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16-(1)--가
 
모든 선남자야,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수명을 이룩한 것이 지금도 오히려 다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위에서 말한 수(數)의 곱이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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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백천만억 나유타아승지겁>성불하신 본불  석가세존의  수명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법화경(法華經) 여래수량품본불 석가세존의 수명은 중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부터 언제까지라는 한시적(限時的)인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수명은 시작과 끝이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영원 그 자체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태어나시는 곳마다 세상을 바르게 인도한 *인연과보(因緣果報)로 얻은 수명만 해도 너무 길어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시는 것이 본문 내용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바왕래팔천도(娑婆往來八千度)라고 하셨습니다. 본불 석가모니불께서 *사바세계에 내왕하시기를 팔천 번 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일기(一期)를 80년으로 계산한다 해도 64만년이 됩니다. 어찌 석가모니불께서 8천 번만 사바세계에 오셨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중생은 물론, 축생(畜生) 미물까지도, 모두 구제하여 <큰 하나>를 얻게 하려고 사바세계에 수없이 오셔서 보살행하시여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여 성불시킨다는 전제하에 말씀하시는 것이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부처님의  수명론입니다.
 
석가세존께서는 항상 사바세계에 계시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여기 지구촌의 모든 산천과ㆍ국토와ㆍ겨자씨만한 작은 땅이라도 심혈을 기울이며 중생을 살게하는 대생명체  그  자체  생명전자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도 *육바라밀을 쌓으신 *과보(果報), 갚음으로 영원한 수명을 얻으신 것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부처님께서 다겁생을 두고 이룩하신 < *인행(因行) 과덕(果德)> 이법을 우리에게 물려주려고 사바세계에 오신 구제 불사(佛事)는 아직도 끝나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금생에 오셔서 성불하신 금생불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만 알고 있는 모든 중생에게, 실은 본체  천지기운  생명전자 분상에서,-- 나는 너희들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을 누누히 말씀하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반왕가실달태자 시절에, 가비라성을 넘어 출가하실 때, 부왕이신 정반왕에게 남기신 마지막 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小子)가 젊기는 하오나 생로병사는 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지라, 젊다고 하여 안심할 수 없으며, 예로부터 훌륭한 대왕들은 나라를 버리고 도(道)를 구하여 입산수도(入山修道)했으며, 도중에 세속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소자의 결심도 이와 같사오며 무상보리(無上菩提)증득(證得)하지 않고서는 결(決)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비록 아버님 정반왕에게 일시적으로 불효를 하더라도 소자가 전인류를 구제한다면, 바로 그것이 부왕효도하는 것입니다-- ---고 출가 의지를 부왕께 전하는 글월을 올리고 가비라성의 담을 넘으셨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가비라성정반왕실달태자의 몸으로 계실 때,  어느 날,   circle03_darkgreen.gif 사문출유(四門出遊)를 하셨습니다. 그 때 동서남북 4대문을 둘러 보시면서, 인간이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일대기를 직접 보시고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생로병사  해결이다. 나는 기필코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부왕 정반왕에게 출가의 뜻을 분명히 밝히시고 출가하여 수행하시고 마침내 성불하셨습니다.
보편적으로 석가모니불께서는 역사적으로 검증되는 금생불(今生佛)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최초로 성불하신 시성정각(始成正覺)의 부처님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法華經깊은 요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금생에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불한 금생불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신 *구원실성, <구원의 본불>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 法華經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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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사문출유(四門出遊)====사문유관(四門遊觀)                  불교성경-p8~p11
 
고대 인도는 바라문교가 주축으로  16개의 대소국가가 서로 자기네 세력을 폈습니다. 그런 시대에 부처님께서는 가비라국의 실달태자의 몸으로 오셔서 그리운 것 없이 호화롭게 어린 시절과 성년기를 보내며 학문도 익히고 무술도 익히며 건강하게 성장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비구들아, 나는 참으로 자상하게 양육되었다. 왕궁에는 청(靑)ㆍ홍(紅)ㆍ백(白)의 수많은 연꽃이 핀 연못이 나를 위하여 만들어졌고, 나는 전단향 만을 사용하였고, 몸에는 가장 좋은 비단옷만을 걸쳤다. 비구들아, 나에게는 세 채의 궁전  곧  삼시궁(三時宮)이 있었다. 하나는 겨울을 위한 궁전이고ㆍ하나는 여름을 위한 궁전이고ㆍ하나는 장마철을 위한 궁전이었다. 장마철 넉 달 동안 나는 음악을 연주하며 궁녀들에게 둘러 쌓여 결코 밖에 나가는 일이 없었다. 장마철이 아닌 때는 무예와 학문을 닦았는데, 부왕(父王)께서는 내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내가 일곱 살 때, 들에서 농부들이 밭을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가래와 삽에 찍혀서 죽는 벌레와, 그 벌레를 새들이 어느 새 날라와 쪼아 먹는 것을 보고, 목숨을 가진 모든 것은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우울하고 슬펐다. 뿐만 아니라 나는 가비라성 성문을 나가 들놀이를 가다가, 사람이 늙고 병들고, 때가 오면 죽는다는 것을 실제로 보고 깨달았다. 모든 생명 있는 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깨닫고 생각했다. 나는 전륜성왕이 되느니 보다 어떻게 하면 그 <죽음>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같은 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아버님 부왕(父王)께서는 나에게 나라 안의 온갖 쾌락을 즐기게 하셨다. 열여덟 살 때, 나는 * 야수다라비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비구들아, 나는 이같이 복(福)되고 자상한 사람들의 은혜를 입으면서도, 늘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으며, 또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줄 알지 못하고, 남의 늙음과ㆍ병듬과ㆍ죽음을 보고는 비웃는다. 나 자신도 늙고 병들고 죽는 몸인데, 남의 늙음과ㆍ병듬과ㆍ죽음을 보고 비웃는다는 것은 옳은 일인가. 이것은 옳지 않다.----라고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 덧 없는 젊음에 대한 자랑과ㆍ 건강에 대한 덧 없는 자부심과ㆍ생존에 대한 덧 없는 긍지(矜持)를 모두 버렸다.
 
비구들아, 나 역시 진실로 부처가 되기 이전ㆍ 깨달음을 얻기 이전ㆍ *보살이었을 때, 나 자신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사람이었고, 슬픔이 있고 번뇌가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그러한 것만을 구하였고, 마찬가지로 슬픔이 있고 번뇌가 있는 그러한 것만을 구했었느니라.
 
비구들아, 그러한 나에게,----왜 나는 자신이 낳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ㆍ 슬픔이 있고ㆍ 번뇌가 있는 사람이면서 그러한 것만을 구하는가. 낳고 늙고 병들고 슬퍼하고 번뇌하는 그러한 성질 가운데에 화(禍)가 있음을 알아서,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그리고 슬픔이 없고 번뇌가 없는 고요한 *열반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같이 *진리를 추구하려는 내 앞에 장애(障碍)가 생겼다. 야수다라비가 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라후라(障碍)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세속의 향락 속에 있으면서 완전하고 청정한 도(道)를 닦는 것은 어렵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황갈색(黃褐色)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세속의 향락에서 벗어나는 생활에 들어가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하며 행복에 찬 인생의 봄에 해당하는 몸이면서, 부모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출가하였다. 그 때 나이 열 아홉이었다.---->고 출가 목적, 비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출가하시여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출가하신 것으로 아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법화경 여래수량품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사문출유가 갖고 있는 의미는 좀더 적극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문출유를 통해 인간의 육신은 죽는 무상체(無常體)라는 것을ㆍ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일체가 무상의 습격(襲擊)을 받는다는 것을 환기시키므로써 모든 중생이 함께 생사문제에 동참하고 공감하도록 하셨습니다.
 
실달태자께서는-비록 아버님 정반왕에게 일시적으로 불효를 하더라도 소자가 전인류를 구제한다면, 바로 그것이 부왕께 효도하는 것입니다--하는 글월을 올리고 구중궁궐을 떠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法華經 분상에서는 모든 중생이 함께 동참하도록 하는 깨달음   곧 *자아발견(自我發見)의 과정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시겠다는 서원은, 정반왕가에서 출가하시기 전 태자시절부터 가지셨고, 출가하시여 *정각(正覺)을 여신 후에는, 적극적으로 내가 생로병사 *해탈하는 길을 깨달았다 하시면서, 부처님께서는 하나씩 중생의  * 근기따라 설(說)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50년간 중생교화 하시는 그 과정을 보여 주시면서 우리들 중생의 의식을 법화 영산정토로 모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체중생을 신통력과ㆍ위신력과ㆍ권능(權能)으로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미혹(迷惑) 중생을 제도하신 것이 다 일불승 法華經으로 성불시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온갖 방편(方便)으로 중생을 모두 구제하시려고 여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방난이라 합니다. 법난(法難)이라 하시지 않고 circle03_darkgreen.gif 방난(妨難)이라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방난(妨難)
 
고대 인도에서는 차이나교를 비롯한  circle03_darkgreen.gif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부처님을 방해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여시고, 그로부터 고대 인도 전역에 불교를 펴시니까, 차이나교가 앞장서서 부처님 교단방해했습니다. 차이나교는 어떤 물질도 착심을 갖지 않는다는 그들 종교 교리에 따라 남녀 구별없이 실오라기 하나 몸에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다니며 민가에 찾아가 탁발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들 교단의 수행입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탁발나가셨다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짐승처럼 음부를 들어내고 민가를 찾아가 탁발하는 차이나교의 교도(敎徒)들을 직접 보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무릇, 인간은 수치스러움을 알아야 한다. 옷을 벗는다 해도, 마땅히 음부(陰部)만은 가려야한다. 짐승도 음부를 가리기 위해 꼬리라는 기능이 발달했다. 항차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게 남녀가 벌고 벗고 다니는 것은, 도(道) 이전에 타락한 집단이다. 수행자라 해도 민가에서 보시하는 여인네들에게 혐오감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혹독하게 차이나교를 질타하셨습니다.
 
일파만파(一波萬波). 이 말씀이 고대인도 전역에 전해지자, 알몸으로 탁발하는 수행자에게는 민가에서 공양을 주지 않는 풍토가 삽시간에 생겼습니다. 차이나교 교단은 백성들로 부터 따돌림을 받아 교단이 무너지게 되니까, 부처님을 몹시 탓하며 원망했습니다.
 
차이나교는,--부처님 때문에, 민가의 공양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부터 불교가 더 이상 뿌리 내리지 못하게 훼방을 놀아야 한다---며 부처님을 모략하는 계책을 세웠습니다.
차이나교의 <삿짜야자야>라는 여자는, 부처님께서 계신 *기원정사에서 신도들이 나올 때는 들어가고, 신도들이 들어 갈 때는 기원정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럭저럭 8개월쯤 되었을 때, 삿짜야자야는 나무토막에 천을 감아서 배에 대고 배불뚝이처럼 하고 어정어정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삿짜야자야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설법회상에서 비스듬이 옆으로 누워서 하는 말이,--고타마야, 이거 어떻게 해 줄 것이야-라며 불러진 배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보다 싶이 임신을 했으니 부처님이 책임지라는 식으로 소리쳤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청중은 삿짜야자야의 배가 만삭이라는 것을 알고,--우리가 법회 끝나고 나갈 때, 저 여자가 기원정사에 들어가는 것을 몇 번 봤다.--라는 투로 청중은 수군거렸습니다. 불교의 교주이신 부처님의 도덕성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런 황당한 상황에서 쓰다 달다 일체 대꾸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마침, *제석천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천상을 지키는 군대 가운데서 4명을 네 마리 쥐로 변하게 한 다음에, 일시에 삿짜야자야에게 달겨들어 나무토막에 감긴 천을 입으로 쏠게 하였습니다. 삿짜야자야가 놀래서 아무리 쥐를 쫓았지만 삽시간에, 나무토막을 감은 천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옷속에서 나무토막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런 광경을 지켜 본 신도들은,--요망한 것아, 감히 술수를 부리느냐.--며 모두 분개하여 삿짜야자야에게 달겨드니까, 삿짜야자야는 종짓굽아 날 살리라며 있는 힘을 다해 달아나다가 기원정사 앞의 큰 구멍에 빠져 죽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그 구멍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의 제석천의 신통력으로 부처님께서 위기를 면하셨습니다. 그것이 방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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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육사외도(六師外道)
 
고대 인도 불타시대(佛陀時代)의 여러 가지 철학ㆍ종교ㆍ사상들을, 원시불교(原始佛敎) 경전(經典)에서는 62종의 견해로서 분류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하였던 사상가(思想家)는 육사외도(六師外道), 6명의 철학자와, *일체중생구제론의 원조인 불교사상(佛敎思想)입니다.
 
육사외도 모두 베다(吠陀)의 권위를 부인하고 바라문교(婆羅門敎)에 반항하였습니다. 그들은  신흥 도시의 왕후ㆍ귀족ㆍ부호들의 정치적ㆍ경제적 원조 밑에서 활약하였습니다.
 
 ⑴ 아지타 케사캄발리아지타 단멸론(斷滅論)적인 유물론자입니다. 혹은 순세파(順世波), *순세외도(順世外道) 사탕발림파 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지(地)수(水)화(火)풍(風), 사대(四大)의 집합과 흩어짐에 불과하며, 죽어서 화장하면, 사대(四大)는 모두 본래대로 돌아가고, 영적(靈的)인 것은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기 전에 잘 먹고, 잘 노는 현실적 쾌락 밖에는 인생의 목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제사ㆍ기도ㆍ교육ㆍ종교ㆍ도덕-- 등 일체의 윤리적 엄숙주의(嚴肅主義)를 반대하는 교단입니다.
 
 파쿠다 카쨔야나파쿠다 일종의 상주론자(常住論者)입니다. 그의 사상은 기계적 불멸론(不滅論)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절대부동(絶對不動) 불변하는 7 요소,지(地)수(水)화(火)풍(風)고(苦)낙(樂)생명(生命)의 집합과 흩어짐이요, 죽은 뒤에는 7요소 자체는 불변불멸(不變不滅)이기 때문에, 인생의 결정적 단멸(斷滅)은 없다고 합니다. 칼로 목을 잘라도, 결국 칼날은 요소들 사이의 공간을 지나갔을 뿐, 생명(生命)이 없어지는 않았다고도 합니다.
 
 푸라나 카싸파 →푸라나의 설(說)은 도덕 부정론입니다. 그는 독단적인 윤리적 회의론자이며, 선악(善惡)은 사회적 관습에 의한 임시적인 것이며, 사람이 선행을 하든ㆍ악행을 하든ㆍ거기에 필연적인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마칼리 고살라 →마칼리 극단적인 운명론자였습니다. 사명외도(邪命外道)라고도 합니다. 모든 생물은 지(地)수(水)화(火)ㆍ풍(風)허공(虛空)득(得)실(失)ㆍ고(苦)낙(樂)생(生)사(死)영혼(靈魂)의 12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사람의 행동이나 운명은, 모두 자연적 법칙에 의하여 이미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몸이나ㆍ마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고, 이미 결정된 윤회전생(輪廻前生)을 무수히 반복하다가 보면 마침내는 *해탈(解脫)하는 날이 온다고 합니다.
 
 산쟈야 벨라티풋타→ 산자야 일종의 회의론자(懷疑論者)입니다. 그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던가, 혹은 그 때 그 때의 경우에 따라 제각기 제대로의 소신대로 말하면 그것이 곧 진리라고 합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니간타 본명이 <바르다마나>였으나 깨달은 후에 <마하비라>라고 불러진 차이나교의 교조입니다. 그는 극단적 고행과 불살생(不殺生)을 주장하는 윤리적 엄숙주의(嚴肅主義)이며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사상가입니다.
마하비라는 부처님 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존재론적으로는 크게 명(命)과 비명(非命)의 이원론(二元論)이며, 인식론적으로는 부정주의(不定主義) 상대주의(相對主義)입니다.
 
육사외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고대 인도 사회에서, 석가세존께서는 그들 육사외도를 누르고 50년간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길을 안내하시고, 마지막 法華經에 오셔서는 <모든 선남자야,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수명을 이룩한 것이 지금도 오히려 다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위에서 말한 수(數)의 곱이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사바세계머물면서 *매자의 비원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신다는 부처님의 수명론과, 불교의 *보살행을 누누히 말씀하셨습니다. 즉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무한대로 열어주시여 대생명 <큰 하나>를 깨닫게하는 일체중생구제론  비전에 올인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