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10-(3)-라
 
  circle03_darkgreen.gif연기(年紀)가 크고 작음이라.  circle03_darkgreen.gif또 다시 열반에 든다 말하며, 또는 가지가지의 방편으로 미묘을 설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환희심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年紀大小=연기대소 亦復現言=역부현언 當入涅槃=당입열반 又以種種方便=우이종종방편 說微妙法=설미묘법 能令衆生=능령중생 發歡喜心=발환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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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여년 전, 석가세존께서는 고대인도 가비라성의 정반왕의 태자, *실달태자의 몸으로 오셔서 정반왕을 비롯하여 그 시대 모든 군왕과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셨습니다. 그로부터 42년간 미혹(迷惑) 중생을 위해서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를 비롯하여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문제점의 근원을 설하시다가, 부처님의 성수  72세에 이르시자 그 때부터 열반(涅槃)에 드시는 80세까지   8년간 일체중생이 모두 미혹  번뇌(煩惱)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인간, 부처님이 되는 길을 직행적으로 제시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셨습니다. 영원한 평화와 자유, <큰 하나>에 들게 하는 길을 다이렉트로 설하셨습니다.
 
특히 *여래수량품 제 16에 오셔서는 뜻밖에도 <나 석가모니불은 한량 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한 구원의 본불>이라고 부처님의 수명론에 온 힘을 실어서 선언하셨습니다.
 
혹자는 석가세존께서는 금생에 수행하시여 부처님이 되신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어째서 40 여년이 지나 法華經에 오셔서 *구원실성(久遠實成),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이라고 선언하시는 소위가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름이 같지 않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며연기가 크고 작음이라는 무슨 뜻이며42년간 방편으로 하셨다는 것은 무엇이며미묘한 法을 설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환희심을 일으키게 하셨다>고 하시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 하는 의구심(疑懼心)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실 때,  *불안(佛眼)으로 상대를 보시고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제도하신다는 대원력(大願力)아래 *<①때(時)ㆍ②곳(處)ㆍ③지위(位)>를 살피고 하신다는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① 지위>,   이 세가지를 무시하고는 가르치심이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가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만, 남을 구원하는 방법ㆍ무명중생의 迷惑을 제거하는 방법ㆍ보살행을 하는 방법을 적절하게 자재(自在)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중생이 가르치심을 듣고자 하면, 부처님께서는 *불안으로 상대를 보십니다. 배운 사람못배운 사람늙었거나 젊었거나부자거나 가난하거나차별없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자비심으로 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다겁생동안 닦으신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으로 중생을 불쌍히 보고 자비로 대하십니다.
대우주의 원리를 체득하신 부처님의 불안(佛眼)으로 부처님을 찾아 온 사람들을 보시고 *근기신심을 살피시고 알맞는 가르치심을 주시여 중생으로 하여금  circle03_darkgreen.gif 환희심을 일으키게 해주신다고 하는 것이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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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이름이 같지 아니하며 연기(年紀)가 크고 작음이라.
 
<이름이 같지 아니하며 연기가 크고 작음이라>라는 이 말씀은, 42년 방편설, 아함경을 비롯해 아미타경능엄경금강경--등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法華經 여래수량품에서 부처님의 정체를 밝히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시성정각(始成正覺), 지구 역사상 최초로 성불하신 석가세존께서는 法華經 여래수량품에서,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였다>고 하신 말씀을 신앙상으로 또는 경전상으로 구체화 하기 위해서 <이름이 같지 아니하며 연기가 크고 작음이라>라고 선언하시므로써, 부처님과 중생과의 정서적인 혈맥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42년 방편설에서는 금강경이나 능엄경을 통해 중생의 수준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열반(涅槃)이라는 철학적인 진리의 말씀만으로는 보통의 사람들은 즉시 직행적으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부처님의 눈으로 아셨습니다. 그래서 석가세존께서는 보통의 중생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열반(涅槃)이라는 철학을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인간은 누구나 불성(佛性)이 있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다누구든지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보살행을 실천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ㆍ *즉신성불(卽身成佛) 할 수 있다내가 42년 방편설에서는 이승(二乘)성불할 수 없다영불성불(永不成佛)이다고 말했지만, 法華經에 이르러서는 문을 열어 놓았으니 너희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貧富貴賤) 관계없이 성불할 수 있다나 석가모니불의 피가 흐르는 불성(佛性)이 있다부처님의 몸, *법신(法身)의 종자가 있다너희들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나의 자식이다무슨 말인지 알겠느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42년설에서는 이승(二乘)성불할 수 없다, 영불성불(永不成佛)이라고 말씀하셨지만, 法華經에 이르러서는 부처님이 되는 종자, 불성이 있으니 성불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셨습니다. 그야 처음부터 똑 떨어지게 밝히실 수도 있었지만, 중생의 성품과욕망과근기가 하나같이 똑 같지 않아서 중생의 근기에 맞추다 보니, 자연히 옛날 어느 과거세에는 이러 저러한 부처님이 계셨고 그 부처님의 덕행을 얘기하다 보니 <이름이 같지 않고, 연기가 크고 작았고, 방편이 필요해서 쓰다보니 중생이 환희심을 일으켰다>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중생이 분별되는 차별화가 아니라고 불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우시며 부처님과 중생과의 끊을 수 없는 사이, 곧 눈물과 정이 흐르는 생명의 정서 부모자식 관계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방법론이 되겠습니다.
 
*법화경 비유품 제 3중에서,---이 *삼계(三界)는 다 내가 둔 바이니 그 가운데 중생이 다 나의 자식이라. 지금 이 곳에 모든 *환난(患難)이 많음이나, 오직 나 한 사람만이 능(能)히 구호(救護)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법구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부처님수명론 분상에서 法華經 생명학을 신앙적으로 받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인간의 정서로 실천하면 삼계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자식임을 느끼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또 다시 열반(涅槃)에 든다 말하며
 
열반(涅槃)이란 (滅)입니다. <멸할멸(滅)>자는 말끔이 없이한다는 것이 아니라, 변천무상(變遷無常)한 현상경계(現狀境界)라는 세상의 변화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떠난다는 말씀입니다.
 
석가세존께서 3천 여년 전에 열반에 드셨다고 하면, 돌아가신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극히 얕은 뜻입니다.
영성세계에서 (滅)이란, 육신에 국한 된 생사(生死) 굴레에서 떠난다는 뜻입니다. 생사 육신의 변화입니다. 그런 육신의 변화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되는 것을 불교에서는 열반이라 합니다. 열반생사(生死)  의지(意志)대로 자유로이 지배(支配)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나시고자 할 때에 나시고, 돌아가시고자 할 때에 돌아가시여 생사를 지배하시기 때문에 열반이라 합니다. 죽음은 생사에 지배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70년90년을 산다해도 금생에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가져 수행으로 옮겨서 실천하지 못하고 금생을 마치면, 다시 태어나도 迷惑  煩惱 *습기,  곧 정보로 남아 있어서 영원히 괴로움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迷惑이 없어져야만 평화로운 삶을 누린다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한다는 것은 인생의 귀찮은 관계를 떠나는 뜻입니다. 귀찮은 관계를 떠난다는 것을 불교에서는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멸한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같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괴로움이나 번민이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살아있는 동안은 평온하게 지낼 수 있고, 육신이 소용 없게 되면 버리고 다음 생애에서 또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진정한 뜻의 열반이요 깨달음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혹 중생이 부처님 앞에 나타나면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팔정도(四諦八正道)하시여 모든 괴로움의 극한까지도 없어지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예컨대  circle03_darkgreen.gif 앙굴리마라의 제도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환희심을 일으키게 해주신다
 
*법화삼부경 무량의경 덕행품 제1에---다음에는 심히 깊은 *십이인연을 내려 무명(無明)  노(老) 병(病)  사(死) 등의 맹렬히 타는 고(苦)의 모임을 해(日)의 광명으로 씻고, 이에 크고도 넓은 위없는 대승(大乘)을 기울여 중생이 가진 모든 *선근(善根)을 윤택하게 적시고, 선(善)의 종자를 뿌려 공덕의 밭에 두루 펴서 널리 일체로 하여금 보리(菩提)의 싹을 트게 함이라. 지혜(智慧) 일월(日月)이요 방편은 시절(時節)이라, 대승의 사업을 북돋아 더하고 길러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속히 이룩하여 항상 쾌락에 머무르게 하며, 미묘(微妙)한 진실과 한량 없는 대비(大悲)로 괴로운 중생을 구함이라.
 
이 모든 중생의 참된 선지식이며 이는 모든 중생의 크고도 좋은 복전(福田)이라. 이는 모든 중생의 청하지 않은 스승이며, 이는 모든 중생의 안온하고도 즐거운 처소이며, 구원하는 곳이며 보호하는 곳이며 크게 의지할 곳이라. 곳곳마다 중생을 위하는 크고 어진 도사(導師)가 되며 인도하는 스승이라, 능히 눈먼 중생을 위하는 눈이 되고, 귀머거리ㆍ코머거리ㆍ벙어리에게는 귀가 되고 코가 되고 혀가 되며, 모든 근(根)이 허물어지면 그들로 하여금 구족하게 하며, 전도되어 미치광이처럼 거칠고 산란할지라도 크게 올바른 생각을 가지게 하리라. 배(船)스승이며 큰 배스승이시라, 모든 중생을 싣고 생사의 물결을 건느게 하여 열반의 언덕에 둠이라.(*선사부사의공덕船師不思議功德)  의왕(醫王)이며 대의왕(大醫王)이시라, 병(病)의 상(相)을 분별하고 약(藥)의 성품을 밝게 알아서 병에 따라 을 주어 중생으로 하여금 을 먹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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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앙굴리마라(손가락 목걸이라는 뜻)
 
고대인도에는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바라문 교단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라문의 대학자 가운데, 12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 상두나(象頭那)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상두나에게는 예쁜 아내 바사리 부인과 잘 생기고 체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아힌사라고 하는 젊은 수제자(首弟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바사리 부인남편이 외출한 사이에 아힌사를 불러 정을 나누려 했습니다. 아힌사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부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왔는데도 부인은 체통없이 아힌사를 계속 불렀습니다. 아힌사는 스승의 부인이 끊임없이 부르니 아니 갈 수도 없어서 억지로 가니까, 바사리 부인아힌사를 보자마자 대담하게 웃옷을 벗으며 자기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하였습니다. 아힌사는,--저는 스승님의 큰제자입니다. 스승님은 부모님과 같습니다. 어찌 사모님을 범할 수 있습니까--하고 단호히 뿌리치고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바사리 부인은 훨훨 타오르던 애욕이 찰나에 증오로 변하였습니다. 부인은 자기 몸을 할퀴고 옷을 찢는 자해행위(自害行爲)를 미친 듯이 하였습니다. 그 때,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찢어진 옷과 피투성이가 된 아내를 보고 웬일이냐고 하자, 아내는 --당신의 제자 아힌사가 당신만 나가고 없으면 나를 범하려고 해서 내가 죽기로써 몸을 지키느라고 이꼴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내의 말을 곧이 들은 남편은 몹시 화가나서 아힌사를 당장 불러 죽이고 싶었지만, 스승의 체면이 있는지라, 꾹 참았다가 얼마 후에 불렀습니다.
 
스승은, --아힌사야, 너는 지금까지 훌륭하게 잘 해왔다. 나는 더 가르칠 것이 없다. 다만 수행만 남았다. 지금부터 백명의 사람들로부터 오른손의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짤라 백개가 되거든 목걸이를 만들어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수행이 끝난다.--고 하며 시퍼런 칼을 내주었습니다.
 
아힌사 남의 손가락을 자르려면 사람을 죽여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소름이 끼쳤지만, 수행이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나왔습니다. 그로부터 아힌사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잘라 99개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만 더 죽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멀리서 그의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순간. 아힌사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라도 죽여 손가락을 잘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살인마 아힌사의 살인사건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이 소식을 듣고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즉시 법의(法衣)를 가져오게 하여 입으시니까, 제자들은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니까, 부처님께서 나가시면 위험하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 누구도 나를 해칠 사람은 없다. 내가 나가서 제도해야 한다. --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따라오지 말라 하고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 때 아힌사는 어머니를 죽이려던 생각이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바뀌는데, 때마침 부처님이 걸어오셨습니다.
-옳거니, 고타마의 손가락을 잘라야겠다-하고 쫓아갔으나 더 이상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힌사는ㅡ고타마야, 천천히 걸으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나는 전연 움직이지 않고 있다. 네 마음이 헐떡거릴 뿐이다.--고 하시자, 부처님의 법력(法力)이 작용하셨습니다.
아힌사는 정신이 들어 99개의 손가락을 땅에 놓고, --부처님이시여 ! 스승님을 잘못 만나 사람을 죽였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업드려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참회하였습니다.
 
며칠후. 코살라국*바사익(波斯匿)이 군사를 이끌고 기원정사(祇園精舍) 앞을 지나가다가 밖에 나와 계신 부처님을 뵙고 절을 올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사익왕이 왜 군사를 일으켰는지 다 아시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하시고,--무슨 일로 군사를 일으켰느냐고 하시니까, 바사익왕, 99명을 죽인 살인마를 잡으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힌사라면 내 정사에서 이미 참회하고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지금 억울하게 죽은 99명의 원혼을 위로하고 참선에 들어 있습니다.--라고 하시니까,
바사익은 땅에 업드려,-부처님이시여 ! 거룩하십니다. 어떻게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조복(調伏)을 받으셨습니까.·어떻게 대역 죄인을 참회시켜서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게 하셨습니까. 부처님의 권능(權能)이 너무도 거룩하고 위대하십니다. --라고 부처님  덕에 찬탄을 올린 다음에 이끌고 나온 군사를 모두 철수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99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귀 아힌사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도를 받아 미혹(迷惑)  번뇌(煩惱)로부터 *해탈, 괴로움에서 벗어나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아힌사악(惡)이라 하겠습니까 · 선(善)이라 하겠습니까.
어제까지의 악(惡)이 오늘은 (善)도 되고, 어제의 (善)이 오늘은 (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은 중생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혹(迷惑)이요  번뇌(煩惱)라고 하셨습니다. 이 본시 둘이 아닌데 중생은 <>이라는 줄을 그어 놓고 분별합니다. <>을 나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설에서,----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  대중아, 모든 을 짓지말고, 모든 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법화열반경에 오셔서는, ---불사악(不思惡) 불사선(不思善)이라. 나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생각지 않아야 되지만, 또한 착한 것도 생각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중도(中道)를 세우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설에서 오로지 <유선(唯善)>만을 권장하시니까 상(相)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진실설 法華經에 오셔서는 <>조차도 생각지 말고 내려놓으라 하셨습니다.
 
반야육백부(般若六百部)의 대표 경전 금강경(金剛經)에서는,---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비비비(非非非)--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컨대 --보살즉비보살(菩薩卽非菩薩)  시명보살(是名菩薩)--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보살은 보살이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이 보살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선(善)에 치우쳐서 을 내세우면 상(相)에 매달리게 되고, 에 집착하여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옹졸한 사상(四相)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의 사상은 법화경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뜻하는 *사상(四相)이 아닙니다.
 
금강경사상(四相)이란,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상(相)을 내는 것을 엄히 경계하시기 때문에 <불사악   불사선>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도 없는 빈자리가 열반이요 입니다. 미혹(迷惑)  번뇌(煩惱) 한 그 빈자리에서 환희심이 납니다. 그리고 法華經 구제론에 일체가 녹아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