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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하여 그러한고, 여래는 진실과 같이 삼계(三界)의 상(相)을 알고 보아 생사(生死)에 혹은 물러가고 나옴이 없고, 또는 세상에 있는 자(者)도 멸도(滅度)하는 자도 없으니, (實)도 아니고, (虛)도 아니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느니라.
삼계(三界) 삼계로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함이니, 이와 같은 일을 여래(如來)는 밝게 보아서 착오(錯誤)가 없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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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명론(壽命論) 분상에서는, <삼계의 상(相)을 알고 보아 생사에 혹은 물러가고 나옴이 없고, 또는 세상에 있는 자도 멸도하는 자도 없으니,-->라고 한결같이 우주만유 일체를 평등관으로 보시고 오로지 일체중생구제만을 염두(念頭)에 두셨습니다. 중생의 속성처럼 갖가지 차별관으로 -내가 너보다 잘났다, 너보다는 내 살붙이가 소중하다, 나를 따르는 사람을 아낀다--고 하는 그런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일체중생 구제만을 생각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계 중생이 다 제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전제하에, 언제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관(中道觀)으로 법(法)을 듣는 대상에 따라 *삼주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특히 제자들에게 수기(授記) 주시는 일에도 *때와ㆍ장소와ㆍ신분을 살피시고 수기를 주십니다. 얼핏 생각하면 부처님을 시봉(侍奉)하는 아난존자라후라존자에게 먼저 수기를 주실 법 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체 제자들의 수행 덕목(德目)에 무게를 주셨습니다.
 
우리들 중생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권력이다ㆍ재력이다ㆍ하는 것을 자식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세습(世襲)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석가세존께서는 *사리불존자를 비롯한 *십대제자 모두에게 수기를 주시면서도, 유독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circle03_darkgreen.gif 아난존자와 아드님  circle03_darkgreen.gif 밀행제일(密行第一)의 라후라존자에게는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에 이르러서야 수기를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로지 중생을 구제한다는 염원(念願)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보시고, 상대의 신심(信心)과 실천에 무게를 두시고 수기를 주신다거나 하여 분발심(奮發心)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우주 대생명체 분상에서 *사비(四非)를 설하시고,  circle03_darkgreen.gif 사비론(四非論)으로 중생 구제를 선언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우주라고 하는 본체, 곧 *삼체삼관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일체중생 구제만을 전제하고 *삼계를 보시고, 보신 바를 그대로 설하십니다. 중생은 생(生)사(死)변화를 나누지만, 부처님께서는 생사(生死)<큰 하나   대생명체>, *천지기운로 통합하여 보시기 때문에,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상(四相), 사물의 변화에 좌우되지 않으십니다.
 
*무명(無明) 중생은 변(變)하는 면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알지만, 정각(正覺)을 여신 석가세존께서는 하지 않는 면, 영원한 존재를 보시고 그 분상에서 교(敎)를 내놓으셨습니다. *불지견(佛知見)으로 보신대로 사비를 설하시고, 그 사비론으로 중생을 구제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문제를 영원한 생명 분상에서 하나형태(形態)로 보십니다. 중생이 생사의 변화에 두려워 하는 것을 불쌍히 보시고, 사비론으로 중생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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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사비론(四非論)
 
<실(實)도 아니고 허(虛)도 아니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비실비허(非非虛) 비여비이(非非異)--라 합니다.
 
비실비허(非實非虛)- 비여비이(非如非異)에서 (實)이다ㆍ(如)다 하는 것은 평등(平等)을 말합니다.  <열매실(實)같을 여(如)>자는 불변(不變), 즉 영원토록 변치 않는다 하여 상주(常住)라 하는데, 法華經에서는   circle03_darkgreen.gif 상주불변체(常住不變體)라 합니다. 대생명체라고 하는 변하지 않는 절대의 <큰 하나>입니다. 즉 부처님 자리 정위치(正位置)를 말합니다.
석가세존께서는<큰 하나> 천지기운의 작용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네가지 모양, ① (生)(住)(異)(滅)한다 하여 *사상(四相)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한다면 굳이 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예컨대 대지(大地)라고 하는 상주체(常住體)가 있기 때문에 모든 생물이 생기고 길러지고 없어지는 사상의 변화가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대우주라는 것은 우주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원자(原子)를 함유하고 있으면서 인연 따라 항상 생성(生成) 소멸(消滅)시키는 대순환(大循環) 그 자체입니다. 대생명체 사비입니다. 이러한 생성소멸을 중생 분상에서는 - 변화다무상이다허망하다-고 하지만 대생명체 분상에서는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래비밀신통지력, 인간은 인간대로ㆍ동물은 동물대로ㆍ식물은 식물대로ㆍ 미물은 미물대로ㆍ살도록 하는 것을 전제한 물질면의 대순환일 뿐입니다.
 
서양문화의 오랜 정서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말하는 우주개벽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 대폭발설, 즉 빅뱅(Big Bang)설에 <표준 우주론>으로 초점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옛 그리스 사람들은 땅과 하늘과 바다로 갈라지기 전에, 세계는 하나의 커다란 혼란 덩어리라 생각하고, 그 혼란 덩어리를 카오스(chaos)라고 하였습니다. 우주가 생겨나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기 이전  곧  그리스의 천지개벽설에는 우주 만물의 씨앗이 카오스 속에 들어 있어서 가이아라는 땅의 여신이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가이아는 하늘의 신(神) 우라노스를 낳고 바다의 폰토스도 낳으므로써, 땅과 하늘과 바다로 갈라지면서 최초로 질서가 생기고, 그로부터 땅의 여신 가이아는 인간과 달라 죽지 않는 이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자기가 낳은 하늘의 우라노스와 결혼해서 여섯 아들과 여섯 딸을 낳으며 수많은 들을 등장시켰고, 때로는 들이 인간과 결혼하여 인간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평평한 쟁반같다고 생각한 옛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에서 발아(發芽)된 그리스 신화는 인류문화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굳이 그리스 신화를 끌어낸 것은, 대우주 본체라고 하는 위대한 힘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한 쟁반같다고 생각한 옛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대비(對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태생적으로 죽음을 전제하고 사는 것에 반해서, 신(神)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신화로 끝난 서양인의 정서와, 역사상 실존인물로 오셔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고 50년간 중생 교화하며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신다는 *일체중생구제론을 내놓으신 본불 석가세존의 절대의 지혜와, 절대의 자비  (氣)에너지,  대우주  본체론대비(對比)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대한 *용광로라고 할 수 있는 대우주 본체*사바세계 일체를 *섭수(攝受)합니다. *여래비밀신통지력이라는 권능으로 다시 새롭게 변화된 물질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물질대사( 物質代謝)를 가리켜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상을 알고 보아 생사에 혹은 물러가고 나옴이 없고, 또는 세상에 있는 자도 멸도하는 자도 없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경문은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대우주 상주불변체 *천지기운, 하지 않는 본불 석가세존 *자비(慈悲) 권능을 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하지 않는 상주체(常住體)  *천지기운을 말씀하실 때 --*아상재차사바세계(我常在此娑婆世界),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라는 존재는 *구원실성(久遠實成) 부처님이라는 수명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절대의 지혜절대의 자비를 갖춘 존재, 변하지 않는 상주불변체를 뜻합니다.
그러나 그 상주불변체는 항상 어떤 인연(因緣)을 만나 끊임없이 생멸(生滅) 작용합니다. 그 작용을 중생은 한다ㆍ무상(無常)하다고 합니다. 한다는 것은 본체의 작용을 드러내는 방편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컨대 세계적인 관광 휴양소로 유명한 북태평양 중앙에 있는 하와이 해변은 7-8월이면 태양열이 뜨겁게 쏟아집니다. 그 때 해면이 뜨거워지면서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마치 커다란 물기둥 같습니다. 그 장관(壯觀)을 보려고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과 과학자가 몰려 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물이 모두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 착각을 일으키겠지만, 실은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용 가는 데 구름 가고, 범 가는데 바람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증기가 허공에서 저기압대(低氣壓帶)라는 조건, 기압대를 형성하는 인연작용(因緣作用)이 이루어지면 지상에는 비가 내립니다. 그러한 대순환을 중생 관점에서는 변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우주 상주체 *천지기운 분상에서는 비실비허- 비여비이사비입니다.
 
우리 눈에는 모든 것이 끊임 없이 하여, 혹은 없어지고ㆍ혹은 새로 생기며ㆍ혹은 많아지고ㆍ혹은 적어지기도 하지마는 대우주를 <큰 하나> 관점에서, 한 쪽에서는 수증기가 올라가고, 다른 한 쪽에서는 비가 내리므로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습니다. 부증불감(不增不減)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큰 틀이 형성됩니다. 다만 형태가 달라질 뿐 사비입니다.
백년미만(百年未滿)을 사는 인간의 삶도 사비의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호흡(呼吸)이 무엇입니까. 나간 *<숨>이 다시 들어오지 않으면 죽은 송장입니다. 그래서 사비생명의 실상(實相)입니다.
 
부처님께서 - 세상에 있는 자도 멸도하는 자도 없으니,-라고 하시는 말씀은 --이 세상에 나타났다든가 없어졌다든가 하는 것은 없다ㆍ없어지는 것 같이 보여도 대우주안에서 정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ㆍ다만 인연따라 형체가 달라졌을 뿐이다ㆍ한 쪽만 보고 전부를 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ㆍ사비론을 정확히 알고 싶거든 보살행을 하라-- 는 그런 말씀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法華經에 들어와 신앙생활하는 것도, 저마다 살아가는 형태에 불과합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생명 가운데의 찰나, 곧 사비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상주불변체(常住不變體)
 
상주불변체 하지 않는 본체 사비를 말합니다. 줄인말로 상주체(常住體)라고 합니다. 한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주체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믿고 의지한다는 집착 때문에, 무상체(無常體)  곧  해서 나타나는 것을 가벼이 여겨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때가 오면 육신을 싫든 좋든 버립니다.
부처님께서는 금생의 삶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며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사랑하라고 적극 권장하셨습니다. *사비론을 깨닫고 상주불변체, 대우주 본체론과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40분 경,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6대의 차량과 50 여명의 사상자를 낸 너무도 불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성수대교는 트러스 공법으로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교각을 미리 수중에 세운 뒤, 철강재 구조물(트러스)을 교각 위에 올려놓고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듣건대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트러스 구조물의 철구조물 제작 및 용접 과정에서 원천적인 부실 시공과, 준공이후 설계 하중을 초과하는 과부하의 지속과, 취약한 접합부위의 방치등 관리 잘못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인과(因果)--라고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금생의 삶을 영원한 생명 대생명체의 한 부분임을 깨닫고, 내가 어디서 어떠한 일을 하든지 나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하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내놓으신 사비론이라는 것은,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홍익 사랑입니다. 보살행은 사비사상에 들어가는 찰나의 키워드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法華經)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제 9
 
수학무학인기품에서 수학(授學)이라는 뜻은, 배우고 있는 사람, 아직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학(無學)은, 다 배운 사람, 더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현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또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사람 모두가 각기 보살행을 힘써 하면 마침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 수학무학인기품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法華經에 들어오시면서 사리불존자에게 * 화광여래라는 수기를 주시는 것을 비롯하여 *사대성문과, *부루나존자와, 오백명이나 되는 제자들에게 수기를 주셨습니다. 이 때 *아난존자는 너무도 부러워서 부처님께 수기 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법화경 수학무학인기품 제 9 첫머리에---세존이시여, 우리들도 여기에 또한 응분(應分)의 분수가 있사오리니, 오직 * 여래(如來)만이 계시어 우리들이 귀의(歸依)하는 바입니다. 또 우리들을 이 일체 세간의 하늘과ㆍ사람과ㆍ아수라들이 보고 아는 바이며, 아난(阿難) 항상 시자(侍者)가 되어서 법장(法藏)을 받들어 가지며, 나후라 부처님의 아들이오니, 만일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수기를 주신다면 우리의 원(願)은 이미 성취하였고 대중의 소망도 또한 만족하오리다.---고 간절한 원(願)을 말씀드리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너는 오는 세상에서 마땅히 성불하리라. 이름이 산해혜 자재통왕여래(山海慧 自在通王如來) *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佛)ㆍ세존(世尊)이라. --고 하시며 아난존자에게 성불수기를 주셨습니다.
이어서   circle03_darkgreen.gif 라후라존자와, 학(學)-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는 많은 사람과, 무학(無學), 가르침을 다 배운 수행자에게 수기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질, *불성(佛性)의 개념을 신앙적으로 자각(自覺)하기만 하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보살행을 할 것임을 전제하고 누구에게나 수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체중생구제론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아난존자
 
다문제일이라고 하는 아난존자 석가세존사촌동생이며 25년간 부처님의 시자(侍者)로 항상 부처님 곁에 있었습니다. 그토록 가까이 모셨어도 수기는 늦게 받았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가까이서 시중 들어 준다고 하여 다른 제자보다 먼저 수기를 주지 않으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비관(四非觀)으로 구제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살붙이 이기 때문에 믿거라 하고 수행도 덜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수행자들의 눈에 차별로 보여질 수도 있고, 또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교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몸소 보여주기 위해 늦게 수기를 주셨는데, 그러한 실천행이 이른 바 사비입니다.
 
라후라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비라성정반왕(淨飯王)의 아드님이 석가세존인 것과 같이, 라후라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금생 아드님이며 사자협왕(師子頰王)의 큰 손자입니다. *십대제자 중에 한 사람인 라후라존자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아난존자가 초기(初期) 성문들과 함께 수기 받은 것이 사비론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성불(成佛)시키려고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으로 오셨습니다.
 
일체 중생이라는 뜻은 인간을 비롯하여 생명을 가지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빈부귀천(貧富貴賤) 남녀노소(男女老少) 가리지 않고 모두를 부처님과 같이 되게 해주시려는 자비심(慈悲心)으로 성불경(成佛經) 法華經하셨습니다.
法華經사상을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지키고 행동으로 실행하면, 지금은 *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끝내는 *불지(佛智)를 갖춘 부처님이 된다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해 주신다고 해서 어떤 보수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석가모니불의 거룩한 가르치심에 은혜를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고마움을 간직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사비의 개념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느꼈다면, 그 고마움에 감격했다면,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라는 것이 지은(知恩) 보은(報恩) 시은(施恩)입니다.
 
지은(知恩) 부처님의 설법회상에서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깊이 감동하는 사람입니다. 한 법구라도 듣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크게 감격하여 큰 은혜(恩惠)를 아는 것입니다.
보은(報恩) 은혜를 앎으로 해서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교(敎)를 설해주셨으므로, 은혜에 보답하려는, *보은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은 정말 은혜를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은혜에 보답함에 있어서 굳이 그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직접 보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처님을 고맙다고 생각한다면 부처님께 직접 보답할 것이 아니라, 아직 미혹(迷惑)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심을 전하면 됩니다. 누구에게든지 은혜를 베풀어 주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모든 불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 됩니다. 그것이 곧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시은(施恩)은혜를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지은보은시은이 계속되어 나갑니다.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일파만파(一波萬波)로 온 세상에 옮겨 주면 됩니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거룩한 가르치심을 세상에 펴서 迷惑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일비지력((一臂之力)이 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진정한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첩경은 *법사(法師)입니다. 이것이 사비 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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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밀행제일(密行第一)의 라후라존자
 
라후라존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밀행제일이었다고 합니다.   밀행이란, 일상생활의 동작 곧 비밀한 행으로 남이 살펴도 알 수 없는 행(行)이라는 뜻입니다.  면밀한 실행으로 오로지 불도(佛道)의 수행에만 힘쓰는 행업(行業)을 말합니다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는 탁발(托鉢)을 다니시거나ㆍ설법하실 때나ㆍ공양을 받으실 때나ㆍ습관적으로 세수하고 발을 씻으셨습니다. 특히 고대인도는 맨발로 다니던 때라, 부처님께서도 그 광활(廣闊)한 고대 인도 전역을 맨발로 다니시며 을 펴셨는데, 부처님께서 포교 나가셨다가 정사(精舍)에 돌아오시면,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발을 씻어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만두어라. 남이 해주는 것은 *복(福)을 감하느니라, 남에게 더러운 것을 씻게 하면 복(福)을 감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66세부터는 아난존자가 씻어드렸습니다.  
 
어느 때,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발을 씻어드리려고 하는데, 아드님 라후라존자가 부처님의 발을 씻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라후라존자 아버님이신 부처님께 가까이 하고 싶어서 몇 번 머뭇거리다가 용기 내어,  --부처님, 제가 발을 씻어드려도 될까요.--하고 여쭈었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시고 -네 마음이 정 그렇다면 그리 하라--고 승낙하셨습니다.
라후라존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부처님이라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고 부처님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라후라존자 한꺼번에 밀어 닥치는 부정(父情)에 못이겨 눈물이 흘러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인간사라고 하는 -비실비허 비여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