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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나는 실로 성불(成佛)해 옴이 이와 같이 오래건마는 다만 방편(方便)으로써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해서 불도(佛道)에 들게 하려 이와 같이 설하였느니라. ------*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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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1-02-09
 
 -----*사리불아, 잘 들으라. 모든 부처님이 얻으신 법을 한량 없는 방편력으로 중생을 위해 설하시느니라.-----
 
---사리불아, 잘 들어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몸소 수행하셔서 스스로 깨달으셨다. 그 깨달으신 바를 모든 중생 구제 전제하고 한량 없는 方便을 써서 설하신다. 인간의 힘으로는 모든 법의 실상(實相), *제법의 실상 십여시를 알 수 없으며 부처님만이 아신다. 깨달음은 말로 할 수 없고 글로 쓸 수 없는 표현난기(表現難記)다. 말이나 문자로 가르친다는 것 그 자체가 방편(方便)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실상을 부처님 교(敎)에 의거(依據)하여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홍익하며 보살수행한 *과보로 깨닫고 스스로 체율체득(體律體得)하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 --
 
----중생들이 마음에 생각하는 바와ㆍ가지가지 행하는 도(道)와ㆍ가지가지 모든 욕성(欲性)과ㆍ전생(前生) 선악(善惡)의 업(業)을ㆍ부처님이 이를 다 아시고, 모든 인연과ㆍ비유와ㆍ말씀과ㆍ방편력으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시느니라.---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ㆍ 실제로 행하는 나날의 행동과ㆍ욕망과 ㆍ 다겁생래로 지어 온 모든 선악(善惡)의 업장(業障)을 모두 *불지견으로 보고 아시기 때문에, 모든 인연과ㆍ비유와ㆍ언사를 다 동원하여 설하시어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여 듣게 하신다. 모든 부처님께서일체중생구제가 전제된 *삼주설법,   circle03_darkgreen.gif 십이부경이라고 하는 방법론으로 중생의 눈높이에 맞췄지만, 실은 *일불승으로 귀일시켜 중생을 기쁘게 하신다.--
 
----혹은 수다라(修多羅)ㆍ가타(伽陀)ㆍ본사(本事)ㆍ본생(本生)과ㆍ미증유(未曾有)를 설하며, 또한 인연ㆍ비유와ㆍ기야(祇夜)ㆍ우바제사경(優婆提舍經)을 설하노라.----
 
---모든 부처님께서 계경ㆍ중송ㆍ고기송ㆍ자설ㆍ인연ㆍ비유ㆍ본사ㆍ본생ㆍ방광ㆍ미증유ㆍ논의 등의 방법론으로 교(敎)를 설하신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십이부경의 방법론으로 를 설하시는 데 모두가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신다.--
 
---둔한 *근기는 작은 법을 원하며 생사(生死)에 탐착해서 모든 한량 없는 부처님의 깊고 묘한 *도(道)를 행하지 않고, 온갖 괴로움에서 시달리므로 *열반(涅槃)을 설하느니라. ----
 
--- 근기가 둔한 중생은 작은 법, 눈앞의 것, 자기 일신의 괴로움이나 고민을 없애는 것으로 그치고, 더 깊은 인간의 생사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여러 가지 변화에만 마음을 쏟는 그러한 중생은 부처님의 敎를 들어도 그 의 깊은 도(道)를 포착하지 못하니까 실행하지 않고, 스스로 가지가지 괴로움에 번민하며 무의미한 생활을 한다. 모든 부처님께서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사성제 *삼법인 *십이인연 등의 극히 얕은 를 설하시여 고통이나 번민을 제거하고 잠시의 깨달음, 열반을 설하시여 잠깐이나마 괴로움과 미혹(迷惑)을 끊어주시는데 그것이 다 *일체중생구제론으로 집결되는 과정이다.---
 
 ---내가 이러한 방편을 만들어 *부처님 지혜를 얻게 함이라.(我說是方便 令得入佛慧) --
 
---내가 방편으로 얕은 敎를 설해 온 것은 그것만으로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얕은 부터 설(說)해서 차차 깊이 들어가 마침내 모든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지혜, 일불승도(一佛乘道)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그 순서(順序)로서 낮은 를 설한 것이다. 낮은 敎에 만족하고 그대로 주저 앉아서는 안된다---
 
요컨대 *오시팔교 가운데 방편설 사시교(四時敎)로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영원히 살 게 하는 도(道) *일체중생구제론, 진실설 일불승 法華經으로 업그레이드 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 너희들에게 성불(成佛)의 도(道)를 얻는 것을 설하지 아니하였노라.----
 
---아직 나는 너희들에게 성불(成佛)를 얻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42년 방편설에서는 성불 *수기를 주지 않았다. 단지, --미혹이 없어진다괴로움이 없어진다의지하면 천박(淺薄)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간의 도덕성(道德性) 만을 가르쳤다. 부처님이 된다는 말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일찍이 설하지 아니한 까닭은 설할 때가 되지 않은 때문이니,(所以未曾說 說時未至故)  *지금이 바로 이때 라 결정하고 대승을 설하노라.(今正是其時 決定說大乘)----
 
---어째서 설하지 아니하였는가 하면, 아직 설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부터 모든 중생부처님 경계에 갈 수 있다고 하면, 너무나 골이 깊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 이제는 진실교를 설할 때가 왔다. 나는 40 여 년 설법으로 중생의 영적세계를 열어 놓았다. 드디어 오랜동안 설할 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法華經說하기로 결정했다. --
 
---나의 이 모든  circle03_darkgreen.gif 구부법(九部法)은 중생의 *근기를 따라 설하여서  circle03_darkgreen.gif 대승(大乘)에 들게 함을 근본으로 하였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이 경을 설하노라.---
 
---나의 모든 구부법(九部法), ① 수다라  ② 기야가타   ④ 니타나이제목다  ⑥ 사다가아부달마  ⑧ 아바타나우바리사-  이 아홉가지는 중생의 근기와 능력에 따라 대승교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삼주설법으로 설하였으나 모두 일불승을 위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理致)하나다. 얕은 소승법으로써 자기의 행동을 삼가는 *십악의 죄를 짓지 않는 것 부터 시작해서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도 육바라밀을 닦아 대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혹자는 대승이라 하니까,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부처님을 믿기만 하면, 아니 법화경을 읽기만 하면, 무량 복덕을 얻는 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모든 부처님이 소승교얕은 敎라고 하는 것은 가벼이 본다는 것이 아니라, 소승에서 머무르는 그 마음얕은 것말하는 것이다. 십악십선(十善)으로 바꾸라는 소승교도덕(道德)이다. 도덕으로 그치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사는 보살행, 큰 역할(役割)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께서는 성불을 전제하고 큰 마음을 일으켜 *일체중생구제론에 동참, <하나 되기>하라고 누누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
 
요컨대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구제론을 지구촌 전인류평화론으로 귀착시키셨습니다. 불교모든 敎수행*구원실성 본불론 -모두가 일체중생구제로 집결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사일개회(四一開會), <이치는 하나다(理一)>로 모아집니다.
 
--불자(佛子)가 마음이 맑고 부드러우며, 또한 근기가 날카로와, 한량 없는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깊고 묘(妙)한 도(道)를 행하므로, 이 모든 불자를 위해, 이 대승경을 설하노라. --
 
---인간은 성품과 욕망이 각각 다르지마는 누구나 부처님이 될 성질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마음 밑바닥 깊은 곳에는 부처님과 일치하는 *불성을 갖추고 있어서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리 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올바른 를 듣고 귀의하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을 박해하거나 모욕(侮辱)하고, 또한 조소(嘲笑)하고 타매(唾罵)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결국 한 곳에 이른다는 인일(人一),  <완성된 인간> 성불한다는 전제하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실대승 법화경을 설하신다.---
 
<마음이 맑다>는 것은 *번뇌를 떠난 것, 번뇌를 떠난다는 것은 조그마한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불평한다든가 하는 마음이 없어짐을 말합니다.
<부드럽다>는 것은 그저 마음이 *유화(柔和)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집(我執)을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고 학문이 있더라도 부처님과는 대비가 되지 않으니까, 항상 부처님 를 구하고 보다 더 좋은 가르치심을 받아들이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이른바 <부드럽다>고 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이만하면 됐다나는 무엇인가 깨달았다-- 고 자만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열반경에서는,--강강(剛强)하여 교화(敎化)하기 어려운 자--라고 했습니다.
참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진정한 보살행을 쌓게 되는 경계에 이르면 설혹 자기가 충분히 사물을 알고 있더라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를 구하려는 마음으로 크게 장진(長進)하면 그것이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부드럽다> <능히 버린다(能捨)>는 같은 맥락입니다. 자기가 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 더 나은 가 있으면 지금까지 배운 것은 다 버려도 좋다.-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이 다 완전하게 되기를 이상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완전무결(完全無缺)한 분이시므로 부처님 경계에 도달하면 더 말할 것도 없지마는, 성불할 때까지는 끊임없이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라는 말씀입니다. 42년 방편설에 머물지 말고 진실설 법화경을 받아가지는 것이 이른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근기가 날카롭다(利根 )>는 것은 사물의 선악(善惡)을 분명히 분별하는 힘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선악(善惡)현우(賢愚)는 같습니다. 나쁘다는 것은 즉 어리석은 것입니다. 진실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합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요컨대 둔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악(善惡)현우(賢愚)이기도 하고, 또한 이둔(利鈍)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근기가 날카롭다는 것은 결국 좋은 를 구하여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량 없는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깊고 묘한 도를 행한다>는 말씀은 극히 얕은 데서부터 시작하여 끝내는 성불 수행하는 사람에게 대승경, 법화경을 설하신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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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십이부경(十二部經)---  circle03_darkgreen.gif  구부법(九部法)
 
십이부경이라는 것은 경전이 열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십이부경이라는 용어는 경전 가운데 설해 있는 내용이 열 두 가지장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다라(修多羅) 계경(契經), 법본(法本)이라고 번역합니다. 보통 산문체(散文體)의 문장(文章)으로 를 대충 설하신 부분입니다. *게송(偈頌)이 아닌, 지금까지 읽어 온 보통의 문장입니다. 부처님법을 종횡(縱橫)으로 설하신 것입니다.
 
 ② 기야(祇夜)중송(重頌)이라고 번역합니다. 석 자  또는 넉 자의 어귀(語句)를 이어서 시(詩)와 같은 형태로 된 게송입니다. 앞의 계경(수다라)에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되풀이한 부분이 간결하게 이어지는데 이것을 중송(重頌)이라고 합니다.
 
 ③ 화가라(和伽羅)수기(授記)라고 번역합니다. 부처님께서 지금의 너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수행을 쌓아 가면, 결국은 부처님과 같이 된다고 다짐해 주시는 것이 수기입니다. 수기에는 반드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네가 지금의 그 마음을 변치 않고 계속해서 수행하여 많은 인간을 구원하는 데 노력하고 또 노력해 가면,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얻는다> 는 조건이 반드시 붙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겁생을 두고 보살수행한 *인연과보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것을 낱낱이 예언하는 교설, 법화경의 생명 *오종법사 수행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수 입니다.
 
 ④ 가타(伽陀)고기송(孤起頌) 또는 풍송(諷頌)이라고 번역합니다.앞의 계경(수다라)에서 말씀하지 않으신 부분입니다. 요컨대 게송에는 앞에 말한 것을 되풀이 하신 것과, 앞에서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4언(言)ㆍ5언ㆍ7언ㆍ의 운문(韻文)입니다.
 
 ⑤ 우타나(優陀那)자설(自說)이라 번역합니다. 자설부처님이 스스로 설하시는 것입니다. 중생이 묻지 않아도 부처님께서 자진해서 설하신다는 것은, 처음에는 묻지 않는데 설해야 듣는 편이 주의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묻는 것에 대해서만 응답을 하고 상대가 의문이 있으면, 그 의문에 대해 를 설해 주고, 또 다른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에 대해 를 설해주시고 하여, 차차 가르쳐 인도해 가십니다.   상당히 근기가 높아지면 이번에는 상대의문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부처님께서 자진해서 를 설하십니다. 이것이 자설입니다. 예컨대 아미타경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승경에 들어가 차차 깊이 들어가면 수없이 자설, 아무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설하시여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⑥ 니타나(尼陀那)인연(因緣)이라 번역합니다. 경 가운데서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사실을 설하신 것입니다. 이치로만 말해서는 중생이 잘 모르므로, 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이러한 사람이 이러한 일을 했다ㆍ하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꺼내어서 를 이해케 하시는 부분입니다.
 
 ⑦ 아바타나(阿波陀那)비유(譬喩)라고 번역합니다.비유라고 하면 法華經 *8대비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전 가운데서 비유로써 은밀한 교리를 명백하게 한 부분을 말합니다.
 
 ⑧ 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본사(本事)라 번역합니다. 본사라는 것은 부처님이나 제자들의 지난 과거 세상의 인연(因緣) 관계를 교(敎)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⑨ 사다가(사多伽) 본생(本生)이라 번역합니다. 본생이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나는 지금 갑자기 부처님이 된 것이 아니다,<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의 오래 세월을 두고 이러이러한 *선근력을 쌓아서 부처님이 된 것이다-고 부처님 전생의 일설하신 부분입니다.
 
 ⑩ 비불략(毘佛略)은 방광(方廣) 방등(方等)이라 번역합니다. <방(方)>은 바른 것, <광(廣)>은 넓은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털어놓고 설하시는 것이 방광입니다.
 
敎의 순서로서, 맨처음에는 신심(信心)하는 자는 구원 받는다신심하지 않는 자는 구원 받지 못한다착한 행동을 하고 있는 자는 부처님에 가까운 사람이요, 악한 행동을 하는 자는 부처님에게서 먼 사람이다ㆍ하고 방편을 쓰십니다.
그러나 진실설 법화경에 이르러서는 착한 사람만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도 구원 받는 길을 열어주시어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방광(方廣)입니다.
요컨대 부처님의 에 의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한 사람도 없다고 실대승 법화경을 통해 비로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체중생구제론을 내놓으시면, 인간은 <굳이 노력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믿으면 좋다> 하고, 마지막에 가서 일체중생구제론이라는 공존(共存)을 밝히는 것입니다.
 
 ⑪ 아부타달마(阿浮陀達磨)미증유법(未曾有法), 또는 희유법(希有法)이라 번역합니다.
*미증유라는 것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백호광명동방을 비쳤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모든 인간의 주위를 끌어서 마음을 바로 잡게 하는 것입니다.
 
 ⑫ 우바데사(優婆提舍) 논의(論議)라고 번역합니다. 논의라는 것은 설명입니다. 교법의 뜻을 논의하고 문답한 경문을 말합니다. 교리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신 부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한다는 근본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상과 같이 석가여래께서 를 설하실 때는 항상 십이부경 스타일로 설하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사일개회(四一開會), 곧 이치는 하나다(理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 방편품을 여시자마자 *제법의 실상 십여시를 설하시고 이어서 모든 부처님은 *일대사인연으로 사바세계에 출현하셔서 *사불지견을 설하시여 일체중생이 한 사람도 성불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이승 *삼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일불승이 목적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정각(正覺)을 여신 후, 42년간 방편교로 중생의 미혹  번뇌를 끊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법화경에 오셔서는, 불교신앙의 목적지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일불승 법화경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법화경 모든 만법(萬法)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이치는 하나(理一)인간은 누구나 부처님이 된다(人一)부처님의 마음, 곧 부처님의 가르치심도 하나(敎一)갖가지 수행 방법도 결국 하나에 귀착한다(行一)--고 하셨습니다. 대우주 만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일체중생구제를 정점으로 하여 그 이치는 하나라는 것을 구체적인 *개현법으로 *구원실성을 전제하고 *적문(迹門) 법화경 방편품에서 사일개회론(四一開會論)을 끌어내셨습니다.
 
사일개회(四一開會)에서 (開)란, 사물을 해부하는 것, 자세하게 나누어 해석하는 것입니다. (會)란, 그 속에 있는 뜻을 완전히 아는 것, 깨달아 아는 것, 자세히 속속들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라 하여 개회라 합니다.
예를 들면, 영리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는 전무를 비롯하여 상무도 있고, 사무원도 있고 사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하는 일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전무가 결재를 하는 것이나 사환이 심부름을 하는 것이나, 그것은 다 그 회사의 번영을 위해  존재하는 필요한 각자의 일, 각자가 필히 지켜야 할 몫입니다. 어떤 일이든 소용없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회사의 모든 일을 분석해서 하나 하나의 존재의 의미를 분명히 알 게 해주는 것, 자기가 맡은 일이 회사 운영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개회입니다.
개회 사상은 세상사 모든 일에 다 통하는 이치입니다. 작게는 가정에서 크게는 사회국가 그리고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내가 하는 작은 일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번영, 더 나아가 인류의 행복에 근간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사일개회론>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법화경 설법의 생명입니다.
 
구원실성 석가세존께서는 * 법화경 방편품에서 *일대사인연을 통해 *사불지견을 설하시면서,--지금까지 40 여 년 동안의 설법은 모두가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이다. 너희들이 소승의 교라든가 대승의 교를 수행해 온 것을 모두 자세히 분석해 주겠다. 이 세상 이치는 하나다, 그 하나를 설하기 위해 나는 40 여 년을 기다렸다.-- 방편품에서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부처님 자리를 여시는 의식(儀式)이 곧 사일개회입니다. 사일개회*만교귀일입니다.
모든 법화경에서 파생되었고 다시 모든 는 법화경으로 귀일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에는 얕은 것도 있고 깊은 것도 있지마는 결국은 하나의 이치를 밝히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절대의 이치, 절대의 진리얕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퍼져 나갔고 다시 일불승 법화경으로 귀일시키셨습니다. *종일다출 종다귀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를 설하시지마는 차차 깊이 들어가 맨 마지막에 가서는 부처님의 깊은 를 믿고, 스스로 그것을 몸으로써 행해 보아야 분명히 알 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敎라는 것은 요컨대 한 곳에 귀착한다는 것을 설하심에 있어서, 우선 <이치 하나(理一)>라는 것을 설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것에 두 가지가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이 나오시더라도,를 설하시는 방법 다르더라도 결국은 한 곳에 귀착합니다. *일체중생구제론에 귀착합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귀착합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의 능력이 같지 않으면, 처음부터 깊은 것을 말해도 쉽사리 상대의 마음 속에 들어가기 어려우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만들어서 얕은 데서부터 설하십니다. 드디어 때가 오면 부처님께서 몸소 깨달으신 바를 남김 없이 설하신다 하여 법화경 *본회경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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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대승(大乘)
 
대승이란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큰 마음(大心)을 기르는 것입니다. 큰 마음이란 부처님이 되려는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대통령이 되었다 하드라도 그 임기는 시한성이고 그가 지배하는 국토도 국한되어 있고, 큰 부자가 되었다 해도 남보다 조금 많다는 것 뿐, 모두 무상(無常)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되면 부처님 지혜의 힘한이 없고 영원합니다. 대우주와 함께 부처님의 敎는 변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다짐해 주셨으므로 그 큰 마음을 기르는 것이 대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은 없습니다. 큰 마음을 계속해 가지는 사람을 대사(大士),  마하살 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대승소승의 구별은 *보살마하살 수행을 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범부인 내가 부처님이 될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대승입니다. 낮은 敎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인프라로 하여 결국은 보살행으로 대승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 대우주 본체하나되겠다는 마음이 대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