑질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몸을 바꾸어 염라대왕 앞에 가면, 누구도 너는 전생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고 묻는 사람 없지만, 저절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게 됩니다. 업경대에는 살아 생전의 선악(善惡)의 행업(行業)이 <마이크로필림> 같이 영상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묘법연화경> *번뇌없이 독경하고, 항상 * 참회하라는 것입니다. 묘법연화경에 의지한 *사정근(四正勤) 덕목으로 항상 착하게 살며 찰나찰나 참회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내가 남을 죽이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참회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부처님영원한 수명론 분상에서 볼 때, 범부에게 있어 금생은 잠시 잠깐입니다. 범부가 자나깨나 항상 참회하면, 다겁생래로 짓고 또 지어서 누적된 모든 죄(罪), 태산같은 죄업장이 모두 소멸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이라 하셨습니다.
백겁 천겁을 두고 지은 죄, 한 생각 진참회(眞懺悔)로 없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시뻘건 불화로에, 눈 송이 몇 개 떨어진다 해도 흔적이 없듯이, 죄업장이라는 것은, 한 생각에 진참회하면 흔적도 없이 녹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업장소멸이라는 것이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한사람이 참회하면 내 가족업장모두 소멸됩니다. 항상 염불독경해도 되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기도가 시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法華經 염불독경하면서 영성세계가 아닌 물질세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공염불(空念佛)이라 합니다. 마음을 텅 비우고,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야만 태산같은 업장이 소멸됩니다. 法華經 염불독경하면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안됩니다.  생각이 가득 차 있으면, 공덕이 없습니다. 법화경 독송하는 것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면, *<묘법연화경> 다섯 자만이라도 30번만 마음을 비우고 정근하면, 태산같은 업장이 소멸됩니다. 계곡에 물 내려가듯이 업장이 내려갑니다.
정념(正念)으로 염불독경하면 등에서 땀이 흘러내리고 시원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꽃입니다.
 
우리가 공부한 *보살십지(菩薩十地) 가운데, 다섯 번째 *극난승지(極難勝地)가 제일 힘든 경계입니다. 참기 어렵다는 비유로써 circle03_darkgreen.gif 이란(伊蘭)과 전단(전檀)의 관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이란(伊蘭)과 전단(전檀)
 
천상향(天上香)이라고도 하는 전단(檀)은 천상까지 향기가 퍼져서 중생의 번뇌를 쉬게 한다고 합니다. 그 전단향을 맡으러 가려면, 반드시 주변에서 자생하는 이란(伊蘭) 꽃나무 숲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란 숲에서 전단향이 피어납니다. 이란의 잎은 독(毒)이 있고 고약한 냄새로 전단의 향내를 막습니다. 그래도 전단은 몇십리까지 그 향이 전해진다고 합니다.<이란>이라는 꽃을 미워하고 멀리하면 <전단>의 거룩한 향기를 맡을 수 없습니다. 고약한 이란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전단을 찾아가는 것이 보살십지 극난승지(極難勝地)입니다. 이란전단향상극관계(相剋關係)실상(實相)은, 자연계ㆍ인간계 관계없이 어느 곳에서나 상생(相生)합니다.
분리불가(分離不可), 구태여 나누지 말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결론적으로 교만한 생각을 일으킨다거나,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게으름을 피우면,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도 모두 방편으로 구제한다고 하셨습니다. *일체중생구제론이 전제된 *일불승 법화경 분상에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