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내가 성불로부터 지내 온 모든 겁수는 한량 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라. 항상 법을 설하여 수없는 억만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佛道)에 들게 함이니라.---*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bar03_dot3x3_red.gif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1-02-10
 
 ----이와 같은 사람은 내세(來世)에 불도(佛道)를 이룩하리라고 내가 *수기(授記)를 주리니, 마음 깊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맑은 *계행(戒行)을 닦아 가진 연고니라. ---
 
----마음이 맑고 부드러우며 또한 *근기가 날카로운 사람에게는 반드시 내세(來世)에 부처님의 도(道)이룩할 것이라고 내가 다짐한다. 그 사람은 중도에 수행을 늦추거나 하지 않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점진적으로 *홍익 보살행을 하기 때문에 마침내 부처님 자리에 이를 것이라고 수기를 준다. ---.
 
<수기(授記)>불기(佛記)라고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기를 주실 때는 항상 <마음 깊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맑은 계행을 닦아 가져야 한다>전제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마음 깊이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 항상 부처님의 마음에 이끌려 부처님과 함께 있는 듯한 마음입니다.
*념념심부절 념불불리심(念念心不絶 念佛不離心), 한 마음으로 맑은 계행, circle03_darkgreen.gif 지계(持戒)를 잘 지키며 마음 깊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신앙정서입니다. 혹자는 부처님을 생각하라고 하니까, 병고액난(病苦厄難)이나 관재구설(官災口舌)을 소멸해주시고 재화복덕(財貨福德)을 안겨 주시는  기도불공의 대상으로 그치는데, 그것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방법의 하나이겠지만 그것이 불교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로지 가르치심을 믿고 마음이 항상 부처님과 함께 하는 <한 마음> 곧 우주 의식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이 되리라는 말씀을 들으면 큰 기쁨이 몸에 가득 차리라. 부처님이 그들의 마음을 아시는 연고로 *대승을 설하시리라.----
 
---마음 깊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성불수기를 받으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보살수행하는 사람이 성불수행을 중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불지견으로 보시고, 그들을 위해 부처님의 참마음, 법화경(法華經)설(說)하신다. 만약 혹자가 법화경은 특별한 보살을 위해 설하시는 것이니까, 범부 중생은 인연이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성문(聲聞)이나 보살(菩薩)이 내가 설하는 법(法)의 게송(偈頌) 한 마디를 들을지라도, 다 의심 없이 성불하리라.----
 
---- *소승만을 듣고 수행하는 사람, 자기 한 사람만의 미혹(迷惑)을 제거해서 마음의 번민을 없이하고, 세상을 깨끗하게 안락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성문이나, 또는 일체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부처님의 자비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아서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보살이,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일불승 법화경게송 한 구절이라도, 마음으로 깊이 믿고 몸으로써 실제로 행한다면 반드시 부처님이 된다. circle03_darkgreen.gif 이승작불(二乘作佛)이다. 성문연각보살, 삼승(三乘)의 수행자는 물론이려니와 모든 중생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완전한 인간, 일불승 부처님이 된다. 미혹  번뇌(煩惱)를 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처님을 이루는 것, *인일(人一)이 목적이다. --
 
<내가 설하는 법(法)의 게송 한 마디를 들을지라도, -->, 부처님께서 지금까지 설하신 42년 방편설을 잘 들어서 설사 그 중의 게송ㆍ한 구절이라도 깊이 새겨서 그 깊은 뜻을 깨닫고 믿게 되면 영원한 생명, 성불(成佛)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 뿐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서 그것을 음미하는 것, *심독을 말합니다. 단 한 구절이라도ㆍ단 한 게송이라도 듣고 가슴으로 깊은 믿음을 내면 점진적으로 부처님 경지에 가까이 이를 수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의 소승의 교(敎)만이라도 듣고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 생기기만 하면 거기서 다시 의식을 수직 상승시켜 성불(成佛)의 길,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홍익 보살행을 기쁘게 여기는 마음이 솟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살을 위해 를 설하시지마는 아직 보살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法華經을 듣고 <, 그런 것도 있구나, 부럽다 해보고 싶다>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는 보잘 것 없는 범부 중생이라도,  마음이 일전(一轉)해서 홍익(弘益) 보살행을 실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기만 하면, 지금까지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있었던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요 오히려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방불토에는 오직 일승법(一乘法)만이 있고, 이승(二乘)도 없고, 또한 삼승(三乘)도 없느니라. 부처님이 방편으로 설하신 것도 제하노라.(除佛方便說) 다만 헛된 이름으로 중생을 인도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설하려 한 까닭이니라.----
 
--- 시방불토에는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되는 일승법만이 있다. 이승도 없고 또한 삼승도 없다. 두 가지 세 가지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의 진리, 구경(究竟)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일승법(一乘法)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상대에 따라 갖가지로 설하신 방편의 敎는 잠시 별도로 한다. 오로지 *교일(敎一), 부처님이 되는 일승법 하나 뿐이다 ---
 
<시방불토>라는 것은 이 사바세계 뿐 아니라, 광대무변한 대우주를 뜻합니다. 사바세계는 석가모니불께서 나오셔서 를 설하신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사바세계 이외의 모든 세계는 석가모니불 이외의 모든 부처님께서 를 설하십니다. 어디를 가나 어느 부처님께서 어떤 를 설하시거나 라는 것은 결국 하나(敎一),   일승법으로 귀착된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헛된 이름으로 중생을 인도한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인도해서 결국은 부처님의 지혜에 이를 때까지는 노력을 멈추지 말 것을 설하시기 위해 잠시 낮은 쪽의 敎를 설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敎,  敎라는 것이 결국 한 곳에 귀착해야 한다는 *만교귀일(萬敎歸一)을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세계의 모든 종교, 기독교ㆍ유교ㆍ이슬람교ㆍ 등이 다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하는 지구인(地球人) <큰 하나>로 귀일 되는 추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은 오직 이 일승법만이 진실이요, 달리 둘이 있다면 진실이 아니니, 끝까지 소승(小乘)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지 아니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무엇 때문에 를 설하셨는가 하면, *<오직 일승법>,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ㆍ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ㆍ차차 가르쳐 인도하면 부처님이 된다,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인간을 부처님이 되게 해 주자 하는 것만이 진정한 부처님의 마음이다. 성문이니 연각이니 하고 나눈 것은 일불승 진실을 전제한 방편(方便)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편의상 인간의 윤리도덕으로 시작한 *아함경이라고 하는 소승교로써 모든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미혹(迷惑)이나 번뇌(煩惱)를 끊는 것만이 佛敎의 전부가 아니다.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일불승을 목적으로 한다--
 
존귀한 말씀지구촌 전인류의 이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소승교라고 하는 아함경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계율이 있습니다. 특히 *십악을 중심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설하신 것이지만, 실은 되도록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노력하라는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직 자기만 구원 받는다는 이기적인 가르치심은 없습니다.  아함경* 실대승 法華經을 목적으로한 시작입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전제하고 소승교(小乘敎)를 설하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대승에 머물었으며, 그 얻은 법은 이와 같으니, 정(定)혜(慧)역(力)장엄(莊嚴)이라, 이것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시느니라. ----
 
----모든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대승에 머물으신다. 최고의 깨달음을 여신 모든 부처님께서는 *선정(禪定)*지혜(智慧)*십력(十力)으로 장엄하시고, 모든 중생가르치고 타이르셔서 범부의 경계로부터 부처님의 경계*인도(引導), 이끌어 주신다. *일체중생구제만을 오직 <한 마음>으로 염원할 뿐이시다.--
 
-----스스로는 *무상도(無上道) · 대승(大乘) · 평등법을 증득하고, 만일 소승(小乘)으로만 교화하여 혼자만이 가진다면, 나는 곧 간탐(慳貪)에 떨어지리니, 이와 같이 함은 옳지 않으니라. ----
 
---만약 절대의 깨달음을 여신 모든 부처님께서 소승교만을 설하시여 미혹  번뇌만을 끊어주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몹시 인색한 범부나 다름없다. 그것은 *사일개회에서 말하는 (行)하나, circle03_darkgreen.gif 행일(行一)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이 부처님을 믿고 귀의하면 *여래는 버리지 않으시며 또한 탐내고 질투하는 마음이 없이 모든 법 가운데서 악(惡)을 끊어 주시느니라. 이런 연고로 부처님은 시방세계에서 홀로 두려움이 없느니라. -------
 
 ---참으로 인간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귀의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결코 그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 남의 것을 탐내고 질투하는 마음이 없으면 모든 악(惡)한 것을 다 제거(除去)해서 나쁜 마음과 나쁜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시방세계에서 오직 본불 본체 석가세존만 *사무소외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시다 --
 
----나는 상(相)으로써 몸을 장엄하며, 광명이 이 세상을 비추어 한량 없는 중생에게 존경 받고 실상(實相)의 법을 설함이니라.--
 
----나는 상으로써 몸을 장엄한다. 얼굴 모습이 어떻다ㆍ눈매가 어떻다ㆍ하는 것들이 설흔 둘이 라고 하는데, 그 *삼십이상(三十二相)마음의 덕이 자연스럽게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만물의 진실한 모양, 실상(實相)을 구명해서 그것이 듣는 사람의 마음에 깊이 파고 들어가 구제 받도록 하는 것을 본원력으로 삼는다.--
 
석가세존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를 설하신 목적을 털어 놓으시는 동시에, 그 를 들은 사람은 노력을 아껴서는 안된다는 것과, 교를 진심으로 믿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커다란 힘을 받아서 기필코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석가세존 40 여 년 방편설은 실로 다방면에 걸친 것이어서 상대에 따라 알맞는 敎를 설하시므로 어떤 때는 매우 낮은 敎를 설하시고 어떤 때는 대단히 깊은 敎를 설하셨으므로 범부의 눈으로 보면 양립되지 않고 모순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불교의 초심자는 누구나 약간의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의문점을 *법화경 방편품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치심에는   circle03_darkgreen.gif방편교(方便敎)와 진실교(眞實敎)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명확하게 풀어주십니다.
 
--사리불아, 마땅히 알라. 내가 본래 세운 *서원(誓願)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같이 평등(平等)하여 다름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사리불아, 나는 모든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평등하게 *부처님 지혜를 얻게 해주려고 서원했다.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해주리라 한 것은 내가세상에 나와 敎를 설하기 시작한 그 시초부터 나의 이상(理想), 목적으로 하고 설하였다--
 
이 말씀은 실로 광대무변한 사상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이라고 하시는 말씀 가운데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고 영리한 사람도 있으며 악한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은 모두 부처님이 될 본성, 이른바 *불성을 갖추었습니다. 부처님과 상통하는 성질을 갖추고 있으므로 중생의 근기 따라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기필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완성된 인간 부처님이 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동서양 어느 종교도 모든 사람을 신앙의 대상과 똑같이 만들겠다는 일체중생 구제 종교가 없습니다. 그러나 석가여래만이 *일체중생구제론이라고 하는 전인류의 상생론(相生論)을 만천하에 런칭하셨습니다.
 
----내가 옛적에 소원한 바와 같이 이미 이제는 만족함이니,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다 불도에 들 게 함이라. ----
 
--- 너희들은 일승법 法華經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모두 부처님이 될 것이다. 나는 옛날부터 모든 인간을 다 부처님이 되게 하려고 생각한 대로 되어 이제는 만족한다. 내가  성불 이래 바라던 바는 일승법 法華經을 중생이 실행함으로써 만족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남김없이 다 말할 시기가 된 것이다. 나는  성불 이래 가지가지 법을 지금까지 설해왔고 그 설해 온 결론을 지금 너희들에게 밝히는 것이다. ---
 
<이제는 만족함이니>하는 것은, 석가여래께서 지금까지 생각하고 계시던 것을 모두 말씀해 버리셨으니까 만족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내가 설하는 것을 너희들이 실행해서 그 마음을 계속해 나가면 부처님과 같이 될 것이니까 만족한다는 그러한 뜻입니다. 法華經을 공부한 사람이 실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法華經을 입으로만 읽는 것으로 부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행하는 것이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얻는다는 높은 곳에 이상을 두되, 그 이상을 실현하는 불도(佛道)의 길은 오직 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한 마음으로 자기를 경계하고 자기를 편달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아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bar03_dot3x3_blue.gif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지계(持戒)
 
지계(持戒) 고대 인도의 언어, 범어(梵語)로 시라(尸羅)인데, 의역(意譯)하여 지계라 하였습니다. 시라는 직역(直譯)하면 맑고 서늘함을 뜻하는 청량(淸凉)입니다. 범부 중생의 마음은 미혹하여 마음에 가지가지 번민과 고민이 있기 때문에 항상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戒)를 잘 가져서 부처님과 같은 생활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면, 그야말로 마음이 맑고 서늘해서 조금도 괴롭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戒)를 가진다는 것은 청량(淸凉)이라 하였습니다. 모든 (熱)을 떠나는 길입니다.
진정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여 부처님과 일치할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면 끊임없이 맑은 계행을 닦아 가지라는 것입니다.
범망경에,--너는 마땅히 부처님의 도(道)를 이룰 부처님이요(當成佛), 나는 이미 부처님의 道를 이룬 부처님이니라(已成佛)--
부연하면  -중생은 마땅히 부처님이 될 몸이고나는 이미 부처님이 되었다. 과거 오랜동안 수행을 쌓아서 부처님이 된 것이다. 너희들과 나와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요, 내가 선배인 것이다. 너희들도 힘써 노력하면 부처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지계, (戒)를 가지는 근본 정신입니다. 누구든지 미혹을 제거해서 부처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밑바닥에 있다면 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를 가진다는 것은 결코 까다롭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완전하게 하는 덕목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이승작불(二乘作佛)
 
부처님께서는 42년 방편설에서 성문연각이승(二乘)영불성불(永不成佛)  곧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몸(身)입(口)생각(意)을 하나로 모아서 일심으로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 염불독경하고, 아울러 *오종법사 수행하면 누구나 성불한다는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리불존자를 비롯한 성문 제자들, 천이백 아라한ㆍ만이천 아라한ㆍ등은 부처님께서 이승(二乘)은 영불성불 곧 영원히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항상 무엇인가 미흡하였습니다. 사리불존자를 비롯한 성문 제자들은 이승불교의 목적지인가 하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도, 감히 부처님 경계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이승에 머물러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弘益) 보살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법화경 비유품을 통해 사리불존자에게 광여래(華光如來)라는 수기(授記)를 주시고, 이어서 *수기품 제 6에서, 영불성불이라고 한 *사대성문(四大聲聞)에게도 수기를 주셨습니다.
이때 모든 아라한들은, --사리불사대성문은 우리와 같은 아라한이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도 성불수기를 받을 수 있지 않느냐 --하고 갈앙(渴仰)하는 마음이 솟구치며 기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문연각이승 제자들에게 성불수기를 주시므로써 일불승(一佛乘) 신앙, 본불 석가세존구심점(求心點)으로 본불 석가세존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시며, 불교 신앙의 영원한 정체성(正體性)이 세워졌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법화경(法華經) 염불독경(念佛讀經)
 
법화경을 읽는다는 것은 입으로 읽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몸으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입으로 읽고ㆍ그 소리가 자기 귀에도 들리고ㆍ또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도 스며들게 하므로써 자기 자신도 바른 길로 들어 가는데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힘은 매우 큰 것이므로 읽는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도 중요하거니와 마음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가볍다고 구별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입으로 독경하고ㆍ마음으로 생각하고ㆍ몸으로 행하여야만 진정으로 법화경염불독경하는 것이요 진정으로 法華經믿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행일(行一)
 
인간의 마음이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면 일단 잡은 것은 아까워서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다 하여 *탐석(貪惜)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여신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기는 아깝다. 가르쳐주어도 잘 모를 것이니, 내 버려 두자> 하고 중도에서 그만 두셨다면 대자대비심이 아닙니다. 또한 어리석은 사람ㆍ악한 사람을 차차 교화해서 부처님과 같은 마음이 되게 하려면 무척 힘들다는 생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간탐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정각(正覺)의 예지(叡智)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일체의 인간을 모두 부처님 자리로 인도한다는 마음으로 일관하신다 하여 (行)하나, 곧 행일(行一)라고 합니다.
 
  bar03_dot3x3_blue.gif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방편의 교(方便敎)와 진실의 교(眞實敎)
 
방편의 敎 부처님께서 상대의 근기 따라 가지가지로 설하신 를 말합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따라 설하신 로 끝나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낮은 敎를 설해서 그 를 이해하면, 그것을 인연으로 해서 더 높은 敎를 설하시고, 또 그것을 이해하면 다시 더 높은 를 배우겠다는 마음을 일으켜서, 결국은 진실의 敎 法華經을 설할 것을 전제한 것이 방편의 敎입니다.
비유컨대 흐르는 물과 같은 것입니다. 골짜기의 물은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강의 물은 모두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의 는 아무리 낮은 것이라도 그 낮은 敎에서 차차 깊이 들어가면 높은 敎로 들어가서 마침내는 부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털어 놓으신 가장 높은 일불승 법화경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방편의 로 어느 정도 알았으면 더 깊이 들어가고ㆍ 그것을 알았으면 다시 더 좀 깊이 들어가면ㆍ 마침내 부처님 경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니까 결코 중도에서 그만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웬만큼 알았다고 해서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자만심을 일으켜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그치니까 항상 잡 된 생각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정진하면, 마침내 부처님의 자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상대의 정도에 따라 설하신 것으로 그치셨다면 굳이 방편교다ㆍ진실교다 하고 나누지 않습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수타의교로 설하시다가 마침내 부처님의 뜻에 따라 *수자의교를 설하십니다. 수타의교다ㆍ수자의교다ㆍ*삼주설법이다ㆍ*방편이다ㆍ 진실이다ㆍ하는 그 자체가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영원한 法華經 생명자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