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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들 지혜 있는 자는 여기에 의심을 내지 말라. 마땅히 죄업을 끊어 영원히 다할지부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헛됨이 없노라.----*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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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1-02-03
 
----이른바 모든 법이 이와 같은(相)이며ㆍ이와 같은 성(性)이며ㆍ이와 같은 (體)며ㆍ이와 같은 (力)이며ㆍ이와 같은 (作)이며ㆍ이와 같은 (因)이며ㆍ이와 같은 (緣)이며ㆍ이와 같은 (果)며ㆍ이와 같은 (報)며ㆍ이와 같은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니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듣거라, 모든 법의 실상(實相)부처님부처님만이 아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열 가지 조건(條件)을 갖추었다. 모든 의 진실한 상(相), 곧 <(相)(性)(體)>· <(力) (作)>· <(因) (緣) (果) (報)>·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이다. 이 열 가지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하여  circle03_darkgreen.gif 십여시라고 한다. --
 
<이와 같다>는 한문으로는 <여시(如是)입니다. 불교에서는<(如)>언제나 같다변하지 않는다 하여 *십여시라 합니다.
 영원불변(永遠不變)하다는 절대의 뜻입니다.
 
-----그 때 세존(世尊)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시되,---
 
--그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뜻을 더욱 분명히 하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을 가히 헤아리지 못하느니라.(世雄不可量=세웅불가량)   모든 하늘과ㆍ세상 사람과ㆍ일체 중생은 능히 부처님을 알지 못하느니라.---
 
범부는 부처님을 알지 못한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자비심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모른다. 인간계천상계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아무리 추량(推量)해도, 모든 부처님의 권능을 알지 못한다. --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잘난 척하는 인간계의 모든 성인ㆍ군자가 한 자리에 모여 아무추측해도 세웅(世雄),  석가세존의 무한한 권능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웅(世雄)>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어른,  부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힘(energy)과ㆍ두려울 바가 없는 *지혜와ㆍ* 해탈(解脫)과ㆍ모든 *삼매(三昧)와ㆍ부처님의 모든 법(諸餘法)을 능히 측량할 자는 없느니라. ----
 
---부처님의 * 십력과ㆍ*무소외와ㆍ*해탈과ㆍ모든 *삼매와ㆍ*지혜와ㆍ그리고 그밖에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모든 법(法)과 힘이라는 것은 아무도 헤아릴 수 가 없다. --
 
<모든 법(諸餘法)>이란, (法)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법도(法度),  법칙(法則)이라는 뜻과ㆍ② 교법(敎法)의 뜻과ㆍ③ 진리(眞理), 실재(實在)라는 뜻입니다.
 
법도(法度)법칙(法則) 세상의 법률(法律)규칙(規則) 따위의 세상살이의 뜻입니다. 남을 가르칠 때, --너는 이런 일을 해라ㆍ이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ㆍ이렇게 하면 세상이 좋아진다ㆍ이렇게 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고 말하는 것은 사회적인 법도, 법칙입니다.
 
교법(敎法)인간을 참다운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 정하는 법도(法度)  법칙(法則)의 기준을 삼는 * 마음의 근본입니다. 교법법도나 법칙보다는 뜻이 깊습니다. 교법이라는 것은 성현이나 부처님께서 임의로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의거해서 하시는 가르치심입니다. 인간을 포용(包容)하는 커다란 자연의 근본 법칙에 의거해서 교(敎)가 세워지는 것입니다.그 교(敎)의 근본이 되는 것은 영구불변(永久不變)절대의 진리, 실재(實在)에 의지하여 인간의 참된 존재의 의의(意義)를 포착(捕捉)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법을 어기면 벌을 준다고 하는 것이 첫째의  법도 법칙을 뜻하는 것이고, 에 귀의한다거나 존중하고 한평생 지키자 하는 믿음은 둘째번의 교법,마음의 근본이 되겠습니다.
 
진리(眞理), 실재(實在)는 것은 교법의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천만년을 통하여 우주(宇宙)와 함께 변하지 않는 *절대의 진리라는 뜻입니다. 다같이 법(法)이라고 해도, 뜻이 깊고 옅음이 있습니다. 요컨대 <모든 법(諸餘法)>, 법도(法度)ㆍ② 교법(敎法)ㆍ③ 진리(眞理)세 가지는 다 하나로 통합됩니다. 설명하는 방법으로 세 가지로 나누었지마는 결국은 하나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理)라든가 라든가 하는 것이 근본이 되어 도 세워지고 법칙도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부처님의 모든 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깨닫고 계신 깨달음이라는 뜻도 되고, 또 *수타의교, 부처님께서 를 설하시는 방법론이라는 뜻도 됩니다.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힘부처님의 깨달음의 자리는 부처님이 아닌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추측해 보아야 도저히 알지 못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본래 수없는 부처님을 좇아 모든 도(道)를 갖추어 행함이라.---
 
--- 석가모니불 비롯해 모든 부처님 처음부터 부처님은 아니였다. 다겁생(多劫生)을 두고 모든 부처님께 시중들고 교법을 배워 실행에 옮긴 *인연과보로 금생에 완전무결지혜구족하고 *일체중생구제론이라는 대자비심을 열었다.---
 
----심히 깊고도 미묘(微妙)한 법은 보기도 어렵고 가히 요달(了達)키도 어려움이라. ---
 
---모든 부처님께서 여신 *묘법(妙法)은 뜻이 깊고도 미묘해서, 도저히 말로는 설할 수 없다. 보통 인간으로서는 볼 수도 없고 요달(了達), 이해할 수도 없다.--
 
----한량 없는 억겁(億劫)에 이 모든 도(道)를 행하여 마치고, 도량에 나아가 과(果)를 이룩하여 얻음이니, 나는 이미 모든 *지견(知見)을 가졌노라.----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운 모든 *역겁수행, 곧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circle03_darkgreen.gif 삼세(三世)에 걸친 오랜 수행인연과보로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은 큰 *과보(果報)의 가지가지 성품과ㆍ상(相)과ㆍ뜻은 나와 시방(十方)의 부처님만이 능히 이를 아시느니라. --
 
---- 부처님이 되는 인연과보,  일체의 인간은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ㆍ그 성질이 또 어떻게 되어 겉에 나타나는가 하는 것은, 과거 다겁생래(多劫生來)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쌓아 온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모든 부처님은 다 아신다---
 
<큰 과보>, 부처님이 되는 인연과보입니다. 부처님이 되는 인연(因緣) 관점에서, (因)이란 자기의 수행이며, (緣)이란 좋은 교(敎)에 의한 것이고, (果)란 자기가 부처님과 같이 훌륭한 덕(德)을 갖추는 것이고, (報)란, 이익입니다. 일체의 인간을 가르쳐 인도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인연과보(因緣果報)라고 하는 네 가지의 관계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因)(緣) 과거의 업(業)에 대한 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부처님의 敎를 만나게 된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니 이니 하는 것은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큰 과보>라고 한 것은, 자기가 수행해서 좋은 緣, 좋은 가 얻어지면 그 결과가 자기의 커다란 덕(德)이 되어 그것이 모든 인간을 홍익(弘益)하게 하는 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법(法) 가히 보일 수가 없으니, 말(言)과 상(相)의 적멸(寂滅)이라.----
 
--- 참된 깨달음은 말이나 글로도 쓸 수 없는 표현난기(表現難記)이다.---
 
<(言)과 상(相)의 적멸(寂滅)이라>란, 말로 나타낸다는 것은 한도가 있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말이나 글을 결코 가볍게 여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나 글에 의해 차차 수행해서 마침내 말이나 글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을 잡는 것입니다. 언어나 글자에 의하지 않고는 수행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어나 글자에만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말이나 글자가 필요치 않고, 마음에서 마음에 전한 가 좋은 것이라고 하여 *경전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언어나 글자에 얽매이는 것도 어리석겠지마는, 또한 언어나 글자조차 모르는 사람이 깊은 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사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말과 상의 적멸이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40 여년동안 착실히 수행하여 미혹(迷惑)  번뇌(煩惱)를 끊은 것은 사실이라는 것과, 그러나 지금부터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미흡한 언어나 문자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부처님 경계이니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인프라로 하고, 성큼 스스로 마음을 내어 <큰 하나> *용입하는 것입니다. 언어나 글자라는 도구를 뛰어 넘어야 큰 것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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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십여시(十如是)
 
십여시란,  <(相)  ②(性)(體)>와   <④(力) ⑤(作)>과    <⑥(因)   ⑦(緣)(果)  ⑨(報)>와,    그리고  <⑩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 입니다.
 
(相)→겉에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자비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화한 얼굴이라든가, 또는 이마에 여덟팔자(八)를 그린 험악한 얼굴이라든가, 이 모두가 겉에 나타난 상(相)입니다.
(性)→모든 사물의 성질입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질입니다.
(體)→고유한 성질을 갖추고 있는 그 사물 자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성질을 갖추고 있는 사물이 실재하는 것을 체(體)라고 합니다. 형상과ㆍ성질과ㆍ그 성질을 갖추고 있는 본체를 하나로 묶어서 <(相) (性) (體)>라고 합니다. 예컨대 얼음은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손을 대면 선뜻하고, 은 뜨거운 성질이 있어서 손을 대면 뜨겁습니다. 모든 사물은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 상(相)이 있고, 그 사물에는 반드시 성질 곧 성(性)이 있고, 그 성질을 일으키기 위해 무엇인가 갖추고 있으므로 체(體)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相)(性) (體)>를 갖추지 않은 사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 >, 세 가지를 완벽하게 갖춘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적문 *법화경 방편품이라는 것도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본문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부처님의 수명론,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구원실성드러내기 위한 < >일환입니다.
 
(力)→<상(相) 성(性) 체(體)>를 갖추고 있는 것은 반드시 어떤 힘(energy)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란 보통은 무슨 다른 물건을 내려 누른다거나 하는 것을 생각하겠지마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루바닥은 사람을 받치고 있는 힘을 가졌고, 기둥은 천장을 버티고 있는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온갖 사물은 각각 나름대로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의 많고 적음에 차이는 있을 망정, 이 전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作)→사물이 있으면 이 있고, 이 있으면 그 이 겉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이 , 작용입니다. 모든 사물의 겉으로 나타난 힘(energy)작용(力) (作)이라 합니다.
(因)→ 모든 사물은 서로 상대적이므로, 항상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조건에는 (因)이라고 하는 원인과, ⑦ (緣)이라고 하는 주위 환경(環境)과, 그리고 ⑧ (果)라고 하는 결과와, ⑨ (報)라고 하는 갚음,  결과뒤에 남는 작용이 반드시 있습니다. 예컨대 여기에 성냥이 있습니다. 성냥이 있는 것은 이요, 성냥을 긋는 것)이요, 그어서 불이 일어나는 것요, 그 물건 태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연과보(因緣果報)라고 합니다. 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는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그 이라고 하는 성냥이 변하여 눅눅하면, 성냥개비라는 이 있어도 결과라고 하는 불이 켜지지 않습니다. 즉 공기 속에서는 성냥불이 일어나지마는 물속에서는 불이 켜지지 않는 것은 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있으면 거기에 결과라는 것이 있어서 그 결과에서 반드시 ,  남는 작용이 일어나므로 因緣果報입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도 <상(相)성(性)체(體)>,  세 가지를 갖춘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상(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지혜와 자비의 성질을 갖추셨는데 그것이 성(性)입니다. 그러한 지혜와 자비의 성질을 갖추신 것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체(體)입니다. 한 분 부처님께서 세상에 존재하시면서 일체중생구원하실 힘(力)을 가지고 계시고, 그 힘이 설법이라는 작용(作用)으로 나타납니다. 즉 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설법이라는 하나의 사실이 원인이 되고,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설법이 후세까지 남는다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결과에 의해 일체 중생이 구원받는다는 응보가 생기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입니다.
적문 *법화경 방편품이라는 것도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본문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부처님의 수명론,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구원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 상(相)성(性)체(體)>의 일환입니다.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로써 <(相)  (性)  (體)  (力)  (作)  (因)   (緣)  (果)  (報)>에서 벗어나 있는 사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본말(本末),   처음에서 끝까지, 즉 처음의 상(相)에서 마지막의 보(報)까지의 조건은 같다는 뜻입니다. 상(相)에서 보(報)까지의 아홉 가지 조건은 어떤 경우에도, 존귀(尊貴)한 것이나ㆍ비천(卑賤)한 것이나ㆍ형체(形體)가 있는 것이나ㆍ형체가 없는 것이나ㆍ다 고루 갖추고 있다 하여 본말구경등이라고 합니다. (等)이라는 것은 같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모두 열 가지 조건 가운데 어느 것인가에 다 들어맞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알아 볼 때는, 이 조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봅니다. 그래서 잘못 봄이 없도록 허술하게 보아 넘기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이 조건들을 갖추어 모든 사물을 보는 것이 제법의 실상, 모든 사물의 진실한 상(相)을 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것을 십여시 분상에서 보시기 때문에, *일체중생실유불성, 모든 중생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가 부처님이 될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과보라는 절대의 진리, 실체라는 제법 실상 십여시입니다. 곧 因果라는 것입니다.
무릇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물속에서는 성냥을 그어도 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불이 켜지지 않는 것은 이라는 조건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연과보라는 실체를 구명(究明)하고, 이라는 것에 착안(着眼)하여 좋은 으로 모든 중생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부처님이 되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불종종연기(佛種從緣起), 곧 부처님이 되는 인연을 열어주셨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불종종연기(佛種從緣起)=부처님이 되는 인연
 
부처님이 되는 종자(種子)緣에 의해 생깁니다. 인간은 다 부처님이 될 본성(本性)을 지니고 있지마는 이 나쁘면 부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성냥이 불을 일으킬 성질을 가지고 있지마는 물속에서는 불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맞아야 합니다. 모처럼 부처님이 될 종자(種子)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을 얻지 못해서 한평생 부처님의 교(敎)에 친근(親近)하지 못하고 힘도 덕(德)도 없이 일생을 마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한 法華經  인연(因緣)으로 모든 사람이 法華經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이 인연(因緣)이라는 것을 몹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와 동시에 자기가 이와 같은 존귀(尊貴)한 인연을 만났으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법화경 인연을 이어주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法華經 인연을 이어주는 일 처럼 공덕이 큰 것은 없습니다. 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요, 은 남이 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을 주는 것을 이른바 승연(勝緣)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단히 큰 공덕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을 주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진실한 사람을 삿된 곳으로 드나들게 하고 그로 인해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삼세에 걸쳐 일체중생이 모두 법화경 좋은 으로 구제 받아 부처님이 되는 인연*용입되는 길, 십여시를 열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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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삼세(三世)에 걸친 수행(修行)===역겁수행(歷劫修行)
 
석가여래의 일생 현세에서의 일생만으로 생각한다면, 출가에서 성도까지 설산고행 6년과 부다가야 보리수하 단좌명상 6년입니다. 그러나 석가여래께서 금생 12년동안에 깨달으셨다는 것은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난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금생 12년 동안에 깨달으실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은 전세(前世), 또 그 전세, 또 그 전세에서 많은 공덕을 쌓고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신 결과로 금생에 오셔서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신 것입니다.
업보 사상의 표현입니다. 자기가 행한 를 낳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행한 행동이 갚음을 낳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가 어떠한 몸,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 온 행동에 의한 결과입니다. 또 미래에 자기가 어떤 환경에 태어나는가 하는 것도 지금까지 해 온 행동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의 일체의 입니다. 의 결과가 를 낳고 그 가운데서 어떠한 행동을 하면 그것이 근본이 되어 또 그후의 를 낳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봄에 싹이 나고, 여름 동안 자라고, 가을이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 동안 멈추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싹이 나서 또 자랍니다. 자라게 하는 것은 나무의 줄기입니다. 줄기 끝이 뻗어서 그것이 줄기가 되고, 다시 뻗어서 또 줄기가 됩니다. 그와 같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과거의 業이 갚음으로서 지금 작용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작용이 또 과거의 작용과 합쳐져서 그 바탕을 이루고, 거기서 다시 작용을 낳습니다. 이 관계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라는 점만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가벼이 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아닙니다. 나무가 탈 없이 잘 자라다가도 중도에서 폭풍우를 만나 쓰러져 버리면 다시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이 오늘까지 *선근을 쌓아 왔는데, 불행하게 어떤 큰 잘못을 저지르면 과거에 쌓아 온 선근은 다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결코 하루만의 하루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기 위한 오늘의 하루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오늘 하루ㆍ 지금의 일각(一刻)이라는 것을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 法華經  가르치심입니다. 하루하루의 행이 쌓임으로 해서 오랜 동안의 수행이 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서 금생에 나올 때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또는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 태어나거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늘이라는 현세를 가볍게 보아 후세에 부처님이 되는 것만 주로 하고 현세는 아무렇게 해도 좋다고 한다거나, 아니면 현세에 집착하고 삼세를 나몰라라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불교의 삼세법(三世法)입니다.
3천여년 전, 부처님의 가르치심, 불교가 등장할 때, 고대인도는 바라문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바라문교의 목적은 범천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바라문 시대는 보편적으로 과거의 의 갚음이 지금 나타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지금의 환경으로 행한 업이 뒤에 미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앞의 것만 보는 것으로 그치는 이세법(二世法)입니다. <네가 지금 가난한 것은 과거에 네가 행한 일이 나쁘기 때문이다. 네가 지금 어리석게 태어난 것은 전세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이것은 절반만의 종교입니다. 과거의 의 갚음을 받아 현세에서 어리석으면 영리하게ㆍ마음이 약하면 굳세게ㆍ가난하면 넉넉하게 --이렇듯 노력한 보람이 갚음으로 후세까지 남는다는 것을 교학적으로 밝히지 않고, 다만 전세(前世)의 갚음으로 현세가 나쁜 것이니까, 단념하라고만 하니까, 실제로 바라문은, --생각 아닌 것도 아니고, 그 아닌 것도 아니라고 하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가 그들 신앙의 전부였으며 그것으로 그쳤습니다.
 
그러나 석가여래께서는 그것을 부정(否定)하셨습니다. 그럴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 석가여래께서 분기(奮起)하신 이유의 하나이기도 합니다.석가여래께서 금생에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하신 것은 금생에 오셔서 단 12년밖에 안되는 수행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전세로부터 쌓으신 *선근에 의한 것입니다. 석가여래께서는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부처님께 시중들고 수행하신 결과가 금생에 나타나서 왕사성 설산고행 6년과, 부다가야 보리수하 단좌명상 6년 수행으로 정각(正覺)을 여시고 제일성으로, <나는 대우주의 진리를 체득 *일체지자(一切知者)일체승자(一切勝者)다. 나는 일체의 *이(理), 일체의 *도(道)를 완전히 구명해 알았다. 나의 수행은 현세 뿐 아니라 전세부터 수행을 쌓아서 오늘 깨달음을 열었. 삼세(三世)에 걸친 수행(修行)으로 정각을 열었다. 금생 수행만으로 정각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다>고 하셨습니다. *불성을 계발((啓發)하는 현재의 우리의 육신이라는 것이 작은 법당(法堂)이라고 한다면, 대우주 일체중생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구제하는 대우주 자연본체법당이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