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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선남자야, 여래(如來)가 설(說)한 경전(經典)은 다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해서 해탈(解脫)케 하기 위함이니,(諸善男子=제선남자 如來所演經典=여래소연경전 皆爲度脫衆生=개위도탈중생)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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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1-02-12
 
----내가 *방편력(方便力)이 있어 *삼승법(三乘法)으로 열어 보였으니, 일체의 모든 부처님도 마침내 다 *일승법(一乘法)을 설하시느니라.-----
 
---나는 일승법을 전제하고 *개현법이라는 방법론으로 삼승의 법, 성문ㆍ연각ㆍ보살의 법을 설하였다. 상대의 눈높이 따라 가장 낮은 교(敎)를 설할 때도 있고, 그 보다 조금 높은 교(敎)를 설할 때도 있고, 아주 높은 교(敎)를 설할 때도 있다. 나는 개현법을 통해 일승법에 귀착하도록 40 여년 동안 세 단계로 나누어 여러 가지 를 설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방편이다. 일체 중생을 구원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는 모든 부처님 궁극의 목적 일승법을 전제한 방편이다. --
 
----지금 이 모든 대중은 다 마땅히 의혹(疑惑)을 버리라.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다르지 아니하여 오직 일승(一乘) 뿐, 이승(二乘)이 없느니라.----
 
---- 여기 모인 많은 *사부대중은 다 의혹(疑惑)의 마음을 끊어라. 부처님이 아무리 많이 세상에 나오셔도, 그 설하시는 근본 정신은 오직 하나다. *일불승 뿐이요 *이승이 없다. 두 가지 세 가지로 나누어 설하는 것은 상대의 정도에 따라 각각 달리하는 것 뿐이요 결국은 하나로 귀착된다. 일체 중생의 즐거움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삼고, 모든 인간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으로 삼아서 자기의 노력에 의해 일체의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서원, *일체중생구제론에 있어서는 다 같고 다르지 않다.-----
 
---과거 수없는 겁에 한량 없이 *멸도하신 부처님이 백천만억(百千萬億)이나 되어 그 수는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은 모든 세존께서도 가지가지 인연과ㆍ비유와ㆍ수없는 방편력으로 모든 법상(法相)을 설하셨으니, 이 모든 세존께서도 마침내 다 일승법(一乘法)을 설하시어 한량 없는 중생을 교화(敎化)하시어 *불도(佛道)에 들게 하셨느니라.----
 
----지나간 과거 세상에서, 한량 없이 오랜 세월 동안에 출현하신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셔서 를 설하시고 때가 되면 세상을 버리시고, 또 나타나셔서 를 설하실 때. * 삼주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일승법으로 인도하신다. 그 모든 교화불사(敎化佛事) 보통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갖가지 방편의 힘에 의해 가지가지로 설하신다. 모든 법상(法相), 진실한 실상(實相) *사상(四相)을 설하시더라도, 모든 부처님은 결국 한 곳으로 귀착하는 法華經을 설하신다. 法華經 이외에 다른 敎두 가지 세 가지가 있을 수 없다. 어느 부처님이나 다 일승법을 설하신다. 수없이 많은 인간을 가르쳐 인도해서 다 함께 불도에 들게 하신다. 부처님과 같은 행동을 해서,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또는 모든 대성주(大聖主)께서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많은 중생들 마음의 깊은 욕망을 아시고, 다시 다른 방편으로 참된 진리 나타내는 것을 도우셨느니라. ----
 
--- 모든 부처님께서는 천상계인간계 중생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있는 욕망을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항상 *방편으로 참된 진리를 나타내는 것을 도우신다.-----
 
<마음의 깊은 욕망>이란, 정말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남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괴로워 하고 싶다는 그러한 근본적인 욕망입니다.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인간의 바른 마음을 근본으로 해서 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르쳐서 가르쳐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전제 아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욕망을 아시고 여러 가지 방편으로 참된 진리(眞理), <제일의(第一義)>를 나타내어 중생으로 하여금 편안토록 도와 주십니다.
<제일의>라는 것은 가장 뛰어난 진실의 , *일불승도 법화경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을 모든 사람이 차차 알도록 도와 주십니다. 미혹해 있는 인간에게 갑자기 가장 높은 를 설해야 알아 듣지 못하므로 *사실단 교화 방법으로 낮은 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설하여 순서를 좇아 결국 제일의  곧 인간이 어떤한 마음으로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궁극의 목적을 밝히는 일불승도, 모든 종교의 귀착지인 법화경으로 인도해주십니다. * 만교귀일(萬敎歸一)입니다.
 
----만일 어떤 중생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혹은 법문을 듣고 *보시(布施)하며, 혹은 계행을 지키고, 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지(禪智) 등 가지가지로 복혜(福慧)를 닦았다면, 이같은 모든 사람은 다 이미 불도(佛道)를 이룩함이니라. -----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과거에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고, 그 가르치심을 듣고서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육바라밀 수행을 하였다면 모든 사물의 진실한 성질진실한 상(相)을 능히 분별하고 그러한 분별력으로 가지가지의 복덕(福德)을 짓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구원하는 힘갖추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의의(意義)있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는 수행으로,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육바라밀 수행*대승교를 실행하는 *보살의 육도(六度), 여섯 가지 표준 덕목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알았으면, 안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믿는다는 것행한다는 것의 이 세 가지<하나>입니다. 안 것을 믿어야 하고, 믿으면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고, 믿는 것은 자기가 실행해야 한다는 <하나 되기>입니다.
중국왕양명(王陽明)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 해서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은 일치한다고 했습니다. 과거 세상에서 여러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지행합일한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경지, <하나 되기> *무아에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후에 사람이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간직하면, 이같은 모든 중생은 다 이미 *불도를 이룩함이니라----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간직하면>에서 <착하다(善)>는 것은 완전하게 되기를 구하는 *마음의 근본입니다. 자기를 한 걸음씩 완전하게 해나가는 것이 (善)입니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善)이고, 불완전한 것에 만족한 것은 (惡)입니다. 이것이 선악(善惡)의 표준입니다. 물에 온도를 가하면 끓고 온도를 내리면 얼음이 되는 것과 같이, 부처님악인은 언제나 이어져 있습니다. 모든 범부는 끓은 물과 얼음의 중간에 있습니다. 범부가 착한 쪽으로 발전하면 부처님이 되고, 악한 쪽으로 발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드러운(軟) 마음>이란, 스스로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현재의 자기에 *집착(執着)하지 않는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선연(善軟), 완전하게 되고자 하는 마음과, 자기에게 집착하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행 도중에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임계치(臨界値)를 넘어서 마침내 성불(成佛)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이 *멸도하신 후, 사리를 공양하는 사람이 만억가지 탑을 세우되,  금ㆍ은ㆍ파리ㆍ자거ㆍ마노ㆍ매괴ㆍ유리구슬ㆍ등으로 깨끗하게 널리 꾸미고, 모든 탑을 단정하게 장식하며 혹은 돌로 탑묘(塔廟)를 일으키되, 전단향과 침수향목이거나 다른 재목을 쓰며, 혹은 벽돌이나ㆍ기와ㆍ진흙ㆍ등으로 지으며, 혹은 넓은 들판에 흙으로 쌓아서 부처님의 탑묘를 이룩하며, 혹은 아이들이 놀면서도 모래를 모아 부처님의 탑을 만든다면, 이같은 모든 사람들은 다 이미 불도를 이룩함이니라. ----
 
----또 모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어떤 사람이 사리를 공양하고자, 수 많은 탑을 세워 칠보로 아름답게 장식한다거나ㆍ돌로 탑묘를 세운다거나ㆍ혹은 전단향을 비롯한 좋은 향나무나 여러 가지 재료를 써서 탑묘를 세운다거나ㆍ혹은 진흙 따위로 탑묘를 세운다거나ㆍ혹은 넓은 들에 흙을 모아 탑묘를 만들어 세울 것이다. 또는 아이들이 개울가에서 모래를 모아 부처님의 탑을 만들며 놀기도 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후세에 전하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인(因)이 되어 차차 부처님께 귀의하고 *용맹정진(勇猛 精進)하여 마침내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
 
<사리를 공양한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금생에 오시어 증표로 남기신 부처님의 성골(聖骨)을 모신 후, 탑을 세워 부처님을 추모(追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탑파(塔婆), 탑(塔)이라 합니다. 탑파는 범어이며 중국어로는 고현(高顯)이라 합니다. *일체중생구제론 *개도자이신 부처님의 성덕을 뒤를 이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마음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위해 모든 형상(形像)을 세우며 조각(彫刻)으로 가지가지 상(像)을 이룩하면 다 이미 불도(佛道)를 이룩함이니라. ----
 
--또 부처님의 형상 돌이나 나무에 새기거나 하여, 부처님 *보살덕(德)을 후세에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차차 그 마음이 청정하여 마침내 부처님과 같이 된다.----
 
-----혹은 칠보(七寶)로 이룩하며, 놋쇠나ㆍ혹은 붉은 구리ㆍ흰 구리와ㆍ흰 납ㆍ검은 납ㆍ주석과ㆍ쇠ㆍ나무ㆍ진흙으로 하며, 혹은 헝겊에 칠을 하여 불상(佛像)을 장엄(莊嚴)한다면, 이같은 사람은 다 이미 불도를 이룩함이니라. -----
 
---여러 가지 보석으로 부처님의 상을 만들거나, 혹은 놋쇠ㆍ구리ㆍ납ㆍ주석ㆍ쇠ㆍ따위의 쇠붙이나 나무, 진흙 또는 헝겊에 부처님의 상(像)을 아름답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게 하는 사람도 *육근이 청정하여져 마침내 부처님의 *도(道)를 얻게 된다. ----
 
 ----오색(五色)으로 불상(佛像)을 그리어 백복(百福)의 거룩한 상(相)을 나타내되, 스스로 그리거나 남을 시켜 그릴지라도 다 이미 불도를 이룩함이니라.----
 
----가지가지 *복(福)을 갖춘, 아름다운 모습의 부처님의 상(像)을 혹은 자기가 그리거나, 또는 남을 시켜서 그리거나, 그 불상을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게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이 차차 나아가 결국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또는 아이들이 장난으로 풀이나 나무로 붓을 삼고 혹은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불상(佛像)을 그린다 해도, 이같은 사람은 점차로 공덕을 쌓아서  circle03_darkgreen.gif 대자비심을 구족하여 다 불도를 이룩한 후, 모든 보살을 교화하여 한량 없는 중생을 제도해서 *해탈케 함이니라.-----
 
---혹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풀이나 나뭇가지 또는 손가락이나 손톱으로 부처님의 상을 그린다면 그것은 작은 일이다. 그러나 부처님께 인연이 있는 것이므로, 그 좋은 인연을 헛되지 않게 하여 차차 깊이 배우고 깊이 믿게 되어 진정한 부처님의 정신을 알게 된다. 또 부처님의 일을 알면 스스로 부처님의 행(行)을 배우게 되므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대자비심으로 인간의 번뇌(煩惱)를 끊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어떤 사람이 탑묘와, 불상이나 탱화에 꽃이나ㆍ향이나ㆍ혹은 번개로써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양하며, 혹은 남을 시켜 악기를 치되, 북을 울리고ㆍ소라고등을 불며, 피리ㆍ퉁소ㆍ거문고ㆍ비파ㆍ징ㆍ꽹과리 등 이같은 가지가지 묘한 음악을 다 가지고 공양하며,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 부처님의 큰 덕을 칭송하되 작게 한 마디를 하여도 다 불도를 이룩함이니라.--
 
 -- 어떤 사람이 탑묘(塔廟)라든가, 또는 불상이나 탱화(幀畵)에 꽃이며 향이며, 그리고 기(旗)와 천개(天蓋)를 바치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양하고, 혹은 자기가 할 수 없으면 남을 시켜서 북을 치고소라를 불며, 혹은 퉁소ㆍ피리ㆍ거문고ㆍ공후ㆍ비파ㆍ징ㆍ꽹과리ㆍ등 악기를 연주해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 부처님의 덕을 칭송(稱頌)하고 부처님을 찬탄한다면 그들은 다 부처님의 도(道)를 이룩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한 가지 꽃을 부처님 탱화에 공양할지라도 점차로 수없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며, -----
 
---처음에는 산란한 마음으로라도 좋다. 꽃한송이라도 불상에 공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차차 수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을 뵈올 수 있다---
 
<부처님을 친견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면, 그것은 신경쇠약일 것입니다. (見)이란 마음에 비쳐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교(敎)를 배우고 수행하고 예배할 때는, *구원실성 본불 석가모니 부처님은 물론, 모든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 부처님뵙는 것입니다. 수없는 부처님을 뵙는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과 마음이 서로 통해서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하되 다만 합장만 하며 또는 한 손만 들며 또는 머리를 조금 숙여서 이와 같이 불상에 공양하면 점차로 한량 없는 부처님을 친견하며, 스스로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하여 수없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circle03_darkgreen.gif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 되, 나무가 다 타서 불이 꺼짐과 같으리라.-----
 
--- 어떤 사람이 부처님 상(像) 앞에서 다만 합장으로 예배하거나, 또는 한쪽 손만 들어서 예배하거나, 또는 머리를 조금 숙여서 예배하더라도, 그것이 인연이 되어 차차 한량 없는 부처님을 뵙게 되어 모든 부처님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마침내 *무상도를 이루게 된다. 자기의 마음이 부처님과 하나가 되고, 자기도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 되고 수없이 많은 인간을 가르쳐 인도하여 무여(無餘) 열반에 들게 한다. 마치 나무가 다 타서 불이 저절로 꺼짐과 같이, 아무런 고통이나 번민도 없이 편안히 열반에 들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산란한 마음으로, 탑묘 안에 들어가서 한 번이라도, 나무불(南無佛)이라 부르면, 다 이미 불도를 이룩함이니라. -----
 
--어떤 사람이 순수한 마음이 아니더라도, 이나 에 들어가 <나무불>이라고 한 마디만이라도 부르면, 그것을 인연해서 결국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있다. 나무(南無)는 귀의한다는 뜻이다. <나무불(南無佛)>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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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대자비심(大慈悲心)을 구족(具足)하여
 
자비(慈悲)에서, <사랑자(慈)>자는 자기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모든 사람의 행복을 더해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슬플비(悲)>자는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노력해서 모든 사람의 고뇌를 덜어 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두 마음을 자비(慈悲)라고 합니다. (慈)가 있으면 반드시 (悲)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덮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또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면, *홍익(弘益), 모든 사람의 행복을 더해주고 싶은 생각이 반드시 듭니다. 그래서 <(慈)(悲)>는 반드시 함께 합니다.
그런데 자비가 온전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처럼 남을 위해 애쓰고 있으면서도 자칫하면 거기에 범부미혹이 섞여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남이 괴로워할 때에는 자비로서 상대를 구해줍니다. 그러나 상대가 자기보다 행복하게 되면 도와주지 말 것을 그랬구나 하는 기분이 생깁니다. 버스 안에서 남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가도 차차 자기가 피로해지면 자리를 내어주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자비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circle03_darkgreen.gif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마음을 갖추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마음===*사무량심(四無量心)
 
자심(慈心)이란, 남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비심(悲心)이란, 남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비(慈悲)를 완전하게 하려면 <희심(喜心)사심(捨心)>을 갖추어야 합니다.
희심(喜心)이란, 남의 기쁨을 어디까지나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입니다. 가엾을 때에는 도와주고 행복하게 되었을 때에는 시기한다면 모처럼의 자비가 관철(貫徹)되지 않습니다. 완전한 자비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남이 행복하게 되면 끝까지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남이 괴로워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어려운 것 같지마는 쉬운 일이며,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이 되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행복한 사람을 마음으로부터 함께 기뻐해 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의 마음이 크고 넓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심(捨心)이란, 자기가 노력한 일들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이 되면, 따라서 자기가 노력한 일들을 잊어 버리는 것이 사심(捨心)입니다. 남을 위해 애쓴 그 결과가 좋으면, 그것을 함께 기뻐해 주는 것으로 그쳐야지 어떤 대가성을 바란다면 그것은 자비가 아닙니다. 이 (喜)(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심이라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친절하게 해주는 것도 어렵지마는 그러나 자기가 친절하게 한 것을 스스로 잊어 버리는 사심(捨心) 수행이 더욱 어렵습니다. 자비는 그 자체가 기쁨이거늘 어떤 보수(報酬)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에서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좋은 일은 좋을 일 그 자체가 좋은 것이며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라고 하는 네 가지 마음이 갖추어지는 것을 사심상응(四心相應)이라 합니다. 자비희사를 갖추기 위해서는 아무런 갚음이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또는 남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개의치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른 바 대자비심을 구족(具足)해서 일체 인간의 괴로움을 함께 걱정해주고,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이번에는 상대가 행복하게 되면 함께 기뻐해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기가 애쓴 일은 다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희사(喜捨)의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대비심(大悲心)이 관철되고 대비심을 갖추어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 되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말로는 쉽지마는 실제로 하려고 들면 대단히 어려운 수행입니다.
 
여간해서는 자기가 애쓴 것을 잊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를 설하실 때는 다만 *모든 보살을 교화한다고 하셨습니다. 보살이란 자기 한 사람 구원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원해주며 자기도 행복하게 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주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로서 부처님 경계에 조금씩 가까이 이르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사람이 앞장서서 나가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 그러한 기분이 되므로 한없이 많은 인간을 차차 깨닫게 함은 물론 서로가 서로를 돕는 보살행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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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무여열반(無餘涅槃)
 
열반에는 무여(無餘)유여(有餘)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여(有餘)란, 소승교미혹  번뇌는 끊었으나,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쳐 인도할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 깨달음을 *유여열반이라 합니다.
무여(無餘)란, 대승교로 자기가 깨닫는 동시에 다른 사람까지도 가르쳐 인도하는 힘이 갖추어진 *각행원만(覺行圓滿)을 말합니다. 유여열반에서 점진적으로 *무여열반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마치 나무가 다 타서 불이 꺼지듯,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자연스럽게 <큰 하나>*용입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