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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지력(智力)은 이와 같아서 지혜(智慧)의 광명으로 한량 없이 비치고 수명이 수없는 겁(劫)이니, 오랫 동안 업(業)을 닦아 얻은 바이니라.---*법화경 여래수량품 제 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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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1-02-02
 
-----사리불아, 여래의 *지견(知見) 은 광대(廣大)하고 심원(深遠)하며ㆍ한량 없는 (慈)(悲)(喜)(捨)의   circle03_darkgreen.gif 사무량심(四無量心)과ㆍ  circle03_darkgreen.gif 사무애(四無碍)와ㆍ  circle03_darkgreen.gif 열 가지의 아는 힘(十力)과ㆍ  circle03_darkgreen.gif 사무소외(四無所畏)와ㆍ*선정(禪定)  *해탈(解脫) *삼매(三昧)에 끝없이 깊이 들어 일체 *미증유(未曾有)의 법을 성취하셨느니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아, 듣거라. 모든 사물을 비쳐 보는 부처님의 지혜의 작용,  *불지견이라고 하는 것은 넓고ㆍ크고ㆍ깊고ㆍ무량무변하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사무량심과ㆍ*사무애와ㆍ*십력과ㆍ사무소외와ㆍ그리고 선정(禪定)*해탈(解脫)삼매(三昧) 가운데서 모든 사물의 실상은 물론,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까지도 낱낱이 보시고 생각과 생각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구제의 손길을 펴신다.----.
 
<광대하고 심원하다>라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을 뜻합니다.
<끝없이 깊이 들다>란, 끝이 없는 곳까지 *절대의 진리를 깊이 완전히 구명함을 뜻합니다.
<일체 미증유의 법을 성취하셨노라>란, --옛날부터 일찍없었던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일을 알고 아무도 구명하지 못했던 *도(道)를 구명하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敎)를 베풀어 주심을 말합니다.
 
 -----사리불아, *여래는 능히 가지가지로 분별하여 모든 법을 잘 설하시되, 언사(言辭)가 부드러워 중생의 마음을 즐겁게 하시느니라. ----
 
--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환경과 상대의 근기따라 여러 가지로 각각 분별하여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잘 들어가도록 부드러운 말씀으로 설하신다. 을 듣는 사람이 반항심이라든가 불쾌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듣는 사람의 마음에 <고맙다 !>는 기쁜 마음이 일어나게 해주신다.---
 
----사리불아, 요긴함을 들어 말하건대, 한량 없고 가이 없는 미증유의 법을 부처님은 다 성취하셨느니라----
 
-- 사리불아, 나는 인간의 사량분별로는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 일체중생구제가 전제된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그만두자, 사리불아(止舍利弗=지사리불), 더 말하지 않겠노라(不須復說=불수부설) 어찌하여 그러한고, 부처님이 성취하신 바는 가장 희유하여 알기 어려운 법이니라.----
 
---그만 두자.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지혜(智慧) 세상에 그 유(類)가 없는 가장 뛰어난 것이다. 보통 인간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아주 존귀한 (道)다. 말이나 글로는 깊은 뜻을 전할 수가 없구나. 표현난기(表現難記)다, 그러나 끝까지 잘 듣고 전체를 통일해서 <큰 하나>로 보고 실행에 옮겨서 그 깊은 것을 잡아라. 내 말뜻을 알겠느냐.--
 
선종(禪宗)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 부처님 법이거늘, 무슨 문자가 필요하냐고 합니다. 그것은 짧은 생각. 실은 문자를 길잡이로 해서 <부처님> 자리로 직진(直進)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무엇인가 어느 한 가지에 뛰어난 사람은 반드시 말이나 글자로 표현할 수 없는 노하우를 꽉 쥐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에게 배울 수 있지만, 남보다 뛰어나려면 자기 스스로 터득하는 것입니다.
글로벌시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한경쟁의 대명사입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황제 빌 게이트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제공하였다는 것에 무게를 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석가세존께서 *일체중생구제론을 전제한 법화경(法華經)설(說)하심으로 해서 모든 중생이 부처님 자리에 들어가 웰 빙, 인류평화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정토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능히 연구하여 다함이니,----
 
--- 모든 법의 진실한 상(相), 곧 *십여시는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안다. -----
 
<성인능지성인(聖人能知聖人)>입니다. 성인만이 성인을 알아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범부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물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마음을 열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천태대사께서法華經의 문구를 읽을 때는, 문저비침(文底秘沈), 문장 밑바닥에 숨어 있는 현의(玄義), *일체중생구제론을 찾아서 실행에 옮겨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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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cup_skyblue.gif         circle03_darkgreen.gif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무량심이라는 것은, 자심(慈心)   비심(悲心)  희심(喜心)   ④ 사심(捨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큰 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무량심(無量心)이라 합니다.
자심(慈心)→자기가 살아 있음으로 해서 주위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끝이 없음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천지마음입니다.
비심(悲心)→자기가 존재(存在)하므로 해서 주위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끝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괴로운 일을 제거해주고자 하는 천지마음입니다.
희심(喜心)→남의 행복을 어디까지나 함께 기뻐해 주고자 하는 천지마음입니다. 범부 남의 불행을 바란다거나, 또는 남의 행복을 질투(嫉妬)하여 훼방(毁謗)을 놓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겠지만, 부처님께서는 남이 기뻐하면 끝까지 함께 기뻐해주십니다.
사심(捨心) → 자기가 지금까지 애쓴 일에 대해 갚음을 바라지 않고,  남이 지금까지 내게 악한 일을 해왔더라도, 지난 일은 덮어주자 하는 천지마음입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천지마음은 모든 인간에게 그 힘이 미치므로 성덕은 실로 무량합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사무애(四無碍)
 
부처님께서(敎)를 설하실 때, 사무애를 갖추고 가르치심을 설하셨습니다. 곧 법무애(法無碍)   의무애(義無碍)  사무애(辭無碍)  요설무애(樂說無碍)-- 네 가지입니다.
 
법무애→온갖 교법(敎法)에 통달함을 말합니다. 법이란 설하시게 되는 교(敎)의 내용으로 그것은 완전무결한 진리의 말씀이므로 누구에게도 타당한 가르치심입니다. 法華經  가르치심은 절대의 진리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부처님의 교(敎)를 들으면 고맙게 여겨집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의 내용은 거리낌, 장애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알맞은 입니다. 부귀빈천(富貴貧賤) 남녀노소 누구나 부처님의 敎에 의해 이익을 보지 않는 사람이 없으므로 법무애입니다.
 
의무애→온갖 교법의 요의(了義)를 아는 것입니다. 가르치심의 여러 가지 설명 방법이 물샐틈 없이 완전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왜 신심을 해야 하는가왜 너희들은 좋은 일을 해야 하는가왜 바른 일을 해야 하는가ㆍ--하는 의의(意義)를 잘 이해할 때까지 중생에게 정확히 가르쳐 주십니다.한 법구라도 누구나 깨닫도록 완전무결하게 하시므로 의무애입니다.
 
사무애→모든 말의 개념적인 것을 다 알고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는 것을 사무애라 합니다. 이치로는 알고 있지마는 남에게 말할 때, 용어가 적당치 않으면 설득력이 없습니다.말은 꾸밀 탓으로 간다고 같은 가르치심이라도,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구제 분상에서 누구나 공감이 가는 적당한 용어로 하시니까 무애,거리낌이 없으시다 하여 사무애라 합니다.
 
요설무애→가지가지 교법(敎法)으로 법을 듣는 상대가 법열(法悅)을 느끼도록 자재한 것을 말합니다. 요설은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즐거울요(樂)>자는 원한다거나 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실 때 기쁘고 즐겁다는 생각으로 하신다 하여 요설무애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이 감사하거나ㆍ미워하거나ㆍ박해를 하거나ㆍ관계없이 *자비심으로 하신다 하여 요설무애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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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gif     잠깐 !    circle03_darkgreen.gif 열 가지의 아는 힘==== 부처님의 십력(十力)
 
힘이라는 것은, 부처님께서 갖추고 계신 부처님의 십력입니다. *부처님의 십력은 우리들 범부에게 현실적으로 매우 적절한 가르치심이므로 다시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처(是處) 비처(非處) 아시는 지력(智力)→시(是)는 옳은 것, 비(非)는 그른 것입니다.     시처(是處)는 경우에 적합하다는 것이요, 비처(非處)는 경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보면, 경우에 적당한가 적당치 않은가 하는 것을 잘 아는 힘을 시처 비처아시는 지력이라 합니다.
인간의 행동이란, 그 행동만을 따로 떼어놓으면 좋고 그름을 잘 모릅니다. 인간이 행하는 하나하나의 동작을 지적해서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해야 그것은 논의의 대상이 안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선악(善惡)을 규정(規定)하는 것은 <(時)(處)경우(位)>세 가지에 의해야 합니다.
-언제 하느냐(時)ㆍ어디서 하느냐(所)ㆍ누구에게 하느냐(位)-이렇게 세 가지 표준을 세우지 않으면 선악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세 가지 표준에 따라 그것이 선(善)이 되기도 하고 악(惡)이 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윤리도덕을 배우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은, <상대> 라는 세 가지 표준을 고려하지 않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 상대>를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 통찰력<시처 비처를 아는 지력>이라 합니다.
 
삼세(三世) 업보(業報)를 아시는 지력(智力)삼세(三世)란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합니다. 삼세에 걸쳐 인간이 지은 업(業), 행위는 반드시 그 에 따르는 갚음이 온다는 것을 철저하게 잘 아는 것을 삼세의 업보아는 힘이라 합니다. 업(業)에 대해 보(報)가 있는데 그 *정보(正報)와 의보(依報)가 있습니다.
정보자기의 몸과 마음입니다. 의보 자기의 환경과 경우입니다. 과거의 업(행동)에 의해, 현재 자기가 어떤 몸과 마음을 가지는가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현재 자기가 어떤 환경에 있는가 하는 것도 역시 과거에 자기가 지은 에 대한 결과임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신다 하여 <삼세의 업보아시는 지력>이라 합니다.
 
모든 선(諸禪) 해탈(解脫) 삼매(三昧)를 아시는 지력(智力)선(禪)해탈(解脫)삼매(三昧)니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른 뜻으로 쓰이는 일도 있음니다마는, 여기서는 어느 것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생각해 보는 것을 시각(視角)에 따라 이른 바 선(禪)이다ㆍ해탈이다ㆍ삼매다ㆍ하는 것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환경이나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은 항상 *적정 자리에 계시므로 <모든 선해탈삼매를 아시는 지력>이라고 합니다.
 
모든 근기(諸根機) 승열(勝劣) 아시는 지력(智力)→부처님의 敎를 듣는 사람의 근기(根機)의 정도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힘을 말합니다.
모든 근(根)이란, 부처님의 敎를 듣는 사람의 *근기(根機), 능력(能力)이나 정도(程度)입니다. 그 정도가 승(勝)하면, 높으면 잘 이해하고, 정도가 낮으면, 열(劣)하면 를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를 듣는 사람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잘 분별해서 가르치심을 하신다 하여 <모든 근기의 승열을 아시는 지력>이라 합니다.
 
여러 가지(種種)(解) 아시는 지력(智力)가지가지의 (解)란, 같은 를 설하더라도 이해하는 정도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똑 같은 법문이라고 듣는 상대가 각기 어느 정도 이해했는가를 살펴서 낱낱이 분별해 아는 힘을 <여러 가지의 해(解) 아시는 지력(智力)>이라 합니다. 모든 중생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 듣기 때문에 근기 따라 알아 듣는 용어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은 각기 자기에게 이로운 점만 듣습니다. 가령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 부모효도해야 한다는 대목만 듣고, 식은 사랑해야 한다는 대목만 듣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이해했는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가지가지의 (解)를 일으켜서 듣는 사람의 이해하는 정도를 낱낱이 다 알아 분별하고 통찰하여 하시는 것을 <여러 가지의 해(解) 아시는 지력>이라 합니다.
 
모든 가지가지(種種)경계(境界)아시는 지력(智力)→<경계계(界)>자는 인간의 경계(境界), 환경인데 이것이 모두 다릅니다. 인간의 얼굴ㆍ몸ㆍ직업이 다 각각인 것과 같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똑같은 敎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다른 경계, 모든 사람의 환경을 알아서 그 사람에게 적당한 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 장수는 좋아하고 얼음과자 장수는 싫어하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 좋게도 해석되고 나쁘게도 해석되는 것입니다. 가지가지의 경계를 알지 못하고는 할 수 없습니다. 똑같이 존귀한 이치를 말한 것이라도 어떤 사람은 감탄하고 어떤 사람은 반감을 가진다는 것을 다 아신다 하여 <모든 가지가지(種種)경계(境界)아시는 지력(智力)>이라 합니다.
 
일체(一切) 지소(至所)아시는 지력(智力)지소(至所)이르는 곳입니다. 이러한 일을 하고 있으면 결국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을 잘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어디로 가는가,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무시무종(無始無終) *구원실성 분상에서 보시고 일체의 인간을 가르쳐 인도하신다 하여 <일체의 지소를 아시는 지력>이라 합니다.
 
천안무애(天眼無碍)아시는 지력(智力)천안이란, *오안의 하나인 천인(天人)입니다. 보통 인간의 눈, 육안(肉眼)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꿰뚫어 보는 눈입니다. 부처님를 공부하여 지혜가 조금씩 열리면, 육안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도 환히 꿰뚫어 볼 수 있다 하여 <천안무애(天眼無碍)아시는 지력(智力)>이라 합니다.
 
숙명(宿命)무루등(無漏等)아시는 지력(智力)숙명이란 전세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여러 가지 일을 알아서 무루(無漏), 미혹이 없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漏)<샌다>는 뜻,  미혹(迷惑)을 말합니다. 미혹은 자연 몸에서 새어 나옵니다. 땀이 몸에서 스며나오는 것과 같이 마음의 토대가 든든하지 못하면 갖가지 迷惑이 새어 나옵니다. 그 새어 나오는 일체의 迷惑제거하는 힘, 그것을 <숙명(宿命)무루등(無漏等)아시는 지력> 이라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지혜에 의해 *견사의 미혹이 증장(增長)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과거 전세부터의 일을 모조리 잘 알아서 마음의 迷惑을 제거하는 힘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迷惑이 가득 차 있으면 남을 가르쳐 *인도할 수 없습니다.
 
(永) 습기(習氣)단절(斷切) 하시는 것을 아는 지력(智力)습기, 미혹이 없어졌더라도 다시 미혹이 생길 수 있는 경향(傾向)이 남아 있습니다. 겉으로 성을 내지 않아도 성낼 듯 싶은 기분은 남아 있다든가, 남앞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지마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어디엔가 남아 있다든가 하는 것이 습기입니다.
우리가 法華經에 심취하여 부처님의 자식이 되고자 항상 참회한다든가법화경 염불독경한다든가백팔배를 올린다든가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노력하며 *인욕 수행하느라고, 증권이다 부동산이다 하는 물질적인 욕망에 집착하여 뛰어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좀더 풍족하게 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초적 기분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습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뿌리를 완전히 뽑아 없애버리는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행동상으로는 별로 결점이 없지마는 마음 가운데는 아직 에고흔적(痕跡)이 남아 있음을 아신다 하여 <(永) 습기(習氣) 단절(斷切) 하시는 것을 아는 지력(智力)>이라 합니다.
 
이상 부처님의 십력 부처님의 무한 권능을 말합니다. 일체중생구제가 전제된 부처님의 십력입니다. 범부가 부처님의 십력을 갖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수행(修行)표준으로 매우 훌륭한 덕목입니다. 부처님의  십력을 표준으로 삼고  수행을 쌓으라는 것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사무소외(四無所畏)===네 가지 두려움 없음
 
 *사무소외(四無所畏) ; 부처님께서는 교법(敎法)을 설하실 때, 그 누구도 꺼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를 그대로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법을 하기를 주저하시거나 꺼리지 않는다 하여 네 가지 덕목이라 합니다.
 
 ① 일체지 무소외(一切智 無所畏)일체지(一切智)부처님의 지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므로, 일체중생구제를 전제하고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그대로 다 털어  하시고 어떤 것도 꺼려하지 않으시므로 일체지 무소외라고 합니다.
 
 ② 누진 무소외(漏盡 無所畏)부처님께서는 * 견사의 미혹이 없으십니다. 미혹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중생 구제를 전제하고 일체의 인간을 대하시기 때문에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으십니다. 미혹이 없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고 거리낄 것이 전혀 없습니다.
 
 ③ 설장도 무소외(說障道無所畏)도(道)의 장애가 되는 것하시되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道)의 장애가 된다는 것은, 범부가 마음이 교만해 지거나, 슬픈 일을 당하여 낙심한다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은 다 를 닦는 데 장애가 됩니다. 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남에게 하여 들려준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말을 하면 저 사람의 감정을 상할 것이다> 생각하고 적당히 어름어름 넘깁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남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 장애가 되는 것이 있으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사실대로 해서 그러한 의 장애가 되는 것을 모조리 제거해 주는 것이 설장도 무소외입니다
 
 ④ 설진고도 무소외(說盡苦道 無所畏)참으로 인간의 괴로움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을 조금도 거리낌없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 괴로움을 다한다는 진고도(盡苦道)는 어려운 일입니다. 예컨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중한 병에 걸려서 술을 먹지 말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의사에게 <조금 먹는 것은 무방하겠지요>라고 하면, 의사는 딱 잘라서 절대로 안된다고 하지 않고 <되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하고 어름어름해서 보냅니다. 그러나 정말로 괴로움을 제거하여 몸의 번뇌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길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말한다는 것은, 부처님과 같은 넓고 큰 자비심을 갖춘 사람이 아니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설진고도 무소외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무소외, 네 가지 무소외을 갖추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circle03_darkgreen.gif 업보(業報)
 
업보 선악(善惡)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果報)입니다. 업보라는 것은 마치 큰 나무가 계속 자라는 것과 같이, 업(業)보(報)를 낳고, 그 가 또 이 되어서 다시 새로운 를 낳고 하여 언제까지나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한 일은 다 자기가 거둬들이는 것이지 남이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이 백년미만으로 그친다면, 선행(善行)과보, 좋은 갚음이 오지 않기도 하고, 또는 악행(惡行)과보, 나쁜 갚음이 오지 않기도 하겠지마는 시공(時空)초월(超越) 삼세(三世) 관점에서 보면 반드시 과보(果報)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과보에는 현보(現報) · 순보(順報) · 순후보(順後報)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선행(善行)의 과보가 없으면 그것은 오랜 후에 크고 좋은 갚음이 올 것이고, 지금 당장 악행(惡行)의 과보가 없으면 그것은 오랜 후에 더욱 크고 나쁜 갚음이 온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라는 것입니다. 좋은 갚음은 늦을수록 좋고 늦을 수록 갚음이 크게 오는데 그것은 마치 은행에 예금을 해두는 것과 같습니다. 예금은 오래 둘 수록 이자가 많이 붙는 것과 같이 우리가 지금 좋은 일을 하고 즉시 그 갚음을 받아 버리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마는, 늦게 받을수록 그 갚음은 크게 되어 옵니다. 옛 성인 <복을 아낀다(惜福)>는 말을 했습니다.
*복아낀다는 것은 남에게 주기를 아까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지는 것을 아끼고 되도록 받지 않고 그대로 두어두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하고 얻는 복보(福報)는 즉시 받지 말고 나중으로 미루어 두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를 공부하는 사람은 백년미만의 금생만을 생각지 않고 <한량없는 과거세 백천만억 나유타겁>에 성불하신 부처님의 수명론 분상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선행(善行)에 대한 과보를 서두를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