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 011-(4)-
 
그러나 나는 실로 성불(成佛)해 옴이 이와 같이 오래건마는  다만 방편(方便)으로써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해서  불도(佛道)에 들게 하려 이와 같이 설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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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여년 전 고대인도 가비라성의 정반왕마야부인태(胎)를 빌려 금생에 *실달태자(悉達太子)의 몸으로 오셔서 19세 에 출가하여 왕사성(王舍城) 난행고행(難行苦行) 6년과 부다가야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단좌명상(端坐瞑想) 6년 수행으로 정각(正覺)을 여신 석가모니불(佛)금생(今生)성불(成佛)하신 부처님으로만 국한시키면 불교의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석가세존께서 50년간 모든 부처님과ㆍ보살ㆍ성문ㆍ연각을 부처님 자신의 입으로 탄생시키셨습니다. 8만 4천 법문을 설하시는 동안 수많은 분신불(分身佛)을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등장시켜서 *일체중생구제론으로 일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을 등장시킨 근본 뿌리, 불교의 키워드는 무엇인가ㆍ불교의 정체성(正體性)을 투명하게 세워주는 경전은 무엇이냐--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여래수량품을 통해 부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전제하고, 42년 방편설은 물론, 법화경(法華經)에 들어 오시면서 *방편품을 비롯하여 *비유품*신해품설(說)하시면서 계속 *삼주설법으로 모든 중생의 이해를 도와 대우주관(大宇宙觀)에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한 구원의 본불이다>*구원실성(久遠實成) 수명론을 열어서, *적불(迹佛)과 본불(本佛)관계 *개현법(開顯法)으로 불교 신앙의 정체성을 세워 주셨습니다.  *개적현본
(開迹顯本)개근현원(開近顯遠)개삼현일(開三顯一)개현법으로 *일체중생구제론을 드러내셨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나는 사바세계에 모습을 나타내기 그 이전부터, 몇천만년인지 모를 구원한 옛날부터 부처님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인도에 태어나, 몸으로써 묘법(妙法)을 보여주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 출현하자마자 대뜸 법화경의 실상 *오중현의한다 해도 중생이 *무명하여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중생과 똑같이 육신으로 와서 육신의 정서(情緖)로 느낄 수 있는 사실만을 가지고 42년방편으로 설하였다. 
본래  나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대우주  본체(本體). 중생 구제 차원에서 잠시 방편으로 석가모니불이라고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와서 중생구제하는 일에만 마음 쏟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불본불의 관계를 중생 관점에서 나누었지만,  실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 <큰 하나>라는  대우주관(大宇宙觀)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중생은 근본 부처님 본불(本佛)은 영원한 것이고, 역사상 자취를 남긴 적불(迹佛)은 어떤 시기에만 세상에 존재한다고 하니까, 지레 짐작으로 본불적불을 나누어 우열(優劣)을 따진다든가 하여 재화복덕(財貨福德)을 구합니다.
현재라는 찰나 가운데, 과거ㆍ현재ㆍ미래가 한 마당이라고 하는 정신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法華經 구제론 보다는, 지금 당장 *탐진치(貪瞋癡)(三毒)을 충족시켜주는 물질세계에서 어디에 줄을 대야 병고액난(病苦厄難)을 면하고 속히 재앙소멸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그치고 그것이 불교의 전부로 압니다. 대우주 본체라고 하는 본불의 존재가 어떠한 권능으로 모든 중생을 살 게 하는 것인지 그  큰 힘을 깨닫게 하는 일체중생구제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우주 본체라고 하는 근본되는 본불(本佛)이 존재하지 않으면 적불(迹佛)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본불이라고 하는 근본 부처님의 권능이 자유자재하더라도 그 부처님께서 인간이라는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다면, 적불(迹佛)로 오시여 우리들에게 일체중생구제론이라는 성불사상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중생은 <본불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있기 때문에, 물이 있는 곳은 어느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달그림자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80세에 입멸하신 금생불 석가세존의 일대기만 알고 그것으로 그치면, 허공의 진짜 달을 보지 못하고 물에 비친 달그림자만 보는 것과 같습니다. 적불(迹佛) 석가세존께서는 본불(本佛) 대우주 생명체 그 자체이시지만  인간이 느끼는 정서로 인간세계에 오셔서 하신 그 역사적 사실이 인간에게 너무도 큰 시주(施主)며 큰 은혜입니다. 만약 석가세존께서 적불의 몸으로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으로 출현하지 않으셨다면, 인간은 구원의 길이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생에 오신 적불의 작용을 떠나서는 본불 당체를 알 수 없습니다. 컴퓨터에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하드본체(本體) 본불(本佛)이라는 (體)이고, 금생에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오셔서 50년간 중생교화 하시다가 80세에 열반하신 역사적 사실은 용(用), 소프트입니다.--나는 실로 성불해 옴이 이와 같이 오래건마는 다만 방편으로써 중생을 교화해서 불도에 들게 한다--구원실성을 드러내시면서 일체중생구제를 선언하신 이러한 관계를, 개권현실이라는 방법론으로 드러내신 작용을  circle03_darkgreen.gif 체동용이(體同用異)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착한 사람ㆍ 악(惡)한 사람ㆍ지혜로운 사람ㆍ어리석은 사람ㆍ등의 갖가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중생을 교화해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불도(佛道)에 들 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의심덩어리 중생은 일체중생구제론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약초유품 제 5 통해  circle03_darkgreen.gif 삼초이목의 비유를 들어서 알기 쉽게 설하시여 모든 중생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환희심을 일으키도록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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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法華經) 약초유품(藥草喩品) 제 5
 
*법화경 신해품 제 4에서는 가섭존자를 비롯한 네 분성문삼주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는 부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은 바를 직접 부처님께 아뢰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어서 *약초유품 제 5 가 열리면서 석가모니불(佛)께서는 큰 제자(弟子)들에게 이르시되,
----착하고 착하다, 가섭아. 여래의 참되고 진실한 공덕(功德)을 잘 설하였노라. 진실로 네가 말한 바와 같음이라. *여래(如來)는 또 한량 없고 가이 없는 아승지(阿僧祗)의 공덕이 있으니, 너희들이 설사 한량 없는 억겁(億劫)을 두고라도 능히 다 설하지 못하리라. 가섭아, 마땅히 알라, 여래는 모든 법의 왕이니, 설하는 바는 다 헛됨이 없느니라. 일체의 법을 *지혜방편으로 설함이니라. 그 설한 법은 다 일체지(一切智)에 이르게 하느니라. 여래는 일체 모든 법의 도달하는 곳을 관하여 알며, 또한 일체 중생이 깊은 마음의 행하는 바를 알아서 통달하여 걸림이 없느니라. 또 모든 법궁극을 다 밝혀 모든 중생에게 일체 지혜를 보이느니라. 가섭아, 비유컨대 삼천대천 세계의 산천계곡땅 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며수풀이며약초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며 각각 색과 이름이 다르니라.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존자를 비롯한 큰 성문 제자들이 일체중생구제론 *장자와 궁자의 비유로써 다 깨달았다고 화답(和答)하는 것을 모두 들으시는 것으로 흡족해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너희성문이 그만큼 알았으니 좋다, 그러나 너희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너희들 보다 정도가 낮은 사람도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잘 알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부터 내가 일체중생구제론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부연(敷衍)해서 덧붙여 설하겠다. -고 하시고 약초유품을 열어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구제하여 부처님이 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일체중생구제론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치심과 그것을 받아드리는 중생과의 관계자연계의 숲과 나무예를 들어 설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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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삼초이목(三草二木)
 
반야경(般若經)공사상(空思想)으로 *성문ㆍ연각이 된 이승(二乘) 제자들은,--나는 미혹(迷惑)한 중생과는 다르다. 나는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끊고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고 스스로 차별화하고 심각한 현실을 도외시 하고 그대로 이승(二乘), *무기공에 안주하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 사랑하지 않는 그러한 이승들까지도 모두 삼초이목의 비유처럼 구제하여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평등하게 성불(成佛)케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참 마음 일체중생구제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法華經에 들어오시자마자 방편품에서 일대사인연 *사불지견을 설하시고 상근기(上根機) 사리불존자에게는 *수기를 주셨습니다. 이어서 *삼덕유연이라는 <(主)(師)(親)>의 신앙관으로 일체중생구제 불사(佛事)에 주력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때는 부처님께서 하시고, 어떤 때는 먼저 깨달은 제자가 합니다. 이렇게 엇바뀌어 나아가는 중에 *근기(根機)가 낮은 사람도 끝내는,--나도 힘써 실행해 보자-- 하는 동참의식(同參意識)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수준이 낮은 하근기(下根機)의 제자들은 방편품에서 설하신 일대사인연, 사불지견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다시 알아 듣게 하기 위해서 큰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 자기가 안 것을 반복해서 비유로 말하게 하여 나머지 제자들이 깨닫게 하는 부처님 특유의 교화 문화로 모든 제자들을 法華經으로 인도(引導)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큰 제자장자와 궁자의 비유로써 화답한 것으로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 가운데는 -자기들 보다 조금 나은 제자가 말해주어서 조금은 알아들었지만, 혹시 부처님께서 진짜 설하시려는 생각과 다르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는 너희가 의심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다 안다. 내가 좀 더 보충해서 설하겠다--하시고 약초유품을 설하셨습니다.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 제 5에서,---일체 중생이 나의 법을 듣는 자는 따라  받아서 모든 경지에 머무르니라. 혹은 사람과전륜성왕과천상계(天上界)의 제석천(帝釋天)과범천(梵天)의 모든 왕(王)이 되면, 이는 ※작은 약초이니라. 무루(無漏)의 법을 알아서 능히 열반을 얻고 육신통을 일으키며 *삼명(三明)을 얻고 홀로 산이나 숲속에서 항상 선정을 행하여 연각(緣覺)을 증득하면 이는 ※중품의 약초이니라.
 
부처님경지를 구하여 내가 마땅히 성불하리라 하고 부지런히 선정(禪定)정진(精進)을 행하면 이는 ※ 상품의 약초이니라.  또 모든 불자(佛子)가 마음을 불도(佛道)에만 두어 항상 * 자비를 행하며 스스로 성불할 것을 알고 결정하여 의심이 없으면 이는 ※ 작은 나무라. 신통(神通)에 편안히 머물러서 불퇴(不退)의 법문을 설하며 한량 없는 억백천(億百千)의 중생을 제도하는 이와 같은 보살※ 큰 나무니라. 부처님의 평등의 말씀은 한 맛의 비와 같음이라. 중생이 성품에 따라 받아 가짐이 같지 아니함이, 저 초목의 받는 바가 각기 다름과 같음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약초(小藥草)-란, 완전하게 迷惑  煩惱를 끊지 못했더라도, 열심히 불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이 따르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것을 부처님께서는 작은 약초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중품의 약초(中藥草)-란, 미혹  번뇌를 끊은 성문ㆍ연각 이승(二乘)을 말합니다. 미혹을 제거하는 *무루법(無漏法)을 알아서 괴로움과 번뇌를 떠나 육신통(六神通)을 얻고 삼명(三明)의 지혜를 갖춘 사람을 중품의 약초라 합니다. 보통 사람이 가지지 못한 열반(涅槃)을 증득하였지만, 아직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구원(救援)할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혼자서 산림(山林) 속에 들어 앉아 선정(禪定)하여 조용히 마음을 닦는 사람이라든가, 나날이 당하는 일들과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아울러 생각해서 세상의 무상(無常)을 깨닫는 정도에 이른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중품의 약초라고 비유하셨습니다.
 
※ 상품의 약초(上藥草)-란, 수행의 과보(果報)로 미혹  번뇌를 끊은 것은 물론, 성불하겠다는 원력(願力)을 세우고 부지런히 정진(精進)하고 선정(禪定)하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가장 크고 좋은 상품의 약초라고 비유하셨습니다.
 
※ 작은 나무(小樹)-란,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십지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참 마음을 잘 알고, 그 가르치심을 배워서 오종법사 수행하는 것 이외의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자비(慈悲)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수행의 과보로 나날이 혼자 깨달음을 열 뿐 아니라, 뒤를 이어오는 모든 사람을 가엾이 여기고 모든 사람의 괴로움과 *번뇌를 제거해 주는 행동파를 부처님께서는 작은  나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 큰 나무(大樹)-란,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갖추어져 있어서 *극난승지의 경계를 만난다 해도 불퇴전(不退轉)의 정신력으로 *일불승(一佛乘) 법화경을 널리 설해서, 많은 사람들의 *견사의 미혹(迷惑)을 없애주는 위대한 힘을 갖춘 보살을 부처님께서는 큰 나무(大樹)라고 비유하셨습니다.
 
수학(數學)에서 도형(圖形)이라고 하는 것은, 점(點)이 모여셔 선분(線分)이 되고  선분이 모여서 넓이(平面)가 되고 넓이가 모여서 입방체(立方體), 공간(空間)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이, 法華經 전체를 한 생각으로 보아야 부처님의 진실의(眞實義)를 알 수 있습니다. 무량의경法華經보현보살행법경까지를 <큰 하나>로 통합해서 봐야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일대사인연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法華經 약초유품삼초이목 비유도 대자연계의 실상(實相)을 연결 고리로 일체중생구제론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체동용이(體同用異)
 
체동용이(體同用異), 몸은 같지만 쓰임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法華經 방편품 첫머리에서 석가세존께서는 사바세계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오신 그 연유를 *사불지견(四佛知見)으로 확실하게 열어 주셨습니다.
 
<(開)(示)(悟)(入)>이라고 하는 사불지견*일체중생 실유불성론(一切衆生 悉有佛性論)이라고 하는 불교 특유의 인신관(人身觀)입니다. 모든 사람은 남녀노소ㆍ부귀빈천ㆍ관계없이 본래부터 거룩한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품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circle03_darkgreen.gif 범성일원론(凡聖一元論)의 가르치심을 근본으로 하였습니다.
부처님과 중생본질적(本質的), 본체상(本體上)으로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수행 여하에 따라 부처님은 깨달은 어른, 각자(覺者)이십니다. 그리고 중생은 미혹한 범부, 미자(迷者)입니다. 부처님이나 중생은 다같이 *십계호구(十界互具)라는 체(體)는 다 같습니다. 불성(佛性)이 이미 닦여서 *인간팔고에 구애 받지 않고 마음을 자유롭게 잘 다스릴 줄 아느냐, 아니면 번뇌라는 늪에 빠져 있느냐 하는 점이 다를 뿐이라 하여 체동용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한 인간팔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중생생로병사 우비고뇌(憂悲苦惱)에 몸과 마음이 묶여 있다는 것이 다름니다.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본질면에서는 부처님이나 중생이 똑 같으나, 그 쓰임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해서 체동용이라고 합니다. 중생은 탐진치  삼독에 중독되어 있고,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구제  불사에 잠시도 쉬지 않으신다는 것, 곧 *인연과보(因緣果報)가 다르다 해서 체동용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야광주(夜光珠)옥박(玉璞)본질은 같지만 쓰임이 다릅니다. 야광주는 어두움을 밝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갈고 닦지 않은 옥박(玉璞)은 돌이나 다름 없습니다. 경주돌이라 해서  다 옥돌이 아니듯이, 중생은 옥돌이라는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갈고 닦지 않아 옥박(玉璞)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불성을 갈고 닦아서 모든 사람들의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으로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시는 야광주이십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범성일원론(凡聖一元論)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하여 누구나 부처님이 될 성품, 불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제도 여하에 따라 (凡)(聖), 곧 (迷)(悟)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범부(凡夫) 중생입니다. 보편적으로 미혹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성인(聖人)미혹을 떠나 *지혜(智慧)를 갖춘 사람입니다. (凡)은 환경에 제어(制御), 지배  사람입니다. (聖)은 능히 환경을 제어,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환경제어 당하는 사람은 미혹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남이 존경하면 우쭐해지고ㆍ남이 나쁘게 말하면 겁을 먹으며ㆍ더우면 맥이 풀리고ㆍ추우면 떨며ㆍ 이익(利益)이 나면 사치해지고ㆍ손해를 보면 걷어치워 버립니다. 주위의 환경에 따라 항상 변하는 사람이 범부입니다. 반대로 능히 환경제어하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합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데로 부지런히 일을 하고, 부자가 되면 그만큼 어떤 보람있는 일을 합니다. 언제나 스스로 환경을 제어해가는 사람이 곧 성인(聖人)입니다. 이렇듯 중생 차원에서는 범부(凡夫)성인(聖人)을 나누어 생각하지만 부처님 분상에서는 다 제도를 전제한다 하여 범성일원론이라 합니다. 
 
법화경 조직은 옷감으로 치면 씨줄날줄 관계같이 매우 교묘하고 섬세하게 그 조직이 연속적으로 짜여져 있으므로 *일불승 법화경 분상에서는 일체를 <큰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법화경 약초유품에--비유컨대 큰 구름이 널리 일체를 덮음과 같음이라. 이미 세상에 출현하시어 모든 중생을 위해 모든 법의 실상을 분별하여 설하심이니라. 대성(大聖) 세존이 모든 천상계와 사람과 일체 중생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시노라.
 
나는  여래  양족존(兩足尊)이라, 세간출현함이 마치 구름과 같아서 메마른  일체 중생을 충족케 하며 윤택(潤澤)케 하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게 하여 안은락세간락열반락을 얻게 하노라. 가섭아, 마땅히 알라. 모든 인연과 가지가지 비유로 부처님의 도(道)를 열어 보이니, 이는 나의 *방편(方便)이라, --고 일체중생 구제를 선언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