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본문-010-(1)-가

(1)이름이 같지 아니하며(名字不同=명자부동)>,
(2)연기(年紀)가 크고 작음이라(年紀大小=연기대소). 또 다시 열반에 든다 말하며, 또는 가지가지의 방편으로 미묘한 법을 설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환희심을 일으키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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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정각(始成正覺), 지구역사상 최초로 성불하신 석가세존께서는 法華經 여래수량품에 들어오시자마자, <한량 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성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실성 부처님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 것이 지금까지 비유를 들어가며 철저하게 공부한 본불  석가세존수명론(壽命論)입니다.
 
본문에서 <이름이 같지 아니하며--> 란 ?  본불 석가세존은 오직 한 분 뿐이며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라고 공부했는데, 어째서 <이름이 같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석가세존께서는 중생 구제 관점에서 한 가지 이름만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2년 방편설에서 수많은 이름의 부처님을 등장시키면서 그 부처님의 수명과 수행 공덕을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이러 저러한 부처님이 계셨고, 이러 저러한 원력(願力)으로 법(法)설(說)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주변 환경이나 을 듣는 상대의 근기따라 필요에 따라 하시더라도, 부처님 자신이 그리 하였다고 하시지 않고, 모든 부처님, 항상 다른 부처님의 이름을 내놓으시며 그리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법화경 화성유품(化城喩品) 제 7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이르시되, 저 먼 과거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 아승지겁에, 그 때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대통지승여래ㆍ 응공ㆍ 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ㆍ세존이라. 그 나라의 이름은 호성(好城)이요, 겁(劫)의 이름은 대상(大相)이라. 모든 비구들아, 저 부처님이 멸도하신지는 심히 오래고 오래였으니,  비유컨대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땅덩어리를 갈아 먹가루로 만들어 동방(東方) 일천(一千) 국토를 지나가서 한 점떨어뜨리되, 크기작은 티끌같이 함이라.
일천 국토를 지나가서 다시 한 점을 떨어뜨리나니, 이와 같이 하여 두루 다니며 땅덩어리의 먹을 다 함과 같음이니라. 너희들의 뜻은 어떠하뇨, 이 모든 국토를 혹 산수(算數)의 스승이거나 또는 산수를 배우는 제자가 능히 이 국토를 알며 그 수를 알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알지 못하오리다.----
---모든 비구들아, 이 사람의 지나간 국토의 점이 떨어진 국토거나아니 떨어진 국토거나를 다 합쳐 모아 티끌로 만들어서 그 한 티끌이 *일겁(一劫)이라 하더라도, 저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지는 다시 이 수보다 더 오래어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아승지겁이니라.
나는 *여래(如來)지견력(知見力)을 가진고로 저 구원(久遠)옛일을 관하되, 오히려 오늘과 같음이라.---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16에서 부처님의 정체 *구원실성(久遠實成)을 선언하실 것을 전제하고, 적문(迹門) 법화경을 통해 대통지승여래라는 부처님등장시키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정체를 밝히는 본문(本門)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을 설하시기 전에, 적문 법화경 화성유품 제 7에서 <이름이 같지 아니하다> 다른 부처님의 이름으로,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라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  circle03_darkgreen.gif 십이인연(十二因緣)을 설하신 것이 신앙적 사례가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法華經을 설하시는 영축산 회상에 모인 *십대제자를 비롯한 일체의 *성문(聲聞) 연각(緣覺) 이승(二乘)은 물론, 평신도까지 보살 대우를 하시고--이러 저러한 부처님이 이러 저러하게 하셨다--고, 신앙상으로만 존재하는 다른 부처님의 이름을 빌려서 가르치심을 주셨기 때문에, 본문에서 <이름이  같지  아니하다> 고 하십니다.
 
과거 대통지승여래께서 최고의 깨달음,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셨을 때, 천상의 범천왕 가운데 구일체(救一切)라는 대범천왕을 비롯한 모든 범천왕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각각 이 말씀을 하되,
--오직 원컨대 세존이시여, 법문을 설하사 중생제도하시어 *해탈케 하시고 열반의 길을 열어 주시옵소서.-- 세웅(世雄) 양족존이시여, 오직 원컨대 을 설하시고 대자대비의 힘으로 괴로운 번뇌의 중생을 제도하시옵소서--하고, 오백만억의 모든 범천왕이 각각 대통지승여래성불을 찬탄하고 법문을 청하였습니다. 그런 것이 모두 석가세존 자신의 일인데도, *방편으로 다른 부처님인 것 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경전상에서, --*그 때 대통지승여래께서 시방(十方)의 모든 범천왕(梵天王)과 십육왕자(十六王子)의 청법(請法)을 받으시고, 즉시 *십이행(十二行)의 법륜(法輪)을 세 번 설하셨느니라. 혹은 사문(沙門)바라문(婆羅門)혹은 하늘마(魔)범천(梵天)또는 다른 세간에서는 능히 설하지 못하느니라.
 
이르시되, 이것이 고(苦)며, 이것이 고(苦)의 모인 것이며, 이것이 고(苦)의 멸(滅)이며, 이것이 고(苦)를 멸(滅)하는 도(道)라고 하시고, 아울러 널리  circle03_darkgreen.gif  십이인연(十二因緣)을 설하시되,
 
무명(無明)(行)에 인연(因緣)하고, (行)(識)에 인연하고,
(識)명색(名色)에 인연하고, 명색(名色)육입(六入)에 인연하고,
육입(六入)(觸)에 인연하고, (觸)(受)에 인연하고, (受)(愛)에 인연하고,
(愛)(取)에 인연하고, (取)(有)에 인연하고, (有)(生)에 인연하고,  
(生)은 노사(老死)의 우비고뇌(憂悲苦惱)에 인연하게 됨이라.
 
무명(無明)하면(行) 하고, (行)하면 곧 (識)하고,
(識) 하면 곧 명색(名色)하고, 명색(名色)하면 곧 육입(六入)하고,
육입(六入)하면 곧 (觸)하고, (觸)하면 곧 (受)하고,
(受)하면 곧 (愛)고, (愛)하면 곧 (取)하고,  
(取)하면 곧 (有)하고, (有)하면 곧 (生)하고,  
(生)하면 곧 노사(老死)우비고뇌(憂悲苦惱)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법화회상에서  역사상 실존인물이 아닌 대통지승여래를 등장시켜서 십이인연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현명한 사람이나어리석은 사람이나낱낱이 살피시고 알맞는 가르치심을 주십니다. 어떤 중생에게는 아함경을 설해주시고, 또 다른 중생에게는 아미타경을 설해주시며 아미타불의 공덕을 찬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생근기에 따라  을 설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이 같지 아니하다>는 것이 부처님수명론을 밝히시는 법화경에서 자연스럽게 검증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50년간 설하신 8만4천 법문은 法華經說하실 것을 전제법문입니다. 또한 *법화삼부경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하다는 수명론과, 또한 중생의 수명영원함을 여러 시각(視角)에서 말씀하십니다. 즉 여래수량품이라는 법탑(法塔)을 도와주는 조어(助語) 법문이 되겠습니다.
 
분명코 불교의 8만4천 법문은 물론이려니와, 동서양에 등장한 모든 성인과 철학자의 학설까지도  모두 하나도 빼놓지 않고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나갔고, 다시 法華經  여래수량품으로 귀일합니다. <큰 하나>입니다. * 종일다출(從一多出) 종다귀일(從多歸一)입니다.
 
본불 석가세존께서는 본래 가지고 계신 신통력위신력권능으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시는 방편 차원에서,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여러 모양의 수 많은 부처님을 42년 방편설에 등장시켰기 때문에, 그 이름이 같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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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십이인연(十二因緣) 또는 십이연기(十二緣起)
 
 무명(無明) →변천무상(變遷無常)한 현상경계(現狀境界)를 바로 보는 눈이 열리지 않고 인과법칙(因果法則)의 도리를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는 혼암(昏暗)에 끌리어 진리(眞理)를 진리(眞理)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行) →과거에 한 행동입니다. 여기서 행(行)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이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행한 행위(行爲)를 가르키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아직 인간으로서의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즉 수십억년 전, 우주의 생물이라고 하는 것이 발생했을 당시부터 그 생물이 무의식중에 행동한 것, 분자운동한 것을 말합니다.
 
 (識)→그러한 행동이 무수히 거듭거듭 쌓임에 따라 차차 사물을 알고 분별하는 근본의 힘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사물을 알아서 분별한다 해도, 뚜렷하지 않은 희미한 것으로 분별작용의 원형(原形)에 불과한 것을 <(識)>이라 합니다.
(識)무명(無明)에 바탕을 둔 <(行)>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알아 분별한다고 해도 <실상(實相)> 그 자체는 원래 정확히 볼 수 없습니다.
 
 명색(名色) →그러한 <(識)>이 점점 발달해서 <명색(名色)>이 됩니다. <(名)>무형물(無形物)이라고 하는 의미의 <마음>입니다.<(色)>유형물(有形物)이라는 뜻이고, 신체(身體)를 말합니다. 즉 심신(心身)의 작용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서 자기의 존재(存在)를 의식(意識)한다고 해도, 개인의 경우로 말하면, 아직 모태(母胎)내에 있는 상태로, 그 의식은 물론 숨겨진 마음의 의식(意識)입니다. 게다가 그 의식수단(意識手段)과는 대단히 동떨어진 형체로 자기의 존재를 의식합니다. 우리들의 신체라고 하는 것은 본시 *<공(空)>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고정적 영속적(永續的)으로 실재(實在)하는 것 같이 의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육입(六入)<명색(名色)>이 더욱 발달하면 심신(心身)의 여섯가지 작용이 확실해 집니다. 즉 (眼)→시각(視覺)ㆍ(耳)→청각(聽覺)(鼻)→후각(嗅覺)(舌)→미각(味覺)(身)→촉각(觸覺)이라고 하는 오관(五官)의 감각과, 그 오관으로 느끼는 것의 존재를 알아 나누는 뜻(意),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意)→지각(知覺)이 분화(分化)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작용을 육입(六入) 이라고 합니다.
 
 (觸)→그렇게 되면 사물을 견분(見分)하는 능력이 갖추어져 옵니다. 개인의 경우를 말하면, 어린아이가 <이것은 꽃>ㆍ<이것은 과자>ㆍ<이것은 아빠>ㆍ<이것은 엄마>ㆍ라고 식별(識別)할 수 있게 된 상태입니다. 그러한 식별은 명색(名色)육입(六入)접촉(接觸)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觸)이라고 합니다.
 
 (受)심신(心身)이 여기까지 발달하고 사물을 식별하게 되면, 좋다싫다즐겁다슬프다 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受)라고 합니다. 사물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일어나는 마음이 최초의 작용이기 때문에 (受) 라고 합니다.
 
 (愛) →그러한 감정이 일어나게 되면 당연히 사물에 대한 <애착>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현대인이 말하는 <(愛)>와는 조금 의미가 다른 <애착(愛着)>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좋아지면 그것에 *집착(執着)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집착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가끔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마음이 움직이는데 그런데도 차츰차츰 인간다운 미혹(迷惑)이 뚜렷하게 형태를 잡기 시작하며 더욱 더 농도(濃度)가 더해가는 것을 애(愛)라고 합니다.
 
 (取)→인간은 <애(愛)>를 느낀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어디까지나 추구(追求)하려는 욕망과, 일단 얻은 것은 단단히 붙잡아 놓고, <놓아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증오(憎惡)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도망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한 마음을 <(取)>라고 합니다.
 
 (有)→ 이러한 <취(取)>가 생겨나면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각기 틀린 감정을 가지게 되며 · 그 틀린 생각을 품게 되며, 따라서 다른 주장을 하게 됩니다.  요컨대. 남과 자기와의 차별을 더 없이 확고한 의식(意識)을 하게 되는
차별심을 <유(有)>라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불행과 사회의 부조화(不調和)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차별심(差別心), 유(有)가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과의 대립이 생겨 다툼이 일어나 (苦)의 인생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生)→이러한 인생의 <고(苦)>는 다시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전개(展開)되어 갑니다. 즉 근본원인(根本原因)인 <무명(無明)>을 없애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이와 같은 고(苦)윤회(輪廻)를 되풀이 할 따름입니다. 무명(無明)을 없애지 않는 한, 할아버지 대(代)무명손자대(代)까지 이어가게 됩니다.
 
 노사(老死) →태어남으로 머지 않아 늙게 되고 드디어는 죽음이 옵니다. 이 <노사(老死)>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싫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죽음을 겁내고 싫어하는 것은, 육체(肉體)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생명(生命)이 있는 상태라고 착각(錯覺)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금생(今生)만의 인생이다> 라고 단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본래, 라고 하는 존재우주영원생명체(生命體) 천지기운인데, 육신(肉身)전부라고 착각하고 끝없는 미혹(迷惑)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금생에서 부처님을 믿고 배우고 바른 생활로 선업(善業)을 쌓아가면, 다음 에서는 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으며, 드디어는 *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해탈(解脫)하여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到達)하게 됩니다.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연기(十二緣起) 를 단축 메뉴로 정리하겠습니다.  
 
 ① 무명(無明)  ② (行)과거이인(過去二因)이라 합니다. 
 ③ (識)  ④ 명색(名色)  ⑤ 육입(六入)  ⑥ (觸 )   (受)현재오과(現在五果)라 합니다.
 ⑧ (愛)  ⑨ (取)  ⑩ (有)→ 현재삼인(現在三因) 이라 합니다.
 ⑪ (生)  ⑫ 노사(老死)미래이과(未來二果)라 합니다.
 
 다시
 과거이인(過去二因)현재오과(現在五果)인연하여 과현일중(過現一重)이라 합니다.
 현재삼인(現在三因)미래이과(未來二果)인연하여 현미일중(現未一重)이라 합니다.
 
또다시 컴퓨터에서 파일을 담아두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 폴더 개념으로 말씀드리면,
과현일중(過現一重) 현미일중(現未一重)이 합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 합니다.
 
----이상을 깨치면 벽지불이 됩니다. 이와 같이 생물발생의 대본(大本)에서 인간이라고 하는 <모양>이 갖추어질 때까지의 경과를 보고, 그 인간이 <(苦)>의 인생을 보내면서 생사(生死)의 상태를 되돌아 보면, 그것이 <무명>의 근본원인으로써 다시 십이인연의 가지가지 단계에 있어 그 무지(無知)를 다시 깊게 해온 결과라고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생물발생(生物發生)대본(臺本)에서 인간으로서의 형체가 이루어질 때까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현재의 인간, 곧 개인(個人)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생리학자 임상연구(臨床硏究)에 의해 증명한 바에 따르면, <정자(精子)난자(卵子)>가 합체(合體)해서 완전한 어린 아이로 태어날 때까지의 10개월  10일간에는 수십억년 전의 <아메바>와 같은 것에서, 벌레와 같은 것ㆍ물고기 같은 것ㆍ양서류(兩棲類=개구리 모양.)같은 것과, 인류진화(進化) 과정과 같이 점점 성장해서 드디어 인간의 형체가 되는 것입니다.  
십이인연의 법칙은 생물발생의 경과(經過)의 고찰(考察)인 동시에, 개인<수정(受精)에서 죽음에>이르기까지의 형태(形態)를 밝혀 놓은 것입니다.
 
십이인연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三世)에 통하여, 서로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유전자, 게놈 지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십이인연입니다.
3천여년 전, 석가세존께서는 물질세계를 부처님의 *불지견(佛知見)으로 직관(直觀)하여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일체경은 法華經에서 나갔고, 다시 法華經으로 귀일한다하여 종일다출(從一多出) 종다귀일(從多歸一)입니다. *일석삼극(一析三極) 무진본(無盡本) 입니다.
하나는 많은 것을 낳고 많은 것은 하나로 돌아가는 대우주의 근본 원칙론입니다.근본은 변함이 없는데, 다만 학문에 따라 전문 용어가 달라서 따로 따로 인것 같이 보이지만, 근본은 십이인연다변화(多邊化) 한 용어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