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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이와 같이 하여 동쪽으로 가서 이 가루를 다 떨어뜨렸다면, 모든 선남자야, 생각에 어떠하뇨, 이 모든 세계를 생각하여 헤아려서  그 수를 알 수가 있겠느냐.
(如是東行=여시동행 盡是微塵 =진시미진 諸善男子=제선남자 於意云何=어의운하 是諸世界=시제세계 可得思惟校計=득사유교계 知其數不=지기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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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불교신앙의 대상,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지금부터 3천여년 전 고대인도 가비라성의 성주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실달태자의 몸으로 출가하여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성불(成佛)하신 금생 부처님, 금생불(今生佛)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금생에 성불하신 금생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구원실성(久遠實成),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이십니다.   구원실성 부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모든 중생에게 설득력 있게 알리느냐 하는 것이 *법화경 여래수량품이 가지고 있는 본불신앙(本佛信仰)의 관건입니다.
 
본문에, <이와 같이 하여 동쪽으로 가서 ---->에서, 네 방위 중에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계와 더불어 사는 인간의 태생적인 정서(情緖)이기 때입니다. 서쪽으로 해가 지고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이 사바세계 시각(視角)에서 실상(實相)이기 때문입니다.

기원 전, 6000년 경,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건축물들은 영원성을 전제하고 조성된 <영원의 집>이라고 하는 것들이 지금까지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으로 왕의 석실분묘(石室墳墓),  돌이나 벽돌로 쌓아 만든 사각뿔 모양의 거대한 건조물인 피라미드,  왕궁과 신전 따위의 입구에 세워 놓고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스핑크스,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 오벨리스크방첨탑(方尖塔)이 있습니다. 이 건축물들은 모두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벨리스크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서쪽은 해가 지고 동쪽은 해가 뜨는 현장,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태생적인 정서(情緖)가 동서양이 같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중생의 정서에 초점을 맞추고 비유를 드셨다고 생각하면, 부처님께서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라고 하는 오백진점겁 또는 삼천진점겁의 비유는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겠다는 본불 석존의 구원실성론(久遠實成論)에 성큼 다가 갈 수 있습니다.
 
평등법(平等法) 법화경에 의지하여 세간적인 차별의식(差別意識)으로 부터의 어려움을  불교의  circle03_darkgreen.gif 사가행위(四加行位) 덕목으로 부처님 세계 <큰 하나>를 찰나에 성큼 다가가서 한결 따뜻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무한경쟁시대라고 합니다. 2001년 신사년(辛巳년)을 보내면서 이 나라 명절 정서의 큰 몫을 하는 양력설과 음력설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5.16 군사혁명시대, 1962년 1월 1일을 기해 서기(西紀)를 사용하였습니다. 서력기원(西曆紀元)은 예수의 탄생을 원년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양인의 서기 차원에서는 2002년 1월 1일이 신정(新正) 설날입니다.
지난날 우리나라는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즉위한 해를 원년(戊辰年)으로 삼는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기(檀紀)를 전연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전통적으로 내려 온 우리의 음력설 구정(舊正)이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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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단군기원에서 연유한 음력설 1월 1일을 진짜 설날로 전통적으로 뿌리깊게 알고 있기 때문에, 신정(新正)보다는 구정(舊正) 원한다는 국민 여론에 호응하여 정부는 1985년부터 음력 설날민속의 날이라고 명칭을 바꾸고 국가 공휴일로 정하였습니다.
 
그토록 전통을 고수하는 뿌리 깊은 국민정서와, 오늘날 초고속 정보통신망 응용기술 고도화라든가, 국가 첨단 슈퍼컴퓨팅 기술자원을 응용한 산업경쟁력이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세계화의식(世界化意識)이 함께 공존하며 급변하는 세계화의 변화속에서 우리가 싫든 좋든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 오늘이라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시대적 변화의 갈등을 <한량 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사가행위(四加行位) 덕목으로 이 어려움을 건너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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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사가행위(四加行位)
 
사가행위난법(煖法)  ② 정법(頂法)  ③ 인법(忍法)  ④ 세제일법(世第一法)입니다.
 
난법(煖法)에서 <따뜻할난(煖)>자는 글자의 뜻대로 따뜻하다는 뜻입니다. 추운 날 햇볕이 비치는 양지(陽地)쪽을 찾아가면 온 몸이 따스해집니다. 옛날에는 화로(火爐)에 손을 쪼여서 손이나 몸이 녹으면서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와 같이, 세상이라는 냉혹(冷酷)한 찬바람에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이 우연(偶然)히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라는 타력(他力)을 우연히 만나는 기회(機會)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치심, 교의(敎義)의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마는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며 뭉클하고 편안(便安)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그토록 꽁꽁 얼어 붙었던 마음에 따뜻함이 일어나 언제까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살고 싶다는 그런 고향 같은 감성을 느끼게 되는 때를 불교에서는 난법이라 합니다.
 
정법(頂法)에서 <꼭대기정(頂)>자는 한문이 가지고 있는 글자의 뜻대로 남 앞에서 우뚝하게 서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 법을 믿고 배우는 사람은 범부의 세계에서 남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물질세계를 전부로 여기던 범부 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무한한 정신세계의 눈을 뜨고 가장 뛰어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포착(捕捉)하게 되는 경지를 정법이라 합니다.
 
인법(忍法)에서 <참을인(忍)>자는 부처님법이 거룩함을 확실히 알고 난 후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번 결정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마음이 가슴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굳건한 경지(境地)를 말합니다.
 
세제일법(世第一法)에서 <세제일(世第一)>은 드디어 이 세상에서 제일(第一)이라고 하는 경지(境地)를 말합니다. 부처님법이 세상의 어떤 종교(宗敎)보다도 거룩한 가르치심이라는 인식(認識)이 확고(確固)해져서 전혀 걸림이 없는 境地를 말합니다.
 
*법화삼부경 무량의경(無量義經) 설법품(說法品) 제2에,---만일 듣는 자가 있으면 혹은 난법(煖法)ㆍ정법(頂法)세제일법(世第一法)과, 수다원과(須陀洹果)사다함과(斯陀含果)와, 아나함과(阿那含果)아라한과(阿羅漢果)와, 벽지불도(道)를 얻어 보리심을 일으키어 *제일지(第一地) 제이지(第二地) 제삼지(第三地)에 올라 제십지(第十地)에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불교 특유의 <사가행위(四加行位)>가 좋아서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난법(煖法)
추운 겨울이라도 따스한 햇볕이 내리 쪼이는 양지바른 쪽은 그늘진 쪽 보다는 추위가 덜하지마는 몸을 녹혀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난로를 피우고 난로가로 가면 따뜻하고 몸이 녹습니다. 그 때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녹히면서 무엇인지 모르게 포근합니다.
그와 같이 어떤 중생이 불교가 좋다고 하여서 처음 절을 찾아갔을 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조용하고 따뜻함이 고향같이 느껴집니다. 그것을 불교 용어로 난법(煖法)이라 합니다. 몸을 녹혀 주는 난로가 무엇을 때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이 난로는 무슨 난로인가 전기 난로인가경유를 때는 난로인가아니면 장작을 때는가석탄을 때는가무엇을 때기에 이토록 따뜻하여 방안이 훈훈한가그토록 추워서 떨던 몸이 따뜻하게 풀리니까, 무엇을 때는 난로인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생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아직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불러서 난로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며 자리를 비켜주기도 합니다.그처럼, 불교에 귀의해 들어오면 무엇을 어떻게 신앙하는 것인지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모르면서도 마음이 안정되고 따뜻함을 느끼는 것을 煖法이라 합니다.
 
정법(頂法)
행여 바른 법이라는 뜻의 정법(正法)으로 알아서는 아니 됩니다. <꼭대기 정(頂)>, 이 세상에서 제일 으뜸이라는 뜻의 정법(頂法)을 말합니다. 국제 사회에서 최고 실력자(實力者) 수뇌(首腦)끼리 만나는 회담을 정상회담(頂上會談)이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세계에서 인간이 만든 만가지 법 가운데서,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는 불교 이상 가는 법은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치심頂法이라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믿고 바로 들어와 제대로 공부하고 주위 사람들을 보았을 때, 나만이 아주 최상의 법을 알고 있구나 -하고 법열(法悅)을 느끼기 때문에 정법이라 합니다.
 
천수경 첫머리에,--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가장 높고 미묘하고 깊고 깊은 진리의 법, 백천만겁이 지나도록 만나뵙기 어렵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다행히도 듣고보고지니오니 부처님의 참 뜻을 목숨 걸고 깨치겠습니다.--하고 법열이 넘쳐 흐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찬탄하는 최상의 형용사입니다.
 
인법(忍法)
<참을 인(忍)>자는 내가 머물고 있는 가정을 비롯하여 세간의 천만가지,   정치철학문학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그 바탕은 <참을 인(忍)>자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구르는 돌은 이끼가 안 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돌이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자꾸만 구르면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업을 비롯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끈기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이왕에 불교에 귀의하였으면 부처님 가르치심의 참 뜻, 진실의(眞實義)가 무엇인지 교학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앞에 난법에서 이 난로에는 석유를 때는 지 석탄을 때는 지는 모르지만 훈훈해서 좋다며 추위를 녹였듯이, 불교가 무엇인지 몰라도 참 좋고, 세상에서 제일 으뜸가는 정법(頂法)이라고 좋아했으면, 끝까지 부처님의 가르치심에 의지하여,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오종법사(五種法師) 홍익수행을 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 忍法입니다.
 
금생에 오신 석가세존께서는,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구원실성 본불(本佛)이십니다. 그러나 석가세존께서는 금생에 오셔서 성불하시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셨습니다.  왕사성 설산고행(雪山苦行) 6년과, 부다가야보리수하에서 단좌(端坐) 6년의 명상수행(瞑想修行)을 다 보여 주신 것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부동자세, 겉모양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움직이지 않는 *적정, 불퇴전(不退轉) 부동지(不動地)를 보여주시기 위한 인법수행(忍法修行)이였습니다.
 
<창파부동수중암(滄波不動水中岩)   세파부동오단심(世波不動吾丹心)>이라 하였습니다.
파도가 아무리 세차게 일어나도 저 깊은 바다속 바위는 움직이지 않으며, 세상이 다 변하여 *투쟁견고백법은몰 말법시대라 하여 시끄럽고 어지러워도,  법화경은  인류의 영원한 지침서(指針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선죽교(善竹橋)에서 피 흘리며 죽어간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충신이 고려왕조를 위하여 읊은 그 마음처럼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인법수행입니다.
 
 
--<충신불사이군(忠臣不死二君)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 하였습니다.
--충신은 두 왕조의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충절을 지킬 것이며,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왕에 불교에 들어왔으면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하라는 것입니다. 위로는 부처님의 법화경을 받아 갖되, 아래로는 홍익(弘益)사랑하겠다는 그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인법수행입니다..
 
성주(聖主)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과거 어떤 사람도현재 어떤 사람도미래 어떤 사람도 나처럼 고행할 사람 없다-- 고 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손가락으로 배가죽을 누르면 뒤 갈비뼈가 닿았습니다. 이러한 고행난행(苦行難行)의 과정을 다 보여 주시고 중생이 보는 앞에서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셨습니다. 그것이 인법수행입니다.
 
④  세제일법(世第一法)은 누가 무어라해도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할 것이다 하는 그런 기상(氣象)기백(氣魄)이 서려 있다 하여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합니다.
 
*천태대사께서는,-- circle03_darkgreen.gif 일일문문시진불(一一文文是眞佛) 진불설법이중생(眞佛說法利衆生)이라 하셨습니다.--글자 하나하나가 참 부처님 본불이시며,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설법이 많은 중생들에게 요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법화경과 우리의 삶>이라는 주제로 공부하는 까닭은, 우리 모두가 법화경 신앙하여 정신적인 만족과 함께 굶주린다거나 추위에 떨지 않는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만족이 갖추어진 정신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무런 불평 없이 공평하게 다같이 평화를 누리며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지구 중심가치를 전제한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족이다ㆍ종교다ㆍ국가다ㆍ하는 차별화 정서를 과감하게 뛰어 넘어선 이상세계 *영산정토(靈山淨土)를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영산정토는 마음 가짐이 근본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입니다. 물질은 영상정토 건설을 위한 방편이며 부수적으로 따라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중생이 그토록 *집착하는 물질세계,  세간에서 즐겨하는 의식(衣食) 속에는 불심(佛心)이 없느니라. 그러나 불심(佛心) 속에는 스스로 의식(衣食)이 있느니라. 중생이 물욕(物欲)에 탐착(貪着)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한, 불도(佛道)에 뜻을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佛心이 깊어서 불도(佛道)에 따라 행동을 한다면 생활(生活)할 만한 물자(物資)는 반드시 모든 부처님께서 마련해 주신다--- 고 하셨습니다.
 
부언하면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는 사가행위(四加行位) 덕목에 의지하여 법화경을 받아가지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액션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공덕과 힘이 있어 <큰 하나> 자리가 열립니다.
 
*법화삼부경, 무량의경 십공덕품 제 3에,--선남자야, 둘째 이 경의 불가사의의 공덕과 힘이라 함은, 만일 중생이 이 경을 얻어 들어 혹은 한 문장ㆍ혹은 한 게송ㆍ또는 한 구절을 들으면, 곧 능히 백천억의 뜻에 통달해서 한량 없는 수의 겁을 두고도 받아 가진 법을 능히 연설하지 못하리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이 법의 뜻이 한량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야, 비유하건대 이 경은 하나의 종자(種子)에서 백천만이 나오며, 백천만 하나하나 가운데서 다시 백천만의 수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전전해서 한량 없음과 같이, 이 경전도 또한 이와 같아 한 법에서 백천의 뜻이 나오며, 백천의 하나하나 뜻 가운데서 다시 백천만의 수를 내나니, 이와 같이 전전해서 또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뜻이 있음이라. 이런 까닭으로 이 경의 이름이 무량의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것이 이 경의 둘째의 공덕이요 부사의의 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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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일일문문시진불(一一文文是眞佛) 진불설법이중생(眞佛說法利衆生)
 
진불(眞佛)이란, 본체 본불 석가세존 한 분을 말합니다. 진불(眞佛)본불(本佛)은 같은 말입니다.
제불(諸佛)이란, 불교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모든 부처님제불(諸佛)이라 합니다.
진불설법이중생(眞佛說法利衆生)이란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구원실성(久遠實成) 부처님수명론 분상에서 말씀하시는 사가행위(四加行位) 덕목(德目)은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시혜(施惠)불념(不念)하고 수은(受恩)불망(不忘)이라--하셨습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생각지 말고, 한번 받은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