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15-(3) 
 
 (2) 이와 같이 나는 성불(成佛)함이  심히 오래 되고 멀어서 수명(壽命)이 한량(限量) 없는 아승지겁(阿僧祗劫)이라, 항상 머물러 있어 (滅)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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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실성 석가세존수명은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과 끝이 없이 항상 *사바세계에 계시면무한대(無限大)의 권능, 절대의 존재로서 일체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셨습니다.
 
3천여년 전,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성불하신 금생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42년설을 통해 등장시킨 *아미타불*약사여래--등의 모든 부처님, 제불(諸佛)을 찬탄하시니까, 중생모든 부처님(諸佛)이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더 오래 전에 성불하신 것으로 착각합니다.
석가모니불이제 영험이 없다면서 신통력과 위신력과 권능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하고 불교의 위계질서(位階秩序)를 흔들어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56억 7천만년 후에 성불하신다는 * 미래불(未來佛) 미륵부처님이 더 영험하고, 또 앞으로 미래세계를 여는 부처님이라면서,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42년 방편설에 집착한 나머지 진실설 法華經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50년간 중생 교화하신 전체의 맥락을 보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만을 짧게 보고, 불교 전체를 본 것 같이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불교 전체를 보지 못하면 본불 석가세존의 절대성(絶對性) 정통성(正統性)을 알 수 없어서 불교를 저급한 신앙으로 내려뜨리는 큰 잘못을 본인도 모르게 저지릅니다.
 
42년 방편설등장한 모든 부처님의  수명론에만 매달리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진실설 法華經 여래수량품의 구원실성 수명론을 깨닫지 못함은 물론, 부처님의 참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석가모니불금생불로만 알고 그것으로 그친다면, 불교 신앙의 전통성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석가모니불의 수명론으로 불교 신앙의 원리 체제(體制)를 알고 구제 법맥을 찾아 열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42년설 방편설에  등장한 *아미타불(阿彌陀佛)이다 *약사여래(藥師如來)다 -하는 모든 부처님수명론은, 인간의 사량분멸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法華經 여래수량품 제 16에 오셔서 <나는 성불함이 심히 오래 되고 멀어서 수명이 한량 없는 아승지겁이라,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느니라>고 하시는 구원실성  석가세존의  수명론으로 끌어 안으면  42년 방편설진실설 法華經의 법맥이 통합되면서 대우주  대생명체  천지기운  <큰 하나>가 들어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의 성품근기욕망에 따라 낱낱이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성문(聲聞) 위해서는 circle03_darkgreen.gif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의 (敎)>하시고,
  연각(緣覺)위해서는 *<십이인연(十二因緣)(敎)>를 하시고,
  보살(菩薩)위해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敎)>를 하시여 각기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끊고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본문-015-(1)에서 공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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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겪는 일체의 고통을 낱낱이 밖으로 드러내어 고통의 실상(實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삭제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불교의 근본교리 *<사제팔정도> 절대 진리를 열어 인간이 갖고 있는 일체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처방전으로 *해탈하는 길을 안내하셨습니다.
 
●  사성제(四聖諦)
<(苦)(集)(滅)(道)>입니다. 즉 고성제(苦聖諦)집성제(集聖諦)멸성제(滅聖諦)도성제(道聖諦)를 말합니다. 사성제를 줄인말로 사제(四諦)라고도 합니다. 부처님 법이 정확하고 거룩하다 하여 <( )> 한자 한자에 <살필체(諦)>자를 올려서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 라고 간단히 말합니다.
 
고제 →범부의 생존(生存)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苦)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집제 →범부의 여러 가지의 고뇌는 결국 *번뇌(煩惱)입니다. 특히*갈애(渴愛)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애를 끊으라는 것이 불교의 기본 교리이며 수행입니다.
멸제 갈애고(苦)멸(滅)한 열반, 즉 ㆍ해탈(解脫)의 이상경(理想境)을 말합니다.
도제 고(苦)멸(滅)하는 수행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내놓으셨습니다.
 사성제 팔정도십이인연 등과 더불어 불교의 중요한 기초 교의(敎義)  곧 진리입니다.
 
고제(苦諦)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서 팔고(八苦)라 하셨습니다.
  육체적인 것으로 낳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 일체가 고통, 즉 생고(生苦)ㆍ② 노고(老苦)ㆍ③ 병고(病苦)ㆍ④ 사고(死苦)를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적인 것, 마음의 고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애별이고(愛別離苦)ㆍ② 원증회고(怨憎會苦)ㆍ③ 구부득고(求不得苦)ㆍ ④ 오음성고(五陰盛苦) 입니다.
 
애별이고(愛別離苦)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지는 고통입니다. 즉 사이별(死離別)과 생이별(生離別)의 고통을 인생사에서 대표로 말할 수 있습니다.
원증회고(怨憎會苦)란,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만나지는 것이 고통입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고통입니다.
구부득고(求不得苦)구(求)하는데 얻어지지 않는 것이 고통입니다.  돈이 꼭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거나, 대통령ㆍ국회의원ㆍ장관ㆍ국장--등, 원하는데, 마음대로 얻어지지 않으니까 그것이 중생심에서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오음성고(五陰盛苦), 육신이 성(盛)하여 이성(異性)을 원하는데,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갈애(渴愛)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니까 고통입니다.  
 
 ● 팔성도(八聖道=八正道)
불교의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덕목(德目)여덟 가지로 나눈 것입니다.
 
팔정도 욕락(欲樂)과 고행(苦行) 등의 극단을 떠난 *중도이며 올바른 방법으로 되었습니다. 이 팔정도중정(中正)·중도(中道)의 완전한 수행법이므로 정도(正道), 성인(聖人)의 도(道)이므로 성도(聖道)라고 합니다. 여덟 가지로 나누어졌으므로 지(支), 또는 분(分)이라 합니다.
 
정견 → 바른 견해(見解)입니다. 불교의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으로서의 인연(因緣)과, 사제(四諦)에 관한 지혜(智慧)를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지혜를 확립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정견(正見)은 일반적으로 바른 신앙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사업을 하는 경우, 전체적인 계획이나 전망이 정견에 해당됩니다. 모든 사물을 넓게ㆍ길게ㆍ바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보편적으로 인간헛 것을 보고 진짜를 보았다고 착각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모든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에 뜨이는 단면(斷面)만 보고 전체를 본 것처럼 착각합니다. 정견단순하게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전반에 모두 해당 됩니다.
 
정사유 → 몸과 말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에, 바른 의사 또는 결의를 가리킵니다. 출가자라면, 출가자다운 유화(柔和)와ㆍ자비(慈悲)와ㆍ충정(衷情)의 마음으로 사념사유(思念思惟)하는 것입니다. 세간에서 학생ㆍ직장인ㆍ사업가ㆍ등  ㆍ자기의 입장을 언제나 바르게 생각하고 의사(意思)하는 것이 정사유입니다. 말하기 전에 깊이 앞뒤를 생각하고, 상대의 입장도 배려하는 것입니다. 즉 남과 말할 때는 자기의 생각바르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념념심부절 념불불리심(念念心不絶 念佛不離心)이여야 합니다. 항상 생각과 생각마다 부처님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부처님 생각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아야 바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입산한 승려라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치심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 세계가 <일체개고(一切皆苦)>, 고통 아닌 것이 없다 해도 부처님께서 제시해 주시는 팔정도에 의지하면, 사바세계라는 고해(苦海)에 구애 받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으며, 금생에 *즉신성불(卽身成佛),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어 정사유(正思惟)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言語的) 행위입니다. 올바르게 생각하며 올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融和)시키는 유익한 말을 하는 일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이며ㆍ비단결같은 말로 남을 현혹시키지 말 것이며ㆍ이간질을 하지 말 것이며ㆍ악담 패설을 하지 말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악담한다 해서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담 패설한 당사자의 * 과보만 커지니까 그런 손해 나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과 행위는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일체가 고통 아닌 것이 없고, 사는 것이 어렵지만 부처님께서 방향 제시해 주시는 대로 살아가노라면,  circle03_darkgreen.gif 십악(十惡)의 죄를 짓지 않고, 오히려 십악을 열가지 착한 일 십선(十善)으로 바꾸어 성불의 길로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정업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신체적 행위입니다. 살생투도사음을 떠나서 생명애호(愛護)시여자선(施與慈善),  성도덕(性道德)을 지키는 등 선행을 말합니다. 시여자선이란, 항상 베푼다는 뜻으로 바른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바른 신체적 행위>는 육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애호(愛護)>는 살생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일이 잘 되라고 절에 가서 기도하고 염불하는데, 남편은 엽총 들고 나가서 멧돼지ㆍ노루ㆍ토끼ㆍ등을 잡거나,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한다면, 그 집안이 잘 되겠습니까. 한 쪽에서는 정성들이고 한쪽에서는 살생한다면 그 기도가 공덕이 되어 원하는 일이 성취되겠습니까 ?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공덕 짓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법화경의 분별공덕품 제17 *수희공덕품 제18 *법사공덕품 제19에서 法華經을 펴는 공덕의 거룩함을 찬탄하셨습니다.
 
처님께서는 --아일다야, 이 선남자 선여인은 나를 위하여 새로 탑(塔)과 절을 일으키며 승방을 짓고, 네 가지의 일로써 모든 중승을 공양하지 아니함도 무방하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이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가지고, 읽고 외우는 자는 이미 탑(塔)을 일으키고 승방을 세워 중승을 공양함이 되느니라.
이는 곧 부처님의 사리(舍利)로써 칠보의 탑을 세우되, 높고 넓음이 점차로 작아져서 범천에 이르고, 모든 번개와, 여러 가지 보배방울을 달고, 꽃과향과영락과가루향과바르는 향과사르는 향과여러 가지의 북과기악과퉁소와피리와공후와가지 가지의 춤을 추는 놀이와묘한 음성으로써, 장단을 맞추며 범패로써 찬탄하고 칭송을 한다면, 한량없는 천만억겁에 이와 같은 공양을 함같으니라.-고 *법화경 분별공덕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정명 →바른 생활입니다. 이것은 바른 직업에 의해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지만,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수면식사업무운동휴식 등에 있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이 증진되고 일의 능률도 향상되며, 경제생활과 가정생활이 건전하게 수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정명은 하루만이 아니고, 매일 같이 지구력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되풀이 하라는 것입니다.
 
정정진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적ㆍ윤리적ㆍ정치적ㆍ경제적ㆍ육체적ㆍ건강상의 모든 면에서 이상으로서의 선(善)을 낳고 증대시키되, 이에 어긋나는 악(惡)을 줄이고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무엇이 좋다고 하면 무분별하게 덤비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위로 치솟지도 말고, 아래로 내려가지도 말고, 좌우 (左右)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어디든지 통하는 정중(正中), 중심을 잡고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스스로 <큰 하나> 대생명체 율려(律呂) 흐름의 일환임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정념 →바른 의식(意識)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멍청하지 않고 항상 의식(意識)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부주의가 얼마나 중대한 참사를 일으키는가를 일반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불교적인 정념(正念)이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일입니다. 우주의 실상(實相) 곧 참모습 *삼법인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정정 →정신통일을 말하며 <사선정(四禪定)>을 가리킵니다. 사선정 같은 깊은 선정은 일반인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이완(弛緩)된 집중(執中)으로  바른 지혜를 얻거나 지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마음의 상태는, 정정(正定)이 진전된 상태입니다. 명경지수라는 것은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맑고 고요한 마음 자리입니다.
 
대우주 부처님 자리는 무상무아(無相無我)입니다. 세간에서 자아(自我)라고 말하는 것은 부처님 분상에서는 탐욕입니다. 중생은 육신이라는 작은 나(小我)에 집착해서 큰 것(大我)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형상은 없지만, 아주 고요한  *적정, <큰 것>입니다. 불교는 영원한 <큰 것(大我)>작은 나(小我) 합성시키는 수행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십악(十惡)==열 가지의 악업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身)구(口)의(意)삼업(三業)  곧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곧  십악(十惡)을 직접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는 살생(殺生)입니다. 생명있는 것을 죽이는 것 입니다.
 두번째는 투도(偸盜)입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입니다.
 세 번째는 사음(邪淫)입니다. 배우자가 있는 남의 아내나 남편을 범하는 것 입니다.
 여기 ① 살생투도사음세 가지는 모두 인간이 으로 짓는 신업(身業)입니다
 
 네 번째는 망어(妄語)입니다. 거짓말을 떡먹듯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기어(綺語)입니다. 비단결 같이 겉만 번드르하게 말하는 것 입니다
 여섯 번째는 양설(兩舌)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입니다.
 일곱 번째는 악구(惡口)입니다. 악담(惡談) 패설(悖說)을 일삼는 것 입니다.
  ④ 망어기어양설악구네 가지는 중생이 으로 짓는 구업(口業)입니다.
 
 여덟번째는 탐욕(貪欲)입니다. 색욕(色欲)이나, 재물 등을 탐내는 지독한 욕심입니다.
 아홉번째는 진에(瞋恚)입니다. 성질이 급해서 성 잘내는 것 입니다,
 열번째는 우치(愚痴)입니다.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 입니다.
탐욕진에우치세 가지는 인간이 마음으로 짓는 의업(意業)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십악 가운데, 망어기어양설악구네 가지 구업을 무척 경계하셨습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이면 안심처처뢰(安心處處牢)니라.----
부처님께서는 입이 (禍), 재앙의 문이요,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거늘, 모름지기 중생은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감추어 말을 아끼면, 어디서나 편안히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용히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고운말정직한 말로 서로 상대를 존중해서 융화하면, 누구나 유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진정한 큰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동안 사제팔정도* 십이인연 *육바라밀 등을 하시여 중생의 근기를 높인 다음에, 法華經 여래수량품에 오셔서, 구원의 본불이라고 부처님의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나는 성불함이 심히 오래 되고 멀어서 수명이 한량 없는 아승지겁이라,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느니라>하는 부처님의 수명론으로 불교의 근본 뿌리 정체성(正體性)을 우뚝 세워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